서울시, 청년 대상 첫 통계 발표…청년 사망자 2명 중 1명 '자살'주거 불안·사회적 고립이 자살 원인으로 지목서울 고립청년만 12만9000명 추정지원 정책 신청자 3000명 뿐, 그마저 실 참여율은 50% 미만"청년 고립은 개인 문제가 아닌 구조적 위기""청년도 복지 대상…제도 설계 전면 재검토해야"
  • "혼자 살다 보니 일주일 이상 말을 안 한 적도 있어요. 가끔은 내 존재가 사회에서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것 같았죠."

    29살 박 모 씨는 지난해 자살을 시도했다. 사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의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이어갔지만 기회는 오지 않았다. 

    고시원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생활은 고립감을 심화시켰고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박 씨는 '종료' 버튼을 떠올렸다. 

    다행히 구조됐지만 그는 여전히 "죽음을 생각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박 씨의 경험은 결코 예외가 아니었다. 서울 청년들의 삶이 통계로 드러났다. 지난 25일 서울시는 처음으로 청년만을 대상으로 한 통계를 발표했다. 

    2023년 기준 만 19~39세 서울 청년을 대상으로 인구‧주거‧일자리‧건강 등 7개 분야, 37개 지표를 종합 분석한 결과다.
  • ◆ 청년 유입 도시 서울, 일부에겐 자살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가장 눈에 띄는 통계는 사망 원인이었다. 

    2023년 서울에서 사망한 청년은 총 1260명. 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612명(48.6%)이 고의적 자해, 즉 자살로 목숨을 끊었다.

    나머지 주요 사망 원인은 '달리 분류되지 않은 증상·징후 및 임상 이상소견' 65명, 신경계통 질환 46명, 기타 심장 질환 46명, 뇌혈관 질환 43명 등으로 자살이 단일 원인으로는 단연 압도적인 수치를 기록했다.

    서울은 청년을 불러들이는 도시지만, 일부에게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리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는 분석이 더해졌다.

    이삼식 한양대 정책학과 교수는 "지방에서 서울로 유입된 청년들은 대부분 자취 생활을 하며 고립되기 쉽다"고 진단했다. 

    혼자 감당해야 하는 생활비와 주거비 부담, 서울 특유의 치열한 경쟁 환경은 청년들을 일상 속에서 점점 더 고립된 상태로 몰아넣는다. 

    이 교수는 "겉으로는 활기차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정서적으로는 지지 기반 없이 외로운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구조가 반복될수록 극단적인 선택의 위험도 함께 높아진다"고 말했다.

  • ▲ 서울시 고립·은둔 청년 지원사업 흐름도
    ▲ 서울시 고립·은둔 청년 지원사업 흐름도
    ◆ 청년 정책은 있지만…연결되지 못했다

    서울시는 이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2020년부터 고립‧은둔 청년 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일정 기준의 고립 척도를 통해 청년의 상태를 진단하고 생활 습관 회복부터 관계 형성, 직무 연계까지 단계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같은 정책이 청년들의 삶 속으로 이어지는 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어 보인다. 

    2022년 국무조정실에서 진행한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서는 고립‧은둔 상태로 분류되는 청년이 약 12만 9천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올해 지원 사업에 신청한 청년은 3000여 명에 그쳤고 실제 프로그램 참여율은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정서적으로 고립된 청년일수록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거나 제도적 지원을 받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 청년정책담당자는 "고립된 청년들의 참여는 늘고 있고 이를 통해 일상 복귀로 이어지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사업 수요에 비해 현장 운영 인력이나 전문성 면에서 부족한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아직 청년을 복지 대상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기반이 충분하지 않아 예산 확보나 제도적 설계에 어려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한계의 배경으로 제도적 뒷받침 부족과 인식의 간극을 지적했다.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령층은 기초연금, 노인일자리 등 제도적으로 복지 대상이 명확하지만 청년은 아직도 '성장하는 존재'로 여겨지며 복지 대상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며 "청년은 기존 제도 밖에 놓인 사각지대인 만큼 보다 촘촘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나 지자체 복지제도는 중복 수혜를 제한하려는 경향이 강하지만 지금 청년들은 소득·건강·사회참여 등 여러 위기를 동시에 겪고 있다"며 "소득 지원을 하면서도 사회활동, 일자리 참여 등을 병행 연계하는 다차원적·동시다발적 복지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삼식 교수도 "청년 고립 문제는 일시적 기분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조건과 구조에 따른 생활 기반의 붕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며 "공공의 개입이 꼭 필요한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청년 정책은 여전히 취업·창업 중심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일부 지자체나 부처 차원의 시범사업이 아니라 국가가 복지정책의 하나로 전면적으로 청년 고립 문제를 받아들여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2023년 서울 청년 자살률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제도 밖에 있는 수많은 청년들의 존재를 드러내는 신호다.

    다음 편에서는 복지의 사각지대에 몰린 또 다른 청년들의 현실 기초생활수급 청년의 증가 문제를 짚어본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09 또는 자살예방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