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반떼·포터도 2천만원부터 … "그냥 버스 탈래요"사라진 가성비 … 김밥 포기한 김밥천국 실패 떠올라포니·프라이드로 지켜온 국민차 이미지 버릴 순 없어
  • 자영업자 사이에 '김밥천국의 저주'란 말이 있다. 버티는 게 유일한 불황 속에서 김밥천국은 그럴 여력도 없이 문을 닫는다는 얘기다. 불황이면 오히려 손님이 몰린다는 김밥천국의 위기는 급격한 인건비 상승을 직격으로 맞은 탓이다. 김밥이란 음식이 소위 이모님으로 불리는 4050 여성들의 노동력을 갈아만든 산물인데, 값싼 노동력이 사라지자 가장 먼저 코너에 몰린 것이다.

    위기에서 김밥천국의 선택은 일괄 가격인상이었다. 마진이 가장 적은 김밥을 가장 많이 올렸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이후 김밥값은 38% 오르며 39개 외식 품목 중 단연 1등을 차지했다. 사악한 가격으로 유명한 냉면(27%)을 훌쩍 뛰어넘는다. 하지만 이런 고육지책은 오히려 김밥천국의 몰락을 부채질 했다. 소비자들은 5000원에 육박하는 김밥을 먹느니 편의점 도시락을 택했다. 2명이서 2만원이면 너댓 접시 푸짐하게 차려지던 가성비가 사라지니 그저그런 식당 중 하나로 전락했고, 김밥천국이란 선택지도 손님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수십년 간 국민차를 대표한 현대차에서 김밥천국의 조짐이 느껴지는 건 사뭇 불편한 일이다. 가성비 최고봉으로 꼽히던 아반떼 가장 싼 모델이 올해부터 2000만원을 넘어섰다. 자영업자의 동업자로 함께 했던 포터도 2039만원부터 시작한다. 편의사양을 기본옵션으로 추가했다지만, '깡통 모델'도 2000만원으로 못 산다는 점은 소비자 접근부터 주저하게 만든다. 청년들이 운전면허 취득조차 꺼리는 첫번째 이유가 '비용 문제'라는 점은 흘려들을 얘기가 아니다. '1줄 4500원'이란 문구를 본 손님이 김밥천국에서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리는 모습이 겹쳐보이는 건 왜일까.
  • ▲ 1986년 2월 신문에 게재된 현대자동차 광고. 자동차의 대중화라는 문구와 하루 1000원으로 마이카를 마련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현대차 라이브러리
    ▲ 1986년 2월 신문에 게재된 현대자동차 광고. 자동차의 대중화라는 문구와 하루 1000원으로 마이카를 마련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현대차 라이브러리
    원자재값과 인건비 상승에 차량 가격이 따라 오르는 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고급 모델에 집중해 수익률을 높이는 것도 회사가 취해야 할 당연한 전략이다. 하지만 남는 것 없이 팔던 김밥 마저 마진을 남기려다 소비자 외면에 직면한 김밥천국의 사례는 현대차가 곱씹어봐야 할 문제다. '크고 비싼' 차만 팔려는 영업 방식은 '국민차'로 시작한 현대차의 초심을 기억하는 소비자들에겐 쉽게 용납될 일이 아니다.

    현대차그룹이 사실상 독점한 경차와 소형 트럭의 국내 판매량이 급감했다고 한다. 불황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시장이라지만, 이면에는 신차 개발에 인색한 상품성에 소비자 불만도 적잖다. 수십년 전 개발한 구형 엔진과 변속기는 그대로 둔 채 해마다 연식 변경으로 차값만 올리는 행태에 지친 소비자들이 외면한 결과다. 김밥천국의 김밥처럼 남는 거 없는 시장이라 내버려 둔 건 아닌지 소비자들은 의심하고 있다. 실제로 2000만원을 훌쩍 넘는 포터2에 대항하는 BYD 전기상용트럭은 1600~1700만원 선에 구매가능하다고 한다. 모닝이나 레이를 타고 자녀 등하원과 마트 장보기에 나서던 주부와 학부모들도 비싼 차값에 중고차 시장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첫 차는 아반떼', '4인 가족은 소나타', '성공하면 그랜저'라는 현대차 공식도 예전같지 않다. '아반떼 타느니 BMW(BUS, METRO, WALK) 하고, 그랜저 타느니 BMW(독일 고급차) 사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가 늘고 있다. 현대차에 기대하는 국민차 이미지가 점차 희석되고 있다는 의미다. 친환경 차 전환을 기점으로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완성차 공세가 거세다. 글로벌 경쟁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동안 일궈온 국민차 시장을 중국에 내주는 건 심각하게 생각할 문제다. 포니, 엑셀부터 프라이드, 액센트, 베르나까지 가성비 넘치는 모델을 지워버린 현대차에게 국민차는 어떤 의미인지 돌아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