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소외감·고립된 사람들을 줄여야" 입 모아"정치권의 도덕적 해이, 사회적 억제력의 약화 불러""공포 해소 위한 상징적 조치, 근본 해결 안돼"
  • ▲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한 서울 강북구 지하철 4호선 미아역 인근 사건 현장에 지난 23일 시민이 놓고 간 국화꽃들이 놓여있다. ⓒ뉴데일리 DB
    ▲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한 서울 강북구 지하철 4호선 미아역 인근 사건 현장에 지난 23일 시민이 놓고 간 국화꽃들이 놓여있다. ⓒ뉴데일리 DB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서 발생한 무차별 흉기 난동을 시작으로 경기도 하남과 충북 청주 등 전국 각지에서 유사 범죄가 잇따르면서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일련의 범죄들은 범행 동기가 뚜렷하지 않은 데다 범행 대상도 일면식이 없는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언제 어디서든 유사 범죄가 재발할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6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오후 30대 남성 김성진은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한 마트에 들어가 진열된 흉기를 들고 마트 직원과 시민 등 2명을 무차별 공격했다. 김성진에게 공격을 당한 60대 여성은 마트 밖까지 도망쳤으나 김성진은 끝까지 쫓아가 공격을 이어갔고 해당 여성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치료 도중 끝내 숨졌다.

    엿새 뒤인 같은 달 28일에는 충북 청주의 한 고등학교 교실에서 10대 학생이 흉기를 휘둘러 교직원과 주민 등 6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 학생은 범행 후 인근 저수지로 도주했지만 경찰에 구조돼 병원으로 이송됐다.

    같은 달 29일에도 경기 하남의 한 대형마트에서도 흉기로 직원을 위협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현장에 있던 시민들은 극도의 공포를 호소했고 경찰은 출동 후 가해자를 신속히 제압했다. 이 사건으로 목 등을 다쳐 중상을 입은 피해자는 병원으로 이송됐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잇따른 무차별 범죄의 범행 방식과 장소, 시점의 유사성이 강하게 지적되며 우려가 커지고 있다.
  • ▲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마트에서 흉기를 휘둘러 행인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김성진의 신상정보가 공개됐다. ⓒ서울경찰청 누리집 캡쳐
    ▲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마트에서 흉기를 휘둘러 행인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김성진의 신상정보가 공개됐다. ⓒ서울경찰청 누리집 캡쳐
    ◆전문가들 "무차별 범죄, 사전예방 위한 체계적 제도 설계 필요"

    전문가들은 ‘묻지마 범죄’ 근절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적 안전망 강화와 복지제도 확대 등 체계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또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일시적으로 경찰 병력을 증원 배치하는 등 정부가 단발성 대응에 급급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최근 일어난 무차별 범죄 문제를 단순한 법 개정이나 일회성 조치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며 "개인의 판단이나 행동 선택을 사전에 예측하거나 대비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상동기 범죄, 무차별 범죄에는 당장 쓸 수 있는 특효약이나 만병통치약은 없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실질적인 예방을 위해서는 사회적 안전망 강화와 복지제도 확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회복지 제도라든지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는 방식으로 사회에서 소외감을 느끼거나 고립된 사람들을 줄여야 한다"며 주변 인물이 위험 징후를 인지했을 때 적극적으로 제보할 수 있도록 사회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 시스템을 운영하려면 인력이 필요하고 예산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항상 당장 급한 일들이 더 많아서 이런 문제는 계속 뒷전이 된다"며 "인프라 부족과 정책적 우선순위 미비가 중장기 대응의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 ▲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한 서울 강북구 지하철 4호선 미아역 인근 마트 현장에 시민들이 놓고 간 국화꽃들.  ⓒ뉴데일리 DB
    ▲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한 서울 강북구 지하철 4호선 미아역 인근 마트 현장에 시민들이 놓고 간 국화꽃들. ⓒ뉴데일리 DB
    ◆"'정치권의 적대 행동', 모방 심리에 영향"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일련의 사건들의 배경에 '모방 심리'가 작동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일시적으로 비슷한 불만을 가진 자들이 '저렇게 할 수 있구나' 하고 깨달아 비슷한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라며 "동기와 행동 패턴을 따라 하는 모방 범죄 형태가 있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정치권 인사들 간의 적대적 행동이나 이들을 향한 협박성 발언·글 등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일종의 '무제약 상태'인 '인히비션(Inhibition) 비제지(非制止) 효과' 같은 것이 생길 수 있다"며 "지금까지 불법은 대단히 엄격하게 제지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나만 억제하고 있었던 건가'라고 인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정치권 등의 높은 사람들은 서로 막 적대적이어도 별로 크게 제재 안 받는 것 같은 모습이 나타나면 도덕적 해이가 사회적 억제력의 약화로 이어지게 된다"면서 "그런 모습들이 돌발 행위를 하는데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역시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듣고 있는 게 어떤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당연히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본다"며 처벌 사례와 사회적 대응의 메시지 자체가 시민의 인식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례를 통해서 처벌 사례가 많이 나타나면 무차별 범죄도 예방이 될 수 있다"며 "'강력한 대응이 있을 거니까 그러면 하지 말아야겠다' 이렇게 인식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와 치료의 제도적 허점도 문제로 짚었다. 이 교수는 "지금 우리 사회의 안전망에 구멍이 많다"며 "특히 정신질환자 관리 부분이 그렇다"고 했다. 그는 " 동사무소 차원에서 관리를 하더라도 상담도 잘 안 되고 예방도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며 "흉기 소지나 가족 위협 같은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도 강화해야 하고 치료가 필요한 분들은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 ⓒ뉴데일리 DB
    ▲ ⓒ뉴데일리 DB
    ◆단발성 대응 의미 없어…"‘인간 안보’, 정책 어젠다 삼아야"

    무차별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단발성 대응으로 일관해 온 정부 태도에 대한 비판도 이어진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보다 실질적이고 본질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이런 유형의 범죄가 1년에 몇 건 발생하는 지에 대한 통계조차 최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없었다"며 범죄 토양 변화에 대한 기본적인 진단조차 없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분당 야탑역 흉기 난동 예고 사건 등에서도 장갑차를 대안으로 가져다 놨는데 근데 그건 사안의 본질을 잘못 파악한 것"이라며 "경찰은 접근 방식이 주로 사후적으로 상징적인 대응만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장갑차 배치였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이 문제를 국가 정책의 우선순위로 설정하고 여러 부처가 함께 진단에 참여해야 시민들이 안전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 문제를 국가 차원의 '인간 안보 확보'라는 관점에서 정책 아젠다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곽 교수도 경찰의 특별치안활동이나 거점 배치 같은 조치들이 본질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런 조치는 사회적으로 불안감이 클 때 임시적으로 운영할 수는 있지만 경찰 조직의 인력이나 능력으로는 그걸 상시적으로 오랫동안 끌고 가기 힘들다"며 단기적 효과 만을 기대한 대응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러면서 "당장의 공포 해소를 위한 상징적 조치만 반복해서는 근본 해결이 어렵다. 경찰력은 이미 과부하 상태고 치안 수요는 갈수록 늘고 있는 상황"이라고 현실적인 한계 또한 강조했다.

    한편 경찰은 최근 '묻지마 범죄'가 잇따르자 다중이용시설 등을 대상으로 한 치안 활동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