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렴으로 장기간 입원 후 활동 재개하던 중 선종바티칸 "가장 가난한 이들과 가장 소외된 이들을 지지"1282년 만의 신대륙 출신 교황…역대 가장 진보적 평가세계 곳곳에 평화와 공존 메시지…수차례 방북 의사도 밝혀
  • ▲ 수녀들이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프란치스코 교황을 위한 묵주 기도회에서 기도하고 있다. 250310 AP/뉴시스. ⓒ뉴시스
    ▲ 수녀들이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프란치스코 교황을 위한 묵주 기도회에서 기도하고 있다. 250310 AP/뉴시스. ⓒ뉴시스
    2013년부터 12년간 전세계 14억 가톨릭 신자를 이끌어온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현지시각) 88세로 선종했다고 교황청이 발표했다.

    AP·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교황청 궁무처장인 케빈 페렐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늘 아침 7시35분에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셨다"고 발표했다.

    페렐 추기경은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성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선종 소식을 깊은 슬픔 속에서 전한다"며 "그는 삶의 전체를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데 헌신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프란치스코 교황이 신앙, 용기, 보편적 사랑을 갖고 복음의 가치를 살아가라고 우리를 가르쳤다"며 "그는 특히 가장 가난한 이들과 가장 소외된 이들을 지지했다"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호흡기 질환으로 2월14일부터 로마 제멜리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양쪽 폐에 폐렴 진단을 받은 그는 입원 후에도 호흡곤란 증세로 고용량 산소치료를 받았고, 혈소판 감소증과 빈혈로 수혈받기도 했다.

    입원 중 상태가 악화하기도 했지만, 3월23일 38일간의 입원 생활을 마치고 퇴원했고, 최근에는 활동을 재개했다.

    교황은 부활절을 앞두고 이탈리아 로마 시내의 교도소를 깜짝 방문하거나 이탈리아를 방문한 J.D. 밴스 미국 부통령을 비공개로 면담했고 부활절 미사에도 등장하는 등 활동을 늘려가고 있었다.

    교황은 퇴원 후 짧게 대중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마지막은 부활절 주일인 20일이었다. 교황은 부활절 미사를 직접 주재하진 않았지만, 낮에 성 베드로 광장에 운집한 신도들을 축복하기 위해 거소 발코니에 얼굴을 보였고, 이어 광장으로 나가 신도들과 마주했다.
  • ▲ 프란치스코 교황이 입원했던 이탈리아 로마의 아고스티노 제멜리병원 앞에 교황의 회복을 기원하는 촛불과 꽃이 놓여 있다. 250306 AP/뉴시스. ⓒ뉴시스
    ▲ 프란치스코 교황이 입원했던 이탈리아 로마의 아고스티노 제멜리병원 앞에 교황의 회복을 기원하는 촛불과 꽃이 놓여 있다. 250306 AP/뉴시스. ⓒ뉴시스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는 고인의 생전 뜻에 따라 간소하게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그는 생전 "품위 있으면서도 모든 그리스도인처럼 간소화된 예식을 원한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건강상의 문제로 자진 사임한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이어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그는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282년 만의 비유럽권이자 최초의 신대륙 출신 교황인 그는 역대 교황 중 가장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분쟁으로 얼룩진 세계 곳곳에 평화와 공존의 메시지를 보낸 종교 지도자로도 평가받는다.

    적대적 관계에 있던 미국과 쿠바의 2015년 국교 정상화에 결정적 이바지했고, 2017년에는 로힝야족 추방으로 '인종청소' 논란이 불거진 미얀마를 찾아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2000년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2021년 이라크 땅을 밟아 무장테러 희생자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전쟁이 발발한 이래 교황은 끊임없이 평화의 목소리를 냈고, 2023년 10월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간의 전쟁을 두고도 민간인 희생을 막고 분쟁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아시아 대륙 첫 방문지로 한국을 택할 정도로 한반도 평화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당시 교황은 방북을 추진했지만, 북한의 소극적 태도로 무산됐다.

    교황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방북 의사를 밝혔지만 끝내 성사되진 못했다.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 개최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두 번째 방한이 기대됐으나,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방한은 차기 교황의 몫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