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 환각제 '러시', 여전히 '임시' 마약류국내 유통되는 마약의 95% 이상이 해외 밀반입외국인 마약 밀수, 비대면 방식 수법으로 진화전문가 "위장 수사 합법화·러시 공식 마약류 지정해야"
  • ▲ 신종 마약 '러시(Rush)'를 흡입하면 의식을 잃거나 심장 발작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서울 강남경찰서
    ▲ 신종 마약 '러시(Rush)'를 흡입하면 의식을 잃거나 심장 발작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서울 강남경찰서
    [편집자주] 한국은 한때 '마약 청정국'이라 불렸다. 유엔(UN)은 마약사범이 인구 10만명당 20명 이하일 때 마약 청정국으로 분류하는데 한국은 2016년 그 지위를 잃게 됐다. 그해 마약사범이 22.2명을 넘어서면서다. 2023년엔 무려 3만명에 육박한 마약사범의 연령층은 2030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신종 마약이 국내에 밀반입되는 경우도 늘고 있어 이젠 한국이 세계 마약 시장의 소비처로 전락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른바 '마약 청정국의 몰락'이다. 뉴데일리는 사회 전반에 퍼진 마약 범죄의 현실을 짚어 보고 우리 사회에서 마약을 어떻게 근절해야 할지 집중 조명한다.

    최근 강남 일대에서 마약사범이 경찰에 적발되는 사례가 늘면서 마약 범죄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국은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며 마약 수사와 처벌 수준 또한 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지난 5일 베트남에서 신종 마약 '러시(Rush)'의 원재료를 들여와 국내에서 유통한 외국인 남성 A씨를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지난 1일에는 대마를 흡입한 채 지하철 2호선 선릉역 앞에 쓰러져 있던 30대 남성 B씨가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되기도 했다.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7일 신종 마약 '러시 사건'에 대해 "자세한 수사 기법은 공개하기 어렵다"면서도 "중간 유통책인 C씨와 D씨까지 모두 적발해 검찰에 구속 송치한 상태"라고 밝혔다. A씨가 국내에서 제조한 러시는 총 4리터다. 4000회나 흡입할 수 있는 양이다. A씨는 러시를 '중독성이 없다'고 홍보하며 병당 많게는 30만 원에 판매했다고 알려졌다.

    A씨는 베트남 현지에서 러시 원재료를 화장품인 것처럼 위장해 인천공항을 통해 국내로 밀반입했다. 이후 서울 영등포구 은신처에서 직접 만들어 텔레그램을 통해 판매했다. 여기에 중간 유통책 2명도 가담했다. 이들은 모두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를 받는다.
  • ▲ 서울 강남경찰서 ⓒ연합뉴스
    ▲ 서울 강남경찰서 ⓒ연합뉴스
    ◆심장발작 유발 '강력 환각제' 러시, 여전히 '임시' 마약류

    A씨가 국내에 밀반입한 러시는 흡입할 경우 의식을 잃거나 심장 발작을 일으킬 수 있는 강력한 환각제로 알려져 있다. '알킬 나이트리트' 일명 러시는 클럽 등지에서 은밀하게 오남용된다. '빨리 달아오른다'는 의미에서 러시라는 이름이 붙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3년 12월 러시를 2군 임시 마약류로 지정했다. 임시 마약류란 과학적으로 입증은 안됐지만 오용 또는 남용했을 때 신체에 위험이 있어 마약류에 준해 취급하는 물질이다.

    과거 러시는 국내에서 공식 마약류 지정이 추진됐지만 무산된 바 있다. 식약처가 세계 최초로 러시의 강한 중독성과 의존성을 동물실험을 통해 확인하는 성과를 내면서다. 이에 2016년 식약처는 UN마약총회에서 알킬 나이트리트 독성을 관련국들에 알리고 러시를 공식 마약류 지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러시는 임시 마약류로 분류되고 있는 만큼 이를 투여하거나 운반하는 사람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치는 상황이다. 러시는 주로 해외 직구를 통해 국제 우편이나 특송 화물로 국내에 밀반입된다. 일반인들은 텔레그램이나 해외 인터넷 사이트에서 몰래 구입하고 있다.
  • ▲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뉴데일리 DB
    ▲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뉴데일리 DB
    ◆신종·외국인 마약사범 폭증에도 솜방망이 처벌…"처벌 강화해야"

    이번 러시 사건처럼 신종·외국인 마약 밀수사범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마약 유통과 판매가 대면 방식에서 비대면 방식으로 급속히 진화했기 때문이다. 

    외국인 마약 밀수사범은 2019년 196명에서 2023년 590명으로 3배 이상이 됐다. 관세청의 2014년 신종 마약류 적발 건수 가운데 러시는 약 40%를 차지할 정도다.

    국내 유통되는 마약의 95% 이상은 해외에서 들어오는 가운데 국내로 밀반입되는 마약량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마약류는 현행법으로 기소되더라도 법원에선 처벌이 안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2015년 서울고등법원은 러시 밀수업자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중독성에 대한 검증이 완전하지 않은 채 징역형 등에 처해지는 건 과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국내 신종 마약 유통과 외국인 마약 밀수사범이 늘고 있지만 마약사범에 대한 처벌은 약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마약 사건 전문 변호사는 "초범이라고 해서 정상 참작해주는 사례가 더 이상 생겨선 안 된다"며 "실형 선고 비율이나 마약 범죄의 형량 자체를 높이는 등 처벌이 강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 법원의 양형은 법이 정해 놓은 기준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마약류관리법은 2군 마약류를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지난해 재판에 넘겨진 마약사범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3.5%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 ◆마약 밀수 온상 전락한 텔레그램…"위장 수사 합법화·러시 공식 마약류 지정해야"

    마약 유통 경로가 비대면 방식으로 진화하는데도 국내 마약수사 기법은 낙후돼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코인 결제와 텔레그램 등 SNS로 이루어지는 비대면 마약 유통이 현행 수사 체계로는 피의자 적발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서초동의 형법 전문 변호사는 "현행법에는 마약류 범죄에 대한 신분 위장 수사 관련 규정이 없다"며 "마약 범죄에 한해 위장 수사를 합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외국인 마약 밀수 사례가 늘면서 수법도 교묘해지고 있다"며 "경찰이 잠입 수사에 성공하더라도 법원에서 이에 대한 적법 여부를 다툴 수 있어 문제"라고 설명했다. 

    2020년 조주빈이 운영한 'N번방' 사건 이후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는 신분 위장 수사가 가능하도록 법이 개정됐지만 아직 마약 수사에선 허용되지 않고 있다. 나아가 이제는 식약처가 임시 마약류인 러시를 공식 마약류로 지정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한편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이번 러시 사건과 관련해 "해외에선 불법이 아닌 마약류를 국내에 들여와 제조하거나 판매 및 소지하는 행위는 형사 처벌 받게 될 것"이라며 "특히 '중독성 없고 처벌 받지 않는다'며 속이는 행위는 엄히 단속하겠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