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용사 유족, 최초로 연평도에 모여산화 당시 아들뻘 북한군 모습에 눈물"北 파병 청년들의 투항과 귀순 촉구"22년이 지나도 트라우마는 현재진행형국가 차원의 군인·유족 트라우마 관리 필요
  • ▲ '제2연평해전'의 여섯 유가족이 1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 평화공원에서 연평해전 전사자 추모비에 참배한 뒤 '북괴의 러시아 침략전쟁 참전 규탄 및 파병 철회 촉구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조문정 기자
    ▲ '제2연평해전'의 여섯 유가족이 1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 평화공원에서 연평해전 전사자 추모비에 참배한 뒤 '북괴의 러시아 침략전쟁 참전 규탄 및 파병 철회 촉구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조문정 기자
    "북괴 김정은의 정권 유지와 소수 특권층의 사리사욕을 위해 러시아를 대신해 고기 분쇄기로 전락하게 될 북한 젊은이들의 '희생양 만행'을 규탄하고 파병 북한 청년들의 투항 및 귀순을 촉구한다."

    2002년 6월 29일 오전 9시 54분 북한군의 기습으로 촉발된 '제2연평해전'의 여섯 유가족이 1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를 찾아 이같이 호소했다.

    제2연평해전이 발발한 지 22년여가 지났지만 유가족 전원의 연평도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가족들은 러시아의 침략 전쟁에 총알받이로 파병된 북한 청년들에 대한 안타까움, 북한 독재정권에 대한 분노, 통일에 대한 염원이 자신들의 발걸음을 연평도로 이끌었다고 밝혔다. 이날 유가족들은 탈북민단체들과 북한인권단체들을 제외한 단체로는 처음으로 북한 파병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제2연평해전 유가족과 승전기념회, 북러 규탄 성명 발표

    고(故) 서후원 중사 아버지인 서영석 제2연평해전 유가족회장은 이날 연평도 평화공원에서 연평해전 전사자 추모비에 참배한 뒤 유족들 및 제2연평해전 승전기념회를 대표해 '북괴의 러시아 침략전쟁 참전 규탄 및 파병 철회 촉구 결의문'을 낭독했다.

    서 회장은 "2002년 6월 29일 북괴와 그 수괴 김정일이 일으킨 제2연평해전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해군 6용사가 산화했다. 이에 연평해전 유가족과 참전용사가 북괴와 김정은을 상대로 소송해 대한민국 법원으로부터 연평해전은 북괴와 김정은이 일으킨 명백한 불법 침략 행위임과 그 책임을 져야 함을 판결받은 바 있다"고 운을 뗐다.

    그는 "북괴의 국제법상 불법행위를 눈감아주고 심지어 방조, 조장하고 있는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설상가상으로 이제 북괴는 국제법상 불법 침략 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러시아에 대해 전쟁무기를 공급하는 것을 넘어서 전투병을 파병해 국제사회와 교전 당사국이 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불법 침략전쟁의 종식, 북한의 파병 철회, 파병 북한군의 투항 및 귀순, 러시아와 북한에 대한 국제 제재 강화 등을 촉구했다.
  • ▲ 제2연평해전 영웅은 故 윤영하 소령, 故 한상국 상사, 故 조천형 상사
故 황도현 중사, 故 서후원 중사, 故 박동혁 병장 등 6명이다. ⓒ국가보훈부 제공
    ▲ 제2연평해전 영웅은 故 윤영하 소령, 故 한상국 상사, 故 조천형 상사 故 황도현 중사, 故 서후원 중사, 故 박동혁 병장 등 6명이다. ⓒ국가보훈부 제공

    ◆유족들, 산화 당시 아들 나이인 어린 북한군 모습에 눈물

    유가족들은 우크라이나 군 당국이 공개한 영상 속 북한군의 앳된 모습을 보고 제2연평해전으로 산화한 당시 아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또 다른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다.

    서 회장은 뉴데일리에 "북한 청년들은 말 그대로 '총알받이'가 돼 살아 돌아올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파병된 아이들은 제2연평해전 당시 산화한 우리 막내아들뻘이다. 아까운 목숨이 김정은의 '총알받이 용병'으로 러시아에 팔려 가 핵·미사일 개발 종잣돈으로 전락했다"며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전장에 나가 김정은 정권과 맞서 싸우고 싶다"고 말했다.

    고 황도현 중사의 어머니 박공순 씨는 "젊은 군인들을 보면 다 내 자식 같다.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그 어린아이들이 뭘 안다고 부모 몰래 러시아에 데려가 총알받이를 시키는지 모르겠다. 김정은은 김일성, 김정일보다 훨씬 악독하다. 김정은 정권의 종말과 통일이 와야 다시는 이런 일이 안 생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 연평도 안보교육관 옆 피폭건물 보존구역에는 연평도 포격으로 파손된 개인주택 3채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조문정 기자
    ▲ 연평도 안보교육관 옆 피폭건물 보존구역에는 연평도 포격으로 파손된 개인주택 3채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조문정 기자
    ◆"죽어야 끝나는 트라우마" … 국가 차원의 트라우마 치료 미흡

    예우와 기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현행 보훈정책이 제복 입은 영웅들을 둘러싼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특히 군인과 그 가족의 트라우마 치유에 특화된 심리치료 프로그램은 없다고 한다.

    박 씨는 제2연평해전 발발 22년여가 흐른 지금도 아들의 마지막 모습이 생각나 밤잠을 못 이루곤 한다고 토로했다. 황 중사는 북한이 쏜 22mm 발칸포에 맞아 머리의 3분의 1이 사라진 채 전사했다.

    그는 "사람들이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말라고 말렸지만,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이라도 아들을 보고 싶었다. 입관식 때 봤는데 너무너무 끔찍했던 그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신경외과에 다니고는 있지만 이 트라우마는 죽어야 잊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죄"라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고 한상국 상사의 아내 김한나 씨는 "마지막으로 본 남편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지금도 정신과에 격주로 다니고 있긴 하지만 트라우마가 쉽게 극복되지 않는 것 같다. 특히 소리에 예민해져서 영화관이나 콘서트장처럼 큰 소리가 나는 곳에는 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서 회장은 "제2연평해전 이후로 우리 부부에게는 대인기피증이 생겼다. 사람들이 모여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데도 마치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피해 다녔다. 우리 부부는 지금도 웬만하면 감정이나 생각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고 했다.

    고 박동혁 병장의 어머니 이경진 씨는 "제2연평해전 직후에 지역 보건소에서 심리치료가 이뤄지긴 했는데 매우 형식적이라 공감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다 담당자가 군 출신으로 바뀌고 나니 좀 나아졌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제1·2연평해전, 연평도 포격전을 연달아 겪은 연평도 주민들의 트라우마도 치유되지 못한 채 봉인된 상태였다. 연평면 부녀회장이자 연평도 안보교육장에서 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영순 씨는 "연평도 포격 당시 주민들은 오후 작업 중이거나 출타하거나 지인들을 마중하기 위해 부둣가로 나간 탓에 사상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밖에서 모든 것을 목격했기 때문에 트라우마가 심하다"고 말했다.

    최근 '워리어 마인드셋'을 출간한 장재현 해군 중령(심리학 박사과정)은 "제1·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전 등과 관련해 정신과학 치료가 있었다고 기록돼 있는데, 과연 그 치료가 무엇이었는가는 잘 모르겠다"며 "정신건강은 '군인이니까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요할 영역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보듬어줘야 할 영역"이라고 지적했다.
  • ▲ 제2 연평해전에서 전사한 고 한상국 상사의 아내 김한나씨가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손혜정 기자
    ▲ 제2 연평해전에서 전사한 고 한상국 상사의 아내 김한나씨가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손혜정 기자
    ◆'군인재해보상법 개정안'과 '공무원재해보상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 촉구

    한편, 한 상사의 아내 김한나 씨는 유족 연금 개선을 요구하며 지난해 5월부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전사한 군인들이 전사 당시 계급이 아닌 사후 진급 추서된 계급에 맞게 유족연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군인재해보상법 일부개정안'(한기호 국민의힘 의원 발의), 군인뿐만 아니라 경찰, 소방관 등 다른 공무원들에게도 같은 내용이 적용되는 '공무원재해보상법 일부 개정안'(유용원 국민의힘 의원 발의)은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