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조각가' 이영학 회고展 '고요의 정원'石·水‧草 시리즈 등 대표작 200여 점 선봬'이영학 기념관' 건립 … 해외 전시도 추진
  • ▲ 조각가 송정(松亭) 이영학. ⓒ정상윤 기자
    ▲ 조각가 송정(松亭) 이영학. ⓒ정상윤 기자
    "첫 작품요? 제가 서울 동숭동 문예진흥원 미술관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나네요. 가만있자…. 자연석 돌멩이 위에다가 사과를 주물로 떠서 그 위에 찔러 넣지 않았었나? 작품명이 아마 '애플'일 거예요."

    췌장염으로 입원 치료 중인 노(老) 작가에게 '첫 작품'이 뭐냐는 질문을 건네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갑자기 눈을 번쩍이더니 "애플, 이 놈들이 내 사과를 보고서 로고를 만든 게 아닌가 싶어"라고 농을 던졌다.

    작품 이야기가 나오자 금세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작가의 건강이 안 좋아 어렵게 성사된 인터뷰였다. 한 거장(巨匠)의 마지막 전시회가 될지도 모르는 '회고전'을 취재하는 기자와 '병마'와 싸우고 있는 작가, 둘 다 절실한 상황이었기 때문일까. 1분 1초가 소중하게 느껴졌고, 한마디 한마디가 묵직하게 와닿았다.

    인터뷰에 응하는 작가 역시 한마디라도 더 남기기 위해 애를 썼다. 굳이 묻지 않은 얘기까지 털어 놓으며 자신의 인생사, 그리고 미술역정을 담담히 풀어냈다.

    원래는 병상에 누운 채로 인터뷰를 해야 했으나, 병원(강남지인병원) 측의 배려와 본인의 의지로 6층 빈 병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 12일 검은색 스웨터와 흰색 모시 바지 차림으로 나타난 작가는 사진에서 보던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한창 활동할 때 사진들을 보면 통통하면서도 다부진 체격에서 당당한 풍모가 느껴졌는데, 지금은 영락없는 초로(初老)의 모습이었다. 푹 들어간 볼살과 짙은 다크서클, 바짝 야윈 몸매는 안쓰러운 느낌마저 줬다.

    소개가 늦었다. 젊은 기자 앞에 병든 노구를 이끌고 나타난 주인공은 우리나라 현대조각을 대표하는 조각가, 송정(松亭) 이영학(77·李榮鶴)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김수환 추기경, 소설가 박완서, 영화감독 임권택, 미술평론가 유홍준, 화가 장욱진, 중광스님, 마라토너 황영조, 배우 신성일 등 수많은 저명 인사들의 '두상'을 만든 장본인이다. 호미, 낫, 대못, 부지깽이 등 낡고 버려진 것들을 한국적인 정서가 물씬 풍기는 예술품으로 빚어내 '미다스의 손'으로도 불린다.

    내로라하는 정재계 인사들 중에 이 작가의 작품이 없는 사람은 드물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의 작품은 한때 '부의 상징'으로 통했다.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은 이 작가의 열혈 팬이자 단골 고객. SK·중앙일보·태평양그룹 등 굴지의 재벌 상당수가 이 작가가 만든 '창업주 두상'을 보유하고 있다.
  • ▲ 조각가 송정(松亭) 이영학. ⓒ정상윤 기자
    ▲ 조각가 송정(松亭) 이영학. ⓒ정상윤 기자
    ◆"홍라희 여사가 단골 고객 ‥ 250人 두상 만들어"

    "로마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기존의 매끈매끈한 상이 아니라 투박한 손맛이 느껴지는 작품들을 선보였습니다. 작품의 진가를 아는 사람은 따로 있더군요. 어느 날 홍라희 여사님이 직접 저를 찾아왔어요. 자기 남편 얼굴을 만들어야 되겠다고…. 그 이후 대한민국에 있는 회장님들은 내가 거의 다 만들어줬습니다."

    이 작가는 "그동안 250명 이상의 두상을 만든 것 같다"며 "이 세상에서 두상을 제일 많이 만든 사람은 기마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마리노 마리니(Marino Marini)'인데, 그분이 183종을 만들었고, 저는 그 보다 많이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 외에도 배우 최불암 등 많은 이들에게 두상을 만들어 선물로 줬다고 밝힌 이 작가는 "제가 단순히 두상을 많이 만들었다는 걸 내세우곤 싶지 않다"면서도 "손맛이 나게끔 만드는 작업 방식을 최초로 도입한 것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제 작업 방식은 옛날처럼 이렇게 찍어내는 게 아니라, 형틀을 이중으로 떠 가지고 끓인 밀랍을 부어서 그걸 이용해 만들기 때문에 손가락 지문까지 다 나옵니다."

    이 작가는 녹슨 '무쇠'를 소재로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가뜩이나 다루기 힘든 무쇠를 갖고 수십 년간 캐스팅 작업(점토로 만든 모형을 석고로 틀을 떠낸 다음 쇳물을 부어 주조하는 방식)을 하다보니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이 작가의 유일한 제자, 이원주 갤러리LVS 대표의 말에 따르면 이 작가는 하도 용접 작업을 많이 해서 청력이 상실되고 목디스크 2개가 터지는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작가는 최근 수술로 오른쪽 귀의 청력이 상당 부분 회복된 상태다. 이날 인터뷰도 이 작가의 오른쪽 지근거리에서 진행됐다.

    이 작가에게 많고 많은 소재 중에, 왜 하필 손때 묻은 '고철 덩어리'를 주워서 조각할 생각을 했는지를 물었다.

    "제가 (대)학교 다닐 때 동판이나 철판을 돈을 주고 샀어야 했는데, 저 같은 경우는 그런 걸 살 여유가 없었죠. 어느 날 제가 하숙하고 있는 2층 방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엿장수 아저씨들이 왔다갔다하는 고물상이 보이는 거예요. 내려가서 봤더니 우리가 옛날에 쓰던 호미, 연탄집게…, 뭐 이런 재료들이 이렇게 쌓여 있더라고요. 이거다. 이걸 갖고 내 나름대로 뭘 해봐야겠다고 마음 먹고 몇 개를 사가지고 작업을 한 게 시작이었습니다."

    그 어려웠던 시절 서울대와 동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한 이 작가는 80년대 중반 이탈리아로 훌쩍 떠나 십년 가까이 정통 조각을 수학한 엘리트 예술가다. 스승은 이탈리아 인체조형의 거장 에밀리오 그레코(Emilio Greco). 대학 재학 시절 고물상에 있던 고철을 주물럭거리며 조소에 눈을 뜬 그는 '조각의 본고장'까지 건너가 당대 최고·최신 기술을 습득했다.

    로마의 스승들마저 경탄할 정도로 인체조각에 뛰어났지만 귀국 후 그가 눈을 돌린 건 주변에 널린 고철과 농기구였다.
  • ▲ 조각가 송정(松亭) 이영학. ⓒ정상윤 기자
    ▲ 조각가 송정(松亭) 이영학. ⓒ정상윤 기자
    ◆"우악스런 이태리 연장 보고 '한국의 美' 재발견"

    "제가 오랫동안 이태리 로마에 있었는데요. 그곳에 있는 연장들은 크고 우악해서 전혀 사랑스럽지 않았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연장들은 굉장히 자그마하고 사랑스럽거든요. 그걸 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성이 이렇게 곱구나 하는 걸 다시금 느끼게 됐죠. 자연스레 그쪽으로 손이 가더라고요. 처음엔 그런 작업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 자체가 우리의 생, 우리의 삶과 연결이 되더군요. 그래서 지금도 그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작가는 마음에 드는 소재를 구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 안 다닌 곳이 없다.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 위치한 고물상들은 마치 집처럼 왔다 갔다 했다.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고물들이 그에겐 보석 같은 소재였다. 호미, 대못, 낫, 돌조구, 쇠스랑, 연탄집게 등 수많은 잡동사니들이 그의 손을 거쳐 예술작품으로 거듭났다.

    "제가 작업하는 걸 보더니, 누군가 '정크 스크래쳐(Junk scratcher)'라고 하더군요. 소위 쓰레기 예술이라고요. 나는 그런 뜻이 아니고, 우리가 사용하고, 우리가 직접 손으로 만지고, 또 무엇을 만들어 키워내고 하는 그런 도구들이 너무 가슴에 와닿았던 겁니다. 그뿐이에요. 백남준 선생이 고물 텔레비전을 모아서 전시하는 걸 보세요. 다른 사람이 없는, 나 자신의 것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모두가 그거 하나는 꼭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작가의 작품 중엔 유독 '새'를 닮은 조각들이 많다. 오죽하면 '새 조각가'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만들다 보니까 그냥 새가 저절로 됐어요. 문이 이렇게 열리고 닫히는 데 쓰이는 '돌조구'라고 있는데요. 그게 새 주둥이가 되고, 거기에 있는 구멍이 눈이 되고…. 호미하고 낫 같은 건 몸통이나 날개가 됐죠. 제 이름에 학(鶴)이 들어가서 그런가? 아무튼 이 작업을 수십 년간 해왔는데요. 질리지가 않아요. 재미가 있으니까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겁니다."

    이 작가가 만든 작품들은 죄다 '투박한' 느낌을 준다. 흔히 볼 수 있는 번쩍번쩍 빛나는 광택도 없다. 대신 녹이 가득하다. 녹슨 고철을 가져다가 수개월간 땜질하고 다듬었는데 이전보다 녹이 더 슬었다.

    "저는 뺀질뺀질한 거는 없애야 된다는 주의예요. 번쩍인다고 다 금은 아니고 좋은 게 아니죠. 두상도 그렇고 새도 마찬가지예요. 또 색칠하는 것도 저는 싫어해요. 그냥 그 자체에서 나오는 그 모양새가 좋죠."

    이 작가에게 녹이 자연스럽게 슬게 하는 방법이 있는지를 물었더니 선뜻 '비법'을 공개했다.

    "일단 바가지에 천일염을 탄 소금물을 잔뜩 담아서 갖고 와요. 그걸 붓에 적셔서 슥슥 작품에 칠합니다. 그리고 가스 불로 열을 가하면 첫 번째 녹이 올라와요. 그 다음 또 소금물을 바르고, 불로 가열하고…. 그렇게 4~5번 하고 나면, 속에서 자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서 녹을 만들어 냅니다. 한 달쯤 지나면 남자들이 잘 바르는 로션을 발라서 (녹을) 정착을 시킵니다. 또 한 일주일 태양광선을 쬐 주면 이렇게 됩니다. 그 다음에 소금물을 또 발라가지고…."

    그야말로 자신의 몸을 욱여넣는 '고행(苦行)'을 비법이라고 알려줬다. 방법을 알아도 과연 제대로 따라할 사람이 있을까 싶다. 고철에 녹이 슬게 하는 데만 수개월이 걸리는 작업이다. 이 작가의 작품 중 단시간에 나온 건 거의 없다. 이건희 회장의 두상 작업은 7개월이 걸렸고, '나무 시집 간다'는 이름을 붙인 미완성 작품은 30년째 앞마당을 지키고 있다. 그와 함께 작품도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다.
  • ▲ 기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조각가 송정(松亭) 이영학. ⓒ정상윤 기자
    ▲ 기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조각가 송정(松亭) 이영학. ⓒ정상윤 기자
    ◆"무쇠에서 녹이 툭툭 떨어지는 작업 하고 파"

    이 작가의 '물확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확'은 적은 양의 곡식이나 양념을 갈 수 있도록 가운데가 우묵하게 파인 돌을 가리킨다. 우리 선조들은 고추나 마늘, 생강을 으깨고 생선뼈를 가는 데 이 '확'을 썼는데, 이 작가는 이걸 본떠 '물확'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제가 작업하던 공방 사장님이 서울에서 의정부로 넘어가는 길목 옆으로 이사를 갔어요. 그래서 도시락을 싸 가지고 가서 일을 하는데 비가 막 떨어지는 거예요. 막 정신없이 비를 맞으면서 작업을 했는데, 나중에 올라가 보니 그 옆에 있는 돌멩이 위에 이렇게 물이 고여 있는 겁니다. 그게 그렇게 가슴에 와닿는 거예요. 이거구나 싶어 작업을 하게 됐죠."

    수소문 끝에 중국 산둥성까지 건너가 6~7m쯤 되는 돌을 가져온 이 작가는 20개 정도 '물확'을 만들었다. 이 작품이 어떤 도록에 실렸는데, 마침 그 사진을 보고 홍라희 여사 측에서 연락을 해와 첫 구매자가 됐다. 이후 입소문을 타면서 저명 인사들이 하나둘 자신의 정원에 '물확'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원래 제 이름이 물 수(水) 자를 써서 '수학'이었어요. 그런데 누가 네 아들은 물을 너무 좋아하니까 물에 빠져 죽는다고 그래가지고 이름을 '영학'으로 고쳤죠. 그래도 이게 인연인지 '새'에 이어서 '물'도 작품으로 만들게 됐어요. 워낙 힘든 작품이라 제가 또다시 저걸 만들 수 있을까 싶어요."

    이 작가의 물확은 '집터 둘레석'이나 '주춧돌' 등 다양한 돌을 가져다 만들었다. 'L자'나 '직사각형' 등 모양도 갖가지다. 중국은 물론, 전국 각지를 누비며 돌을 고르고 골랐다. 작품 표면이 우툴두툴한 것도 원래 그런 게 아니라, 다 이 작가가 직접 정과 망치로 깨서 만든 것이다. 이 작가는 '물확'의 가운데 홈에 물을 채우고 '생이가래' 같은 부상수초나 이끼 등을 띄웠는데, 이것 역시 이 작가가 발품을 팔아 구한 것들이다. 어떤 것들은 지리산 500∼600m 고지에서 채집한 것들도 있다고.

    3~4년 전까지 망치를 들고 작업을 했다는 이 작가는 최근 몸 상태가 급격이 나빠져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강남 한복판은 답답해서 못 견디겠다며 하루빨리 작업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 작가. 그래도 이젠 자신의 작품보다 '후학'을 생각할 나이다.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이을 제자가 있는지를 물었다.

    "이원주 대표가 유일하게 남아 있는 제자예요. 제 밑에서 오랫동안 있었는데 제가 '화상(畫商)'을 하라고 권유했어요.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자리에 앉아서, '세월아 내월아' 하고 망치만 두드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죠. 얼마나 고됩니까. 홍라희 여사를 제가 소개시켜줬어요. 그러면서 그 일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어지간한 남자 뺨칩니다. 머리도 뛰어나지만 미술을 잘 알고, 사물을 잘 알고, 또 작가들을 잘 알기 때문에 가능한 거죠. 우리 미술계에 지금 원주 만한 사람이 없어요."

    사실 내심으로는 두 아들이 자신의 뒤를 잇길 원했다. 큰 아들은 직접 이탈리아까지 데리고 와 건축 공부를 시켰는데 지금은 현지에서 레스토랑을 경영하고 있고, 재능이 많던 둘째는 미국에서 영화 특수효과 전문 회사에 다니고 있다.

    "이제 순수미술로는 먹고 살기 힘들고, 나중에는 없어질 수도 있다면서 다 다른 길로 갔어요. 제 뜻을 최대한 이야기해 줬는 데도 말을 안 듣더라고요. 우리 때는 그런 위험성까지도 알고 이렇게 갔는데, 요새 애들은 너무 영악해서 그런지 말을 안 들어요. (웃음) 내가 욕심을 부린다고 되지 않더라고요. 사회 전반적으로 그런 흐름이 있어야 되는데, 이젠 쉽지 않은 세상이 됐어요."

    건강을 회복해 복귀하면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은지를 물었다.

    "무쇠 있죠? 무쇠…. 그냥 그걸 단순하게 다듬어서 뭔가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물확'도 이미 볼 사람들은 좀 봤으니, 무쇠에서 녹이 툭툭 떨어지는 그런 작업을 해보고 싶네요."

    끝으로 자신의 작품을 두고두고 감상할, 현재와 미래의 관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를 물었다.

    "우리 옛말에 보면 '지인무기(至人無己)'라고 있지 않습니까? 지극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버릴 줄 아는데, 그러면서도 어떤 정신세계는 남아 있어야 돼요. 그게 자기 자신이라고 봐요. 작품도 그렇고 우리 삶도 그렇고."
  • ▲ 이영학 조각가의 유일한 제자, 이원주 갤러리LVS 대표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서울옥션 강남센터 지하 4층 '고요의 정원' 전시장에서 이 작가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 이영학 조각가의 유일한 제자, 이원주 갤러리LVS 대표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서울옥션 강남센터 지하 4층 '고요의 정원' 전시장에서 이 작가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올해 안으로 정선에 '이영학 기념관' 건립"

    "'물확'에 물을 담으면 그 안에 하늘이 비치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새들이 물을 먹으러 찾아와요. 선생님은 그게 참 보기 좋으셨던 것 같아요. 도예가 윤광조 선생님도 저희 선생님 작품을 마당에 놓으셨는데, 매일 아침 일어나 그 홈에 물을 부으면, 생각이 정말 맑아진다고 하세요."

    신라시대 솔거가 황룡사 담에 그린 소나무 벽화에 참새가 날아들었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자연과 그림, 사람이 하나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라고나 할까.

    서울 강남구 신사동 서울옥션 강남센터(지하 4층)에서 이영학 회고전 '고요의 정원'을 전시 중인 이원주 갤러리LVS 대표는 "이영학 선생님의 작품은 그야말로 자연에 동화된 느낌을 준다"며 "동양철학을 기저에 깔고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를 담아낸 조각가라는 점에서 국내 미술사에서 독보적인 분이라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제가 오랫동안 선생님 작업실에서 수석 조수로 일했었는데요. 문고리, 호미, 낫, 인두, 젓가락 등 온갖 골동품을 40년간 수집해 오셨어요. 이걸 일일이 자르고 분해하고 용접해서 작품을 만드신 거죠. 장안동에 가면 이런 걸 모아 놓은 '엔틱샵'들이 400곳가량 있는데요. 선생님이 거의 다 사들여서, 문고리 같은 경우는 아마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 거예요. 수유리 작업실을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한 30평 정도 되는 공간에 이런 골동품이 한가득 있어요."

    이 대표는 "선생님의 두상 작품도 국내에선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위상을 갖고 있다"며 "'무쇠 캐스팅'이 굉장히 어려운 작업인데, 선생님은 항상 그 방식을 고집하신다. 전 세계 작가 중 무쇠로 캐스팅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브론즈를 캐스팅 할 때는 약간 엿처럼 흘러내리니까 캐스팅이 좀 쉬운데, 무쇠는 그렇지 않아요. 조각에서 손자국 같은 '터치감'을 강조한 것도 다른 작가들과의 작품과 차별되는 요소 중 하나죠. 무쇠에 자연스럽게 녹이 슨 걸 추구하시기 때문에, 어떤 분들은 너무 어둡지 않느냐는 말씀들을 하시는데요. 여기에 조명을 비추면 또 색감이 확 달라지거든요. 정말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대표는 "엔티크한 농기구와 문고리를 자르고 다듬어 '새'로 표현한 작품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면서도 "겉표면에 녹이 잘 슬도록 하는 고된 작업을 수십 년간 반복하고, 구부정한 자세로 용접 작업을 많이 하셔서 귀와 목, 등 부위가 매우 안 좋으신 상태"라며 스승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을 나타냈다.

    "건강이 안 좋아지시는 것과 비례해 작품 수는 계속 늘어났죠. 20~30년 걸리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몸 상태는 점점 더 나빠지셨어요. 벌써 목디스크 두 개가 터졌고, 이제는 귀도 잘 안 들리세요. 주변에선 이번 '고요의 정원'전(展)이 마지막 전시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들을 많이 해요."

    이 대표는 올해 안으로 이 작가의 기념관을 강원도 정선에 건립할 계획이다. '石·水‧草' 시리즈 등 이 작가가 평생 만들어 온 작품들을 집대성해 '작가 이영학'을 압축한 고요한 정원(庭園)을 구현할 방침. 설계는 지난해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았던 조병수 건축가가 맡았다.

    이 대표는 "이번 회고전 외에도 올해나 내년 정도 영국 런던에서 개인전을 여는 등, 전 세계에 선생님의 작품을 널리 알리는 다양한 프로모션을 펼칠 계획"이라며 "선생님의 수많은 작품을 소개하고 정리할 사람이 이제는 저밖에 없다. 선생님을 모셨던 제자로서 마지막 도리를 다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 ▲ 이영학 조각가의 유일한 제자, 이원주 갤러리LVS 대표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서울옥션 강남센터 지하 4층 '고요의 정원' 전시장에서 이 작가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 이영학 조각가의 유일한 제자, 이원주 갤러리LVS 대표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서울옥션 강남센터 지하 4층 '고요의 정원' 전시장에서 이 작가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취재 = 조광형 기자
    사진 = 정상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