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16개 정보수사기관 통합… 포괄적정보기관 국가정보국(DNI) 창설우리는 국정원 대공수사권 박탈해 경찰에… 국내 보안정보 수집권도 박탈탈북민 위장간첩 제3국 우회침투하는데… 경찰 해외수사·첩보망 구축 불가일반 수사 전담하는 '국수본'에 간첩 잡는 안보수사국… 편재 자체가 문제'초법적' 국가안보 문제에… '불법 감청 및 불법 위치추적 금지'는 비현실적'분단국' 한국, 유엔 193개국 중 안보상황 가장 취약… 통합형 정보기관 절실
  • ▲ 지난 2021년 6월 4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에서 원훈석을 제막을 마친 후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에게 개정된 국정원법을 새긴 동판을 증정받고 있다. ⓒ뉴시스
    ▲ 지난 2021년 6월 4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에서 원훈석을 제막을 마친 후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에게 개정된 국정원법을 새긴 동판을 증정받고 있다. ⓒ뉴시스
    내년 1월1일 시행되는 '개정 국가정보원(국정원)법'의 골자는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하고 '북한과 연계되지 않은 국내 보안정보'와 관련한 정보수집권을 박탈하는 것이다. 

    국정원의 정보수집 권한을 제한하고 경찰이 대공수사를 전담하게 하는 이번 개정법의 성패는 국정원과 경찰의 '협업'에 달려 있다.

    그러나 국정원에서 경찰로 정보공유가 원활히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경찰의 대공수사 역량 부족과 해외 대공수사망 부재, '합법활동 조직'인 경찰의 구조적 한계는 협업의 성공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적법한 정보수집만을 허용한 개정 국정원법의 '독소조항'은 국정원의 정보수집활동 자체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국정원과 경찰 간 '정보공유'만 잘 이뤄지면 문제될 것 없다?

    국정원 인사처장 출신인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0년 8월 '국정원법 전부개정안'을 발의하면서 "개정 국정원법상 국정원은 수사권만 사라졌지 내사 단계에서 필요한 정보수집이나 조사 권한은 보유하고 있다"며 "경찰과 '정보공유'만 잘 이뤄지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청 공안문제연구소·치안정책연구소에서 25년간 안보대책연구관으로 근무한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같은 달 열린 한반도선진화재단 세미나에서 "같은 국정원 부서 내에서도 '차단의 원칙'과 '경쟁심리' 때문에 정보공유가 원활하지 않은 실정"이라며 "잠재적 경쟁 대상인 국정원이 수집 분석한 관련 정보를 경찰에 친절하게 공유시켜 준다는 것은 초보적 사고"라고 반박했다.

    정보와 수사를 분리하면 안보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유 원장의 지적을 뒷받침하는 대표적 사례는 미국의 '9·11테러'다. 

    '9·11테러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The 9/11 Commission Report)에 따르면 "사건 발생 직전 연방수사국(FBI) 정보분석관은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자료를 통해 테러 혐의자들의 미국 체류 사실 등을 알고 있었지만, 단지 정보적 관점에서의 첩보 검증에 그쳤고, 이를 FBI 수사 파트에 알리지 않아 본격적인 수사에 이르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미국은 보안정보와 수사정보의 융합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정보국(DNI)을 창설해 16개 정보수사기관을 통합하는 포괄적인 정보공동체 운영체제를 마련했다.
  • ▲ '간첩단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마친 국가정보원 관계자들이 18일 오후 서울 정동 민주노총에서 압수물품을 들고 나오고 있다. ⓒ뉴시스
    ▲ '간첩단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마친 국가정보원 관계자들이 18일 오후 서울 정동 민주노총에서 압수물품을 들고 나오고 있다. ⓒ뉴시스
    경찰, 태생상 해외 대공수사망 부재… 대공수사 전문가도 '태부족'

    경찰이 국정원으로부터 정보를 원활히 공유받는다고 해도 경찰의 대공수사권 역량 부족은 또 다른 문제다. 경찰이 지난 75년간 대공수사를 해왔지만, 대공수사 역량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여전하다. 

    유 원장은 지난해 12월 정우택 국회부의장과 공동 개최한 세미나에서 경찰의 역량 부족을 조목조목 꼬집었다. △제3국을 경유한 '위장 탈북민 간첩'이 대거 침투하는데 경찰은 독자적인 해외 대공수사망과 방첩망을 갖고 있지 않고 △경찰의 대북정보 역량이 북한 방송 청취, 탈북민 첩보, 북한 운용 웹사이트 검색 등에 국한된 아주 낮은 수준이며 △대공 과학정보(간첩 통신 감청, 해독, 사이버 교신 등)의 수집 분석 역량이 미약하며 △유관국 정보기관과 간첩정보 교환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우수한 해외 대공수사망과 첩보망이 간첩 수사의 토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북한이 국내 고정간첩을 제3국에서 접선해 지령을 내리고 보고 받거나, 해외동포를 공작원으로 활용하거나, 중국·동남아·남미 등 해외에서 국적 세탁 후 공작원으로 우회침투시켜왔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가 1996년 7월 필리핀인 위장간첩 '깐수'사건, 2006년 7월 태국인 위장간첩 '정경학'사건, 2016년 5월 중국인 위장간첩사건 등이다. 지난 10여 년간 검거된 간첩의 절반이 '탈북민 위장간첩'일 정도로 '역(逆) 합법침투공작'도 대남 침투 루트의 확보책으로 부상하고 있다. 

    'ㅎㄱㅎ' '자주민주통일전위' 등 최근 불거진 간첩 혐의 사건에서도 간첩들은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찰이 국정원의 대공수사 역량을 흡수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안보수사 비(非)전문가'인 국가수사본부(국수본)장의 지휘를 받게 하는 '경찰 안보수사체제'의 구조적 문제에 있다. 

    전국 안보경찰의 72%는 기획, 분석 등 행정지원 인력과 탈북민 신변보호 담당 인력인 반면 28%만이 안보수사 인력이고, 안보수사과장(총경)을 비롯해 안보수사를 지휘할 간부의 50% 이상이 사실상 안보수사 비경력자이며, 일반 수사를 전담하는 국수본에 간첩 등 안보위해사범을 수사하는 안보수사국을 편재하려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 ▲ 2020년 12월1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가정보원법 전부개정법률안이 재석 187인, 찬성 187인으로 통과되고 있다. ⓒ뉴시스
    ▲ 2020년 12월1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가정보원법 전부개정법률안이 재석 187인, 찬성 187인으로 통과되고 있다. ⓒ뉴시스
    대공수사 역량 흡수, '비합법' 금지한 개정법하에서 가능한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존치하기 위해 국정원법을 재개정하는 것은 여소야대 정국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각에서 부상한 것이 '정보수사공동체'를 창설해서 국정원의 우수한 대공수사 역량을 흡수하자는 대안이다. 

    그러나 2018년 국회 정보위원회 연구용역보고서가 지적했듯이 국정원의 수사기능을 폐지한 후 '이미 대공수사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기구'인 경찰에 그 여건과 인력을 흡수시킨다는 것은 국가안보 역량을 소멸시키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불법 감청 및 불법 위치추적 등을 금지한 개정 국정원법 제14조는 국정원의 정보수집 역량 자체를 위협하는 ‘독소조항’이 될 수 있다. 적법절차를 따르지 않으면 우편물 검열, 전기통신 감청,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의 녹음과 청취, 위치정보, 통신사실확인자료 수집이 불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 원장은 "국가안보와 국익보호를 위태롭게 하는 나라나 세력이 있다면 상대방의 보안망을 뚫고 관련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해킹, 도청, 절취, 매수, 역정보, 기만공작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며 "정보수사기관에 '합법'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비합법활동'을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은 더이상 '정보기관'이 아니라 '행정기관'이 되라는 주문이다. 세계 어느 나라가 정보수사기관이 합법 영역에서만 활동하는가"라고 반문했다. 

    미국의 연방법과 '해외정보감독법'(Foreign Intelligence Surveillance Act)이 국가안보사범에 대한 감청을 영장 없이도 최장 1년간 가능하도록 '무영장 감청제도'를 도입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초국가안보위협과 간첩활동과 관련한 정보수집과 수사 접근이 어려운 이유는 관련 증거가 적국이나 해외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가정보분야 전문가인 한희원 동국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국가정보원 수사권에 대한 법적·제도적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들 초국가적 범죄현상들은 해외에서 조직되고 준비돼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증거 확보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소환이나 압수수색, 피의자 신문 등 전통적인 범죄수사 기법으로는 범죄를 적발하거나 수사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기존의 법 집행 기구의 힘만으로는 대처에 한계가 따른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국가안보 범죄자들은 육체적, 정신적, 기술적, 이념과 사상적으로 최고의 범죄 전문가들로서 범행수법은 물론이고 수사와 재판에서의 대응까지도 염두에 두고 철저하게 훈련 받고 대처방안을 강구하는 등으로 주도면밀한 판단을 한 연후에 범행을 감행한다"며 "법정에서 유죄를 이끌어 처벌하기에 충분한 증거는 항상 태부족하다"고 말했다. 

    결국 국가안보사범을 대상으로 한 영장 없는 감청, 체포와 조사 등 사법 대응은 "배분적 정의의 문제"가 된다. 

    한 교수는 "여전히 적법절차를 고수하고 용의자에 대한 인권침해 위험성을 회피하기 위해서 국가 대재앙의 위험성을 감내할 것인가, 아니면 비록 용의자에 대한 인권침해의 위험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안보를 확보하고 대다수 일반시민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줄 것인가의 선택"이라고 언급했다.

    "국정원 수사권 박탈, 한국 안보상황과 전혀 안 맞아"

    전문가들은 대공수사권을 비롯한 국정원 수사권 박탈이 사실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의 안보상황에 맞는 것인지는 의문이 남는다고 비판한다. 

    한 교수는 "대한민국은 전 세계 193개국(유엔 가입국 기준)의 나라 가운데 국가안보 상황이 가장 열악한 나라이자 4대 국가안보사범에 대한 수요가 가장 많을 수밖에 없는 나라"라며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통일 후 10~15년까지가 사상적ㆍ이념적 방황 현상 등으로 인하여 국가안보사범이 빈발할 위험성이 오히려 더 높다"고 강조했다.

    국회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안보 수사권'을 일반 경찰에만 전담시킨 경우는 페루·아르헨티나 등 소수 국가들 뿐이다. △사회주의 분단국가인 중국 국가안전부(MSS) △강대국과 접하고 있는 몽골 정보총국(GIA)이나 △방글라데시 국가정보부(NSI) △분단 경험이 있는 베트남 공안부(MPS) △분단-통합-분단을 반복하고 내전 중인 예멘 정치정보부(PSO) △이집트 정보부(GIS) △요르단 정보부(GID) △아랍에미레이트(UAE)의 연방정보부(SSD) △이란 정보부 (MOI)를 비롯한 다수의 중동 이슬람국가 △남아프리카공화국 국가정보부(NIA) 등 "근대국가로의 성립 과정 및 특수한 내셔널리즘(nationalism)과 지역적·국제적인 자국의 현실안보환경"에 처해 있는 국가들은 국정원처럼 국내 보안정보 및 안보수사, 해외정보를 모두 담당하고 있는 통합형 정보기관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