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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좌파 대부' 룰라, 과거 영광 복원 안간힘… 재정지출 대폭 늘릴 듯

저소득층 지원 '보우사 파밀리아' 복원, 과도한 정부지출로 인플레 우려프라가 前 중앙은행 총재 "위기상황에서나 있을 법한 막대한 재정지출"윈터 AQ 편집장, 룰라 귀환에 "과거에 대한 향수와 진부한 이념의 반복"WSJ 오그래디 "사법부 정치화와 룰라의 압박에 여소야대 의회도 굴복"

입력 2023-01-03 18:52 수정 2023-01-04 10:38

▲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왼쪽 네 번째) 브라질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부인 호잔젤라 시우바(첫 번째) 등과 플라날토궁에 도착해 이동하고 있다. 룰라 대통령은 이날 의회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공식 4년 임기를 시작했다. ⓒAP/뉴시스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지를 묻는 대신, 내가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를 보라"

브라질 사상 첫 3선 대통령이자 중남미 지역 '좌파 대부'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가 대선 후보 시절 인터뷰어에게 했던 발언이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지난해 6월 소개된 바 있다. 집권 1~2기인 지난 2003~2010년의 경제성과를 단순히 과시하는 것을 넘어, 집권 3기 국정기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발언이다.

대선불복시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룰라는 지난 1일(현지 시간) 취임식에서 '통합'과 '재건'을 취임 일성으로 내세우며 전임 보우소나루 정부의 정책을 대대적으로 뒤집겠다는 뜻을 밝혔다. 최저임금 인상, 고소득층 과세 강화, 채무면제 프로그램 도입, 공공주택 확대, 교육, 복지, 아마존 보호예산 복원 방침 등 빈곤층을 위한 재정지출 확대를 약속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의 대표적인 저소득층 복지 프로그램인 '보우사 파밀리아'의 복원이다.

'영광스러운 과거로의 회귀'를 택한 듯한 룰라의 자신감에는 집권 1~2기에 거뒀던 경제성과가 자리한다. 당시 브라질 국내총생산(GDP)은 매년 평균 5%대 성장을 기록한 데 이어 세계 6위까지 올랐다. 보우사 파밀리아 프로그램을 통해 저소득층에게 매달 600헤알(14만 원)을 현금으로 지원했는데, 이것으로 수천만 명의 저소득층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가 지지율 83%로 임기를 마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그러나 룰라는 이러한 경제성과가 당시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와 세계 원자재 시장 호황과 맞물린 결과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계간지 '아메리카스 쿼털리(AQ)'의 브라이언 윈터 편집장은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룰라가 과거의 황금기를 재현하려면 과거보다 훨씬 악화한 외부환경을 극복해야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제학자들은 향후 2년간 브라질 경제가 저성장 곡선을 그리는 가운데 2023년 예상 성장률을 약 0.8%로 전망하며 과도한 정부 지출에 따른 인플레 압박을 우려했다. 

이번 대선에서 룰라를 지지했다는 아르미니오 프라가 전 브라질 중앙은행 총재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위기상황에나 있을 법한 막대한 재정지출 확대"를 예상하며 "과거에도 통한 적 없던 구시대적 발상이 펼쳐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윈터 AQ 편집장은 룰라의 귀환에 베네수엘라 경제 석학 '모이제스 나임'의 조어(造語)인 "이념적 네크로필리아(ideological necrophilia)"를 떠올렸다. '이념적 네크로필리아(시체 성도착증)'는 참신한 리더십과 전향적인 정책이 아닌, 과거에 대한 향수와 진부한 이념이 위기 시에 역사적으로 선호돼온 현상을 꼬집는 말이다. 

▲ 브라질의 반부패 시위대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이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징역 9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뒤 2017년 7월 12일 그의 얼굴을 그린 노동당 깃발을 불태우며 항의하고 있다. 그러나 브라질의 부패스캔들과 수사대상은 현 대통령 미셰우 테메르정부와 법조계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AP/뉴시스

룰라 행정부의 독주를 저지할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12월 25일 메리 아나스타시아 오그래디의 칼럼을 통해 "더 잘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지출을 늘리겠다는 노동당(현 브라질 여당)의 포퓰리즘보다 더욱 큰 위협은 대법원의 사법 적극주의(judicial activism)"라고 비판했다. 대법원이 정치적인 이유로 법치주의를 무시하면서 사법부·행정부·입법부 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며, 최상급 법원인 대법원이 부패한 '이념정치인'과 손을 잡으면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협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오그래디는 뇌물수수와 돈세탁 혐의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룰라를 석방하라는 대법원 판결, 그리고 룰라에게 선고된 실형을 무효화한 연방대법원의 판결 등을 사법 적극주의의 사례로 꼽았다. 룰라가 두 번의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을 정도로 증거가 명백함에도, 대법원이 공소시효가 임박해 재심할 시간이 부족한 점을 악용해 기존 판결을 무효화했다는 주장이다. 

오그래디는 사법 적극주의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룰라가 무죄 판결을 받아서가 아니라 절차상 이유로 석방된 것임을 지적한 전직 대법관은 물론이고 룰라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재계, 정계, 언론계,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우파 인사들까지도 검열 대상에 올랐다.

의회는 헌법이 부여한 국가재정관리권한도 내팽개치고 룰라의 구미에 맞게 예산 상한선(cap)을 내주고 말았다. 룰라가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해 12월 당시 의회는 '여대야소'였음에도 정부 지출 상한을 280억 헤알(약 35조 원) 늘리는 헌법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보우소나루가 2021년에 폐지한 '보우사 파밀리아'를 복원해야 한다는 당선인 룰라의 협상력과 압박에 굴복한 것이다.

오그래디의 분석에 따르면, '영악한'(clever) 룰라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게끔 협조할 의원 네트워크를 당적, 정치성향과 상관없이 꾸리려 할 것이며 이 모든 것의 끝은 대법원을 가리킨다. 대법원이 룰라와의 협조를 거부하는 의원들을 막강한 권력으로 압박할 태세를 갖췄다는 의미다. 

▲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2일(현지시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대통령 결선투표 패배 불복 시위에 참석해 "즉각 군사 개입""권력은 국민으로부터"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있다. 앞서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 당선인에게 정권을 이양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음에도 그의 지지자들은 군대가 개입해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유임시켜야 한다며 시위를 벌였다. ⓒAP/뉴시스

룰라가 취임식에서 거듭 외친 '통합'은 당분간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대선이 끝났지만 여전히 대선불복시위를 벌이고 있는 보우소나루의 지지자들은 '부정부패범' 룰라를 지도자로 인정하길 거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연방경찰서 침입 시도가 발생했으며, 차량과 버스가 불태워졌고, 크리스마스 전날에는 연료트럭에 폭발물을 실은 남성이 체포되기도 했다. 플라비오 디노 법무부 장관 내정자는 대선불복시위의 이면에 깔려 있는 정치화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철저히 외면한 채,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을 "테러리스트 인큐베이터(incubators of terrorists)"라고 규정하고 이들의 "반민주적" 시위를 종식시킬 것을 연방당국에 요구했다. 

국제사회에서 브라질의 입지를 복원하겠다는 룰라의 호기로운 약속이 실현될지도 미지수다. 룰라는 다자기구에 비판적이었던 보우소나루 때문에 브라질의 영향력이 퇴색했다고 주장하며, 셀락(CELAC·라틴아메리카카리브국가공동체), 우나수르(UNASUR·남미 국가 연합) 등 지역기구에 재가입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싱크탱크인 외교협회(CFR)는 룰라의 귀환이 메르코수르(MERCOSUR·남미공동시장)와의 통상협상 재개, 남반구 저개발 국가(Global South)들과의 협력 강화의 신호탄이며, 룰라는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과의 국교를 회복하고 중국,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할 방침이라고 분석했다. 

룰라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막기 위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서방 지도자들이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으며 서방국가들의 대(對)러시아 제재가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는 '서방 책임론'을 제기해왔다고 전해졌다. 브라질과 서방국가들과의 긴장관계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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