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을 '잉태'한 한성감옥...건국사의 요람

    한성감옥은 이승만에게 축복 받은 용광로였다.
    ‘왕은 존재하나 나라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 - 성리학의 중독과 무법 부패의 늪에 빠진 조선 왕권 전제주의를 혁파하려는 청년 이승만을 자유민주주의자로 담금질해 대한민국의 건국자로 재탄생시킨 용광로 – 한성감옥은 그래서 대한민국을 ‘잉태’하게 해준 축복의 지옥이다.
    그 축복의 실체는 이승만이 옥중에서 써낸 수백편의 논설에 가득 담겨 있다.

    기독교 ‘회심’ 2년째 1901년 2월부터 이승만은 논설을 쓴다. 자신이 창간한 [제국신문]의 동지 이종일(李鍾一)과 공모, 감방에서 몰래 쓴 논설을 밖으로 내보내 게재하는 작업을 이듬해 4월17일까지 장장 2년 7개월 계속한다. 이와 같은 사례는 세계 언론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이승만의 논설이 실린 신문은 잘 팔리고 안 실린 신문은 인기가 없었다”는 증언(신흥우)처럼 이승만은 이미 국가개혁운동의 스타가 되어있었기에 그의 논설이 주장하는 영향력은 컸다.

    이승만은 동시에 감리교 선교사 존스(G.H.Jones)가 최병헌 전도사(崔炳憲, 정동감리교회 목사)와 함께 인천에서 발간한 [신학월보]에도 5편의 논설을 실었다.

    [제국신문]의 당시 지면이 17개월분이나 없어져 이승만의 정신세계를 전부 알 길은 없으나 남아있는 90여편의 논설과, [신학월보]의 내용만으로도 그의 사상과 건국구상은 선명하다.
    이들 논설들의 주요 논지는 대부분 이승만의 옥중 명저 [독립정신]에 수렴되었다.
  • ▲ 이승만이 처음 ‘옥중 전도’ 논설을 게재한 월간지 [신학월보] 표지와 글. 위쪽에 이승만의 영문 메모가 보인다. 이승만은 자신이 보관한 모든 자료에 직접 영문으로 장소와 날짜 등을 기입해놓았다. ‘기록이 역사’임을 아는 기록광이었다.ⓒ연세대이승만연구원
    ▲ 이승만이 처음 ‘옥중 전도’ 논설을 게재한 월간지 [신학월보] 표지와 글. 위쪽에 이승만의 영문 메모가 보인다. 이승만은 자신이 보관한 모든 자료에 직접 영문으로 장소와 날짜 등을 기입해놓았다. ‘기록이 역사’임을 아는 기록광이었다.ⓒ연세대이승만연구원
    ◆ “예수교를 근본 삼아야 미-영과 동등한 나라 된다”

    [제국신문]에 논설을 연재하면서 [신학월보]에 기고한 첫 논설 내용은 이렇다.
    제목: 예수교가 대한(大韓) 장래의 기초.
    “제 몸이 멸망을 면하며 제 집안이 환란을 면하며 제 나라가 위태함을 면하는 도리가 있음을 알진대 행하고자 아니하는 자가 어디 있으리오만, 몰라서 못하기도 하며 알고도 확실히 믿지 못하여 날로 멸망함을 당하면서도 저절로 없어지기를 앉아서 기다리나니, 일을 당한 사람이 멸망을 면할 도리를 차리지 않는다면 어찌 그 일이 저절로 면하게 되리오”([신학월보] 1903년 8월호)

    놀라워라! 120년 지난 21세기 지금 대한민국에 울림이 더 큰 말이 아닌가!

    “예부터 유교가 있어 정치와 합하여 다스림에 선미한 지경에 이르러 보았은즉, 지금도 이를 다시 행하면 이전같이 될 줄로만 생각하여 다른 도리는 구하지 않으니...”
    이는 마치 “어려서 입던 좋은 옷을 다시 입으면 또 좋을 줄 알고 몸에 맞지 않는 줄은 생각지도 않는다”며 이승만은 세상 변한 줄 모른 채 유교의 구습에 얽매어 신학문을 배척하고 탄압하는 ‘수구꼴통 왕조’의 시대착오를 통박하고 있다.

    “예수교 외에는 더 좋은 씨도 없고 더 좋은 밭도 없으니.....남의 목숨을 끊어다가 내 목숨을 이으려던 자가 이제 남을 대신하여 고난 받으려는 자 될지니.....사탄을 치는 강한 군사가 많아지고 어린양의 무리를 인도하는 자가  많이 생겨......영원히 영혼의 구원을 함께 얻을지라.”

    이승만은 1년뒤 쓴 [독립정신]에서 이를 건국정신으로 확장, 강력히 주장한다.
    “지금 우리나라가 쓰러진 데서 일어나려고 하며, 썩은 데서 싹이 나고자 한다면, 이 교(敎:예수교의 가르침)로써 근본을 삼지 않고는 세계와 통상하여도 참 이익을 얻지 못할 것이고, 신학문을 힘쓰더라도 그 효력을 얻지 못할 것이여, 외교에 힘쓰더라도 다른 나라들과 깊은 정의(情誼)를 맺지 못할 것이며, 국권을 중하게 여기더라도 남들과 참으로 동등한 지위에 이르지 못할 것이고, 의리를 숭상하더라도 한결같을 수 없을 것이며, 자유 권리를 중히 하려고 해도 평등한 자유 권리의 방한(防限:한계)을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이 교(敎)로써 만사의 근원을 삼아 각각 나의 몸을 잊어버리고 남을 위하여 일하는 자가 되어야 나라를 한마음으로 받들어 영국 미국 등 각국과 동등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천국에 가서 다 같이 만납세다.” ([독립정신] 이승만 지음, 1904. 박기봉 교정, 비봉출판사, 2018)
  • ▲ 미국 유학중 이승만이 [독립정신] 원고를 풀어보고 있다. 1905년 옥중동지 박용만이 원고를 한장한장 꼬아 가방에 숨겨서 미국의 이승만에게 전해준 것이다.ⓒ연세대이승만연구원
    ▲ 미국 유학중 이승만이 [독립정신] 원고를 풀어보고 있다. 1905년 옥중동지 박용만이 원고를 한장한장 꼬아 가방에 숨겨서 미국의 이승만에게 전해준 것이다.ⓒ연세대이승만연구원
    ◆ “세계 교류, 자유통상이 국부(國富)임을 깨달아야”

    ‘수출’이라면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을 즉각 연상하게 된다. 
    세계 무역시장이 박정희때 확장된 때문이지만 그 원조가 이승만이었음을 몰랐던 역사의 무지 탓이다.
    위정척사 쇄국의 사슬을 끊고 강대국들과 조약을 맺은 조선은 ‘타의에 의한 개방’이었기에 지도층도 국민도 의식구조는 ‘개방’을 모르는 ‘쇄국’ 그대로였다. 산업정책은커녕 경제도 없고 제조업도 없는 원시적 농경사회, ‘국민’ 아닌 왕의 노예 백성 각자가 의식주를 근근이 해결해야 하는 자급자족 풀뿌리 연명상태나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때 이승만은 26세때 옥중에서 쓴 논설에서 말한다.
    “옛글에 말하기를 농사는 천하의 큰 근본이라 하였은 즉...(중략)...그때는 세계 각국이 바다에 막혀 내왕을 못하고 각기 한 지방만 지키고 있으매 백성들이 다만 그 땅에서 생기는 곡식만 믿고 살았은 즉...(중략)...지금으로 말할 지경이면 세계만국이 서로 통상이 되었은즉 나라의 흥망성쇠가 상업흥왕함에 달렸으니 천하의 큰 근본을 장사라고 할 수 밖에 없도다.
    대저 농사에서 생기는 이익은 한정이 있거니와 장사의 이익은 사람이 내는 것이라 한정이 없는 고로, 지금 영국은 그 나라의 부강함이 천하제일인데, 그 토지인즉 불과 조그만 섬이요, 또 기후가 고르지 못하고 땅이 기름지지 못하여 농사에는 힘을 쓰지 아니하고 전국 백성들이 상업에 종사하여 기교한 물품을 만들어 남의 나라에 가서 금은으로 바꾸어다가 자기 나라를 부요하게 바꾸어 놓고 있으니...(중략)
    나라가 점점 빈약하여 백성들이 필경은 지탱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니, 이런고로 지금은 상업을 불가불 천하에 큰 근본이라 할지라.,,(중략)...대저 오늘 날 세계 큰 싸움과 다툼이 모두 이익과 권세에는 장사보다 더 큰 것이 없은즉 당장의 급선무로 아무쪼록 장삿길을 널리 열어서 해마다 항구에 들어오는 돈이 나가는 것보다 몇 천 배나 되게 하기를 바라노라.” ([제국신문] 1901년 4월19일)
    이승만은 이 ‘상업-통상 흥왕’이 성공하려면 될수록 많은 나라들과 ‘선한 이웃’이 되어야 통상이 확대되고 이익이 극대화 된다며 외국인들과 친교하고 각국과 교류할 것을 주장한다.
    “이웃의 범위가 넓을수록 내가 만든 물건들이 널리 쓰이게 될 것이고 견문과 학식도 더 넓어질 것이다. 이것이 곧 천하만국과 이웃이 되어 문호를 열고 풍속을 고치며 물화(物貨)를 교환하는 이유이다...(중략)...각처가 서로 통하는 것을 제일의 원칙으로 삼아 한구석도 통하지 않는 곳이 없게 만들려고 기선과 기차, 전보와 우체국이 생겨난 것이다.” ([독립정신] 이승만 지음,1904. 앞의 책)

    놀랍게도 당시 이승만의 통찰력은 국제사회의 정치 외교 경제를 좌우하는 자유통상의 자본주의 메카니즘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그 국가적 이익을 4가지로 말한다. 
    첫째 각국이 상업하기 위해 전쟁을 피할 것이므로 평화가 깃들일 것이고, 둘째 나에게 있는 것과 남에게 없는 것을 교환하게 되므로 제조업이 발달하며 이익이 커지며, 셋째 빈곤한 나라가 부자가 되며 앞서나가는 새 문명의 혜택을 보게 되고, 넷째 국제간 상업이 흥하면 새롭게 필요한 ‘일자리’가 늘어나니 인재배양도 저절로 된다.([제국신문] 논설 ‘외국통상비교’-2, 1903.3.13.)

    한마디로 청년 이승만의 국가관은 자유통상 부국론, 즉 근대 자본주의 도입이다.
    “지금 세계상에 부강한 나라들은 밤낮으로 재정의 근원을 확장하야 광산, 어업, 담배제조, 방직공장, 임업, 공원에 동물원 수족원, 곳곳에 벽돌집을 높이 짓고 관립-사립학교, 사통팔당 교통과 전신, 철갑군함과 수뢰포를 많이 만들어 바다에 떠다니며 나라를 지키나니...“
    정부도 양반도 백성도 꿈에서 깨어 돈을 벌어 문명부강해지자고 ’자본주의 정신‘을 외쳤다.
  • ▲ 국내서 출판이 불가능했던 [독립정신]은 미국유학중인 이승만에게 전해져 1910년 LA에서 문양목 목사등 동지들이 처음 출간하였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후속판들.(자료사진)
    ▲ 국내서 출판이 불가능했던 [독립정신]은 미국유학중인 이승만에게 전해져 1910년 LA에서 문양목 목사등 동지들이 처음 출간하였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후속판들.(자료사진)
    ◆“백성이 먼저 자유해야 한다” ...‘계급노예’ 해방 주창

    “헌법 정치를 채택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도 아니하고 그 긴급함이 이렇듯 절박하지만, 백성들의 수준이 지금 같아서는 결코 하지 못할 것이다...(중략)...여러 천년을 전해 오면서 병들고 썩은 깃이 속속들이 배어들어 웬만한 학문이나 교육의 힘으로 갑자기 그 근본원인을 제거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마땅히 ‘새 교화(敎化)’의 ‘자유(自由)하는 도(道)로써 오랜 악습에 결박당해 있는 민심을 풀어주어야만 비로소 고질의 구습을 깨뜨리고 차차 자신의 생각으로 좋고 나쁜 것을 구분하여 택할 줄 알게 될 것이다. 만일 결박당해 있는 그 마음(정신)을 풀지 못하고 자유하지 못하고 몸만 자유를 얻으려 한다면 이는 결단코 자유로 될 수 없는 일이다.” ([독립정신] 이승만지음,1904. 앞의 책)

    이승만의 정치 경제 사회사상의 결정체 [독립정신]의 목차를 보면 ’백성의 해방과 교육‘에 대한 간절한 소망과 구상들이 즐비하다.
    ★백성이 힘써 노력하면 될 것이다.
    ★백성이 깨이지 못하면 나라를 보전할 수 없다.
    ★마음 속에 독립을 굳게 해야.
    ★자주 권리는 긴요하고 중대하다
    ★새것과 옛것의 구별
    ★정치제도는 백성의 수준에 달려있다.
    ★자유 권리의 한계.
    ★미국 백성들이 누리고 있는 권리.

    이처럼 국민이 아닌 백성(왕의 소유물)을 독립주체로 만들기 위해서는 몸만 풀어서는 안되고 정신을 독립시켜야 할 진대, 이는 다른 것으로는 안되고 예수교 정신 교육(새 교화)을 통해야만 가능한 일이며, 예수교의 ’자유하는 도“를 체질화해야 진정한 ‘인간 자유’ ‘자유 인간’으로 거듭나는 ‘대한인 해방’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이승만은 확언한다.

    왜 예수교만이 가능하다고 고집하는 것인가.
    투옥직후 ‘개신교 회심’ 뒤 신학공부에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으킨 세계적 혁명 역사와,  감리교창시자 웨슬리의 영국 사회개조 기적을 보았기 때문이다. 
    ”온갖 핍박 속에서도 루터는 결국 개신교를 온전히 세워서 사람마다 자유롭게 성경을 공부하고 직접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이후 200년간 루터의 개신교가 정치제도를 개혁하기에 이르러 영국, 미국, 프랑스 등 각국의 정치적 대혁명이 일어났고 오늘날 구미각국의 동등한 자유를 누리는 인간 행복이 여기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루터를 근대문명의 시조라 칭함이 과연 합당한 것이며, 그 루터 선생의 능력은 모두 예수의 진리에서 비롯하여 된 것이다.“

    따라서 공자-맹자의 충효사상만으로는 개인의 자유를 확보하기도 어렵고 지키기도 힘들다”며  ”하나님 앞에 만민은 평등하고 나면서부터 자유를 주셨으니 예수교의 자유정신으로 무장해야어느 지경에 닥치더라도 ‘인간 자유’를 굳게 지켜낼 수 있다”고 역설한다.
    오랜 세월 충효사상만 지킨 결과는 1인 왕권독재 뿐이며 “자유없는 백성의 힘으로눈 왕과 양반의 부패무능 횡포를 고칠 수도 없었으므로” 재능도 풍부한 백성의 힘을 국가독립 성장에 합치기 위한 ‘기족정신 교육’과 ‘신성한 노동’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 ▲ '노예 백성'을 해방시킨 이승만. 흑인노예를 해방시킨 링컨.ⓒ뉴데일리DB
    ▲ '노예 백성'을 해방시킨 이승만. 흑인노예를 해방시킨 링컨.ⓒ뉴데일리DB
    ◆“일하러 가세”---‘무노동’ 양반 문화 청산운동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이 동산에 할 일 많아 사방에 일꾼을 부르네
    곧 이날에 일 가려고 그 누가 대답을 할까
    일하러 가세 일 하러 가, 삼천리 강산 위해
    하나님 명령을 받았으니 반도강산에 일하러 가세」

    이승만이 평생 애창한 찬송가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은 ‘하나님 명령 따라 열심히 일하자’는 노래다. 즉, 이승만은 ‘일하지 않는 양반’ 문화의 오래된 폐해를 추방하고 싶었다.
    “점잖은 사람이 어찌 재물에 눈을 돌리랴‘
    ”엽전 수효를 헤아리지 못해야 선비요 재상이다“
    이러면서 모든 노동일을 외면하고 백성들의 노동력과 생명을 착취하던 계급사회 굴레에 정면 도전한 이승만, 그 역시 아버지 이경선옹은 왕족 족보나 뒤지며 팔도강산 유람이나 다니고 밥벌이는 어머니 삯바느질로 연명하는 생활이었다.
    ”전국의 인민을 보건대 양반은 1000분의 1도 안되는데 1000분의 999는 다 양반들을 위해 살아야하니, 실로 국가는 총명하고 영특한 백성들을 모두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담배만 피우고 앉아있구나“ ([독립정신] 이승만 지음, 앞의 책)
    양반사회의 무노동 풍조는 백성들에게도 전염병처럼 번져 ”한국 남자들은 여성들만 일시키고 놀고 먹는다“는 선교사들의 기록이 수두룩하다.

    [제국신문]의 이승만 논설들은 대부분 ’기독교 교육‘ ’힘써 일하자‘ ’미신타파‘ ’위생문제‘ ’인신매매결혼 청산‘ 등 ’국민 의식 개혁에 집중된다.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논설도 썼다. ([제국신문] ’세계에 큰 명일‘ 1902. 12.24)

    ’하나님께 무한 봉사하는 노동관‘은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를 연상시킨다. 건국후 1951년 자유당을 창설할 때 이승만은 당명을 ’노동자 농민당‘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예수의 뒤를 따라 목숨 바쳐“...’자유민권 국민국가‘ 만들기
     
    결론적으로 이승만이 구상하는 독립국가 그림은 ”기독교가 나라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란 말에 집약된다. 그것은 예수교로 교화된 국민이 만들어가는 자유민권 근대 국민국가, 곧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한국인 정체성을 구현하는 한국 내셔널리즘이었다.

    ’미국 백성이 누리는 권리‘ 논설을 5회나 [제국신문]에 연재하며, ”이런 나라는 참 즐겁고 편안하야 곧 인간의 극락국이라 할지라“ 미국 국민들을 본받아 독립선언 독립투쟁을 해야 할 것이라 했다. 그것은 유럽에서 핍박 받아 아메리카로 건너온 ’청교도‘의 미국 독립 혁명정신을 말한다.
    미국의 노예해방 이후로 기독교 국가들은 모두 노예가 사라졌는데 한국과 청국만 남았다며, 한국이 현대적 국민국가로 나아가는데 ”가장 방해되는 나라는 청국“이라고 낙인찍었다.
    [독립정신]에서 강조하는 ”백성을 위해 백성의 힘으로 영원한 백성의 나라”를 세우자는 말은 미국 링컨의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1863.11.19.)--’The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의 이승만 버전이다. 
    그는 미국 유학시 미국인들로부터 미국역사를 미국사람보다 더 잘 안다는 칭찬을 수 없이 들을 만큼 자기머리 메모리 서버에 ’미국의 모든 것‘을 20세부터 저장하고 있었다.
  • ▲ 현재 국내 판매중인 [독립정신] 표지들. 왼쪽은 김충남 교수와 김효선 건국이념보급회 총장이 간추린 현대어판. 오른쪽은 박기봉 비봉출판사 사장이 주석을 붙여 발행한 전문판.
ⓒ뉴데일리DB
    ▲ 현재 국내 판매중인 [독립정신] 표지들. 왼쪽은 김충남 교수와 김효선 건국이념보급회 총장이 간추린 현대어판. 오른쪽은 박기봉 비봉출판사 사장이 주석을 붙여 발행한 전문판. ⓒ뉴데일리DB
    [독립정신]엔 '후록'이 있다. 국민전체의 행동강령이자 건국정신이다.
    ◆[독립정신] 후록—독립주의 실천 6대 강령
    ★세계와 교류, 자유통상
    ★법률의 현대화, 신학문 전면 도입
    ★같은 부류와 진실한 외교, 국제법 준수
    ★국권(주권) 엄수, 국가이익 추구, 태극기 존중
    ★개인과 국가간 의리 존중, 공공의 용기 필수
    ★나와 남의 자유 권리를 생명 같이.

    이와 같은 실천 강령을 온전히 행할 때에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 각자 골수에 박혀 “예수가 아닌 그 누구도 빼낼 수 없어야” 가능하고 반드시 그러해야 한다고, 이승만은 자신과 백성 모두에게 다짐하는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 

    “...죄 지은 인류에게 구원을 열어주셨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세상 사람들을 대신하여 목숨을 버리심으로써...(중략)...다 용서를 얻고 복을 받게 하셨으니 순전히 사랑하심이 아니면 어찌 몸을 버리기까지 하셨겠는가...(중략)....이 은혜는 다른 것으로 갚을 수는 없고 다만 예수의 뒤를 따라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나의 목숨을 버리기까지 일하는 것 뿐이다. 천하에 의롭고 사랑하고 어진 것이 이보다 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이에 하나님의 감사한 은혜를 깨달아 착한 일을 스스로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므로 서로 사랑하고 돕는 가운데 이 잔인하고 포악한 인간 세상이 곧 천국이 되지 않겠는가...”

    “예수의 뒤를 따라 나의 목숨을 버리기까지...” 이 한마디에 이승만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나라 ’독립 건국‘을 위한 불굴의 신념과 영적 결의을 담아 스스로 하나님과 자신에게 맹서를 했던 것이다. 개신교가 말하는 ’십자가 신앙‘ 또는 ’순교자 신앙‘이 이승만의 그것 아닐까.

    [독립정신]을 읽어본 국내학자들은 거기에서 서구 계몽주의자들이나 근현대 정치, 철학, 경제학, 종교학 대가들의 저서에 나오는 대목들을 곳곳에서 발견하고 많이 놀랐다고 말한다. 
    예컨대, 루소, 홉스의 국가론, 아담 스미스 국부론, 루터와 칼뱅의 소명론, 칸트의 영구평화론, 막스 베버의 청교도 윤리론, 토인비의 문명론, 토크빌의 민주주의론, 하이에크의 자유주의 등등이다. 당시 감옥에서 그런 학설들을 접했을 리 없는 20대 이승만의 글들에서 툭툭 튀어나온다는 것인데, 혹시라도 읽었다면 기록광 이승만이 독서목록에 남겼을 터이다.

    이승만의 오랜 자문교수 로버트 올리버(Robert T. Oliver)는 “이승만의 [독립정신]의 공로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인 토마스 페인(Thomas Paine)과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의 저서들이 미국 독립에 기여한 것과 같다“고 평가한다.([신화속의 인물: The Man Behind the Myth] 1960)

    수천년 전제주의 대륙문명에 신음하던 노예를 해방시켜 역사상 처음 자유민주공화주의 해양문명의 바다로 배를 띄운 대한민국의 선장 이승만! 
    망국의 지옥 한성감옥은 그래서 오늘의 한국인을 탄생 시켜 준 은혜의 요람이 아니라 할 것인가. 이승만은 자기맹서에 충실하게 따라 [독립정신]에 쓴 대로 독립운동을 하였고, [독립정신]에 그린대로 대한민국을 건국하였기 때문이다.
    분단국가? 한반도 분단 책임은 스탈린과 김구(金九)에게 물어보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