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강들이 미워하는 러시아 '호랑이 굴'에 숨은 고종

    죄수 이승만이 감옥에서 ’러일전쟁‘을 예견하고 고종에게 경고를 날리는 논설을 쓴 사실을 아시는가? 일본의 ’진주만 기습‘을 예언했대서 베스트셀러가 된 책 [Japan Inside Out]은 [일본의 가면을 벗긴다] 등으로 번역되어 잘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 40년 앞서 러일전쟁을 ’예언‘한 논설은 지금껏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다.
    1903년 2월18일자 [제국신문]에 게재한 논설 ’러-일 양국의 대한(大韓) 관계‘가 그것이다.

    이승만이 남긴 옥중기록물 중에 ’영-일동맹 조약문‘ ’러-일 비밀협약‘ 등 국제관계 문건들이 많다. 영어신문에서 베낀 것들과 국내 신문에 한문으로 게재된 것을 영어로 번역해놓은 것도 있다. 왜 이토록 국제문제에 관심이 많았을까. 
    바로 이 점이 다른 독립 운동가들과 다른, 너무나 다른 이승만의 차별점이다.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에 일찌감치 눈을 뜨고나서 20대 청년시절부터 국제법과 외교를 잘 알아야 독립을 유지할 수 있다고 줄곧 주장한 이승만이 망국 후엔 '외교 독립론'을  초지일관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투옥되기 전 신문사 주필 이승만이 한국최초의 국제필화사건을 일으켜 고종과 러시아-프랑스의 이권거래 밀약을 폭로, 무산시킨 사건은 연재(2)에서 설명한 대로다.
    누구보다 앞서 강대국들의 패권경쟁을 알고 ’대한 독립‘을 맹렬히 부르짖은 이승만은 고종의 아관파천(俄館播遷) 이래 러시아 품에서 놀아나는 황제의 ’외교무지‘와 부패무능에 대하여 격분을 넘어 경멸해왔다. 옥중에서도 미국 시사주간지 [아웃룩]과 국내 언론매체를 통해 숨가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를 날마다 읽으며 노심초사하는 그에게 놀라운 뉴스가 날아든다.
    [황성신문]에 보도된 ’영일동맹 체결‘ 기사와 그 협약문이다.
    즉시 한문을 영문으로 번역하며 눈앞에 닥친 전운(戰雲)에 분노와 걱정이 끓는다.
    “내 백성의 항거를 막지 못해 청일전쟁을 일으켜놓고 이후 10년 세월을 허송하던 황제가 기어이 또 다시 러-일 전쟁까지 불러오는 구나“
    그는 논설을 쓰기 시작한다.

    ”러시아는 탐욕 있는 호랑이라. 세계를 하나의 고기 덩어리로 보아 표트르 황제 이후로 천하를 통합할 주의로 대대로 남의 땅도 많이 침탈하였거니와 각국이 더욱 두려워하고 러시아를 조심하여 애당초 상관을 잘 아니하며 미워함이 자심한지라....(중략)....그 욕심으로 을미사변(일본의 민왕후 살해) 후에 일본인을 물리치고 대한(大韓) 황실을 보호하는 의탁이 되어 러시아는 속으로 조선이 자기를 태산같이 믿어서 벗어나지 않도록 만들매...(중략)....일본은 고종을 달래고 협박하여 지난 장악력을 회복하려 하나 의심과 배심이 깊어갈 뿐이라....” ([제국신문] 논설 ’러-일 양국의 대한 관계‘1903.2.18.)

    오래전부터 ’영토약탈자‘ 러시아에 열강들이 모두 러시아의 서진남진(西進南進)을 가로막고 있는 국제정세 소개로 시작한 논설은 황제 고종이 처한 상황을 묘사하며 정면으로 들이댄다.
  • ▲ 고종 황제(왼쪽)와 고종을 러시아와 수교하도록 배후조종한 독일인 외교교문 뮐렌도르프.(자료사진)
    ▲ 고종 황제(왼쪽)와 고종을 러시아와 수교하도록 배후조종한 독일인 외교교문 뮐렌도르프.(자료사진)
    “은혜(아관파천) 입은 친구 러시아 힘만 믿고 호랑이 굴에 점점 더 깊이 들어가서 이리(일본)가 더 가까이 오지 않는 것만 다행히 여기니, 어찌 그 호랑이가 언제까지 보호하여 주기를 바라리오.,,(중략),,,,그 사이 나라에 병들이고 백성에 해될 일을 하지 말고, 내 백성을 일으켜 세워 백성들로 하여금 국가와 황실을 보호하는 직책을 맡게 해서 양국(러-일)의 간여를 멀리 하였으면 좋은 기회가 많았을 것이거늘, 백성과는 나날이 반대가 되며 정부형세는 세상에 외롭게 되어...(중략)....큰 나라에 의지하여 강한 자의 부용(비유;놀이개 여성)이 되는 것이 쾌하다 하여 점점 돌이킬 수 없는 병이 들었으니 어찌 따로 볼 날이 있으리오.” (*주: 괄호안은 필자)
    독힙협회의 만민공동회 투쟁과 고종의 줏대없는 탄압을 다시 한번 타격한 이승만은
    이리(일본)가 호랑이 굴을 기습할 때를 대비도 할 줄 모르는 고종의 우둔함을 지적한다.

    '그레이트 게임'의 산물 '영일동맹'을 모르는 조선

    영-일 동맹은 영국과 러시아의 오래 된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의 산물이다.
    19세기 초반 러시아가 페르시아(이란)과 5차 전쟁을 벌여 카스피해-흑해 연안까지 광대한 영토를 장악하자 영국은 비상이 걸렸다. 영국 최대의 식민시장 인도에 대한 위협, 지중해로 진출하면 중동 위협, 그때부터 시작된 영국의 봉쇄작전과 러시아의 진출작전의 대결이 ’그레이트 게임‘이다. 레닌의 공산쿠데타까지 100년을 헤아리는 패권게임에 독일도 가세한다.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남진, 영국에 막히자 시베리아 철도를 놓아 만주와 한반도로 향한다. 놀란 영국은 러시아의 남진 항로에 놓인 거문도를 점령(1885)하고, 한반도를 노리는 일본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바깥세상을 모르는 고종은 거문도 점령도 시베리아 철도의 의미도 몰랐고, 20대 위안스카이의 ’총독질‘만 무서워서 러시아에 밀사를 보내 “보호”를 애걸한다. 그것도 청국 이홍장이 조선과 일본을 감시하라고 파견한 독일인고문 묄렌도르프가 조국 독일의 이익을 위해 러시아 동진을 돕는 2중간첩질과 이에 장단 맞춘 주한 러시아 공사 베베르의 포섭작전인 줄을 고종이나 민비가 알 턱이 없다. 러시아는 자다가 떡먹기다. 
    급기야 일본이 ’러시아의 여우 사냥작전‘이란 이름으로 민왕후를 살해하고, 피난처를 찾아 갈팡질팡하던 고종을 러시아가 끌어안는다. 이에 청일전쟁때 러시아의 ’3국 간섭‘으로 요동반도를 토해내야 했던 일본은 고종이 아관파천을 감행하자 즉각 영국에 동맹을 제안한다. 영국은 ’그쪽은 일본이 맡으라”며 1차 영일동맹을 체결한 것이 1902년 1월30일이다.
    감옥에 앉아서 강대국들의 패권 놀음을 지켜보던 이승만이 2월18일 고종에게 국가멸망위기를 경고하는 논설을 게재한 것이었다.
  • ▲ 1904년 2월 3일 자 영국 잡지 '펀치(Punch)' 삽화. 러·일 양국이 조선 노인의 허리를 밧줄로 조이는 장면. 러일전쟁에 '엄정중립'(Strict Neutrality)을 선언한 조선을 풍자.
    ▲ 1904년 2월 3일 자 영국 잡지 '펀치(Punch)' 삽화. 러·일 양국이 조선 노인의 허리를 밧줄로 조이는 장면. 러일전쟁에 '엄정중립'(Strict Neutrality)을 선언한 조선을 풍자.
    "러시아와 일본이 먹이를 다투니...위태하고 위태하도다"

    “세계에서 다 싫어하는 나라(러시아)를 홀로 의지하여 여러 이익까지 주어가면서 자기보호만 받으려하니 타국이 어찌 마음에 즐겨 하리오....(중략)....남이 나를 쳐서 하루도 지탱할 수 없는 상황을 자초하고 있다“고 개탄하는 이승만이다. 
    고종에게 ‘독립’이란 ‘왕실 살아남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제 곧 “러시아-프랑스가 한편 되고 일본-영국이 한편 되어 ’줏대 없는 물건‘(대한제국 고종)을 놓고 다투는 모양새라...위태하고 위태하도다. 장래 관계는 다시 설명하겠노라.”

    안타깝게도 당시의 [제국신문]이 17개월치나 사라져 ’장럐관계‘등 추가 논설을 볼수 없음이 너무 아쉽다.
    이 논설이 게재된 꼭 1년 후 1904년 2월 8일 러일전쟁이 터진다. 
    영일동맹을 맺은 일본이 선전포고도 없이 인천 앞바다와 요동반도를 동시에 기습, 러시아 함대를 격침시킨다. 함포소리가 쿵 쿵 한성감옥까지 울려온다.

    “나라가 망했구나. 대한은 이제 일본 것이냐? 러시아 것이냐?” 옥중 개화파는 통곡한다.
    1904년 2월 19일, 이승만은 눈물을 흘리면서 영어단어 8,233개까지 정리한 [신영한사전] 편찬 작업을 F항 중반에서 중단하고 [독립정신] 집필에 돌입한다. 전쟁발발 열흘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