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경문협 공탁금은 北정권 아닌 북한 매체 소유… 우리 저작권법 적용" 판결 국군포로 측 “실제론 노동당에 가는 돈… 이번 판결은 궤변, 즉각 항소할 것”
  • ▲ 2020년 7월 탈북 국군포로들이 김정은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승소한 뒤 소송대리인들과 법률지원단체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가졌다. ⓒ정상윤 기자.
    ▲ 2020년 7월 탈북 국군포로들이 김정은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승소한 뒤 소송대리인들과 법률지원단체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가졌다. ⓒ정상윤 기자.
    김정은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 승소했던 국군포로들이 그 배상금을 받기 위해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이하 경문협, 이사장 임종석)을 상대로 낸 추심청구소송 1심에서 패소했다. 

    법원은 “북한에도 한국 저작권법이 적용되므로, 경문협이 보관 중인 저작권료도 김정은의 것이 아니다”라는 해석을 내놨다.

    서울동부지법 “북한에도 우리 저작권법 적용… 경문협 돈은 북한 매체 것”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1심 판결을 맡은 서울동부지방법원 민사1단독 송승용 부장판사는 “북한은 국가 또는 비법인사단(법인은 아니지만 정형화된 형태를 가진 단체)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피압류 채권자(추심의 대상)’로서의 지위를 갖기 힘들다”며 “원고들(국군포로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고 밝혔다.

    송 판사는 판결을 통해 “국내법에 따르면 북한은 국가가 아니며,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도 사단법인 규약으로 볼 수 없고, 자산에 대한 규정도 없어 비법인사단으로도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북한에도 우리나라 법이 적용된다”고 강조한 송 판사는 “따라서 북한의 저작물도 우리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모두 저작권법상 권리를 행사할 수 있고, 그 주체는 개인도 될 수 있다”고 봤다. 경문협이 공탁한 북한 매체 저작권료의 주인이 김정은 또는 북한 당국이 아니라 각 매체가 된다는 뜻이다.

    국군포로들, 김정은 상대 손배소 승소해 법원 추징 명령했지만… 경문협 거절

    북한으로 끌려갔다 탈북한 국군포로 한모 씨와 노모 씨는 2020년 7월 김정은과 북한 당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했다.

    이후 법원은 북한 관영 매체 저작권료를 법원에 공탁 중인 경문협에 추심 명령을 내렸다. 북한 관영 매체의 사진·영상을 사용하는 국내 매체로부터 저작권료 징수를 위탁·보관하는 곳이 경문협이었기 때문이다. 

    경문협은 2008년 7월 금강산에 갔던 관광객 1명이 북한군에 살해된 이후 대북 송금길이 막힌 뒤 지금까지 받은 저작권료를 법원에 공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문협은 그러나 법원의 명령을 거부했다. 한씨와 노씨는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서울동부지법에 경문협을 상대로 4200만원의 손해배상금 추심 소송을 냈다. 북한 관영 매체가 국내 매체에서 받아 가는 저작권료가 실질적으로는 김정은의 ‘외화벌이 사업’에 속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변호인단 “국군포로 명예 짓밟는 판결… 즉각 항소할 것”

    국군포로들의 소송을 지원해온 사단법인 물망초의 박선영 이사장은 “이번 판결은 탈북한 국군포로 80명뿐만 아니라 10만 명에 달하는 국군포로 전체를 모욕하고 명예를 짓밟은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북한을 비법인사단으로 규정해왔다”고 강조한 박 이사장은 “이번 판결은 한마디로 궤변”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국군포로 소송대리인 중 한 명인 엄태섭 변호사는 “조선중앙방송 등의 저작권료는 실질적으로 북한 노동당에 귀속될 것이 분명하다”면서 “이번 판결은 형식에 기댄 비겁한 판결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상당히 퇴행적 판결”이라고 규정한 또 다른 소송대리인인 심재왕 변호사도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며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올바른북한인권법을위한시민모임 회장인 김태훈 변호사는 “재판부가 ‘북한을 비법인사단으로 볼 수 없다, 북한 헌법을 규약으로 볼 수 없다’ 이렇게 판단한 것은 이미 확정된 본안재판 판결 내용을 다툰 것”이라며 “이것을 왈가왈부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방송에 따르면, 이날 국군포로 한씨와 노씨는 건강 때문에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박 이사장은 “1명은 암 투병 중이고 1명은 척추에 아직 인민군 총알이 박혀 있어 거동조차 힘들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