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의 자유를 계급에 따라 차등… 현대판 신분제와 다름없는 차별적 규정"미국, 영국 등 사례 들며 시정권고… 해당국에선 간부·병사 구별없이 2cm 유지
  • ▲ 지난 10월 25일 오후 서울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장병들. 최근 현역병사들의 평균적인 머리 길이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10월 25일 오후 서울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장병들. 최근 현역병사들의 평균적인 머리 길이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가인권위원회가 “군 간부와 병사의 두발규정이 다른 것은 평등권 침해”라며 국방장관에게 시정을 권고했다. 국방부는 “현재 관련 내용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인권위 “병사와 장교의 두발규정 차이는 차별…시정하라”

    인권위는 지난 15일 국방부 장관에게 “각 군의 임무수행 특성을 고려하되 각 군마다 다른 두발규정과 관련해서는 간부와 병사 간의 차별을 시정하는 방향으로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현재 병사는 앞머리 5cm, 윗머리 3cm 길이의 스포츠형을, 간부는 일과 후 사회생활 등을 이유로 앞머리가 이마를 덮지 않는 간부 표준형 또는 스포츠형 가운데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별도의 두발규정을 두고 있다.

    인권위는 “각 군 두발규정은 전투임무 수행 등을 위한 것인데, 간부와 병사 간에 차등 적용해야 할 합리적 이유가 없다”면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모병제를 실시하는 국가뿐 아니라 징병제를 실시하는 이스라엘도 단정한 용모와 헬멧 등 전투장구 착용에 지장이 없도록 장병들의 두발 길이를 제한하고 있지만 계급에 따른 차등 적용은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간부와 병사에게 두발규정을 차등 적용하는 것은 평등권 침해”라며 “국방장관에게 두발규정과 관련해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군 인권센터 “간부와 병사 두발규정 다른 건 현대판 신분제와 다름없는 규정”

    인권위의 이번 권고는 지난해 9월 민간단체 ‘군인권센터’의 진정에 따른 것이다. 당시 ‘군인권센터’는 “병사와 간부 간 합리적인 근거 없이 두발 등 신체의 자유를 계급에 따라 차등하는 규정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면서 “현대판 신분제와 다름없는 차별적 규정이 시정될 수 있도록 인권위에 진정을 접수한다”고 밝혔다.
  • ▲ 2019년 4월 닉 카터 영국육군대장의 이스라엘 방문 당시. 왼쪽이 이스라엘 고위급 장교다. ⓒ이스라엘 방위군 공개사진.
    ▲ 2019년 4월 닉 카터 영국육군대장의 이스라엘 방문 당시. 왼쪽이 이스라엘 고위급 장교다. ⓒ이스라엘 방위군 공개사진.
    이후 인권위는 지난해 9월부터 공군 간부와 병사들을 대상으로 면접조사를 실시했다. 이어 올해 4월부터는 전군의 간부와 병사들을 상대로 면접 조사를 했다. “다수의 면접자들이 두발규정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전시 상황에는 간부와 병사의 차이가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두발규정에 차등을 두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의견을 냈다고 인권위는 밝혔다.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출범한 ‘병영문화 개선을 위한 민·관·군 합동위원회(이하 민·관·군 합동위원회)도 ‘병사와 간부 두발규정 단일화’를 군에 권고했다. 육·해·공군과 해병대는 위원회 권고에 따라 병사와 간부를 통합한 두발규정 개선안을 이미 국방부에 제출했다. 이런 가운데 인권위도 권고를 내놓은 것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 장병들…‘2cm 안팎’ 짧은 머리 유지

    국방부 관계자는 16일 “인권위의 권고 취지, 군의 임무특성, 군 기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개선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다만 통합된 두발규정의 구체적인 시행 시기나 방식은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고 답했다.

    인권위가 두발규정 비교사례로 든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은 병사와 간부를 막론하고 남자는 길이 2cm 미만의 짧은 머리를 유지한다. 이스라엘도 비슷하다. 각국 군대가 병사와 간부 차이 없이 짧은 머리를 유지하는 것은 유사시 위생문제, 전투 시 응급처치의 용이함 때문이다.

    현재 군 당국은 병사들에게는 10년 전에 비해 상당히 완화된 두발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오히려 간부 가운데 예전보다 두발 길이가 짧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 국방부가 인권위와 민·관·군 합동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개선안을 마련할 때 해외 사례를 참고한다면, 병사와 간부 모두 길이 2cm 미만의 짧은 스포츠형 머리를 해야 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