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출범 후 첫 체포영장·구속영장 모두 '기각'… 법원 "구속 필요성·상당성 부족"영장심사서 공수처 '수사 비협조' 핵심 사유 들어… 손준성 "변호사 사건 파악 시간 필요했다""공수처, 수사권 자의적 행사… 손준성 구속 피하며 윤석열 대권 악재 해소, 한숨 돌려"
  • ▲ 고발사주 의혹을 받고 있는 손준성 검사가 지난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 고발사주 의혹을 받고 있는 손준성 검사가 지난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로 불리는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공수처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청구한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당하면서 관련 수사 역시 타격을 입게 됐다.

    법조계에서는 "손 검사의 영장 기각은 상식적이고도 당연한 결과" "공수처가 무리한 영장 청구로 스스로 친정부 기구라는 민낯을 드러냈다" 등의 비판이 나왔다.

    법원 "손준성 도주·증거인멸 우려 있다고 보기 어려워"

    서울중앙지법 이세창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26일 공수처가 청구한 손 검사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부장판사는 "현 단계에서 구속의 필요성 및 상당성이 부족하다"며  "수사 진행 경과 및 피의자의 정당한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넘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심문 과정에서 향후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피의자의 진술 등을 종합했다"고 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26일 오전 진행된 영장심사에서 여운국 공수처 차장 등은 "손 검사가 변호인 선임 등을 이유로 조사를 미루고, 출석 약속을 어기고 조사에 불응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손 검사는 "앞으로 수사 절차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호소했다.

    공수처는 지난 20일 손 검사 체포영장이 기각되자 사흘이 지난 23일 이례적으로 조사 없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이 손 검사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공수처가 손 검사의 혐의를 제대로 소명할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수처는 지난해 4월 총선 직전 당시 미래통합당 김웅 후보(현 국민의힘 의원)가 이번 사건 최초 제보자인 조성은 씨에게 여권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고발장을 전달하는 직전 단계에서 핵심 역할을 맡은 인물이 손 검사라고 판단했다. 손 검사가 대검찰청 수사정보담당관으로 있으면서 담당관실 소속 검사에게 고발장 작성과 관련 정보 수집을 시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공수처 "법원 판단 존중… 추후 영장 재청구 판단"

    공수처가 손 검사 구속영장을 청구한 핵심 사유는 '수사 비협조'다. 공수처는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지난 4일부터 14~15일께 소환조사를 진행하자고 했으나 이뤄지지 않았고, 19일까지 거듭된 출석 일정 협의에서도 비협조적이었다"고 지적했다. 

    손 검사는 피의자 소환조사도 하지 않고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방어권 침해라며 반발했다. 손 검사는 "출석을 미룬 것은 선임되지 얼마 안 된 변호인의 사건 파악 시간을 위한 것"이었으며 "11월2일 출석 의사를 공수처에 전달한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영장 기각 직후 공수처는 "아쉽지만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추후 손준성 검사에 대한 조사와 증거 보강 등을 거쳐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법조계 "공수처, 감정적 판단 앞서… 무리한 영장 청구로 망신 자초"

    법조계에서는 공수처가 성급한 영장 청구로 망신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형사 사건 전문 김기윤 변호사는 27일 통화에서 "공수처가 법리적보다는 감정적 판단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공수처가 손 검사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사유로 출석에 불응한다며 도주 우려를 들었다"며 "그런데 현재 손 검사는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인데 그런 지위를 볼 때 과연 도주를 하겠느냐"고 꼬집었다. 

    이어 "증거 인멸 우려 역시 공수처가 증거를 다 확보한 상황에서 법원에서는 인멸할 증거가 없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라고 진단한 김 변호사는 "명확한 소명 없이 불출석을 주된 이유로 영장을 청구한 것은 무리수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서울고법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손 검사 구속영장 기각은 상식적이고 당연한 결과"라며 "매우 부적절한 영장 청구로 공수처가 망신을 당했다"고 평가했다. 이 변호사는  "공수처는 영장 청구를 통해 손 검사에게 수사 협조를 하지 않으면 체포하겠다는 압박을 위해 무리한 영장 청구를 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렇다 하더라도 영장을 신속한 수사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안 될 일"이라고 비판했다. 

    "공수처 스스로 친정권 민낯 드러내… 윤석열에겐 결과적으로 호재"

    "공수처가 다음달 5일 국민의힘이 최종 대선후보를 선출하기 전에 수사를 빨리 진행시켜야 하다 보니 쫓기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한 이 변호사는 "윤 후보가 대선후보로 나서게 되면 손을 댈 수 없다는 조급함이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장을 지낸 김종민 변호사는 "공수처가 정치적 수사를 하다 보니 무리하게 영장을 청구한 결과"라고 질타했다. 김 변호사는 "진실을 밝혀야 하는 공수처가 수사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하고 있다"며 "결국 공수처 스스로 친정권·정치적 수사기구로서의 민낯을 완전히 드러낸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손 검사의 영장 기각으로 윤 후보에게 유리한 상황이 됐다"고 분석했다. 이 평론가는 "고발 사주 건이 윤 후보의 악재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는 상황”이라며 "처음부터 자기가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윤 후보에게는 결과적으로는 정치적 호재가 됐다"고 분석했다. "손 검사가 구속됐다면 윤 후보의 정치활동에 차질이 발생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