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공판서 프로포폴 불법투약 혐의 인정… 검찰, 벌금 1000만원 구형
  • ▲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한 혐의로 기소된 배우 하정우(본명 김성훈)가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한 혐의로 기소된 배우 하정우(본명 김성훈)가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제가 얼마나 주의 깊지 못하고 경솔하게 행동했는지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고,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10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24단독(판사 박설아) 심리로 열린 공판에 출석한 배우 하정우(43·김성훈·사진)가 "대중 배우로서 좀 더 신중하게 생활하고 모범을 보였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며 "제 잘못으로 동료 및 가족에게 심려를 끼치고 피해를 준 점에 대해 고개 숙여 깊이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하정우는 2019년 1~9월 서울 강남의 I성형외과에서 친동생 김영훈(예명 차현우)과 매니저 A씨 등의 이름으로 십여 차례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다소 떨리는 음성으로 최후진술을 이어간 하정우는 "부끄럽고 염치없지만,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배우가 되고자 한다"며 "앞으로는 이런 자리에서 서지 않도록 조심하며 살겠다. 제 과오를 만회할 수 있도록 선처를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제 잘못으로 동료·가족에게 심려 끼쳐… 고개 숙여 사죄"

    당초 검찰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혐의로 송치된 하정우를 벌금 1000만원에 약식기소했으나, 담당 재판부가 이 사건을 정식 재판에 회부하면서 하정우는 이날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섰다.

    하정우와 함께 법정에 출석한 변호인은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안일하게 판단해 행동한 사실을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강조한 뒤 "병원이 차트를 분산 기재해 실제로 투약한 양은 진료기록부상 투약 양보다 훨씬 적다는 점을 정상 참작해달라"고 당부했다.

    또 다른 변호인은 "특수분장 등으로 피부 트러블이 심했던 피고인은 지인의 추천을 받아 해당 병원에 갔던 것"이라며 치료 목적으로 프로포폴을 투약한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이어 "피고인은 이 사건이 언론에 공개된 이후부터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고 있다"며 "배우로서 활동을 하지 못하면 소속사에도 막대한 손해를 끼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벌금형을 초과하는 형이 선고되면 작품 제작에 차질이 빚어져 재기가 힘들어진다. (받은 사랑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도록 벌금형을 내려달라"고 간청했다.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하정우 프로포폴 사건의 첫 공판은 검찰과 변호인 양측이 혐의 여부를 다투지 않으면서 20여분 만에 끝났다.

    이날 검찰은 약식기소 때와 마찬가지로 하정우에게 벌금 1000만원을 구형하는 한편, 8만8749원의 추징금을 명령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정우의 선고 공판은 내달 14일 오후 1시 50분으로 예정됐다.

    하정우, 국내 10대 로펌으로 변호인단 꾸려


    이날 하정우가 법원에 모습을 드러낸 시각은 오전 9시 45분. 재판 예정 시각보다 30여분 빨리 도착한 하정우는 취재진 앞에 서서 "심려를 끼쳐드려 너무나 죄송하다"며 "성실히 재판에 임하겠다"고 사과의 말을 전했다.

    검은 정장에 흰 와이셔츠, 금테 안경을 쓴 하정우는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변호인 3명과 함께 법원 안으로 들어갔다.

    임시 피고인 대기실로 마련된 서관 513호 법정에서 40분가량 대기한 하정우는 오전 10시 33분경 바로 옆 법정인 514호로 들어갔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법원이 소량의 방청권만 배부하면서 이날 공판을 방청한 기자들은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재판에 들어가지 못한 다수 기자들은 법정 로비에 진을 치고, 하정우 소속사 측의 일거수 일투족에 주목하는 모습을 보였다.

    20여분 후 하정우가 법정 밖으로 나오자 로비에 있던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와 질문 공세를 퍼붓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날 공판에는 법무법인 바른·태평양·가율 측 변호사가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정우는 프로포폴 불법 투약 의혹에 휘말린 뒤 국내 5대 로펌에 속하는 법무법인 율촌과 태평양에서 각각 2명의 변호사를 자신의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했다. 이후 사건이 정식 재판에 회부되자 법무법인 바른과 법무법인 가율에서 총 6명의 변호사를 추가 선임했다.

    당초 하정우의 변호인단에 합류했던 법무법인 원은 이 사건이 정식 재판에 회부된 이후 사임계를 냈다.

    약식기소된 사건, 재판부가 정식 재판에 회부


    앞서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형사부(부장검사 원지애)는 지난 5월 27일 하정우를 벌금 10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검찰은 하정우가 2019년 1~9월 한 성형외과에서 친동생과 매니저 등의 이름으로 약 19회에 걸쳐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해 마약류 관리법 등을 어겼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7단독(판사 신세아)에 배당됐다. 약식기소는 검찰이 재판 대신 서면심리만으로 과태료나 벌금형 등을 청구하는 절차로, 법원이나 당사자가 정식 재판에 회부(청구)하지 않으면 형은 확정된다.

    그러나 신세아 판사는 약식명령을 내리는 대신, 이 사건을 정식 재판에 회부했다.
     
    법원 관계자는 "검찰이 약식기소한 사건을 재판부가 정식 재판에 회부한 것은 이 사건이 벌금형에 그쳐선 안 된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사건이 단순한 약식절차로 진행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재판부가 약식명령으로 사건을 마무리짓는 게 적당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경우는 △첫째 피고인이 무죄를 주장하거나 △둘째 법률적으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때 △셋째 사안이 중대하기 때문에 서면심리로 바로 판단내리기보다 정식 재판을 통해 다뤄야 한다고 판단했을 때"라고 부연했다.

    "병원장 요구로 '친동생 신상명세' 전달"

    2019년 1~9월경 하정우의 얼굴 피부 흉터 치료를 전담한 I성형외과 원장 K씨는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을 선고 받고 현재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K씨는 채승석 전 애경개발 대표 등 내원한 고객들에게 프로포폴을 불법 처방하고 진료기록부를 거짓으로 작성한 혐의 등으로 간호조무사와 함께 구속됐다.

    보도에 따르면 채 전 대표는 하정우의 친동생 이름(김영훈)으로 피부과 진료와 프로포폴 처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하정우를 이 병원에 소개한 장본인이 채 전 대표라는 점에서 이 사건은 세간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와 관련, 하정우는 지난해 2월 소속사를 통해 "평소 얼굴 부위 흉터 때문에 고민이 많았는데, 레이저 흉터 치료로 유명하다는 I성형외과 원장 K씨를 소개받고 해당 병원에서 10회가량 강도 높은 레이저 시술을 받았다"고 밝혔다.

    하정우는 "K씨에게 얼굴 피부 흉터 치료를 받는 와중 프로포폴 처방을 받았다"고 투약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의사의 적법한 처방으로 투약한 것이라 이를 오·남용한 사실이 없다"고 상습 과다 투약 의혹을 부인했다.

    하정우는 자신이 '차명'으로 진료를 받은 사실에 대해서도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K씨가 처음부터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오라'고 하는 등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모습이었고, 그 과정에서 '소속사 대표인 동생과 매니저의 이름 등 신상정보를 달라'고 요청했다"면서 "이를 프라이버시 보호 차원으로 막연히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이에 "의사의 요청이라 별다른 의심없이 동생과 매니저의 인적사항을 전달했고, 이게 실제로 어떻게 사용됐는지는 모른다"고 주장했다. 자신은 의사가 시키는대로 했을 뿐 치료 사실을 숨기기 위해 차명 진료를 받은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 ▲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한 혐의로 기소된 배우 하정우(본명 김성훈)가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취재 = 조광형 기자
    사진 = 정상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