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021년 시흥 과림동 한 지역에서만 토지거래 130건 넘어… 대단히 이례적""멀리 사는 외지인·외국인·사회초년생이 매입… 수억 대출 받아 주말농장 샀겠나"
  • ▲ 민변과 참여연대가 경기 시흥에서 추가 농지 투기 정황을 발견해 발표했다. 사진은 LH 직원들의 경기 시흥 땅 투기 의혹 농지에 묘목이 심겨있는 모습. ⓒ권창회 기자
    ▲ 민변과 참여연대가 경기 시흥에서 추가 농지 투기 정황을 발견해 발표했다. 사진은 LH 직원들의 경기 시흥 땅 투기 의혹 농지에 묘목이 심겨있는 모습. ⓒ권창회 기자
    3기 신도시로 지정된 경기도 시흥에서 또다시 농지 투기 정황이 다수 발견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을 포함해 농사를 짓기 힘들 것으로 보이는 외지인·외국인·사회초년생이 농지를 매입한 사례가 확인된 것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는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3기 신도시 지역 농지법 위반 의혹 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이들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 2월까지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일원에서 매매된 전답 131건 가운데 30여 건이 투기 목적의 농지 매입으로 추정된다. 이 중에는 지난 2일 첫 폭로 당시 언급된 LH 직원 6명도 포함됐다.

    또 주소지에서 해당 지역을 오가면서 농사를 짓기 어려운 외지인·외국인·사회초년생이나 농업 목적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과도한 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농지를 고물상‧건물 부지 등 다른 용도로 이용하거나 오랜 기간 방치한 사례도 발견됐다.

    15건 채권최고액, 거래 금액의 80% 넘어… "주말농장을 거액 대출 받아 사나"

    민변과 참여연대는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와 대법원 인터넷등기소 확인 등의 방법으로 이번 조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대표적인 법 위반 의심사례를 ▲토지 거래가액 또는 대출 규모가 농업 경영 목적이 아닌 경우 ▲농지 소재지와 토지 소유자의 주소지가 멀어 농업활동이 어려운 경우 ▲다수 공유자의 농지 매입으로 농지법을 위반한 경우 ▲농지를 농업에 활용하지 않는 경우 등 총 4가지로 나눴다.

    이들은 우선 '토지 거래가액 또는 대출 규모가 농업 경영 목적이 아닌 경우'에 해당하는 18건을 투기 의심 사례로 꼽았다. 토지 소유자들은 모두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받아 해당 농지를 매입했으며, 18건 중 15건은 채권최고액이 거래 금액의 80%를 넘었다. 통상 대출액의 130% 내외가 채권최고액임을 감안하면 매입대금의 상당 부분을 대출로 충당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민변과 참여연대는 "대규모 대출로 농지를 매입했다면 농업 경영보다는 투기 목적일 가능성이 높다"며 "채권최고액이 4억 원이 넘는 경우 적어도 월 77만 원의 대출이자를 내야 하는데 이를 주말농장 용도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토지 소유자들이 주로 자금을 빌린 은행은 북시흥농협과 부천축협이었다. 이에 민변과 참여연대는 대출 적정성과 관련해 관할 행정기구의 철저한 감독이 이뤄져야 한다고도 주문했다.

    김남근 변호사(민변 개혁입법특위 위원)는 "해당 기간 과림동 한 지역에서만 130건이 넘는 토지 거래가 있었는데 이는 매우 드문 일"이라며 "농지는 생산성이 높지 않아 10~20억 원씩 거액을 주고 사거나 큰돈을 빌려 사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경남 김해, 충남 서산 거주자가 농업 위해 시흥 땅 샀다?… 외국인 소유주도 발견

    민변과 참여연대는 '농지 소재지와 토지 소유자의 주소가 멀어 농업활동이 어려운 사례' 9건도 소개했다. 토지 소유자가 경남 김해, 충남 서산, 서울 강남3구 등에 주소지를 두고 있어 직접 농업을 하기 어려워 보이는 경우다.

    '다수 공유자의 농지 매입으로 농지법을 위반한 경우'도 발견됐다. 서울 송파구·서초구·동대문구에 사는 3명이 1개 필지를 공동 소유하거나 충남 서산과 서울 강남구에 사는 2명이 땅을 나눠 가진 사례를 찾은 것이다. 이들이 농지법상 농지 소유 요건인 '자기농업 경영'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민변과 참여연대의 설명이다.

    공동 소유주에 외국인이 포함된 사례는 2건으로 각각 중국인 1명과 캐나다인 1명이다. 1990년대 출생 소유주도 최소 3명으로 파악됐다. 

    이와 관련 민변과 참여연대는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해 부를 쌓은 경우도 있겠지만 대출금액이 10억 원을 넘는 사례도 있어 의혹을 제기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현장조사 결과 '농지를 매입해놓고 농업과 다른 용도'인 건물 부지 등으로 이용하거나 오랜 기간 방치한 사례도 4건 있었다. 

    면적이 891㎡인 한 농지(답)는 철재를 취급하는 고물상으로 활용됐다. 소유자 2명은 각각 경기도 광명시와 경북 울릉군에 거주했다. 2876㎡짜리 농지(전) 1곳은 폐기물 처리장으로 쓰였다. 펜스를 쳐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장기간 땅을 방치한 사례도 발견됐다.

    참여연대 "'농지법'‧'부동산실명법' 위반 여부로 수사 확대해야"

    김주호 참여연대 사회경제1팀장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공공주택특별법'이나 '부패방지법' 등의 위반 여부만 수사한다면 LH 직원과 그 가족으로 수사 범위가 한정될 수밖에 없다"며 "'농지법'과 '부동산실명법' 위반 여부로 (수사) 범위를 넓혀 중앙정부 및 지자체 공무원, 국회의원과 광역·기초의원, 공공개발 관여 공공기관 임직원, 기획부동산, 허위 농림법인, 전문 투기꾼 등을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팀장은 "'농지법'이 농지의 보존·관리를 어렵게 하고 농지 투기·전용을 부추기고 있다"면서 "전업농과 농업 법인만 농지 소유·임대차를 할 수 있도록 하고 농지 전용 억제, 투기 방지, 전업농 육성을 위한 농지 관련 세제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민변과 참여연대는 농지법이 이렇게 허술하게 운용되도록 역할을 방기한 각 기초지자체(시·구·읍·면)와 이들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중앙정부(농림축산식품부), 광역 지자체(경기도 등) 등을 대상으로 공익감사를 청구할 예정이다.

    한편 LH 직원들의 경기도 광명·시흥 신도시 투기 의혹을 수사 중인 경기남부경찰청 부동산투기사범특별수사대는 이날 오전 10시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와 경남 진주 LH 본사, 북시흥농협 등 6곳을 대상으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