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합계출산율 0.84명, 1970년 이후 최저… 유일한 '1명 미만 국가' 인구재앙 현실로
  • ▲ 경기 수원시 한 병원 신생아실의 모습이다. ⓒ뉴시스
    ▲ 경기 수원시 한 병원 신생아실의 모습이다. ⓒ뉴시스
    "아이한테 떳떳한 부모가 될 자신이 없다. 아이 낳아봤자 아이한테 미안할 뿐이다."

    25일 광화문에서 취재진이 만난 민모(40·남·서울 강남구) 씨는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로 "내 집 마련도 어려운 상황에서 육아비용도 너무 부담이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동네 커피숍을 운영하는데, 요즘은 코로나 여파로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고 밝힌 민씨는 "나이도 있어 아이를 낳을 계획을 세웠는데 최근에 포기했다. 아이를 낳으면 되레 아이한테 너무 미안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민씨의 말처럼 '아이 낳기 어려운 나라'는 현실이 됐다. 24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출생·사망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84명을 기록했다. 2019년(0.92명)보다 0.08명 하락한 수치로 1970년 관련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처치를 기록했다. 합계출산율이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뜻한다.

    "출생아 30만 명 지지 목표" 공언했는데… '데드크로스' 시대 접어들어

    문재인정부는 2018년 12월 "한 해 출생아 수 30만 명을 지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한 해 출생아 30만 명은 인구학자들 사이에서 심리적 저지선으로 여겨지는 수치다.

    하지만 2년 뒤 한국의 출생아는 전 세계 평균(2.4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198개 국가 중 꼴찌를 차지했다. 유엔 인구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합계출산율이 1명 아래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197위에 오른 푸에르토리코도 지난해 합계출산율 1.2명을 기록했다.

    저출산 속도가 유례 없이 빨라지면서 우리나라 출생아 수도 기록을 새로 썼다. 지난해 출생아는 27만2000명으로 2019년(30만3000명)보다 3만1000명 감소했다. 우리나라 출생아 수는 2002~16년 15년간 40만 명대를 유지했지만 2017년 35만8000명으로 떨어진 이후 지난해 20만 명대로 급락했다.

    반면 지난해 사망자는 30만5000명으로 출생아보다 3만3000명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사상 처음으로 인구가 자연감소하는 '데드크로스'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통계청은 2019년 발표한 '장래인구추계'에서 지난해 출생아를 29만2000명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 출생아는 이보다 2만 명이나 적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 역시 0.82명으로 통계청 예상 0.90보다 0.08명 적었다.

    "경제적인 부분 가장 고민 커… 애 잘 키울 자신 없다"

    김수영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24일 브리핑에서 "계속되는 저출산으로 출생아 수가 줄고, 고령화로 사망자 수가 증가하며 인구 자연감소가 최초로 발생했다"고 밝혔다.
  • ▲ 경기 수원시 한 병원 신생아실의 모습이다. ⓒ뉴시스
    ▲ 경기 수원시 한 병원 신생아실의 모습이다. ⓒ뉴시스
    이처럼 출산율이 계속 줄어드는 이유는 뭘까. 신혼부부나 예비부부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올해 말 결혼을 앞둔 이모(36·여·경기도 남양주시) 씨는 "현실적으로 아이를 낳으려면 경제적인 부분을 따져야 하지 않겠느냐"며 "병원·어린이집·유치원 등 태어나는 순간부터 들어갈 돈을 생각하면 아이를 낳는 것을 망설이게 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나라에서 출산을 장려한다며 혜택을 준다 하지만 실제로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고 지적한 이씨는 "정부 말만 믿고 무턱대고 애를 낳으면 누가 책임져 주느냐"고 덧붙였다.

    김모(45·남·경기도 성남시) 씨는 "결혼한 지 2년 됐지만 애를 낳을 생각은 없다"며 "나이도 나이지만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고 말했다.

    김씨는 "사교육이 강하게 발달한 우리나라 교육환경을 생각하면 아이를 키우기에 겁부터 난다"며 "기득권에 소속되지 않으면 아웃사이더가 되는 사회적 현실을 생각할 때 아이를 뒷바라지할 자신이 없다"고 한탄했다. 

    또 "내 노후도 생각해야 하고, 후손이 중요한 시대도 아닌데 굳이 애까지 힘들게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힌 김씨는 "결국 애를 낳을 이유를 찾지 못하겠더라"고 말했다.

    송모(38·남·경기도 부천시) 씨 역시 아이 낳기가 망설여지는 이유로 경제적 문제를 꼽았다. 송씨는 "현재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을 볼 때 아이를 키우려면 아빠 혼자 벌어서는 남들이 말하는 좋은 교육을 시키기 어렵다"며 "둘이 벌어 애 키우자니 애한테 소홀해질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송씨는 "우리나라는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별이 심한데, 그 차별을 겪어온 세대가 부모가 됐다"며 "그 고통을 아는데 아이를 낳아 똑같은 고통을 겪도록 하고 싶겠느냐"고 반문했다.

    전문가들 "퍼주기식 복지 아닌 아이 낳을 수 있는 구조 만들어야"

    결국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퍼주기식 복지가 아닌 출산에 긍정적 인식을 심어줄 근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종훈 시사평론가는 "청년취업이 고용절벽 상태인데다 주택 구입까지 더 어려워졌다"며 "양육비 부담까지 생각하면 아이를 낳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저출산은 양질의 일자리 부족과 주거난, 인구·산업의 수도권 집중현상 등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한 이 평론가는 "정부가  무조건 출산수당 등 복지 강화 위주의 해결책만 펼 것이 아니라 경제·사회구조 전반을 개혁하는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