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장악 3법 문제② 기업형 벤처캐피털 제한적 허용… 총수 투자 막아, 해외벤처 인수 '제동'
  • ▲ 기업장악3법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공동취재단
    ▲ 기업장악3법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공동취재단
    "창업과 벤처 활성화를 위해 규제샌드박스, 규제자유특구의 성과를 더욱 확산시켜나가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28일 국회에서 2021년도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 당시 강조한 발언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공언(公言)은 지난 9일 정부·여당 주도로 통과된 기업장악 3법으로 공언(空言)이 돼버릴 위기다.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청년창업과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한 투자장벽이 더욱 높아졌기 때문이다.

    본지는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의 '3% 룰' '다중대표소송제' 등의 문제점을 조명한 데 이어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내부거래 규제 강화' 및 '대기업 지주회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등 쟁점과 관련해 재계 및 경제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했다.

    내부거래 규제 강화→글로벌 경쟁력 약화→수출동력 저하→소비자 피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통화에서 "'독점 규제' 명분으로 지주회사 지분율 규제를 강화하고 '일감 몰아주기 규제' 프레임으로 이중삼중 규제를 확대했다"며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가일층 약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에 통과된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에 따르면, 이른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은 내년 말부터 총수 일가 지분율 20% 이상 상장·비상장 계열사로 확대된다. 또 이들 계열사가 지분 50% 이상 가진 자회사도 공정위원회 감시 대상에 오른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공시 대상 기업집단(자산 5조원 이상) 중 특수관계인이 30% 이상 지분을 보유한 상장 계열사(비상장사는 20% 이상)가 규제 대상이지만, 이번 개정으로 '일괄 20%'로 변경돼 감시망 밖의 상당수 회사가 규제 대상에 추가된 것이다.

    이에 따라 현행 210개인 규제 대상 기업이 내년 말부터는 598개로 388개 폭증하게 됐으며, 특히 삼성·현대차·SK·LG·롯데·한화·GS·현대중공업·신세계·CJ 등 10대 주요 대기업집단 관련 규제 대상 회사가 29개에서 104개로 늘어나게 된다. 감시 대상 계열사 간 내부거래액도 지난해 기준 5조4200억원에서 23조9600억원으로 급증한다.

    현대차 정의선·정몽구 부자... 현대글로비스 지분 10% 처분해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부친 정몽구 명예회장 부자가 현재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29.9%의 지분도 약 10% 정도를 처분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와 관련해 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장(전 자유한국당 경제자문단 공동단장)은 통화에서 "기업 간 내부거래(Internal Transaction)는 정당하게 이뤄지는 것이고, 경제적 효율성과 고용창출을 유도하는 것인데, 내부거래 규제를 과도하게 강화하면 기업 지배구조가 흔들리고 계열사 출연을 사실상 막게 돼 경쟁력도 크게 약화할 것"이라고 혹평했다.

    "계열사 형성과 내부거래를 어렵게 만들어 우리 기업의 국제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고, 이에 따라 수출동력도 저하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내부거래 규제 강화로 생산비용이 높아지면 결국 그 피해는 소비자에게 돌아올 것이며 고용시장도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관계자는 통화에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명목으로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율을 규제하는 경우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제도라며 "총수 지분 매각 시 소액주주의 피해가 크게 발생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 ▲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뉴데일리DB
    ▲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뉴데일리DB
    'CVC 보유'로 벤처기업 투자 활성화 어려워져

    이와 함께 이번 개정안에 'CVC 보유' 방안이 포함된 데 대해서도 여권은 '기업의 숨통을 트여줬다'는 주장인 반면, 재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유명무실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CVC는 대기업 등이 유망 벤처에 투자하기 위해 설립하는 벤처캐피털(VC)을 뜻한다. 현행으로는 VC가 금융회사로 분류돼 지주회사가 CVC를 보유할 수 없다. 공정거래법상 일반지주회사는 금융·보험회사를 자회사로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여권은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통해 제한적으로나마 CVC 보유 방안을 새로 허용했다며, 벤처기업 투자가 활성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개정안은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규제장치가 덕지덕지 붙어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이다.

    오정근 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개정안의 CVC는 대기업이 총수 일가 회사나 계열사에는 투자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 사익편취 사전 차단 명분으로 해외투자도 CVC 총자산의 20%까지만 허용하게 했다. 20%로 제한하면 국내 대기업이 다국적 IT 기업을 인수하는 유인점이 낮아진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의 해외 첨단 기술벤처 인수 조건보다 더 악화했다는 것이 오 원장의 지적이다.

    게다가 위반 시 3년 이상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형벌규정이 새로 추가돼 사실상 CVC 보유 방안 취지가 무색해졌다.

    오 원장은 "'일감 몰아주기' '사익편취' '문어발 확장'이라는 악의적 프레임으로 내부거래를 규제하면 대기업의 계열사 확장과 벤처기업 인수합병 동력은 떨어지게 된다"며 "청년들이 아무리 획기적 기술로 창업하고 벤처기업을 가꿔도 성장할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청년창업을 독려하는 척하면서 독소조항을 포함한 기업 규제만 강화해 기존의 대기업 경쟁력 약화는 물론 벤처기업의 성공도 가로막았다"고 지적한 오 원장은 "대기업과 벤처기업의 공존으로 활성화하는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배워야 한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앞서 공정위가 지난 7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CVC 설립을 검토할 것이냐는 조사에서 긍정적 신호를 보낸 지주회사는 68곳 중 18곳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