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백석·윤동주, 나목 박수근, 삼성 이병철, 현대 정주영까지 모두 1910년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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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성관 작가가 시인 백석이 조선일보 기자로 일하던 시절 묵었던 종로구 통의동 하숙집 골목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권창회 기자
"뿌듯함보다 믿어지지가 않는다. '어떻게 내가 이걸 해냈지?' 세상을 바꾼 천재 54명에게 감사하다. 그들이 나를 선택했기에 나는 세계를 떠도는 여행을 할 수밖에 없었고, 15년간 지상 최고의 희열을 만끽했다. 이렇게 '조성관의 라이프워크'가 완성됐다."조성관(전 주간조선 편집장) 작가의 '도시가 사랑한 천재들' 시리즈가 끝을 맺었다. 200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모차르트와 진기한 교감을 바탕으로 2007년 <빈이 사랑한 천재들>이 나온 이후 열 번째 책인 <서울이 사랑한 천재들>로 대미를 장식하게 됐다.조 작가는 "15년의 여정이 어릴 적 꾸었던 꿈처럼 아득하다"며 "지금까지 9개 도시에서 54명의 천재를 만났다. 그들의 세계를 발로 확인하고 보고 듣고 느끼는 경험은 유레카의 연속이었다. 그 즐거움이 천재 시리즈를 끌고 올 수 있었던 에너지의 원천이었다"고 밝혔다.'도시가 사랑한 천재들' 시리즈는 오스트리아 빈을 시작으로 프라하·런던·뉴욕을 거쳐 페테르부르크·파리·독일·도쿄·서울까지 천재들이 태어나고 활동한 장소를 직접 탐사하며 그들의 삶과 예술세계를 들여다보는 문화예술 기행서다.조 작가는 문학평론가 이어령, 방송인 임백천 등 각계각층 지인들의 도움에 천재들과 관련한 서적을 읽으며 앎을 키우고 글을 썼다. 그렇게 밀도 높은 15년을 온몸으로 겪었다. 그의 노력이 담긴 원고는 세상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방향성을 정립해 나갔다. -
- ▲ '서울이 사랑한 천재들' 표지.ⓒ열대림
"베이스캠프에서 커피를 마시며 깃발을 꽂았던 에베레스트 정상을 쳐다보는 산악인의 심정이 이럴까. 천재 시리즈가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독자들의 몫이다.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도 많지만, 한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은 이 시리즈가 한국 지성사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는 점이다."신간 <서울이 사랑한 천재들>은 시인 백석(1912)과 윤동주(1917)부터 '나목'의 화가 박수근(1914),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1910), 현대의 신화 정주영(1915)까지 서울을 무대로 불꽃 같은 삶을 살다 간 다섯 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서촌 골목길, 명동, 덕수궁 돌담길, 길상사 등 도시 곳곳에 남아 있는 이들의 흔적과 위대한 성취들을 통해 서울의 매력을 재발견한다.조성관 작가는 천재를 "어떤 인물의 업적이 물질적·정신적으로 공동체와 사회를 이롭고 윤택하게 한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서울 편의 다섯 천재들과 관련 "객관적으로 봐도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5인을 선정해놓고 보니 생각지 못한 공통점이 있더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모두 1910년대생이고,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점이다. 이들은 식민지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전란과 혼돈·궁핍의 시대를 살았다. 르네상스 시대 3대 천재 예술가들이 나왔듯, 특정시기에 천재들이 쏟아져 나온다. 한국은 1910년대라고 생각한다. 이번 책은 한국을 일으켜 세운 '1910년대생들에 대한 찬가'다." -
- ▲ 스타벅스 정부서울청사R점에서 만난 조성관 작가. 이곳에서 '서울이 사랑한 천재들' 1/3을 썼다고 전했다.ⓒ권창회 기자
조 작가는 5명의 천재 가운데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기자 시절 유일하게 만났다며 책에 소개된 흥미로운 일화를 들려줬다."아산 정주영은 1931년부터 모두 네 번의 가출을 감행했다. 소 판 돈 70원을 몰래 갖고 달아난 세 번째 가출에서 아버지에게 덜미를 잡힌 곳이 바로 덕수궁 대한문 앞이다."이어 "보통학교만 졸업했지만 소설과 시를 굉장히 좋아했고, 어떤 문제에 관해 깊게 생각할 줄 알았다. 그는 편견·선입견·고정관념에 갇혀 있지 않았다. 그런 초긍정적 사고의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에 초점을 두고 삶의 궤적을 좇았다"고 말했다.<서울이 사랑한 천재들>은 작가가 그동안 출간한 책 중에서도 가장 설레고 긴장된 마음으로 임했다고 한다."우리가 사는 서울 이야기를 천재들의 발걸음으로 써내려가니 두근거렸다. 글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휴대전화를 두고 집 근처 북한산으로 간다. 라틴어 격언에 'solvitur ambulando(솔비투르 암불란도)'라는 말이 있다. 걷다 보면 해결된다는 뜻이다. 나도 그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