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사법행정권 남용' 임종헌 전 차장 재판 속행… '진보성향' 인권법연구회·인사모 와해 의혹 중점
  • ▲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임종헌(사진) 전 법원행정처 차장. ⓒ정상윤 기자
    ▲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임종헌(사진) 전 법원행정처 차장. ⓒ정상윤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임종헌(61·사법연수원 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 측이 '진보성향의 법관 모임 와해 시도는 없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임 전 차장 변호인은 "'물의 야기 법관'도 해외연수를 가는 데 문제가 없었다"며 양승태 사법부에 비판적인 법관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준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양승태(71·2기) 전 대법원장 재판에서 나온 증언과도 일치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부장판사 윤종섭)는 20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임종헌 전 차장의 38차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은 국제인권법연구회, 인권법연구회 소속 인권 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등의 와해 의혹 관련 증거와 관련한 변호인 의견을 듣는 절차가 이뤄졌다. 인권법연구회는 대법원 산하 전문분야 연구회 15개 중 하나로, 진보성향의 젊은 법관들이 주축이다.

    양승태 사법부는 △대법원 예규에 근거해 연구회에 중복가입한 법관들에게 '한 연구회만 고르라'고 하는 등 '중복가입해소금지' 조치를 시행하려고 했고 △이 중복가입해소금지 조치를 통해 인권법연구회 탈퇴를 유도했으며 △이를 계기로 인사모가 2017년 3월25일 연세대학교와 개최한 공동 학술대회를 축소 시도하기도 했고 △인사모 등 사법행정에 목소리를 내는 진보성향의 모임을 결국 와해시키려 했다는 의혹 등을 받는다.

    "물의 야기 법관 이름 올렸어도 해외연수 갔다"

    임 전 차장 측은 그러나 이 같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먼저 '물의 야기 법관들에게 불이익을 줬다'는 의혹은 사실무근이라는 주장이다. 변호인은 "법원이 선고한 것과 다른 내용의 판결문을 착오로 등록한 모 판사가 물의 야기 법관에 이름을 올렸다"며 "그러나 그가 평소에 법정 장악력이 탁월하고 절차 진행이 우수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살폈고, 결국 그도 (불이익을 받지 않고) 연수를 떠났다"고 예를 들어 설명했다.

    또 "가족의 선거 지원을 도와 물의 야기에 이름을 올린 법관 역시 평소 합리적·균형적인 업무 처리 등의 평가를 받아 해외연수를 가는 등 물의 야기 정도, 업무 능력 등을 모두 평가했다"고도 강조했다. 양승태 사법부는 2013∼17년 정기 인사철에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을 작성했다.

    변호인은 우리법연구회의 후신 격인 인권법연구회가 중복가입을 금지하는 조항을 어기고, 설립 목적을 벗어난 활동을 했다고 지적했다. 변호인은 "인권법연구회는 설립 당시부터 예규에 있는 중복가입금지 조항을 알면서 전산을 남용해 회원을 비정상적으로 늘렸다"며 "이러한 중복가입 사태는 결국 중복가입을 금지한다는 조항을 성실하게 지킨 법관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는 불공평을 가져온다"고 설명했다.

    또 "인권법연구회 소모임인 인사모는 2015년 처음 활동 시작한 뒤 사법행정, 상고법원 끝장토론 등을 하며 인권법연구회 설립 목적을 벗어난 활동을 했다"며 "행정처에서도 이 모임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인권법연구회와 관련 없는 활동을 했기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17년 전문분야 연구회 예산이 증액되면서 법관들이 연구회에 중복가입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국회·감사원 등에서 예산을 지적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고 부연했다.

    설립 목적과 관련 없는 활동, 증액된 예산… 눈여겨본 이유?

    이는 양 전 대법원장 재판에서의 증언과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이규진 전 상임위원은 지난 3월27일부터 네 차례 증인으로 나와 '공동 학술대회가 중복가입 해소 조치의 계기가 됐을 수는 있으나, 중복가입 해소 문제는 예규나 예산이 증액된 현실 등을 감안해 고려됐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한편 우배석 판사는 재판 말미에 검사·변호사 측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관련 석명을 요구했다. 석명은 내용을 분명히 해달라는 요구다. 판사는 △법원행정처가 주요 사건 담당 재판부에 문건을 전달한 것 자체가 해당 재판부에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인지 △전문분야 연구회의 중복가입을 금지한 조항이 사문화됐다는 검찰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지 등을 물었다. 

    우배석 판사는 특히 "중복가입 해소 조치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해도 탈퇴 법관의 경우 (중복가입을 금지한) 예규가 유효하다면 그 조항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으니, 탈퇴 법관에게는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에 해당 안 된다는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직권을 남용해 타인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 행사를 방해할 경우 성립하는 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