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리베이트설 질문엔 "1조895억 세금 탈루" 혐의 내용 공개… "장관이 수사 압력"
  • ▲ 추미애(사진 오른쪽) 법무부 장관이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정상윤 기자
    ▲ 추미애(사진 오른쪽) 법무부 장관이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정상윤 기자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4일 국회에 출석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삼성그룹 뇌물 수수와 관련해 "검찰이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을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발언을 두고 법조계에서는 '기소 전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채이배 민생당 의원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것이 확정됐다"며 "삼성그룹 임원이나 그룹 총수인 이건희 회장이 당연히 연루됐다. 고발 또는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느냐"고 추 장관에게 물었다.

    추미애, 삼성그룹 수사 여부 묻자 "이학수"라고 콕 집어 언급

    이에 추 장관은 "이건희 회장은 병환으로 수사가 중단된 것으로 알고 있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어떤 수사가 있는지"라고 말끝을 흐리다 "아, 이학수"라고 답했다.  

    채 의원은 이어 대한항공의 항공기 구매 관련 리베이트 의혹도 제기했다. 채 의원은 추 장관을 향해 "항공사 업계 리베이트 관행이 지속되고 있다는 증거를 확보했다면 수사할 의향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추 장관은 "(대한항공이) 1991년부터 1998년까지 항공기 구매 시 리베이트로 1조895억원의 세금을 탈루했고, 5400억원 상당의 추징금을 낸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추 장관의 답변을 들은 채 의원은 재차 "최근 프랑스 검찰이 확보한 내용에는 에어버스가 대한항공 등 세계 유수의 기업에 항공기를 납품하면서 리베이트를 줬다"며 "고위임원들이 180억원가량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것인데, 이게 최종적으로 누구 돈인지 밝혀야 한다"고 다그쳤다. 

    "대한항공 수사 검토하겠다" 발언도 논란

    추 장관은 즉각 수사 검토 의사를 밝혔다. 추 장관은 "해외 조사 결과와 판결문을 확인해보고 관계기관과 협력을 통해 사실관계 확인 후 수사가 필요하다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며 "그런 사실이 진상 파악이 된다면 수사 가능한지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미애 장관의 이 발언은 법무부 훈령인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 취지와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이 훈령은 제5조에서 "공소제기 전의 형사사건에 대하여는 혐의사실 및 수사상황을 비롯하여 그 내용 일체를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규정에 따르면 내사나 불기소 사건도 수사 중인 형사사건으로 보고 비공개를 원칙으로 했다.

    법조계 "장관이 수사 압력 넣은 격"

    경기도 안양의 한 법무법인 변호사는 "국회 문답 과정에서 답변을 피하기 어려웠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법무장관이 사람 또는 기업을 특정해 수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 당연히 수사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이어 "법무부 훈령은 기소 전 형사사건 공개금지를 원칙으로 하는데, 이학수 전 부회장 혐의나 대한항공 리베이트 문제가 그 예외에 해당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법무부가 '깜깜이 수사'가 우려된다는 비판에도 밀어붙인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을 장관이 나서서 어긴 격"이라며 "국민의 알 권리 보호를 위해서라도 이 규정은 재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날 추 장관의 "수사 검토" 발언은 법무부장관의 개별사건 지휘를 금지하는 검찰청법 위반 소지도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검찰청법에 따르면, 법무부장관은 구체적 사건과 관련해 검찰총장만 지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