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연 행정처장, 인트라넷에 '非경합법원 장기근무' 案 올려… 법조계 "지역유착 재현" 우려
  • ▲ 법원이 한 지역 법원에서 법관이 장기근무할 수 있는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나섰다. ⓒ정상윤 기자
    ▲ 법원이 한 지역 법원에서 법관이 장기근무할 수 있는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나섰다. ⓒ정상윤 기자
    법관이 한 지역 법원에서 장기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도입을 대법원이 검토하고 나섰다. 법관의 잦은 인사이동으로 인한 '재판 단절' 등의 부작용을 줄이고, 대법원장의 전보인사 권한도 줄이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법조계는 과거 지역유착비리 등의 폐해를 일으킨 '향판(鄕判)' 부활에 대한 우려를 내놓았다. '향판'은 '지역법관제'의 별칭이다. 

    조재연(63·사법연수원12기)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4일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2020년 법관인사제도 운영 방향'이라는 글을 올렸다. 법관들의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비경합 법원'에 장기근무할 수 있는 제도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게 핵심이었다. 

    이 글에는 '김명수(60·사법연수원 15기) 대법원장이 대법원장의 전보인사 권한 축소 방안을 사법행정자문회의에 부의했다' '전보인사를 축소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비경합 법원 장기근무 제도 도입 여부가 주된 검토 대상이 될 예정' 등의 내용이 담겼다. 법관 전보인사는 현재 2~3년 주기로 이뤄진다.

    조 처장은 "대규모의 잦은 전보인사는 재판업무 효율성과 연속성을 저해한다"며 "(이에 따라) 신속한 재판을 받을 국민의 권리를 침해할 여지가 있다"고도 했다. 

    비경합 법원에만 장기근무제 검토한다지만…  

    대법원 관계자는 '비경합 법원'의 요건에 대해 "예를 들어 해당 법원의 판사 정원이 100명인데 지원한 사람이 10명이라면 이때 (전체에서의 지원 비율은) 10%이지 않나. 만약 (지원비율) 기준을 15%로 잡는다면 그 아래가 비경합 법원이 되는 식"이라며 "아직 구체적인 (지원비율 등) 기준도 안 정해졌고, 지원 신청한 법관의 비율을 몇 %로 잡을 것인지 등에 따라 경합·비경합 여부가 달라질 수 있어 현재 어느 법원이 비경합 법원인지는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아직 구체적인 제도가 나오기 전이지만 '2020년 법관인사제도 운영 방향' 내용을 두고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2014년 폐지된 지역법관제와 같은 부작용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지적이다. 지역법관제는 법관이 전국 법원을 순환근무하지 않고 대전·대구·광주·부산고법 등 지방 관할 법원 한 곳에서 퇴임 때까지 근무하도록 한 제도다. 잦은 인사이동으로 재판의 연속성이 떨어지자 2004년 도입됐지만 10년 만에 폐지됐다. 

    제도 도입 후 여러 문제가 불거졌다. 광주지법 모 부장판사가 2011년 법정관리업체 감사에 자신의 형을 앉히는 등 유착으로 인한 지역법관제의 폐해가 노출됐다.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황제노역사건도 지역법관제의 폐해 논란을 확산시켰다. 허 회장이 벌금 254억원, 일당 5억원의 노역장 유치 판결 이후 해외도피 생활을 하다 2014년 3월 귀국해 벌금 대신 49일의 노역형을 선택한 게 알려지면서였다. 허 회장이 49일 노역형을 받을 수 있던 것도 '향판'과 유착 덕분이란 지적이 나왔다. 

    "법관 전문성 늘리는 방향으로 인사제도 개편해야"

    법관 인사의 부작용과 관련,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법조계의 의견이 나온다.  

    부장판사 출신 여상원 변호사는 "한 지역에 오래 근무하게 되면 지역 변호사 등과 유착이 생기게 마련"이라며 "향판의 부작용을 생각한다면 장기근무제보다 '법관의 전문성'을 기르는 방식의 인사제도를 법원행정처에서 고민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여 변호사는 "특허면 특허, 의료면 의료 등 전문성을 갖춘 법관시대로 가야 한다"며 "법관 인사제도는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중심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도 주장했다.  

    고위 법관 출신의 한 법조인도 같은 의견을 냈다. 서울 서초동의 A변호사는 "한 지역에 판사가 오래 있으면 지역사람들과 유착 때문에 판결이 왜곡될 소지가 있다"며 "이 같은 부작용에 대한 대안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