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갑질119, 22일 "직장갑질 개선됐다" 자료 발표… 중견·영세중소 현장 반응은 '싸늘'
  • ▲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남지부와 김해 지동차부품업체 A사의 금속노조 지회가 지난 7월16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뉴시스
    ▲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남지부와 김해 지동차부품업체 A사의 금속노조 지회가 지난 7월16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뉴시스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23일로 시행 100일을 맞았다. 한 시민단체는 법 시행 이후 직장 내 괴롭힘이 개선됐다는 자료를 22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달라진 바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본지는 시행 100일을 맞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현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의 현장 목소리를 들었다.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건 7월 16일이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 2항·제76조의 3항(제6장의2)이 근거 규정이다. 이 조항은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한 경우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간주했다.

    시행 당시 '업무상 적정범위', '정신적 고통' 등 추상적 표현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실제 법적 효과는 거의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23일 대기업·중견기업·중소기업 등 현장 반응을 취재한 결과, 직장 내 괴롭힘 개선을 체감하지 못하는 이들이 상당했다. 영세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부정적 의견을 내비쳤다. 특히 5명 미만 근로자가 있는 곳은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직장 갑질 사각지대'라는 문제도 있었다.

    서울의 모 중견기업에 근무하는 성모(25)씨는 "법이 생겼다고 해서 크게 눈에 띄게 바뀐 점은 없었다"며 "다른 부서 부장이 아랫사람을 언어폭력이라고 할 정도로 괴롭히는 장면을 목격했는데, 이를 두고 다른 부서에서도 안 좋게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중소기업 근무자 한모(31)씨도 "딱히 피부로 와 닿는 건 없다"고 했다. 

    중견·중소기업 "와닿는 것 없어"… '사각지대' 5명 미만 사업장

    서울 모 중소기업에 다니는 이모(31)씨도 "소위 왕따같이 대놓고 따돌리는 현상은 요즘 잘 없다"면서도 "법이 시행됐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 위법이라는걸 (회사에서) 설명하지 않으면 다들 반말을 존댓말 정도로 바꿔서 하고, 이 외에는 별 차이가 없는 듯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임모(29)씨는 "윗사람들이 장난친다고 하면 다들 휴대폰을 꺼내고 찍을 준비하면서 직장 내 괴롭힘 신고한다고 하고, 탕비실 회사 알림판에도 괴롭힘법이 제정됐다고 써 있다"며 "다만 그냥 안전망 하나가 더 생긴 정도라는 인식이고, 권고사항 정도라 유명무실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했다.

    5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경우,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로 지목됐다. 근로기준법 제11조에 따라 해당 법은 상시 5명 이상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이 적용 대상이다. 상시 4명 이하 근로자가 있는 사업장도 근로기준법을 예외적으로 적용받을 수는 있으나, 직장내 괴롭힘 조항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다만 유명 대기업에 다니는 대리급 직장인은 "직장 내라면 확실히 갑질이 줄었다"고 답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22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도 이런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 단체는 19~55세 직장인 1000명을 상대로 10월8일부터 10월15일까지 일주일간 '직장갑질'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회사의 갑질 수준을 숫자화한 '직장갑질 지수'는 올해 30.5점으로 드러났다. 지난해(35.0점)보다 다소 개선된 수치다. 직장갑질 지수는 0에 가까울수록 괴롭힘이 덜하고, 점수가 높을수록 그 반대라는 의미다.

    시간외수당·휴게공간 등 개선 미미 

    이 같은 갑질 개선 효과는 대기업에서 두드러졌다. 올해 민간 대기업의 갑질 지수는 30.6점으로 지난해보다 6.9점 떨어졌다. 그러나 민중소영세기업이 올해 갑질  지수는 지난해보다 3.0점 오른 31.4점이었다.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된 뒤 오히려 괴롭힘이 늘었다는 의미다.

    이 외에도 △시간외 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45.0점) △휴게 공간·시설 없는 점(43.8점) △뒷담화(28.7점)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연차 휴가(39.6점) △산재신청 불허(33.0점) 등 일부 항목의 경우는 갑질 지수가 지난해 대비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희롱(17.9점) △종교·후원 강요(19.1점) △폭행(20.2점) △반성문(20.9점) 등 항목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수준이 낮았다고 직장갑질119 측은 설명했다.

    직장갑질119 관계자는 본지에 "대기업에서는 교육을 하는 등 괴롭힘이 많이 나아졌는데, 중소기업에서는 오히려 더 나빠졌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었다"며 "이런 (기업 간 차이라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50대 이상에서는 법 시행을 체감한다고 하는 반면, 30대들은 전혀 달라진 것 없다고 답하는데 이런 세대별로 다른 응답도 주목할 만하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