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아진 분양가에 '로또'로 변질된 '청약 광풍' 우려상한제 적용 '래미안 대치 팰리스', 4년새 7억 뛰어건설업계 "수익성 저하에 사업 추진 난항 겪을 수도"

  •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상한제가 본격적으로 적용될 예정이다. 정부에서는 긍정적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로또'로 변질된 청약광풍이 몰아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업성 저하를 우려하는 건설사나 재건축·재개발 등 조합들의 경우 복잡해진 셈법에 고민이 많아졌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지정 요건을 완화한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이 발효됐다. 국토교통부는 조만간 발표될 10월 주택 매매거래량 및 민간아파트 분양가격 통계를 확인한 뒤 주거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적용 대상 지역에 대한 심의에 들어갈 예정이다.

    분양가상한제는 공동주택을 분양할 때 택지비와 건축비를 합한 금액 이하로 분양가를 제한하는 것으로, 그동안 민간택지 공급물량에 대한 요건이 비현실적으로 엄격해 2015년 4월 이후 2년 7개월 동안 적용 사례가 없었다. 사실상 공공택지에만 적용된 셈이다.

    국토부가 새로 정한 상한제 지정 요건은 최근 3개월간 집값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를 넘은 지역 가운데 △최근 12개월간 해당 지역 평균 분양가 상승률(전년동기대비 기준)이 물가상승률의 2배를 초과했는지 △분양이 있었던 직전 2개월의 청약경쟁률이 각각 5대 1 초과 또는 국민주택 규모 이하의 청약경쟁률이 10대 1을 넘었는지 △3개월간 주택거래량이 전년동기대비 20% 이상 증가했는지를 살펴보고 이 중 하나라도 부합하면 주거정책심의위 심의를 거쳐 상한제를 적용한다.

    한국감정원과 통계청·주택도시보증공사(HUG), 금융결제원 등이 발표한 주요 통계를 토대로 상한제 적용 후보지를 추스린 결과 수도권에서는 서초구를 제외한 △서울 24개구 △인천 연수구 △경기 성남시 분당구 △고양시 일산서구 △안양시 만안·동안구 △시흥시 △김포시 등 31개 지역이 꼽혔다. 

    반면 지방에서는 △대구 중·수성구 △강원 동해시 △속초시 △전북 익산시 △전남 나주시 △경북 문경시  7개 지역이 정량적 기준을 충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부 관계자는 "정량적 기준을 충족한다고 바로 상한제를 적용하는 것은 아니다. 대상 지역은 집값 상승률뿐만 아니라 분양가 상승률, 청약경쟁률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하고 주거정책심의위에서 주택 상황을 면밀히 검토해야 해 지금으로썬 예상 지역을 따지는 것이 의미 없다"며 "향후 과열 양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큰 지역을 적용 대상으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상한제가 적용되면 주변 시세에 비해 저렴한 아파트 공급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실수요자들이 과거보다 낮은 분양가로 수도권 신규주택을 분양받을 수 있다는 긍정적 전망이다.

    김은진 부동산114 팀장은 "서울의 경우 분양가가 높아지면서 아파트값을 끌어올렸던 측면이 있었다"며 "서울에 상한제가 적용된다면 고분양가 행진에 제동을 걸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실수요자 중심의 청약시장 재편에 이어 상한제까지 서울에 적용되면 이들의 서울 주택 구입 부담은 훨씬 낮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선 공인중개소에서도 주택시장 안정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서울 송파구 J공인 대표는 "일반분양을 앞둔 강남 재건축 단지가 분양가를 높게 책정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면 주변 일반아파트도 가격을 끌어올리는 경우가 많았다"며 "상한제가 적용되면 기존주택도 가격 상승 기대감이 꺾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상한제가 적용되면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낮아지는 만큼 청약에 당첨되기만 하면 소위 대박을 터트릴 수 있다는 '로또청약' 인식이 확산된다는 것이다. 분양가가 기존 시세보다 10~15%가량 하락해 청약에 당첨되기만 하면 수억원의 분양권 프리미엄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주택협회 관계자는 "분양가가 저렴하게 공급되면 입주 이후 가격은 주변 집값을 따라 오르는 게 일반적이다. 신규 분양물량은 새 아파트 프리미엄이 있는 만큼 주변 최고 집값 수준과 같아지거나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시세 차익은 고스란히 수분양자가 얻게 된다"며 "저금리와 청약수요 증가로 인기 지역의 경우 '로또'로 평가될 공산이 크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강남권에서 상한제가 적용된 단지 중 가장 비싼 아파트는 2013년 10월 대치청실을 재건축한 '래미안 대치 팰리스'로, 분양 당시 이 단지의 분양가는 3.3㎡당 3200만원으로 책정됐다. 59㎡A의 경우 기준층 기준 8억4043만원, 84㎡A는 11억2499만원이었다.

    상한제가 적용되면서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게 분양가가 책정되면서 수요자들이 대거 몰리면서 평균 25.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현재 매매가는 주변 대치동 시세와 큰 차이가 없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 자료를 보면 59㎡의 경우 지난 4월 13억원에 거래됐고, 84㎡는 지난 8월 최고 18억5000만원에 계약을 마쳤다. 4년새 5억~7억원가량 가격이 뛴 셈이다.

    상한제가 적용된 강남권 공공택지 역시 마찬가지. 세곡지구 '래미안 강남힐즈' 101㎡의 경우 분양가는 7억~8억원 선이었으나, 분양 5년차인 올해 최고 거래가는 지난 4월 기록한 13억1500만원으로 5억원이 올랐다. 시세 차익만으로 수도권 중소형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을 정도다.

    자곡동 S공인 관계자는 "세곡지구가 강남권에서 보기 드문 신도시로 조성되면서 인근 수서, 개포 등의 집값을 빠르게 쫓아가고 있다"며 "세곡지구 공공분양 아파트의 경우 전매제한 후 가격이 두 배로 뛰면서 말 그대로 '로또'로 불린 지역"이라고 말했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실장은 "상한제가 적용되면 공급가격이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기 지역의 경우 청약자가 더 몰리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입지가 검증된 지역의 분양물량은 당분간 경쟁률 고공행진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익성이 악화되는 건설업체들은 향후 분양사업에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건설사들이 일부 사업장의 분양일정을 미루거나 후분양제 시행 또는 임대전환 등의 검토에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중견건설 A사 관계자는 "가격을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한다는 점에서 이윤을 남겨야 하는 건설사에는 불리한 규제"라며 "분양시장이 위축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재건축·재개발과 같은 정비사업 조합 역시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정비사업에서는 일반분양으로 발생한 수익금이 중요한 재원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예상보다 낮은 금액에 일반분양가가 결정되면 상대적으로 조합원들의 부담이 증가하는 것이다.

    건설협회 관계자는 "상한제가 시행되면 건설사들의 자체사업이나 정비사업 도급공사 수익성이 악화될 개연성이 높다"며 "비인기지역은 분양시기를 늦추는 것을 포함해 수익성 악화에 따라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했다.

    건설사들의 소극적인 태도가 공급부족 현상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부동산학)는 "지금처럼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일부 지역에 상한제를 적용하는 것으로 집값 안정 효과가 없을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공급량을 감소시켜 오히려 시장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