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 부상한 '분권형 개헌'… 문재인·안철수 동의 여부 불투명
  • ▲ 검찰이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모습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한 전광판에 생중계 되고 있는 가운데, 뒷쪽으로 미세먼지에 휩싸인 청와대의 전경이 보이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검찰이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모습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한 전광판에 생중계 되고 있는 가운데, 뒷쪽으로 미세먼지에 휩싸인 청와대의 전경이 보이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안종범·정호성의 여러 범죄와 상당 부분 공모 관계에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검찰이 발표했다. 현직 대통령의 법률 위배 혐의가 발표됨에 따라, 헌법 제65조에 따른 탄핵 절차가 시작될지 여야 정치권의 움직임에 이목이 집중된다.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해온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20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검찰은 최순실 씨를 직권남용과 강요, 사기미수 혐의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을 직권남용과 강요 혐의로,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현재까지 확보된 제반 증거로 볼 때, 박근혜 대통령은 피고인 최순실·안종범·정호성의 여러 범죄 사실 중 상당 부분과 공모 관계에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면서도 "헌법 제84조에 규정된 현직 대통령의 불소추특권 때문에 기소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권남용·강요·사기(미수)·공무상비밀누설 등 여러 가지 혐의를 적용해 기소하기로 한 인물들과 "상당 부분 공모 관계에 있다"는 검찰의 발표는 후폭풍이 작지 않을 전망이다.

    이날 검찰 발표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이 사실상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됐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하야'라는 선택지는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검찰 발표 직후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는 매우 유감스럽다"며 "오늘 오후 별도로 청와대의 입장을 발표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청와대의 입장'은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유영하 변호사가 발표하게 될 것으로 보이는데 △미르·K스포츠재단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 추진으로 여겼을 뿐 최순실·안종범 전 수석이 연루된 직권남용·강요 혐의와는 무관하다는 점 △정호성 전 비서관이 연루된 공무상 비밀누설과 관련해 대통령은 최순실 씨로부터 표현상의 도움을 받으려 했을 뿐이라는 점 등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검찰 수사결과 발표에 대해 기본적으로 '유감'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고, 반박을 준비 중인 점 등으로 미루어볼 때 '하야'가 청와대의 선택지 중에 없다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그렇다면 공은 여야 정치권이 포진해 있는 국회로 넘어가게 된다. 국회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로는 △헌법 제65조에 따른 탄핵소추 △개헌을 통한 임기 단축이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은 검찰 수사 결과 발표 직후, 일단 대통령의 '하야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다만 국민의당은 대통령이 결단하지 않을 경우, 탄핵 발의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민주당 윤관석 수석대변인은 "헌법이 명시한 대통령의 불소추 조항은 대통령 스스로 결단하라는 것"이라며 "피의자 신분의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이끌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국민의당 이용호 원내대변인은 "박근혜 대통령이 공범으로 확인된 만큼 대통령이 없어야 나라가 그나마 돌아갈 것 같다"며 "피의자 대통령이 퇴진 준비를 하지 않으면, 우리는 탄핵을 준비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헌법 제65조 2항 단서에 따라,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위해서는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가 발의해 재적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현재 야권 성향 의석이 171석에 달하기 때문에 탄핵소추안의 발의에는 문제가 없다. 다만 의결을 위해서는 새누리당에서 29석의 이탈표가 필요하다.

    이 또한 새누리당이 분당(分黨) 국면에 접어들었고, 당장 이번 주부터 탈당하는 의원이 나올 가능성이 점쳐지는 만큼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전망이다.

    다만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의결되면,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을 하게 되는데 최장 180일이 소요된다는 게 변수다. 또, 이 과정에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의 임기가 내년 1월말로 만료되고,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임기도 3월 14일로 만료되는 점도 문제다.

    헌법재판소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해야 하는데, 지명권자인 대통령이 직무정지 중에 있기 때문에 대통령권한을 대행하는 국무총리가 지명해야 한다.

    그런데 권한대행 중인 총리가 6년 임기의 헌법재판소장을 새로 지명하는 게 적절한지도 헌법상 의문이고, 또 이렇게 지명된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 및 동의 절차가 순조로울지도 의문이다. 탄핵심판이라는 막중한 헌법절차가 진행 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신임 헌재소장의 임명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과 법조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이정미 헌법재판관은 대법원장이 지명권을 행사하는 3인 중의 1인이다. 따라서 후임도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명하면 되지만 이 역시 임명이 순조로울지는 불투명하다.

    헌법재판관은 전원 국회 인사청문 과정을 거치게 돼 있는데, 인사청문회가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대통령 탄핵에 찬성할지 반대할지를 미리 검증해보는 장으로 변모해버린다면, 이는 그야말로 '막장'이 돼버리는 셈이다.

    탄핵소추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것은 헌정 상의 중대 사안이라는 점을 감안해 헌법재판소도 조속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 집중적으로 심리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장과 함께 1명의 헌법재판관이 공석인 상황에서는 단기간에 탄핵심판을 끝내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헌법재판소법 제23조 2항 1호에 따라, 탄핵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헌법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9명의 헌법재판관 중 2명이 공석이라면 7명만 심리에 참여하는데, 그 중 6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는 것은 바꿔말하면 2명만 반대해도 기각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여야 정치권이 탄핵소추를 피하고 개헌을 추진하면서 개헌안 부칙에 현직 대통령의 임기 단축 조항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해결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최근 유력하게 부각되고 있다.

    1980년에 제정된 이른바 제5공화국 헌법은 부칙 제3조를 통해 현직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했던 선례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에서도 '촛불'에 떠밀리듯 하야하거나, 국회와 헌재에 의해 탄핵당한 게 아니기 때문에 개헌은 일종의 '명예로운 출구'에 해당한다.

    개헌을 하기 위한 국회 의결정족수는 대통령 탄핵의 경우와 동일하지만, 개헌은 국회 의결 이후 30일 내에 국민투표에만 부치면 된다는 게 장점이다. 최장 180일이 소요되는 헌재의 탄핵심판보다 단시간에 혼란스러운 국면을 매듭지을 수 있다.

    문제는 여야 정치권이 개헌안을 쉽게 합의할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병폐로부터 비롯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등 분권형으로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여야 의원들 사이에서의 공감대다.

    하지만 이미 대통령이 다 된 것처럼 생각하는 민주당 문재인·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개헌에 동의할는지가 변수다.

    정치권 관계자는 "국정 혼란을 빠르게 수습하려고 개헌으로 가는 것인데, 기본권 추가 주장이 나오는 등 개헌 논의의 범위가 확장되면 오히려 배가 산으로 가게 된다"며 "핀포인트로 통치구조만 개편하는 원포인트 개헌이 이뤄져야 혼란을 빠르게 수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