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하자" 탄핵 정국 속 노림수… 무기명 투표부터 비박-비문 변수까지
  • ▲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 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대통령 탄핵에 대해 찬성하지는 않지만 헌법적 절차라는데 반대하지 않았다.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 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대통령 탄핵에 대해 찬성하지는 않지만 헌법적 절차라는데 반대하지 않았다.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탄핵과 퇴진이 난무하는 국회에서 제일 먼저 안정감을 찾은건 친박계였다. 가장 직격탄을 맞은 정치세력이지만, 탄핵 정국이 가속화되면서 오히려 홀가분해진 분위기다.

    친박계가 정국을 '정면돌파'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단일대오가 형성되지 않는 비박계가 탄핵을 하는 과정에서 변수를 노린다는 설명이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21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새누리당사에서 최고위원회를 진행한 직후 기자들과 만나 "비박계(징계 문제)에 대해 논의한 적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대표는 '최고위원회에서 비박계 모임인 비상시국회의의 결정이 해당 행위라는 말이 나왔다'는 질문에 "아직 (윤리위 회부) 그런 생각을 해보진 않았다. 오늘 처음 제시된 의견"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표의 발언은 최고위원회의의 분위기와는 다소 결이 다르다.

    이날 최고위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출당을 요구하는 비박계 의원들에 대한 징계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친박계가 대다수인 새누리당의 최고위원들은 저마다 비박계의 움직임에 대응할 '카드'가 있음을 내비쳤다. 

    새누리당 이장우 최고위원은 김무성 전 대표에 대해 "해당 행위를 중단하고 새누리당을 떠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했고, 남경필 경기도지사에는 "정치적으로 성공시켜준 당에 돌을 던지며 탈당을 운운하는 것은 새누리당 전 당원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조원진 최고위원은 "비상시국위원회를 해체하지 않으면 우리 지도부는 중대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음을 밝힌다"고도 했다. 비박계와 정면대결을 예고한 대목이다.

    앞서 지난 20일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이 다수 모인 비상시국회의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출당 문제와 탄핵 문제에 대한 절차에 착수키로 공감대를 형성했다.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이 같은 당 소속인 대통령을 당에서 내보내기로 한 결정에 "분당으로 가는 수순이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졌다.

    실제로 새누리당 황영철 의원은 이날 비상시국위원회 결정의 후속조치로 새누리당 윤리위원회에 박근혜 대통령의 징계안을 제출했다. 

    그런데도 정작 최고위에서는 이들에 대한 징계문제를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 오히려 비박계 의원들이 주장하는 탄핵 주장에 크게 반대하지 않는 기색마저 내비쳤다.

  • ▲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과 정병국 의원이 이정현 대표의 사퇴를 주장하며 단식 농성중인 당협위원장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과 정병국 의원이 이정현 대표의 사퇴를 주장하며 단식 농성중인 당협위원장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탄핵에 미묘한 입장 보이는 친박계 …승부수 띄우나

    이 대표는 같은 자리에서 "탄핵이든 거국중립내각이든 햐아든 하나로만 하라"면서 동시에 "모든 것이 헌법에 따라 진행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탄핵에 무게가 다소 실리는 발언이다.

    이에 취재진이 '탄핵으로 하자는 얘기냐'고 재차 묻자 이 대표는 "탄핵으로 가야 한다고 한 적이 없다. 모든 것이 헌법에 따라 진행됐으면 한다는 말"이라고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헌법에 규정하는 범위 안에서 거국중립내각 체제로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탄핵 쪽이 낫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다만 이 대표는 "의견들은 계속 나오고 있지만 어떤 부분이 실행될 때는 요건 등 여러 부분이 참작되지 않을까 싶다"면서 탄핵 요건이 충족됐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했다. 중립적 특검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도 그는 "구체적으로 나와봐야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특검의 중립성에 대해 지적할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거국중립내각, 하야, 탄핵중에서는 탄핵이 낫지만 탄핵해올 경우 '배수의 진'을 치고 요건 등을 문제 삼으면서 정면승부를 벌이겠다는 설명으로 보인다.

    이런 셈법이 나온 배경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탄핵정국으로 가면 되레 친박이 유리하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현재의 국정 마비 상태가 계속되는 것 보다는 요건과 절차가 비교적 까다로운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반전의 기회를 엿보는 쪽이 낫다는 설명이다.

    친박계 사정에 밝은 여권 관계자는 "탄핵은 정부 여당으로서는 이율배반적일 수밖에 없다"면서 "본인들이 당선시켜놓았다면 자기들도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했을 당시 선대위 총괄본부장을 지냈다. 지금은 비박계의 수장이지만 3년 전에는 최측근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대선이 보수와 진보, 양 진영 간 싸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9대 국회에서 공천을 받은 사람들과 대선 정국에서 보수 성향으로 분류됐던 인사 중 박 대통령과 관련이 없다고 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통령의 잘못에 대해 함께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책임을 지겠답시고 대통령을 내치는 상황을 벌이는 것은 모순이라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대통령이 아예 출당을 한다면 또 모를까 자신들이 탈당도 하지 않고 탄핵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자기희생이 없는 상태에서 탄핵 정국이 성사된다면 오히려 이정현 대표는 더 물러나지 않아도 되는 명분이 생기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탄핵 소추안에 이름을 올리는 등 비박계 의원들이 행동에 나서면 '해당행위'로 규정하는 등 대응하는 과정에서 이정현 대표를 중심으로 친박이 결집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의미다. 

    실제로 이 대표는 취재진의 질문에 "12월 21일에 사퇴한다"고 거듭 강조하면서도, 최근 당내 지도부 사퇴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를 '참고용'으로 돌려봤다고 인정했다. 거취를 이미 못 박은 마당에 지도부 사퇴 여부를 다시 조사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지만 여론의 추이에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셈이다. 

  • ▲ 새누리당 비상시국위원회 모습. 지난 20일 비상시국위원회는 박근혜 대통령의 출당을 요구하는 한편 탈당 절차에 착수키로 의견을 모았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비상시국위원회 모습. 지난 20일 비상시국위원회는 박근혜 대통령의 출당을 요구하는 한편 탈당 절차에 착수키로 의견을 모았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여전히 '단일대오' 없는 비박·비문… 친박엔 자신감으로

    황영철 의원 등은 21일 대통령 징계안을 당 윤리위에 제출하기는 했으나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없는 상태다. 황영철 의원 자신도 "현재 친박지도부가 이걸 통과시킬 거라고 전혀 생각지 않는다"고 밝힌 상태다. 당 윤리위를 통과한다 하더라도 친박계로 구성된 최고위 의결을 거쳐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황 의원은 같은 자리에서 탄핵안 가결 전망에 대해 "비상시국위원회 참여한 의원 수를 봐서 충분히 정족수를 넘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이후 상황들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탄핵안이 가결될 수 있다 아니다, 지금 명확히 말씀드리긴 어렵다"는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 비박계 역시 탄핵안이 가결될지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방증한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친박계가 거꾸로 압박의 수위를 올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단일대오'를 형성하지 못하는 비박계와 '친노패권주의'는 안 된다는 비문 세력이 일치단결해 탄핵안에 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비문·비박 세력이 서로 손을 잡는 것은 가능해도 이들이 친박·친문이 미소짓는 방향으로 움직이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현재 탄핵 절차에 착수하는데 동의한 비박계 의원과 야권 의원들을 전부 합친 인원은 203명 이다. 단 몇 명만 대오이탈을 할 경우에도 자칫 탄핵소추안이 부결돼버릴 가능성도 있다. 만일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는 데 까지는 성공했지만 막상 표결에서 이탈표가 생겨 부결된다면, 오히려 박 대통령이 탄핵 역풍을 타고 남은 임기 동안의 국정 동력을 얻을 수도 있다. 이는 야권과 비박에는 최악의 경우의 수다. 야권과 비박이 머뭇거리는 이유다.

    현재 비박계는 김무성 대표가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참석한 의원들의 입장이 전부 다른 상태다. 대표적으로 견해차가 감지되는 부분이 탈당 문제다. 비록 김용태 의원과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오는 22일 탈당 기자회견을 예고한 상태이지만, 나머지 의원들이 탈당할지 여부는 의견이 갈리는 상황이다. 특히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의 경우 다른 의원들의 탈당을 적극 만류한 것으로 알려져 후에 견해차가 수면 위로 올라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하태경 의원 또한 "하야가 반헌법적이라는 주장은 명백한 왜곡"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한 목소리로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이 여과없이 드러나는 상황이다.

    미묘한 흐름은 비문(비 문재인)계에서도 감지된다. 야권은 현재 상황에서 대통령을 탄핵하고 조기 대선을 치를 경우, 확률적으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당선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보고 있다.

    이는 '친노패권주의'에 반발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지난 4·13 총선에서 38석을 가져간 국민의당에게는 치명적 결과로 다가올 수 있다. 특히 탄핵소추안은 '무기명 투표'를 통해 가결 여부가 결정된다. 이해 관계에 따라 표결에서 얼마든 탄핵에 반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 야권은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인한 탄핵 역풍을 이미 한 차례 겪은 바 있다. 누구보다 여기에 대한 트라우마가 강하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같은 날 페이스북에 "야당이 박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할 경우 여당 원내대표로 이에 응할 수밖에 없지만, 탄핵절차를 밟는 데 동의하는 것과 찬성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면서 "당내에 탄핵에 반대하는 의원이 적지 않다. 야당도 탄핵안이 부결되면 정치적 역풍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 탄핵을 당론으로 정한 두 야당에 실제로 탄핵이 이뤄질지를 재차 물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