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까지 한달 남은 李, 정진석 카드 지렛대로 비대위원장 후보군 좁힐까
  •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23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차기 비대위원장을 논의해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23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차기 비대위원장을 논의해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23일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을 썩은 거름에 비유하면서 차기 지도부를 위한 밑거름이 되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 직후 최재진과 만나 "객관적이고 좋은 사람으로 비대위원장을 모시고 비대위(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새누리당이 단합했으면 좋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지난 22일, 원유철, 김재경, 나경원, 정우택, 주호영, 홍문종 의원은 긴급 회동을 통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는데 의견을 모았다. 초선의원 모임에서 비대위 구성으로 중론이 모인 데 이어 4선 이상의 중진 모임에서도 비슷한 결론이 도출된 것이다.

    이에 새누리당 비박계는 이날 이정현 대표에 대한 압박을 상당 부분 거두는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국회 본관에 있는 새누리당 당대표 회의실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던 원외 당협위원장이 단식농성을 해제했다.

    최순실 사태로 촉발된 새누리당의 내홍이 수습될 기미가 보이자, 급기야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 대표가 즉각 사퇴 입장을 표명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12월 20일이라 했고, 그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사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대신 사퇴하는 것이 '버티기'가 아니라는 점을 연거푸 강조했다.

    이날 이 대표는 취재진으로부터 '사퇴가 책임지는 것인가' 등 공격적인 질문을 몇 차례 받았다.

    그는 "(차기 비대위원장 지명)그런 것까지도 결정해달라는 거다"면서 "내가 (차기 비대위원장을) 결정할 의지도, 생각도 없다"고 했다.

    이어 "태어나서 요즘같이 욕을 많이 먹은 적이 없다"면서 "이런 것을 감내하면서도 지도부 공백으로 인해 당이 표류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게 제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이 대표는 진정성과 유연성을 거듭 강조하면서 "(차기 지도부 구성에)만고 불변이란 없다고까지 했다"며 "이제 내가 이만큼 내려놓고 비웠으면 다른 사람이 채우도록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기자간담회를 하는 모습. 그는 매 기자간담회마다 기자들이 쓰는 의자와 같은 의자에 앉아 질문에 답한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기자간담회를 하는 모습. 그는 매 기자간담회마다 기자들이 쓰는 의자와 같은 의자에 앉아 질문에 답한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이정현 대표는 새누리당의 당세가 약한 전남 순천을 지역구로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부정적인 시각이 많은 현시점에 언론 노출이 극도로 잦은 당 대표직을 맡는 상황은 본인에게 되레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 대표의 이같은 발언은 차기 지도부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본인이 물러날 경우, 당이 자중지란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 기인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친박계와 비박계 모두 누구 하나 차기 비대위원장을 추천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어서다.

    우선 친박계는 지난 4.13 총선에서 공천 파동으로 핵심·좌장으로 분류되는 서청원, 최경환 의원 등이 8.9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하며 2선으로 이미 후퇴한 상태다. 8.9 전당대회에 출마한 이정현 대표와 이주영 의원이 출마했지만, 이주영 의원은 계파색이 옅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고, 이 대표는 친박계의 핵심세력이라 보기는 어렵다는 평이 뒤따랐다.

    더군다나 친박계의 구심점이 될만한 사람들은 최순실 사태로 인해 부정적인 여론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어느 한 사람도 추천하기가 쉽지 않다.

    비박계는 서로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새누리당의 대선후보군이 비박계에 몰려있는 상황에서 차기 비대위원장은 대선후보 경선을 준비해야 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자리는 하나인데 여러 사람이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어서 비대위원장직을 결정하게 되면 되레 다툼이 일어날 수 있다. 실제로 새누리당 비박계는 비상시국위원회를 열어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쳤지만 차기 지도부에 대해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그는 자신이 못 박은 12월 20일에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채 사퇴하게 될 수밖에 없다. 당의 위기를 수습했다는 평가도 받지 못하고 4개월 만에 물러나는 최악의 상황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 대표는 이날 차기 지도부의 계파색을 묻는 말에 "친박계, 비박계로 나뉘면 또 이의제기하면서 배가 산으로 가지 않겠느냐"면서 "누가 해도 사람이 하는 거다. 당의 전체적인 의견이 돼야만 그분을 중심으로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 ▲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정현 대표와 야당과 공세를 펼 때는 발을 맞추고 있지만 현재 최고위원회의에는 불참하면서 선을 긋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정현 대표와 야당과 공세를 펼 때는 발을 맞추고 있지만 현재 최고위원회의에는 불참하면서 선을 긋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이같은 고민을 반영한 듯, 이 대표는 차기 위원장이 정 선임되지 않는다면 정진석 원내대표가 맡아줬으면 하는 속내도 내비쳤다. 정진석 '카드'로 비박계를 압박해 차기 지도부 후보군을 좁히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그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본지와 만나 "정진석 원내대표가 예산도 해야 한다고 했지만, 거국중립내각도 하고 물러나는 것으로 돼 있기 때문에 12월 2일이다, 9일이다 날짜를 못 박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면서 "그분이라도 그렇게 날짜를 못 박지 않았으면 한다"고 언급했다.

    범친박계로 분류되는 정진석 원내대표는 비록 최고위원회의에 불참하는 등 당 지도부와 선을 긋고 있지만, 대야공세에서는 사실상 이정현 대표와 발을 맞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두 사람은 문재인 전 대표가 거국중립내각을 주장했다가 후에 군 통수권·계엄권을 포함한 완전한 2선 후퇴를 주장한 것에 대해 "말 바꾸기를 하고 있다"고 했고,"탄핵해야 한다"면서도 하야 투쟁을 동시에 전개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에 대해서도 "그러면 거국중립내각 요구는 하지 말아야 한다"며 일제히 비판을 쏟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