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회담 선결조건 대통령 탈당이라더니 어느덧 김병준 지명 철회까지 추가
  • ▲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과 허원제 정무수석이 지난 4일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를 만나기 위해 국회를 방문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과 허원제 정무수석이 지난 4일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를 만나기 위해 국회를 방문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정국 혼란 속에서 야권이 국정 마비를 해소하기보다는 발목 잡기를 이어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청와대가 야권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며 영수회담을 제안했지만, 야당은 선결조건으로 김병준 국무총리 지명 철회를 추가하면서 또 다시 반발하고 나섰다. 

    청와대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과 허원제 정무수석은 7일 국회를 방문해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을 잇달아 만나 영수회담 개최와 김병준 총리 내정자 인준을 요청했다. 

    한광옥 실장은 "여야 영수회담을 위해 대통령께서 국회에 오실 수도 있다"며 개최시점에 대해선 "내일이나 모레"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 실장은 김병준 총리 내정자 인준 문제와 관련 지명 절차에 대한 문제점을 인정하며 영수회담에서 지명 철회까지 포함해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반면 야권은 청와대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대통령을 향해 김병준 총리 내정자 지명 철회 및 국회추천 총리 수용, 대통령의 새누리당 탈당 등을 요구, 이를 거부하면 대통령 하야 등 장외투쟁에 들어간다며 엄포를 놓기도 했다.  

    국민의당은 김병준 총리 내정자 지명철회 및 자진사퇴가 이뤄지지 않으면 영수회담 논의는 없다고 못 박았다.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한광옥 실장과의 면담 이후 "김병준 후보자 인준에 협력해달라는 것은 최순실 사건 이전의 대통령으로 다시 돌아간 것이고 오만"이라며 협조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또한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박 대통령이 같은 당적으로 있는데 어떻게 영수회담이 가능하겠느냐"며 "대통령은 탈당하고 영수회담 자리에 나와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한광옥 실장은 "박지원 위원장의 현 시국에 대한 인식, 민심의 동향에 대한 부분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면서도 "다만 대통령의 영수회담 제안이나 김 후보자 인준 절차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협조할 수 있느냐"고 재차 요청했다. 국민의당의 영수회담 전제조건을 청와대에 보고하겠다는 뜻도 전했다. 

    국민의당은 김병준 총리 내정자 지명 철회와 대통령의 탈당을 일관되게 촉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대통령 퇴진·하야 등 강경투쟁에 나서지 않는다는 조건이었지, 영수회담의 조건은 아니었다는 일각의 분석이 제기된다. 영수회담의 조건으로 대통령의 탈당을 주장했지만, 여기에 김병준 내정 철회까지 추가했다는 것이다. 

    박지원 위원장은 지난 4일 "저와 국민의당은 처음부터 똑같은 3가지 해법을 제시했다"면서 그중 하나로 "대통령이 탈당하고 야3당 대표들과 영수회담을 통해서 국회 3당 대표와 영수회담을 통해 협의해서 총리를 임명하게 되면 그것이 곧 거국내각"이라고 말했다. 김병준 총리 내정이 이뤄지고 이틀이 지났던 시점이다. 

    아울러 지난 5일 광화문 집회를 기점으로 국민의당이 요구하는 조건이 강화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와 관련 국민의당 관계자는 "주말 촛불 집회나 더불어민주당에서 원천적으로 영수회담을 거부하는 상황이다. 우리 당 내부에서도 영수회담 논의자체가 김병준 내정자 철회 등 선행절차 없이 이뤄지는 것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크다"며 "이런 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당이 그동안 대통령의 탈당에 방점을 찍었다면 김병준 내정자 철회로 돌아섰다는 것인데 이는 새누리당의 최근 내홍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김무성 대표 등 비주류를 중심으로 당 지도부 교체와 대통령의 탈당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야권이 굳이 나서서 탈당을 주장할 필요가 없다는 속셈으로 풀이된다.


  • ▲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4일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4일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더불어민주당은 한광옥 실장과의 만남조차도 거절하는 등 대화의 장에조차 나서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추미애 대표는 이날 "민심에 반하는 폭주 개각을 철회하고 국회에서 추천하는 총리를 수용해서 정국을 수습해나가야 한다"며 "(대통령이) 끝까지 외면하면 불행하게도 정권 퇴진 운동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윤관석 수석대변인은 현안 브리핑을 통해 "청와대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비상시국에서도 아무 내용이 확인되지 않은 영수회담을 억지로 추진하겠다며 언론플레이만 연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태도와 방식으로 위기국면을 수습할 해결책을 만들 수는 없다. 즉각 무리한 추진을 중단하기 바란다"며 자신들이 내세운 선결조치가 이뤄진 이후에야 필요하면 영수회담에 응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한광옥 실장이 영수회담에서 야당이 요구하는 김병준 내정자 지명 철회까지 포함해 논의할 수 있다며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지만, 야권은 일방적인 제안만을 강요하며 대화의 장마저 거부하고 있는 형국이다. 

    앞서 야당은 '거국중립내각'도 먼저 제안했다가 막상 새누리당이 이를 수용하자 "새누리당은 내각을 주도할 자격이 없다"며 돌변하고 나선 바 있다. 

    야권이 A를 요구했다가 이를 여당이 수용하는 듯하면 철회하고 바로 다른 B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결국 사태의 수습책 자체를 마련하지 못하게끔 해서 정국의 혼란을 장기화하려는 속셈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