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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청와대에서 최순실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후 국민들에게 사과를 하고 있다.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담화문을 발표하는 내내 목소리는 떨렸고 담화문을 발표하는 도중 감정에 북받쳤는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4일 오전 10시 30분, 청와대 춘추관 2층 기자회견장에 선 박근혜 대통령은 울먹이면서 말문을 열었다.
박 대통령의 진한 회색 정장 만큼이나 어두운 분위기가 기자회견장을 맴돌았다.
대국민담화의 시작은 사과(謝過)였다.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하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화장기 없는, 피곤해보이는 박 대통령의 입에서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먼저 이번 최순실 씨 관련 사건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과 염려를 끼쳐드린 점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무엇보다 저를 믿고 국정을 맡겨주신 국민 여러분께 돌이키기 힘든 마음의 상처를 드려서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저와 함께 헌신적으로 뛰어주셨던 정부의 공직자들과 현장의 많은 분들, 그리고 선의의 도움을 주셨던 기업인 여러분께도 큰 실망을 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 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입니다.
이 모든 사태는 모두 저의 잘못이고, 저의 불찰로 일어난 일입니다. 저의 큰 책임을 가슴 깊이 통감하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은 눈물을 흘리진 않았지만 다소 흐느끼는 목소리로 문장 사이에 공백을 두며 담화문을 읽어내려갔다.
최재경 민정수석비서관과 배성례 홍보수석비서관을 비롯한 청와대 비서진이 한쪽 벽에 줄지어 서서 굳은 표정으로 박 대통령의 발표를 지켜봤다. 전날 임명된 한광옥 비서실장도 자리를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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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와대 참모진이 4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발표를 앞두고 춘추관에 자리하고 있다. ⓒ뉴시스
다음은 검찰 조사에 대한 입장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씨의 구속과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의 체포를 언급한 뒤 "앞으로 검찰은 어떠한 것에도 구애받지 말고 명명백백 진실을 밝히고 이를 토대로 엄정한 사법처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저는 이번 일의 진상과 책임을 규명하는데 있어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이미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에는 검찰의 수사에 적극 협조하도록 지시했다는 설명이다.이러한 발언은 앞으로 이뤄질 모든 수사와 관련해 대통령 본인이 스스럼없이 응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특히 박 대통령은 이 자리를 통해 자신의 답답한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표정은 외로움과 괴로움, 복잡한 속마음이 엉켜있는 듯 했다.
"국민 여러분, 저는 청와대에 들어온 이후 혹여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염려하여 가족 간의 교류마저 끊고 외롭게 지내왔습니다.
홀로 살면서 챙겨야 할 여러 개인사들을 도와줄 사람조차 마땅치 않아서 오랜 인연을 갖고 있었던 최순실씨로부터 도움을 받게 되었고, 왕래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주었기 때문에 저 스스로 경계의 담장을 낮추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돌이켜 보니 개인적 인연을 믿고 제대로 살피지 못한 나머지 주변사람들에게 엄격하지 못한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저 스스로를 용서하기 어렵고 서글픈 마음까지 들어 밤잠을 이루기도 힘이 듭니다. 무엇으로도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드리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해 드리겠다는 각오로 노력해 왔는데 이렇게 정 반대의 결과를 낳게 돼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심지어 제가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거나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부연했다.
박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미래 성장 동력을 만들기 위해 정성을 기울여온 국정과제들까지도 모두 비리로 낙인찍히고 있는 현실도 참으로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부의 잘못이 있었다고 해도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 만큼은 꺼트리지 말아 주실 것을 호소 드린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거듭 고개를 숙였다.
다시 한 번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국민 여러분께 용서를 구한다"고 했다.
"이미 마음으로는 모든 인연을 끊었지만 앞으로 사사로운 인연을 완전히 끊고 살겠다"고 했다.
이어 "그동안의 경위에 대해 설명을 드려야 마땅하지만 현재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일일이 말씀드리기 어려운 점을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자칫 저의 설명이 공정한 수사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염려해 오늘 모든 말씀을 드리지 못하는 것뿐이며 앞으로 기회가 될 때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 누구라도 이번 수사를 통해 잘못이 드러나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할 것이며 저 역시도 모든 책임을 질 각오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한차례 한숨을 내쉰 박근혜 대통령이 말을 이어나갔다.
"대통령의 임기는 유한하지만 대한민국은 영원히 계속되어야만 합니다. 국민 여러분, 지금 우리 안보가 매우 큰 위기에 직면해 있고, 우리 경제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국내외의 여러 현안이 산적해 있는 만큼 국정은 한시라도 중단되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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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최순실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후 고개를 숙이고 있다. ⓒ뉴시스
더 큰 국정 혼란과 공백 상태를 막기 위해 진상규명과 책임추궁은 검찰에 맡기고, 정부는 본연의 기능을 하루 속히 회복해야만 한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은 "국민들께서 맡겨주신 책임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사회 각계의 원로 분들과 종교 지도자 분들, 여야 대표님들과 자주 소통하면서 국민 여러분과 국회의 요구를 더욱 무겁게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향후 여야 대표들과의 영수회담 개최를 시사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국민 여러분께 깊이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며 고개를 숙이고 담화 발표를 마쳤다.
기자들에게도 미안하다는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마이크가 꺼진 연단에서 내려와 기자들에게 직접 "여러분께도 걱정을 많이 끼쳐드려 정말 미안한 마음이다. 이만 물러가겠다"며 또 한번 머리를 숙였다.
이날 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발표는 1분 30초에 그쳤던 이전 담화와 달리 9분에 걸쳐 진행됐다. 지난달 25일 첫 번째 사과 당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일각의 비판 때문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전문] 朴대통령,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먼저 이번 최순실 씨 관련 사건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과 염려를 끼쳐드린 점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무엇보다 저를 믿고 국정을 맡겨주신 국민 여러분께 돌이키기 힘든 마음의 상처를 드려서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저와 함께 헌신적으로 뛰어주셨던 정부의 공직자들과 현장의 많은 분들, 그리고 선의의 도움을 주셨던 기업인 여러분께도 큰 실망을 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 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입니다.
이 모든 사태는 모두 저의 잘못이고, 저의 불찰로 일어난 일입니다. 저의 큰 책임을 가슴 깊이 통감하고 있습니다.
어제 최순실 씨가 중대한 범죄 혐의로 구속되었고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이 체포되어 조사를 받는 등 검찰 특별수사 본부에서 철저하고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검찰은 어떠한 것에도 구애받지 말고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밝히고 이를 토대로 엄정한 사법처리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번 일의 진상과 책임을 규명하는데 있어서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이미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에도 검찰의 수사에 적극 협조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저는 청와대에 들어온 이후 혹여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염려하여 가족 간의 교류마저 끊고 외롭게 지내왔습니다.
홀로 살면서 챙겨야 할 여러 개인사들을 도와줄 사람조차 마땅치 않아서 오랜 인연을 갖고 있었던 최순실 씨로부터 도움을 받게 되었고, 왕래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주었기 때문에 저 스스로 경계의 담장을 낮추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돌이켜 보니 개인적 인연을 믿고 제대로 살피지 못한 나머지 주변사람들에게 엄격하지 못한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저 스스로를 용서하기 어렵고 서글픈 마음까지 들어 밤잠을 이루기도 힘이 듭니다.
무엇으로도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드리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
국민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해 드리겠다는 각오로 노력해 왔는데 이렇게 정 반대의 결과를 낳게 되어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입니다. 심지어 제가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거나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우리나라의 미래 성장 동력을 만들기 위해 정성을 기울여온 국정과제들까지도 모두 비리로 낙인찍히고 있는 현실도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일부의 잘못이 있었다고 해도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 만큼은 꺼트리지 말아 주실 것을 호소 드립니다.
다시 한 번 저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국민 여러분께 용서를 구합니다. 이미 마음으로는 모든 인연을 끊었지만 앞으로 사사로운 인연을 완전히 끊고 살겠습니다. 그동안의 경위에 대해 설명을 드려야 마땅합니다만 현재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일일이 말씀드리기 어려운 점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자칫 저의 설명이 공정한 수사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염려하여 오늘 모든 말씀을 드리지 못하는 것뿐이며 앞으로 기회가 될 때 밝힐 것입니다.
또한 어느 누구라도 이번 수사를 통해 잘못이 드러나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할 것이며 저 역시도 모든 책임을 질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 지금 우리 안보가 매우 큰 위기에 직면해 있고, 우리 경제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국내외의 여러 현안이 산적해 있는 만큼 국정은 한시라도 중단되어서는 안 됩니다. 대통령의 임기는 유한하지만 대한민국은 영원히 계속되어야만 합니다.
더 큰 국정 혼란과 공백 상태를 막기 위해 진상 규명과 책임 추궁은 검찰에 맡기고 정부는 본연의 기능을 하루속히 회복해야만 합니다.
국민들께서 맡겨주신 책임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사회 각계의 원로 분들과 종교 지도자 분들, 여야 대표님들과 자주 소통하면서 국민 여러분과 국회의 요구를 더욱 무겁게 받아들이겠습니다. 다시 한 번 국민 여러분께 깊이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