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읍 "10번 중에 1번 있었던 선례 따르자고 한다면… 글쎄"
  • ▲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최순실 게이트' 특별검사 추천권을 둘러싼 여야 간의 공방이 격화되면서, 2012년 이른바 '내곡동 사저 특검' 당시 민주통합당의 특검 추천을 용인했던 박근혜 대통령에게 부메랑이 돌아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최순실 게이트' 특검은 이를 주장해왔던 더불어민주당의 요구를 새누리당이 지난 26일 소집한 긴급 의원총회에서 수용하기로 함에 따라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국민의당이 특검 도입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새누리당과 민주당도 원내수석부대표 간의 회동에서 특검 추천권을 놓고 이견을 보이는 가운데, 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2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새누리당 석고대죄 △'최순실 부역자' 전원 사퇴 등을 내걸고 특검 협상 전면 중단을 선언함에 따라 교착 국면에 빠졌다.

    표면상으로는 새누리당은 '상설특검', 민주당은 '별도특검'을 주장해 정쟁(政爭)이 벌어지는 듯 보이지만, 이견의 핵심에는 특검 추천권이 있다.

    새누리당은 국회에서 선정한 4인과 법원행정처장·대한변협회장·법무차관 등 7인으로 구성된 특검추천위원회에서 2명의 특검 후보자를 추천하면 이 중 1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치적 중립성이 담보되는 특검 방식을 바란다. 반면 민주당은 특검 추천권은 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이 독점하되 형식적인 임명만 대통령이 하는 방식을 원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바라는 방식은 지난 2014년 여야 합의로 제정된 '특별검사의임명등에관한법률(이른바 상설특검법)'에 규정된 방식이다. 민주당이 원하는 방식은 2012년 '내곡동 사저 특검' 당시 적용됐던 방식이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은 '상설특검', 민주당은 '별도특검'을 요구하는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상설특검~별도특검을 놓고 여야 간의 논란이 벌어지는 핵심 쟁점은 특검의 추천권"이라며 "수사 기간이나 대상·범위는 어차피 뻔하고, 부수적인 문제에 불과하다"고 귀띔했다.

    얼핏 생각하기에 정치적 중립성이 생명인 특검의 추천권을 특정 정당이 차지한다는 것은 이상해보이지만, 선례가 있다. 지난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이른바 '내곡동 사저 특검' 때 당시 제1야당이었던 민주통합당의 특검 추천권이 법문에 명시됐던 적이 있다.

    '이명박 정부의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 제3조 2항에 따르면, 대통령은 특검 추천을 '민주통합당'에 서면으로 의뢰해야 하며, 민주통합당은 서면으로 의뢰받은 날로부터 5일 이내에 2명의 변호사를 특검 후보자로 추천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 ▲ 새누리당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가 28일 기자간담회에서 야당의 특검 추천권 확보 시도의 부당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가 28일 기자간담회에서 야당의 특검 추천권 확보 시도의 부당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정치적 중립성이 생명인 특검의 추천권을 특정 정당이 행사한다고 법문에 규정하는, 기이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던 것이다.

    이 때문에 당시 '내곡동 사저 특검'의 민주통합당 추천권을 용인했던 박근혜 대통령(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에게 이 선례가 부메랑이 돼서 돌아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여권 일각에서 제기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거주할 내곡동 사저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하고 업무상 배임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은 지난 2011년 10월이다. 검찰은 8개월 간의 수사 끝에 이명박 대통령의 장남 시형 씨와 임태희 대통령실장·김인종 청와대 경호처장 등 관련자 전원을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불기소 처분했다.

    그러자 대선을 반년 앞둔 민주통합당은 호재를 만난 듯 이를 정치쟁점화해 거센 공세를 가했다. 2012년 6월부터 시작된 여야 간의 협상에서, 새누리당은 민주통합당이 특검 후보자 2명 모두를 추천하는 '내곡동 사저 특검법안'에 합의해줬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4·11 총선에서 승리한 뒤 비상대책위원장에서 물러난 다음이었지만 여전히 당의 실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특히 새누리당이 '내곡동 사저 특검법안'에 전격 합의한 2012년 8월 21일은 8·20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선출된 바로 다음날이었다.

    대선 후보 확정 직후 '내곡동 사저 특검' 합의로 바로 '현재 권력'과 선긋기에 나섰던 셈인데, 헌정 상으로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는 비판이 당시에도 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내곡동 사저 특검법안'을 놓고 3주간 고심을 거듭하다가, 여야 정치권의 압박과 국민 여론에 버티지 못하고 마지못해 공포하기도 했다.

    새누리당 의원실 관계자는 "내곡동 사저 의혹은 민주당이 추천한 특검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김윤옥 여사와 시형 씨, 임태희 실장의 무혐의가 모두 입증됐지만, '최순실 게이트'는 단순한 의혹 수준이 아니라 실체가 있는 사건 아니냐"며 "MB(이명박 대통령)와의 단절을 위해 민주당이 특검을 추천한다는 선례를 남겼던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게 부메랑이 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28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민주당의 특검 추천권 요구를 강도 높게 비판했던 새누리당 김도읍 원내수석은, '내곡동 사저 특검'이라는 선례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열 번의 특검이 있었는데, 그 중에 아홉 번은 객관적으로 추천을 했다"면서도 "열 번 중에 한 번의 선례가 있다고 해서, 그 선례를 못 따를 바가 아니지 않느냐고 한다면 글쎄…"라고 곤혹스러운 듯 말을 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