改憲論 불씨 살려 親文 고립 '새판짜기'… 추미애 "듣고 싶지 않다!"
  • ▲ 3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거국중립내각 출범의 당위성을 역설한 것으로 알려진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최고위원회의 종료 직후 고뇌에 찬 표정으로 당사를 떠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3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거국중립내각 출범의 당위성을 역설한 것으로 알려진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최고위원회의 종료 직후 고뇌에 찬 표정으로 당사를 떠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새누리당이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촉구하기로 했다. 일견 야당의 주장에 동조해 그간 청와대가 선을 긋던 요구에 나선 셈이라, 그 의도에 관심이 쏠린다.

    거국중립내각 구성 촉구에는 △박근혜정부 남은 기간 실질적인 '이원집정부제' 국가 운영을 통한 개헌론 불씨살리기 △내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 '새판짜기'의 의도가 엿보인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새누리당은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최고위 참석자들은 이견 없이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촉구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새누리당 김성원 대변인은 이날 최고위원회의 직후 당사 기자실에서 "책임총리제 가지고는 (수습이) 될 수 있겠느냐는 엄중한 상황 인식이 있었다"며 "여야가 동의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거국내각 구성을 촉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거국내각 구성 촉구는) 새누리당이 선도적·적극적으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결단"이라며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기 위해 현재의 내각이 퇴진하는 것은) 당연한 프로세스 그 자체"라고 부연했다.

    거국중립내각은 개헌(改憲) 없이 현행 헌법의 규정에 따라서도 출범이 가능하다. 헌법 제86조 1항은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먼저 여야 정치권이 협의해 적절한 인사를 국회에서 총리 후보자로 선출하면, 이를 대통령이 총리로 임명하면 된다. 새누리당 강석호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 직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이를 "(총리 후보자는) 당에서도 추천하고 여야가 협의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총리로 취임한 인사는 조각(組閣)에 착수한다. 헌법 제87조 1항은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3항은 "국무총리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국무위원인 각 부처 장관을 총리가 인선해 제청하면 대통령이 이를 임명하고, 또 해임을 건의하면 대통령이 해임하는 방식으로 총리가 실질적 내각 구성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 ▲ 새누리당 김성원 대변인이 30일 최고위원회의 종료 직후 서울 여의도 당사 기자실에서 거국중립내각 출범 촉구를 결의했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김성원 대변인이 30일 최고위원회의 종료 직후 서울 여의도 당사 기자실에서 거국중립내각 출범 촉구를 결의했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이 경우, 대통령은 현행 헌법상 겸하는 국가원수와 행정부 수반의 지위 중 행정부 수반의 지위는 사실상 총리에게 양여하고 국가원수로서의 지위만 행사하게 될 수 있다. 단, 경우에 따라 통일부장관·국방부장관·외교부장관·국정원장 등 통일·외교·안보 관련 각료의 임면권은 여전히 대통령에게 유보될 수도 있다.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는 개헌론자(改憲論者)인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특히 거국중립내각 출범의 당위성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김성원 대변인이 "청와대와 사전 교감은 없었다"고 밝혔지만, 정진석 원내대표는 지난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과의 독대에서도 거국중립내각 출범 필요성을 상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책임 있는 모든 인사에 대한 대폭적인 인적 쇄신"을 촉구한지 채 2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안종범 정책조정수석과 이른바 '문고리 3인방'에 대한 전격 경질 발표를 하는 등 쌍방이 합(合)을 맞춰가는 것만 봐도, 당청(黨靑) 간에 어느 정도 교감이 이뤄져 있지 않느냐는 관측이다.

    이에 따라 개헌론자인 정진석 원내대표가 거국중립내각 출범을 통해 사실상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모델로 정부를 운영하면서, 내년 12월 대선까지 남은 기간 개헌론의 불씨를 크게 키우려 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새누리당 강석호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 직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거국중립내각의 총리에 구체적으로 이름이 거론된 사람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새누리당 지도부는 거국중립내각의 총리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손학규 전 대표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 모두 대표적인 개헌론자다. 이들 중 한 명을 총리로 기용해 내치(內治)를 맡기고, 박근혜 대통령은 그간 잘해왔던 통일·외교·안보 등 외치(外治)를 분담하면서 '개헌 모델은 이런 것'이라고 국민들에게 직접 보여줌으로써 개헌 논의에 탄력을 더한다는 복안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인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일정 부분 교감을 갖고 있는 정진석 원내대표가 이원집정부제에서 통일·외교·안보를 담당하는 대통령직에 반기문 총장이 적임자라는 점을 자연스레 드러내,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려 한다는 견해도 제기됐다.

    나아가 이러한 구상의 이면에는 내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정계 개편이라는 '새판 짜기'의 의도가 숨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 새누리당 강석호 최고위원이 30일 최고위원회의 종료 직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취재진과 만나 거국중립내각 구성 절차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강석호 최고위원이 30일 최고위원회의 종료 직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취재진과 만나 거국중립내각 구성 절차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거국중립내각이 제대로 운영되려면 원내(院內) 안정 의석이 필요하다. 원내 안정 의석을 확보한 세력에서 총리를 배출하고 내각을 구성하는 것은 전세계 어느 내각제·이원집정부제 국가에서도 공통적인 절차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국회에는 3당이 정립해 있어, 이대로는 어느 정당이 내각을 구성해도 원내 안정 의석을 확보할 수가 없다. 따라서 거국중립내각을 통해 야권 인사 일부를 국정 운영의 축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정계 개편을 모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이다.

    공교롭게도 김종인·손학규 전 대표는 개헌론자이기도 하지만, 이들의 또다른 공통점은 야권의 대표적인 비문재인(非文)계 인사라는 점이다. 이들 중 한 명이 총리가 돼서 내각을 구성하다보면, 민주당내 비문(非文)계 의원이나 국민의당 의원이 내각에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후 이러한 거국중립내각이 추진하는 정책에 민주당 친노·친문패권 세력이 발목을 잡으면, 자연스레 정국의 구도는 '내각 구성 세력 대(對) 친문 패권 세력'의 구도로 재편되게 된다.

    당장 정치권의 핵심 쟁점인 '최순실 게이트' 특검 추진을 둘러싼 공방에서도 원내 안정 의석을 형성한 세력이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게 된다.

    친문 성향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이날 새누리당의 거국중립내각 촉구 방침에 돌연 "새누리당이 거국내각을 언급했다고 하는데 이제 와서 새누리당의 이야기는 듣고 싶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다"고 일축했다.

    민주당 윤관석 수석대변인도 "새누리당의 거국내각 제안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방향을 선회했다. 그간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거듭 촉구했던 것은 되레 민주당이라는 측면에서 너무나 뜬금없는 반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김종인~손학규 총리 카드를 통한 '친문 고립'의 의도를 간파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상황 변화에 따라서는, 내각 구성 과정에서 연립한 세력들이 내년 12월 전에 친문패권 세력을 배제하고 일제히 통합하는 방식으로 정계 개편이 이뤄질 수도 있다.

    특히 개헌이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가 아닌, 독일식 내각제 모델로 이뤄진다면 이러한 원내 안정 의석 확보 절차는 필수다. 독일식 내각제에서는 대통령을 국회에서 간선(間選)하기 때문에, 먼저 원내 안정 의석을 확보해야 반기문 총장이나 다른 인사를 대통령으로 선출할 수 있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