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20%대 돌파, 흔들리는 PK 민심… 낙동강 전선 지킬 소방수는 누구?
  • ▲ 부산은 탄핵 광풍이라는 최악의 여건 속에서 총선을 치른 지난 2004년에도 지역구 의석 18석 중 17석을 한나라당에 몰아줄 정도로 여권의 핵심 지지 기반이었으나, 올해 4·13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에 5석이나 허용할 정도로 격심한 민심 이반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래픽=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 부산은 탄핵 광풍이라는 최악의 여건 속에서 총선을 치른 지난 2004년에도 지역구 의석 18석 중 17석을 한나라당에 몰아줄 정도로 여권의 핵심 지지 기반이었으나, 올해 4·13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에 5석이나 허용할 정도로 격심한 민심 이반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래픽=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충청권 같은 전통적인 격전지는 아니다. 호남처럼 자욱한 포연 속에 가려져 있지도 않다. 그러나 전운이 감돌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내년 12월 대선을 앞둔 부산·울산·경남(PK)은 과연 포화 속에 휩싸이고야 말 것인가.

    부산은 공화당과 신민당이 대결하던 60년대 말부터 '김영삼의 아성'이라 불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0년 3당 합당으로 현 여권에 합류하고, 건국·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역사적인 화해를 통해 민자당이 성립되면서, 부산은 20년 간의 야도(野都) 역할을 마감하고 현 여권의 든든한 근거지로 자리매김했다.

    역대 대선을 살펴보면 이 점은 분명해진다. 1992년 치러진 14대 대선에서 민자당 김영삼 후보는 부산·경남서 306만5516표라는 기록적 득표를 했다. 민주당 김대중 후보는 45만8428표, 국민당 정주영 후보는 37만5042표에 그쳤다.

    여당인 민자당의 압도적 승리였다. 당시 법무장관이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초원복집에서 "이번에 김대중이나 정주영이가 어쩌고 하면 부산·경남 사람들 전부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고 부르짖은 보람(?)이 있었을 정도의 대승이었다.

    TK와 호남이 각각 현 여권과 야권의 핵심 지지 기반이고, PK는 '스윙 스테이트'라는 현재의 정치권 인식과는 달리 이 당시에는 PK가 더욱 적극적으로 여권을 지지했다. 되레 TK는 김영삼 후보에 대한 지지에 다소 소극적이었다.

    14대 대선에서 민자당 김영삼 후보는 'TK의 심장'인 대구에서 69만245표를 얻어 득표율 59.6%에 그쳤다. 김영삼 후보가 부산에서는 73.3%, 경남에서는 72.3%의 득표율을 올린데 비하면 저조한 수치다. 반면 대구에서 국민당 정주영 후보는 22만4642표(19.4%)를 얻어 20%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경북은 여촌야도(與村野都) 현상에 힘입어 김영삼 후보가 약간 더 격차를 벌렸으나 PK의 여권 지지 성향을 따라가지는 못했다.

    PK는 이후 지속적으로 여권 지지 성향이 줄어들고 야권 지지 성향이 늘어났다. 그러나 현 여권의 지지 기반이라는 사실 자체가 변하지는 않았다.

    부산 출신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던 16대 대선이 그 사례다. 부산·울산·경남은 16대 대선이 치러진 2002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게 266만5575표, 민주당 노무현 후보에게 120만1172표로, 더블스코어 이상으로 이회창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다. 대통령 당선은 노무현 후보의 몫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고향에서 인정받지 못한 것이 아팠을 것이다.

    2년 뒤 탄핵 광풍(狂風) 속에서 치러진 17대 총선도 마찬가지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홍위병 도당이자, 친노·친문패권을 잉태했던 원죄 정당 열우당은 전체적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했으나, 부산에서는 지역구 18석 중 고작 1석을 차지하는데 그쳤다. 나머지 17석은 모두 한나라당 차지였다. 경남에서도 지역구 17석 중 14석이 한나라당에 돌아가고 열우당은 2석에 그쳤다.

    돌아서지 않는 PK 민심에 오죽 답답했으면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우당 오거돈 부산광역시장 후보의 선거사무소를 방문한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현 정권은 부산 정권인데, 왜 부산 정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이른바 '부산 정권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처럼 탄핵 광풍 때에도 무너지지 않던 낙동강 전선에 균열이 생긴 것이 이번 4·13 총선이다. 부산은 18석 중 무려 5석이 친노·친문패권 더민주에 넘어갔다. 새누리당은 12석에 그쳐, 역대 유례 없는 대패를 맛봤다.

  • ▲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의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설문과 관련해, 부산·울산·경남 권역의 선호도를 6월 조사 이후로 나타낸 도표. 여론조사 결과와 관련해 기타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래픽=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의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설문과 관련해, 부산·울산·경남 권역의 선호도를 6월 조사 이후로 나타낸 도표. 여론조사 결과와 관련해 기타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래픽=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이로서 PK는 충청권과 같은 여야 간의 '스윙 스테이트'로 전락했다고 할 것인가. 아니면, 아직은 여권의 지지 기반으로 남아 있다고 할 것인가. 확실한 것은 누구도 감히 PK를 여권의 '핵심' 지지 기반이라고 부르지는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 '핵심' 두 글자는 이번 4·13 총선 과정에서 날아갔다.

    한 바탕 전운이 PK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의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의 부산·울산·경남 부분만 따로 떼서 들여다봐도 읽혀진다. 이 여론조사의 권역별 선호도 등 기타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부산이 연고인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는 10%대 박스권에서 지지율의 등락을 보이다가 가장 최근 발표된 9월 여론조사에서 마침내 마(魔)의 20%를 돌파해서 24%까지 상승했다.

    여권 후보로 분류되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같은 달 31%를 기록했다. 6~7월 여론조사에서와 동일한 지지율로 횡보한 탓이다. 반기문 총장의 지지율이 주춤하는 사이, 문재인 전 대표가 연고 지역에서 무서운 기세로 추격을 감행한 것이다.

    그만큼 PK 민심이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다. 반기문 총장의 지지율은 8월 여론조사에서 한 차례 출렁이면서 빠졌다가 9월에 가까스로 회복했는데 이는 새누리당 8·9 전당대회의 결과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남 마산합포가 지역구라 PK를 연고로 하는 5선의 중진 이주영 의원은 스스로 친박을 자처했고 이 정부에서 해양수산부장관을 지내며 세월호 사고 수습에 진력했는데도, TK를 중심으로 하는 당내 강성 친박의 외면을 받으며 전당대회에서 낙선했다. 가뜩이나 현 정부에서 소외 심리를 느끼고 있는 PK 권역의 표심이 이반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새누리당 지도부에 PK 출신은 완전히 배제돼 있는 상황이다. 당대표인 이정현 대표는 호남 출신이고, 원내대표는 충청, 정책위의장은 TK, 최고위원은 득표 순으로 TK·충청·TK다.

    당내 PK 세력의 입이 삐쭉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다. 호남에서 친노·친문패권 더민주가 축출된 전례에서 보면, 지금은 오피니언 리더들만 볼멘 소리를 하는 상황이지만 내년 12월 대선까지는 1년 4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오피니언 리더들의 불만이 지역 선거인들에게 확산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과연 이번 한가위 명절, PK 권역의 밥상머리에서 현 정부·여당에 대해, 현재의 새누리당 지도부에 대해 좋은 소리가 나올까.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아직까지는 낙동강 전선을 지켜낼 여지가 있다. 새누리당이 PK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진정성 있는 청사진을 제시하면, 야권 후보가 이 지역에 연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표가 몰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는 노무현 후보가 출마했던 16대 대선, 그리고 문재인 후보가 출마했던 18대 대선에서 입증됐다.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 뿐만 아니라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도 부산 연고의 야권 후보인데, 지지율은 신통치 않다. 7월 여론조사에서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를 바짝 추격했던 적도 있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문재인 전 대표보다는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최고위원과 자웅을 겨루고 있는 양상이다.

    야권에 부산 연고 후보가 널려 있다는 것을 여권이 특별히 의식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여권은 야권 후보를 의식하기보다는 '마이 웨이'를 가면서, 그간의 지지에 보답하는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 ▲ 경남 권역의 최다선 의원인 새누리당의 5선 중진 이주영 의원이 지난달 9일 전당대회장에서 당기를 휘두르고 있다. 이주영 의원은 득표율 3위에 그쳐 당대표 경선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경남 권역의 최다선 의원인 새누리당의 5선 중진 이주영 의원이 지난달 9일 전당대회장에서 당기를 휘두르고 있다. 이주영 의원은 득표율 3위에 그쳐 당대표 경선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1997년 치러진 15대 대선에서 여권은 충청권에 연고를 둔 후보 두 명을 동시에 출격시켰다. 충남 예산 출신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충남 논산 출신의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가 그 주인공이다. 그러나 충청은 정작 이 권역에 아무 연고가 없는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이처럼 연고 후보를 인해전술로 동원한다고 해서 표가 쏠리는 것은 아니라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문제는 여권이 PK가 보여준 그간의 지지, 그리고 PK 정서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부터 정치를 배운 수제자로, 현역 정치인으로는 PK 출신으로 가장 유력하다고 할 수 있는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최고위원의 지지율이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악재다.

    반기문 총장의 지지율이 횡보하는 가운데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의 지지율은 상승하는 반면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의 지지율이 회복되지 않는 것은, 단순히 김무성 전 대표 개인에 대한 실망이라기보다는 현 여권 전체를 향한 PK의 실망 여론이 담겨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여권이 PK 민심을 마땅히 수습하지 못하는 와중에 이대로 해가 넘어가고 대선의 해가 돌아오게 되면, 싸늘해진 PK 민심을 회복하기 위해 차기 대권 주자가 현직 대통령과 차별화를 모색하는 수밖에 없게 되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

    현 여권에 낯선 광경은 아니다. 김영삼 대통령 집권기에 PK는 계속해서 지지를 보낸 반면 TK는 점차 냉담해지면서 박철언 전 의원이 버티고 있는 자민련에 시선을 돌리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김영삼정부가 TK 민심을 딱히 수습하지 못하자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회창 전 총재는 TK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모색했고, 이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탈당으로 이어지며 PK 표심의 엄청난 부분이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에게로 쪼개져 나가는 파국을 낳았었다.

    당연히 이러한 패배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누군가는 선제적으로 나서서 흔들리는 PK 민심을 다독여야 한다. 그런데 투입할 소방관이 잘 보이지 않는다.

    새누리당 지도부에는 PK 출신이 없고, 부산의 최다선 의원이기도 한 김무성 전 대표는 지지율 하향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경남의 최다선 의원인 이주영 의원은 8·9 전당대회에서 큰 내상을 입었다. 당 소속으로 이 권역에서 광역단체장을 하고 있는 유력 정치인이 최근 하급심에서 불리한 판결을 받으면서 중대한 정치적 기로에 서는 등 악재만 잇따르고 있다.

    호남 출신인 이정현 대표의 역할은 이 지점에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정현 대표는 섣불리 PK에 나서기보다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호남에서 20%대 지지율 확보에 주력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다.

    다만 PK 민심 수습에 필요한 선수를 용인(用人)하는 것은 당대표의 영역이다. 필요하다면 당청(黨靑)이 머리를 맞댈 필요도 있을 것이다. 내각의 개각이나, 당의 지명직 최고위원 등 여러 가지 카드를 함께 고려해서, 한가위 명절 PK 권역의 밥상머리에서 미처 예상치 못한 '깜짝수'로 민심을 일거에 반전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