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간 충호 36호에서 전재>

    과연 숭고한 ‘애국정신’의 귀감인가
    공산계 ‘항일운동가’에게 준 훈장 박탈해야

    양 | 동 | 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이 잘 알지 못하는 가운데 공산계 항일운동가들에게 훈장을 수여해 왔다. 공산계 항일운동가에게 훈장을 주기 시작한 것은 김영삼 정부이다. 김영삼 정부가 공산계 항일운동자들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물꼬를 터놓자, 그 후의 정권들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공산계 항일운동자들에게 훈장을 더 많이 주려고 노력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는 많은 수의 공산계 항일운동자들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2005년 ‘광복 60주년’을 맞아 노무현 정부는 두 차례에 걸쳐 101명의 공산계 항일운동자들에 대해 훈장을 수여했다. 그 후로도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에서 공산계 항일운동자들에 대해 훈장을 계속 주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그 가운데는 김일성의 삼촌 김형권과 외삼촌 강진석도 포함되어 있다.

    국민 몰래 약 3백 명의 공산계 항일운동가에 훈장 수여

      2016년 8월 현재 대한민국으로부터 훈장을 받은 공산계 항일운동자수가 정확히 몇 명인지는 국가보훈처도 모른다. 그러나 그 대충의 규모는 추산해낼 수 있다. 2004년 10월 현재 국회에서 이한구의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서훈을 받은 공산계 항일운동자 수는 133명에 달했다. 노무현 정부는 2005년 101명에게 훈장을 주었고, 임기가 끝나는 2007년까지 계속 후하게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도 공산계 항일운동자들에게 서훈을 금지하라는 별도의 지침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훈장이 주어졌을 것이다. 그런 점을 참작하여 개괄적으로 계산하면 2016년 현재 대한민국으로부터 훈장을  받은 공산계 항일운동가는 300명 선에 이를 것으로 짐작된다.

      만일 이런 계산이 타당하다면 우선 그 숫자만으로도 문제가 된다. 국민이 잘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토록 많은 공산계 항일운동자들이 훈장을 받았다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심각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그 동안 공산계 항일운동자들에 대해 훈장을 줄 것인지에 대한 국민적 차원의 진지한 논의가 없었던 조건에서 그토록 많은 수의 공산계 항일운동가들에게 훈장을 주었다니...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훈장 받은 공산계 항일운동자들의 규모가 아니라 그들 훈장 받은 공산계 항일운동자들이 대한민국으로부터 훈장을 받을 대상으로 인정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대한민국의 상훈법과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은 훈장 및 독립유공자로 예우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명료하게 규정해놓았다.

      상훈법 제2조는 “대한민국 훈장 및 포장은 대한민국 국민이나 우방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에 뚜렷한 공적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한다”고 규정해놓고 있다.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 제2조는 대한민국이 이룩되는 바탕이 된 독립유공자의 “희생과 공헌이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숭고한 애국정신의 귀감(龜鑑)으로서 항구적으로 존중”되도록 해야 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이 두 법에 따르면, 대한민국에 뚜렷한 공적을 세운 사람, 그리고 우리와 우리 자손이 숭고한 애국정신의 귀감으로 항구적으로 존중할 가치가 있는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한 활동을 한 사람들만이 독립유공자로서 훈장을 수여받고 예우를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훈장을 받은 공산계 항일운동자들은 대한민국에 뚜렷한 공적을 세웠고, 우리와 우리 자손이 숭고한 애국정신의 귀감으로 존중할 활동을 했는가?

      훈장을 받은 공산계 항일운동자들의 정확한 수자도 모르는 터에 그들 전체의 행적을 검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필자는 언론에 공개된 훈장 받은 공산계 항일운동자 중 지명도가 높은 8명을 골라 그들의 주요 행적을 정리해봤다. 그 결과는 아래와 같다.

  • ▲ 이동휘.
    ▲ 이동휘.

     ➀이동휘(1873~1935)는 1907년부터 국내에서 항일의병운동을 전개하다가 소련 령으로 이주했다. 1919년 상해로 이동하여 고려공산당을 조직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총리를 차지한 후 소련의 지시에 따라 임시정부를 코민테른 휘하 조직으로 만들기 위한 공작을 전개했다. 임정 내 민족주의진영의 반대로 그 공작에 실패하자 임정을 탈퇴하여 소련 령으로 돌아가서 임시정부 와해공작을 전개했다.

     ➁여운형(1886∼1947)은 1920년 8월 상해에서 고려공산당 결성에 참여했고, 뒤이어 이르쿠츠크 고려공산당에 가입했다. 1923년 소련의 지원을 받아 임시정부의 개조 또는 해산을 목표로 한 국민대표대회 소집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1929년 일경에 체포되어 3년 복역 후 석방되어 국내에서 활동했다. 일제 패망 직전 조선총독부로부터 치안유지권을 인수받아, 그것을 근거로 하여 공산주의자들과 협력하여 1945년 8월 16일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그 위원장이 되었다. 건국준비위원회의 주도권을 공산당에 빼앗긴 후 1945년 10월 인민당을 결성했다.
    여운형은 1945년 가을부터 김일성에 포섭되어 비밀리에 북한을 왕래하며 김일성 및 소련군의 지시를 받아 행동했다.

  • ▲ 1946년 2월 박헌영과 여운형(右)
    ▲ 1946년 2월 박헌영과 여운형(右)
     ➂권오설(1897~1930)은 3·1운동에 참여하여 징역 6개월을 복역했다. 1925년 고려공산청년회 책임비서, 1926년 조선공산당 중앙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6·10만세 운동을 준비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5년을 복역했다.
     ➃김철수(1893~1986)는 1920년 상해에서 고려공산당에 가입했고, 1923년 임시정부 개조 및 해체를 추구하는 국민대표대회 소집에 참여했으며, 1925년 국내에서 조선공산당에 가입하여, 1926년 중앙집행위원이 되었다. 1929년 조선공산당을 재건하려다 체포되어 징역 10년을 복역했다. 해방 후 조선공산당의 주류인 박헌영파에 저항하다가 실패하여 당을 떠났으며 그 후 정치활동을 중단했다.
     ➄김재봉(1891~1944)은 3·1운동에 참가했고, 1925년 조선공산당 초대 책임비서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6년간 징역을 복역했다.
  • ▲ 1928년 남편 박헌영과 딸 비비안나와 함께 사진을 찍은 주세죽(자료사진)
    ▲ 1928년 남편 박헌영과 딸 비비안나와 함께 사진을 찍은 주세죽(자료사진)

     ➅주세죽(1899~1950)은 3·1운동에 참가했고, 1925년 경성여자청년동맹(조선공산당 외곽조직)을 결성했으며, 1929년부터 31년까지 모스크바 동방 노동자 공산대학에서 수학했다. 1932년 상해에서 조선공산당재건운동을 전개했다. 조선공산당 책임비서 박헌영의 처였다.

     ➆장지락(김산, 1905~1938)은 1923년 공산청년동맹에 가입했으며, 1924년 북경에서 고려공산당 창립에 참여했다. 1936년 조선민족해방동맹 결성에 참여했으며, 중국공산당군에 참여했다.
     ➇윤자영(1894~1938)은 1921년 상해파 고려공산당에 가입했으며, 1926년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을 결성했고, 29년 조선공산당 재건위원회 결성에 참여했다.

      주요 행적을 정리해본 위의 8명 가운데 훈장을 받을 수 있는 조건, 즉 ‘대한민국에 뚜렷한 공적을 세웠고’, ‘우리와 우리 자손이 숭고한 애국정신의 귀감으로 항구적으로 존중할 활동’을 한 인물은 단 한 명도 없다.

    공산계 서훈자들 모두 훈장 받을 자격 없어

      위에서 행적을 정리해본 8명의 공산계 항일운동자 이외에 훈장 받은 여타 공산계 항일운동자들은 훈장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일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들의 거의 전부가 대한민국 상훈법 및 독립유공자법이 규정한 서훈대상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일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일제하 공산계 항일운동자들은 전원이 다 공산주의 국가의 건국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항일운동을 전개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일제 시기 한국인 공산주의자들은 사상에 대한 헌신성이 매우 강했고 코민테른에 대해 맹목적으로 충성했다. 그들은 언제나 민족보다 사상을 중요시했으며, 그들에게 있어서는 독립운동이 조국의 사회주의화라는 절대 목표를 위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항일운동세력이기는 하나, 대한민국의 건국·독립을 방해한 세력이다.

      공산계 항일운동자들의 활동은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되기 전에는 대한민국 건국 준비단체인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부정·파괴하려 한 것이며, 해방된 후에는 공산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대한민국을 건국하려는 세력에 반대하고 대한민국의 건국을 방해한 것이다. 그들의 활동이 성공했더라면 한반도는 공산화 통일이 되었을 것이며, 대한민국은 건국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한반도에 공산국가를 건립하려 한 그들의 활동은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숭고한 애국정신의 귀감’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건국을 방해한 반대한민국 행동의 모델’이며, 그들은 대한민국에 ‘뚜렷한 공적’을 세운 것이 아니라 ‘뚜렷한 피해’를 주었다. 이런 사람들에게 정부가 훈장을 주었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공산계 항일운동자들이 행한 한반도에 공산국가를 건립하려는 투쟁을 ‘대한민국에 뚜렷한 공적을 세운 것’으로 거꾸로 해석하도록 하고, 그들의 반대한민국 활동을 자손 대대로 ‘숭고한 애국정신의 귀감으로 존중하라’고 선전한 셈이 된다. 

      공산국가를 건립하기 위해 전개한 공산계 항일운동자들의 행동이 ‘대한민국에 뚜렷한 공적을 세운 것’이라면, 공산국가 건립에 반대하여 대한민국의 건국을 준비하고 건국을 실천하기 위해 그들과 싸운 우익 항일운동자들은 ‘대한민국에 뚜렷한 피해를 준’ 사람들이 된다.

      정부는 공산계 항일운동가들에게 훈장을 준 것이 잘못이었음을 선언하고, 그들에게 수여한 훈장 박탈을 위한 절차를 즉각 개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준 훈장을 박탈할 수 없으면, 그들에 반대하여 싸웠던 우익 항일운동자들에게 수여했던 훈장은 모두 박탈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건립에 반하여 공산국가 건립을 위해 투쟁한 사람들과, 공산국가 건립에 반하여 대한민국 건립을 위해 투쟁한 사람들을 다 같이 ‘대한민국에 뚜렷한 공적을 세운’ 사람들로 존중한다는 것은 정신병자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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