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주 비토 계층' 받아안은 국민의당, 향후 원내 전략 어떻게?
  • ▲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 등 지도부들이 13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 등 지도부들이 13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죽어도 2번은 찍지 않는 사람들'의 귀착지는 1번 새누리당이 아닌 3번 국민의당이었다. 국민의 공적(公敵) 친노·친문패권주의 세력을 카운터파트너로 두고 안주하고 있던 집권여당에 경종이 울렸다.

    13일 오후 6시 지상파 3사(KBS·MBC·SBS)와 방송협회 공동예측조사위원회가 발표한 출구조사에 따르면, 새누리당은 야권의 분열에도 불구하고 과반 의석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야권 분열에 힘입어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할 수 있는 180석까지 내심 은근히 바라봤던 것에 비하면 충격적인 결과다.

    이같은 의외의 결과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죽어도 2번은 찍지 않는 사람들'이 새누리당이 아닌 국민의당을 선택지로 택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이전부터 '죽어도 2번은 찍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유의미하게 존재한다고 주장해왔다. 안철수 대표는 지난 2일 전남 목포 평화광장 집중유세에서 "사람들이 아무리 (새누리당에) 실망해도 2번은 절대로 안 찍는다"며 "이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은 우리 국민의당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당 이태규 전략홍보본부장은 이를 '스마트보터(Smart-Voter: 현명하게 친노·친문패권주의 세력은 찍지 않는 유권자 계층)'라고 표현했고, 호남 정치권 일각에서는 '반문(反文) 정서'라고 가리켜왔다. 표현만 서로 다를 뿐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를 수장으로 하는 친노·친문패권주의 세력에 대한 강고한 비토(Veto: 거부권) 계층이 존재한다는 게 이번 4·13 총선을 통해 입증됐다는 것이다.

    이를 단적으로 뒷받침해주는 사례가 전남 순천 출구조사 결과다. 당초 이 선거구에서는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 직전까지 더민주 노관규 후보가 근소하게 앞서가는 가운데,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와 국민의당 구희승 후보가 이를 추격하는 양상이었다.

  • ▲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 등 지도부들이 13일 의원회관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다 호남 참패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 등 지도부들이 13일 의원회관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다 호남 참패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그런데 출구조사에서는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44.1%의 예상 득표율로 더민주 노관규 후보(39.5%)를 추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당 구희승 후보는 11.8%로, 기대보다 저조한 예상 득표율을 보였다.

    호남 28석 중 23석을 국민의당이 석권할 정도로 호남 전역이 '녹색 태풍'에 휩싸였는데, 전남 순천만 국민의당 후보가 10%대 지지율에 머무른 이유가 뭘까. 순천은 호남이 아니라서, 아니면 구희승 후보의 인물 경쟁력이 떨어져서일까.

    둘 다 아니다. 순천 또한 '호남 정서'에 휩싸여 있기로는 어느 지역 못지 않다. 또, 구희승 후보는 주요 3인의 후보 중 유일하게 순천 출생으로 지역 명문인 순천고등학교를 나왔고, 행정·사법 고시 양과를 합격한 뒤 지역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다. 지역 정가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인물만 놓고 따지면 제일 똑똑한 사람"이라는 평이다.

    그런데도 출구조사 결과, 구희승 후보가 10%대 초반 득표율로 주저앉고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당선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민의당을 지지하던 순천 유권자들이 더민주 노관규 후보가 될 것처럼 양상이 전개되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을 심판하기 위해 1번 새누리당에 표를 던졌다"는 게 순천 지역 정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순천 지역 정가 관계자는 13일 본지와 통화에서 "만일 순천에 이정현 의원이라는 존재가 없고, 더민주 노관규 후보와 국민의당 구희승 후보가 양자 대결을 펼쳤더라면, 여기도 전남 다른 지역처럼 구희승 후보가 당선됐을 것"이라며 "새누리당과 국민의당 투표층은 친노·친문 심판 투표층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진단했다.

    전남 순천에서 '3번'에서 '1번' 쪽으로 이동한 '반문(反文) 투표층'들이 수도권 격전지에서는 정반대의 효과를 일으켰다. 새누리당 후보와 더민주 후보가 박빙의 경합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원래대로라면 '죽어도 2번은 찍지 않으니' 1번을 찍어야 할 유권자들이 3번을 찍고 나왔다는 것이다.

  • ▲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13일 서울 마포 당사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다 인천 부평갑에서 문병호 후보가 당선 예측되는 것으로 나타나자 파안대소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13일 서울 마포 당사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다 인천 부평갑에서 문병호 후보가 당선 예측되는 것으로 나타나자 파안대소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이처럼 '죽어도 2번을 찍지 않는' 유권자 계층의 존재가 이번 4·13 총선을 통해 분명히 드러남에 따라, 향후 정치권의 여야 지형은 대혼돈이 예상된다.

    20년 만에 제3원내교섭단체의 지위를 공고히 한 국민의당은 기존 더민주처럼 국회에서 사사건건 정부·여당의 발목만 잡고 반대만 일삼아서는 금방 지지 기반이 무너져내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죽어도 2번을 찍지 않는 사람들'이 그동안 '2번'을 찍지 않았던 것이 그러한 행태에 신물이 나서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의당은 기존의 전통적인 여당도, 야당도 아닌 '제3의 길'을 원내에서 찾아가야 하는데, 이 중도·개혁·민생·실용이라는 길이 말하기는 쉬워도 실제로 걸어가기는 어려운 길이다보니 향후 일정 기간 시행착오도 점쳐진다. '들러리'와 '2중대' 사이의 그 어떤 지점을 찾아내는 것은 지난한 작업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패권주의 친노·친문 세력을 카운터-파트너로 둔 덕에, 그동안 별다른 노력 없이도 '죽어도 2번은 찍지 않는 사람들'의 표를 긁어담으며 손쉽게 과반 의석을 차지해 온 새누리당은 충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특히 향후 전개될 야권 재편 과정에서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가 정계은퇴·대선불출마로 내몰리고 친노·친문패권세력들이 축출되기라도 한다면, 이번 4·13 총선을 통해 입증된 '스마트-보터'들의 새누리당에서 국민의당 방향으로의 이탈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민생·경제를 발목잡는 친노·친문패권 세력이 싫어서 관성적으로 1번에 투표해왔던 사람들의 표심이 이번에 3번 쪽으로 상당수 유출되면서, 초박빙 경합이 벌어지던 수도권 지역구가 상당수 2번으로 넘어갔다"며 "향후로도 1번과 3번 사이에서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유권자들이 많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새누리당이 좀 더 중도 방향으로 이동하는 등 한동안 여야 지형의 대혼돈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