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지원'은 자기 선거 유세… 7·30 4·29 연전연패 부른 서곡
  •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지난해 4·29 서울 관악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정태호 후보의 지원을 위해 신림동 고시촌을 방문한 모습. 문재인 전 대표가 유권자와 접촉하고 있는 가운데 뒷쪽에 가려져 있는 파란 잠바의 인물이 정태호 후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지난해 4·29 서울 관악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정태호 후보의 지원을 위해 신림동 고시촌을 방문한 모습. 문재인 전 대표가 유권자와 접촉하고 있는 가운데 뒷쪽에 가려져 있는 파란 잠바의 인물이 정태호 후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더불어민주당의 '양산 당대표'이자 대주주로 불리는 문재인 전 대표가 대권 조바심에 빠르면 내주부터는 양산 칩거를 끝내고 정치 활동을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 말로는 4·13 총선 지원이라지만 실상은 대선의 사전선거운동이나 다를 바 없어, 자칫 총선을 그르치는 섣부른 행보가 되지 않을까 우려가 커지고 있다.

    4일 정치권에 따르면, 경남 양산에 칩거 중인 문재인 전 대표의 정치 일선 복귀가 임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전 대표의 측근과 관계자들은 지난 2일, 빠르면 내주부터 영남과 강원 등 이른바 야권의 험지(險地)를 중심으로 자원 봉사에 나서는 등 문재인 전 대표가 '조용한 선거 지원'에 나서는 총선 행보를 한다는 것에 의견 일치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전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다음 주부터 영남과 강원 등 야권 열세 지역을 중심으로 선거 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확인했다. 〈뉴스1〉과의 통화에서도 "영남과 강원, 호남 등 (전국을) 망라해 '와주셨으면 좋겠다'는 요청들이 많이 있다"고 관계자가 밝혔다.

    이와 관련, 문재인 전 대표의 '조용한 선거 지원'은 운동화를 신고 골목을 누비며 유권자들과 손을 잡고 사진을 함께 촬영하는 등의 스킨십 위주가 될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지난 2014년 7·30 재보선과 지난해 4·29 재보선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이런 식의 '조용한 선거 지원'을 통해 화망을 초래하고 대패를 겪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전 대표는 2014년 7·30 경기 김포 보궐선거에 출마한 김두관 후보의 지원을 나갔을 때, 유세 차량에 타지 않고 마이크도 잡지 않았다. 커피숍과 마트 등을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악수하고 같이 기념촬영을 하는 것으로 일관하는 등 마치 놀이공원 동물인형캐릭터와 같은 모습을 보였다.

    김두관 후보를 띄워주려는 노력보다 자신의 대면 접촉을 더욱 중시함으로써 "(불과 1년 반 전에 있었던) 자신의 대선 유세인지 김두관 후보의 선거 지원 유세인지 알 수 없다"는 비아냥을 들었다.

    야권 일각에서는 18대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당내 경선에서 맞붙었던 김두관 후보에 대한 앙금이 남아 있어, 일부러 저렇게 패배를 자초하는 유세 방식을 고집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돌았었다.

    지난해 4전 전패의 치욕을 맛봤던 4·29 재보선 과정을 보면 이렇듯 해당 지역구의 후보자보다 자기 자신의 대면 접촉과 존재감 부각을 더욱 중시하는 '지원 유세'는 특정인과의 정치적 앙금 때문이라기보다는 문재인 전 대표의 스타일로 보인다.

    서울 관악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자신의 최측근 정태호 후보 지원에 여러 차례 나섰지만, 이런 식의 행동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특히 신림동 고시촌 방문에서는 불과 수십 미터를 이동하는 데 1시간 가량이 걸리는 등 엄청난 인파를 몰고 다니며 연신 기념촬영을 했지만, 정작 선거의 주인공이 돼야 할 정태호 후보는 소외됐다.

    유권자들과의 기념 촬영에서도 정태호 후보가 가장자리에 서는 등 소외되는 구도가 되기 일쑤였고, 고시생들과 악수와 기념 촬영, 담소까지 모두 마친 뒤 비로소 정태호 후보를 불러 소개하고 악수를 시키기도 했다.

  •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지난해 4·29 서울 관악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정태호 후보의 지원을 위해 신림동 고시촌을 방문한 모습. 문재인 전 대표가 유권자와 접촉하고 있는 가운데 뒷쪽에 서 있는 파란 잠바의 인물이 정태호 후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지난해 4·29 서울 관악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정태호 후보의 지원을 위해 신림동 고시촌을 방문한 모습. 문재인 전 대표가 유권자와 접촉하고 있는 가운데 뒷쪽에 서 있는 파란 잠바의 인물이 정태호 후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결국 선거전 막판 서울 관악을을 찾은 핵심 당직 의원은 "후보가 존재감이 별로 없더라"며 "그렇게 중앙당에서 수도 없이 지원 유세를 나갔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모르겠더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러한 문재인 전 대표의 '지원' 방식은 지난해 2·8 전당대회에서 정면으로 맞붙었던 정치적 라이벌 박지원 전 원내대표의 '지원'과 대조적이다.

    스스로 "나는 내 일보다 지원을 잘해 이름이 (박)지원"이라고 공언하는 박지원 전 대표는 철저히 후보에 중심을 두고 지원 유세를 해, 해당 선거구에서 최대한의 득표력을 이끌어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야권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표가 이번에 총선 험지를 방문한다고 하지만, 강원이나 TK 등은 사실 자기 자신이 지난 대선에서 득표가 저조했던 지역이기도 하다"며 "조용한 선거 지원을 한다면서 일선에서 싸우는 총선 후보자보다도 자기 자신의 대선 사전선거운동이나 하고 돌아가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회의적으로 바라봤다.

    문재인 전 대표의 정치 일선 복귀가 야권 내부 경쟁 구도의 변곡점이 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더민주는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수습을 맡은 이후 안정세인 반면, 국민의당은 극심한 내부 갈등에 휩싸여 있다. 이는 국민의당의 주요 인사인 안철수 대표, 천정배 대표, 김한길 상임선대위원장, 박주선 최고위원, 박지원 전 대표, 정동영 전 열우당의장 등이 각자 노선과 지향점이 서로 다른 채 오로지 비노(非盧)·반문(反文)이라는 것을 유일한 고리로 삼아 결속해 있었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대로 문재인 전 대표가 정치권의 시야 밖에 사라져 있으면 국민의당의 취약한 구조상 내홍은 갈수록 심화될 수밖에 없지만, 문재인 전 대표가 등장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결속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전 대표가 경남 양산에 칩거해 있는 지금에도 '위장 사퇴' '대주주' 주장 등이 빗발치고 있는데, 하물며 다시 정치 일선에 나서면 친노패권주의 논란이 다시 불붙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것이다.

    실제로 문재인 전 대표의 정치 일선 복귀설이 보도된 4일, 국민의당 주요 인사들은 일제히 문재인 전 대표를 정조준하고 나섰다.

    박주선 최고위원은 "친노의 청산이라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고, 오히려 왕친노를 비호하기 위한 눈가림용 컷오프였다"고 직격탄을 날렸고, 박지원 전 대표는 "문재인 대표가 완전히 사퇴한 것도 아니며, 총선 공천이 어떻게 이뤄질지도 모르고 또 총선 과정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지도 아직은 모르고 있다"며 "한두 명의 친노 세력이 컷오프됐다고 (친노패권주의가) 다 정리됐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문병호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의 대주주는 문재인 전 대표와 친노"라며 "지금은 민낯의 얼굴에 화장을 진하게 한 것"이라고 질타했고, 유성엽 원내수석부대표는 "문재인 대표의 사퇴는 진정한 사퇴가 아닌 위장 사퇴"라며 "지금 이 정도 상황에서 친노패권주의가 청산이 됐다고 본다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야권 관계자는 "친노패권주의 척결은 여전히 야권의 제1과제"라며 "문재인 대표의 섣부른 경거망동은 야권의 총선 패배를 부르는 서곡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