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스 입당' 논란에 잠적-제명 위기 직면하자 입장 밝혀.. 논란은 더욱 증폭
  • ▲ 2007년 9월 2일 오전에 아프가니스탄 피랍자들과 함께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해 기자회견에 배석한 김만복 국정원장과 검은 선글라스를 낀 국정원 요원.-조선일보DB
    ▲ 2007년 9월 2일 오전에 아프가니스탄 피랍자들과 함께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해 기자회견에 배석한 김만복 국정원장과 검은 선글라스를 낀 국정원 요원.-조선일보DB

    새누리당 '팩스 입당' 논란을 빚고 사실상 잠적했던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이 9일 뒤늦게 자신의 입장을 내놨다. 미심쩍은 전향에 해당행위 논란까지 야기한 뒤 입당 두 달여 만에 입을 연 것이다.

    김 전 원장은 이날 '국민께 드리는 해명의 글'에서 "(내년) 국회의원 선거 시 부산 기장군 선거구에서 어떤 형태로든 출마해 당선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제가 무소속 후보로 당선되기 위해서는 새정치민주연합 측이 후보를 내지 않아야 한다"고 다소 황당한 주장을 했다.

    특히 그는 '새누리당은 현재까지 저를 부르거나 전화 문의 등 일체의 연락이 없었고 저는 입당허가서나 당원증도 받지 못했다"며 "11월 5일자 신문을 보고 그때서야 새누리당에 입당된 사실을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팩스 입당과 해당행위 논란의 책임을 새누리당에 떠넘기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김 전 원장의 입장 발표에도 불구 각종 논란과 의혹은 더욱 확산하는 모양새다. 의아하고 믿을 수 없는 내용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1. 김만복, 왜 새누리당에 입당했나

    김 전 원장은 이날 입장 발표문에서 "저는 국가안보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남북평화통일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로 일해 왔다"며 "저는 대한민국의 국가안보와 남북평화통일을 위해 국정원에서 34년간을 헌신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 생명을 구출하기 위해 저는 아프가니스탄 인질 구출 때처럼 언제나 어디서나 제 목숨조차 바친다는 각오로 일해 왔다"고도 했다.

    특히 김 전 원장은 자신의 사고방식에 대해 국가안보, 남북평화통일, 사회안정이 우선이기 때문에 보수적 색채가 짙다"고 소개하며 "김대중, 노무현 정부들어 국정원 간부가 되고 국정원장을 하면서 진보정부의 정책에도 참여하였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진보진영을 잘 이해하는 균형적 감각을 가졌다고 자부한다"고 했다.

    그는 또 "국회의원 뱃지가 아니라 국회 마이크가 필요하다"며 "만약 저에게 국회 마이크가 주어진다면 남북관계 진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고 나름대로의 포부를 밝혔다.
  • ▲ 2007년 10월 두손을 맞잡고 북한 김정일에게 고개숙여 인사하는 김만복 국정원장.-조선일보DB
    ▲ 2007년 10월 두손을 맞잡고 북한 김정일에게 고개숙여 인사하는 김만복 국정원장.-조선일보DB

    하지만 김 전 원장의 지금까지의 언행에 비춰보면 그의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이었던 김 전 원장은 그동안 국가기밀을 누설하는 등 각종 돌출행동으로 애매한 국가관 논란을 수차례 야기했던 인물이다.

    김 전 원장은 2011년 일본 잡지 '세카이'에 '천안함 폭침'을 '천안함 침몰'로, '연평해전’을 ‘연평패전’이라고 부르면서 "많은 전문가들은 (천안함 폭침이라는) 한국 국방부의 주장이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북한 대변인식의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는 2007년 9월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선교사가 피랍됐을 당시, 선글라스를 착용한 국정원 요원을 대동하고 기자회견을 하는 해괴한 행태를 보였다. 요원 노출은 물론 첩보 세계의 웃음거리를 자초한 것이다.

    지난 2008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2007년 10월 노 전 대통령이 방북해 가진 제2차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의혹과 관련 김 전 원장을 검찰에 고발했고, 지난 10월에는 국정원이 김 전 원장을 기밀 누설에 따른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각종 국가관 논란을 빚은 김 전 원장이 이제 새누리당의 세작이 돼 나타났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2. 입당 사실을 몰랐다?

    김 전 원장은 "저는 새누리당 내 어느 누구와도 상의없이 이번 국회의원 선거 6개월여 전이 되는 지난 8월 27일 새누리당 홈페이지에 들어가 입당신청서를 다운로드받아 작성한 후 이를 홈페이지에 표시된 팩스번호로 송부했다"고 했다. 당헌·당규에 따른 피선거권 자격요건을 갖추기 위한 사전조치를 해 두려고 했다는 주장이다.

    그는 "새누리당이 저의 입당신청서를 접수하면 일정한 심사 절차를 거쳐 저에게 당원자격을 부여하는 줄 알았다"며 "특히 저는 노무현 정부의 국정원장 출신이기 때문에 새누리당 간부가 저를 불러 입당동기와 입당 후 활동계획 등 여러 가지를 알아보고 입당심사위원회에 회부하여 심의·확정한 후 저에게 입당 사실을 통보해 줄 것으로 믿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이 입당 사실을 통보해 주지 않아 자신이 당원이 됐는지 몰랐다는 항변을 한 셈이다.

    김 전 원장은 또 "새누리당은 현재까지 저를 부르거나 전화문의 등 일체의 연락이 없었고 저는 입당허가서나 당원증도 받지 못했다"며 "저는 새누리당 내에서 저에 대한 입당 심사절차가 진행 중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11월 5일자 신문을 보고 그때서야 새누리당에 입당된 사실을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 전 원장의 해명은 사실과 다를 뿐더러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거짓 주장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새누리당에 따르면,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지난 8월 27일 새누리당 서울시당에 입당원서를 제출했고, 당은 당헌당규에 따른 절차에 따라 지난 8월 31일 입당 축하 문자를 발송했다.

    또 김 전 원장은 지난 9월 10일과 10월 12일 각각 CMS로 1만원씩 당비를 납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축하 문자가 발송됐고, 당비가 두 달간 제출됐음에도 새누리당 가입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결국 "입당 신청서를 접수하면 일정한 심사 절차를 거쳐 당원 자격을 부여하는 줄 알았고, 11월 5일자 신문을 보고 그때서야 새누리당에 입당된 사실을 알게 됐다"는 김만복 전 원장의 주장은 거짓 주장에 불과한 셈이다.

    김 전 원장이 거주하는 서울 광진구의 정준길 새누리당 광진을 지역 당협위원장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 전 원장의 주장을 반박했다.

    정 위원장은, 새누리당에서는 당비를 내는 신입당원에게 당 대표 명의로 감사 메시지를 보내고 있고, 실제로 8월 31일에 메시지가 김 전 원장의 핸드폰으로 보내진 것으로 확인됐다는 점을 들면서, "김 전 원장이 자신의 핸드폰 연락처를 잘못 기재하지 않았다면 당 대표의 축하 및 감사 메시지를 받았을 텐데 본인의 새누리당 입당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 ▲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이 9일 당에 김만복 징계처분 요구서를 제출하고 있다.ⓒ하태경 의원실
    ▲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이 9일 당에 김만복 징계처분 요구서를 제출하고 있다.ⓒ하태경 의원실


    3. 김만복은 왜 입당 사실을 숨기고 야당을 도왔나


    입당 사실을 모르고 야당의 선거를 도왔다는 김 전 원장의 주장도 미심쩍은 해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8월 새누리당에 입당한 김 전 원장은 지난 10월 28일 재보궐선거 부산 기장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 지지유세에 참여했다. 또 지난달 2일에 노무현재단 주최로 열린 '10·4 선언 8주년 심포지엄'에 참석해 '야권 인사'인 양 행동했다. 새누리당 당원이 된 이후에도 새정치민주연합을 돕는 해당행위를 한 것이다.

    부산 해운대 기장을당협위원장인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이날 "해당행위 및 당 위신 훼손 사실이 선명하게 확인됐다"며 김만복 전 원장에 대한 징계요구서를 당 최고위에 제출했다. 

    하태경 의원은 김 전 원장의 해명에 대해서는 "김만복 전 원장, 정말 엽기적으로 정치하시네요"라고 일갈했다. 하 의원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김원장은 새누리 당원 자격 심사 중이기 때문에 상대당 후보를 지원해도 된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인데, 새누리당 입당 허가를 기대하고 있었다면 더 더욱 새누리당 후보 지원을 위해 뛰어야지요"라고 비판했다.

    이어 "입당 확정 전이니 새정련 후보를 위해 뛰어도 상관 없다? 물론 법적으로 불법행위를 한 건 아니지만 김 전 원장님이 정치하려고 했다면, 김 전 원장의 처신은 새누리당 입당이 안 될 치명적 빌미를 주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태경 의원은 김만복 전 원장을 향해 "정치할 욕심은 그렇게 많으면서 정치할 준비는 전혀 안돼 있었다는 것"이라고 꼬집으며, "예상대로 새누리당 당원은 안되실 것 같으니 그냥 무소속으로 열심히 뛰시길 바란다"고 충고했다.

  • ▲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이 9일 당에 김만복 징계처분 요구서를 제출하고 있다.ⓒ하태경 의원실


    4. 새누리당, 김만복 입당 전혀 몰랐나?

    새누리당이 김만복 전 원장의 입당 사실을 왜 두 달이 넘도록 모르고 있었는지를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여당이 나름 야권의 거물급 인사의 입당 사실을 까마득히 모를 수 있느냐는 것이다.

    황진하 사무총장은 지난 6일 기자회견에서 "서울시당에 팩스로 접수된 입당원서를 보고 담당자가 전직 국정원장이라는 사실을 확인해 보고했으면 서울시당 뿐만 아니라 중앙당에도 보고가 됐을 텐데, 담당 직원이 꼼꼼히 챙기지 못했다"며 "이 사실이 보도된 11월5일까진 새누리당에서 누구도 (김 전 원장의 입당을) 몰랐다"고 했다.   

    지난 5일 언론보도 직후 여당 지도부가 우왕좌왕하며 오락가락 행태를 보인 것도 새누리당이 '까막눈'이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여당 지도부 당초 김 전 원장의 입당 사실이 알려지자 "새누리당은 닫힌 정당이 아니라 열린 정당"이라며 반색했다. 김무성 대표는 "노무현 정부 때 국정원장이 입당한다는 건 그래도 새누리당이 희망이 있다는 의미 아니겠느냐"며 "이걸 거부할 어떠한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남몰래 팩스를 통해 입당한 김 전 원장이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은 상황에서, 여당이 얄팍한 정치적 계산에만 몰두하며 구태적 행태를 보인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후 김 전 원장의 해당행위 행태 등의 논란이 도마에 오르자, 새누리당 지도부는 입장을 바꿔 "당의 명예를 실추시킨 행위가 확인될 경우 조치를 취하겠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전직 국정원장의 입당에 대해 하루 만에 말을 뒤집는 망신을 자초한 것이다. 

    여당 일각에서는 "김 전 원장의 입당 보도가 나오기 약 1주일 전쯤 관련 내용이 내부에서 떠돌기 시작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당시에는 관련 내용이 특정 의원들 사이에서만 오갔고, 이들은 떠도는 소문으로 여기며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의 한 재선 의원은 "약 2주 전에 흘러가는 전직 국정원장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며 "당시에는 유언비어로 여겼고, 그런 이유로 당 지도부에까지 보고가 올라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미리 알았다면 (당 지도부가) 그렇게 허술하게 대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5. 김만복 입당을 주도한 세력이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김 전 원장의 새누리당 입당을 부추기거나 주도한 세력이 있다는 이른바 '음모론'을 제기한다.  김 전 원장이 부산 기장군 출신이고, 지금까지 여당 관계자와도 어느 정도의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입당에 대한 사전 협의를 거친 것 아니겠느냐는 주장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 쇼'에 출연, "노무현 정부 때 가장 반대편이라고 할 수 있는 정부 정책을 했던 총책이기 때문에 활용해 먹을 카드가 얼마나 많겠느냐. 새누리당이 북풍같은 공작에 활용하기 위해 입당을 권유했을 가능성도 있겠다"고 주장했다. 김 전 원장의 입당이 새누리당 내부의 기획 작품일 수 있다는 음모론을 제기한 셈이다. 

    김 전 위원장은 이날 발표문에서 "고향사람들로부터 국회의원에 출마할 것을 권유받고 그 당선 가능성을 탐색해 왔다"며 "마침 기장군이 독립선거구가 될 것으로 보도되고 있어 저의 당선 가능성은 더 높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만복 전 원장은, 자신이 새누리당에 입당원서를 제출한 배경에 대해 "보수 일색인 제 주변의 분위기도 작용했다"며 "저는 새누리당 정책과 많은 부분에서 정서가 맞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평소 생각과 주변 분위기 등을 감안해 새누리당 입당원서를 제출했다는 것이다.

    김 전 원장은 또 "저를 국회의원후보로 추대하기 위한 모임도 구성됐다. 그들은 저에게 '기장 군민 정서상 새누리당 후보가 되라고 했고, 새누리당이 공정하게 경선만 하면 제가 공천을 받을 수 있으며 본선에서도 승리는 확실하다'고 했다"며 주위의 권유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이 같은 김 전 원장의 주장에 대해 "특이한 정신세계로 인한 돌출 행태의 연장선"이라고 비판한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김 전 원장은 각종 기행으로 논란을 수차례 야기한 바 있지 않느냐"며 "이번 팩스 입당 논란도 일반 국민의 정서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 분이 당원으로서 새누리당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기대보다는 폭탄 발언으로 당을 궁지에 몰아넣을 가능성이 훨씬 많아 보인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