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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과 상관없음ⓒ'이태원 살인사건' 영화 스틸컷
‘이태원 살인사건’의 전말에 대해 관심이 증폭됐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1997년 4월 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고(故) 조중필(당시 22세·대학생)씨가 흉기에 마구 찔린 참혹한 모습으로 살해된 채 발견된 일이다.
유력한 용의자는 2명으로 사건 당시 함께 화장실에 있던 재미동포 에드워드 리와 미 군속의 아들인 혼혈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이 지목됐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를 범인이라고 주장, 수사당국을 혼란스럽게 한 것.
심지어 친구 사이인 두 사람은 패스트푸드점에 앉아 칼을 가지고 대화를 하다 “네가 그걸로 사람을 찌를 수 있느냐” “보여주겠다”는 등의 대화를 나눴고, 그 순간에 길을 지나가다 화장실을 쓰려고 이 패스트푸드점에 들어온 조씨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재미 삼아 한 과시’의 목적으로 한 생명을 앗아간 것.
검찰은 이들 중 리가 조씨를 찔렀다고 보고 살인 혐의와 더불어 패터슨은 흉기소지,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그해 10월 1심 재판부는 리에게 무기징역을, 패터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각각 선고했고 이듬해 1월 항소심 재판부는 리에게 징역 20년을, 패터슨에게 장기 1년6개월·단기 1년의 징역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1998년 4월 리의 사건에 대해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1999년 9월 재상고심에서 대법원은 “리는 범인이 아닌 목격자로 추정된다”며 무죄를 확정했다.
검찰은 뒤늦게 패터슨을 진범으로 지목하고 재수사에 착수했지만 때가 늦었다.
2심 선고 후 주범이 아닌 공범으로 징역형을 살던 패터슨은 1998년 8·15 특별사면으로 이미 석방된 상황이었다.
패터슨은 1999년 8월 당국이 출국금지를 연장하지 않은 틈을 타 미국으로 도망갔다. 검찰이 이를 알고 조치를 취하려 했을 때 그는 이미 한국에 없었고 국민들의 분노는 높아졌다.
숨진 조씨의 유족들은 사건의 진상을 규명할 기회를 박탈당했다며 국가에 배상을 요구했고, 법원에서 이를 받아들여 3400만원을 유족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정부는 패터슨에 대해 미국에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다.
한편 ‘이태원 살인사건’은 2009년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