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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오 박사 재판을 ‘가십’으로 만든 한국 언론

박원순 아들 병역비리 의혹 재판, 언론들 단순 흥밋거리로 여겨

입력 2015-09-22 15:26 | 수정 2015-09-23 13:59

▲ 21일 열린 양승오 박사 재판 5차 공판 소식을 다룬 기사들. 대부분 강용석 변호사의 등장을 주요 내용으로 다뤘다. 반면 공판 내용을 제대로 전달한 기사는 거의 없었다. ⓒ 네이버 화면 캡처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 박주신씨 병역비리 의혹을 핵심쟁점으로 하는 양승오 박사(동남권원자력의학원 암센터 핵의학과 주임과장) 등 시민 7명의 공직선거법 위반 5차 공판이, 21일 서울중앙지법 320법정에서 형사 합의 27부(재판장 심규홍 부장판사) 심리로 열렸다.

이날 재판에는 그 동안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주요 일간지와 지상파 방송사, 종합편성채널 소속 기자들이 다수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법정에 기자를 보내 공판을 취재한 언론사는 15곳 안팎 정도였다. 지난해 12월 제1회 공판준비기일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모두 10차례 열린 공판 가운데, 이날처럼 많은 기자들이 법정을 찾은 경우는 없었다.

그만큼 취재 열기는 뜨거웠다.

박원순 시장의 박주신씨가 대리신검이나 영상자료 바꿔치기 등의 방법으로 병역을 기피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핵심쟁점으로 하는 ‘양승오 박사 재판’은, 이 사건을 심층 취재하고 있는 뉴데일리의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뉴데일리는 2011년 11월 말 강용석 전 의원이 최초로 의혹을 제기했을 때부터 이날까지 5년 동안 ‘박주신씨 병역비리 의혹’과 ‘양승오 박사 재판’을 심층 보도하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 사건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다만 재판 소식을 전하는 뉴데일리의 기사가 누리꾼들로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받으면서, 프리미엄 조선(조선닷컴 유료 온라인판)과 미디어펜 등 일부 언론이 이 사건 소식을 이따금 내보냈을 뿐이다.

그러나 지난 1일 지상파 방송으로는 사실상 처음으로 MBC가 저녁 뉴스데스크를 통해 이 사건을 비중있게 다루고, 다음날 박원순 서울시장이 임종석 정무부시장을 앞세워 사건을 보도한 방송사 사장과 편집데스크, 기자 등에 대한 민형사 소송 방침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언론사들은 이 사건을 주요 아이템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 ‘박주신씨 병역비리 의혹’을 보도한 1일 저녁 MBC 뉴스데스크. 당일 방송에서 MBC는 양승오 박사의 인터뷰를 내보내기도 했다. ⓒ 화면 캡처

‘박주신씨 병역비리 의혹’과 ‘양승오 박사 재판’은 정치권에서도 화제가 됐다. 병무청과 서울시에 대한 국회 국방위와 안행위 국정감사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여야 국회의원이 고성을 주고받는 모습도 연출됐다.

이런 사정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기자들의 발길을, 이 사건 공판이 열리는 법정으로 향하게끔 만들었다.

그러나 취재 열기만 뜨거웠을 뿐, 결과는 허무했다.

이날 공판은 오전 10시 시작돼, 오후 6시까지 진행됐다.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실제 재판시간은 6시간 정도 걸렸다. 이 시간 동안 재판과정 전체를 취재한 언론사는 뉴데일리를 제외한다면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언론사 기자들은 오전 공판이 끝나기 전에 자리를 떴다. 2시간 동안 열린 오전 공판을 끝까지 지켜본 기자가 3명 정도에 불과할 만큼 기자들은 쉽게 자리를 떠났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날 공판소식을 전한 언론사들의 기사는, 제대로 된 재판 내용을 전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언론사는 이날 재판장과 검찰, 변호인, 그리고 이들이 벌인 증인신문 내용을 거의 담아내지 않았다.

더 황당한 것은, 대부분 언론사가 이날 공판소식이라며 출고한 기사가, 연예 스팟뉴스에서나 볼법한 ‘가십(gossip)’ 기사 수준이었다는 사실이다.

재판결과에 따라 한국의 정치 지형이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는 초대형 현안을 다루는 이 사건이, 한순간에 독자들의 말초본능이나 자극하는 흥밋거리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야권 유력 대권주자 아들을 둘러싼 병역비리 의혹의 실체적 진실 규명을 핵심쟁점으로 하는 재판을, 엘로우 페이퍼 속 사건사고 뉴스로 끌어내린 언론사는 인터넷매체만이 아니었다.

조선과 동아를 비롯한 주요일간지는 물론이고 지상파 방송과 종편도 약속이나 한 듯 공판 소식을 가십성 기사로 다뤘다.

이날 공판소식을 다룬 대부분 기사에 빠짐없이 등장한 인물은 강용석 변호사였다. 재판정에 ‘출석’만 했을 뿐 법정에서 단 한마디로 하지 않은 강용석 변호사가, 이날 공판 소식을 전한 대부분 기사의 사진과 제목과 표제어를 장식했다.

강용석 변호사가 이날 법정에 변호인 자격으로 출석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강 변호사는 이날 공판에서 한마디 변론도 하지 않았다.

다만 강 변호사는 재판이 끝나고 자신에게 몰려든 기자들 앞에서, “박주신씨가 병무청에서 촬영한 CT와 그가 병무청에 제출한 엑스레이가 다르다. 박주신씨는 재검을 받아야 한다”는 정도의 발언을 했을 뿐이다.

공판 소식을 전하는 기사가, 법정에서 한 마디 변론도 하지 않은 변호인의 등장에 초점을 맞췄다는 사실은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대부분 언론사의 기사가 변론도 하지 않은 강 변호사의 등장만을 다뤘을 뿐, 실제 공판 내용은 단 한마디도 전하지 않았으니, 이날 공판 소식을 전한 기사는 법조기사라기 보다는 연예 가십기사에 가까웠다.

공판에서 변호인과 검찰이 어떤 쟁점을 놓고 공방을 벌였는지, 재판장은 어떻게 재판을 지휘했는지, 피고인들은 또 어떤 발언을 했는지 등 실제 공판 소식을 전한 기사는 뉴데일리와 조선닷컴을 제외하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나마 조선도 공판 진행과정에 대한 내용은 단신처럼 다루면서, ‘강용석 변호사의 등장’에 더 비중을 뒀다.

심지어 상당수 언론은 재판과 전혀 관계가 없는 강용석 변호사의 사생활을 깨알같이 설명하는 과잉친절을 베풀었다.

이는 주요일간지도 예외가 아니었다.

조선일보가 22일 내보낸 양승오 박사 재판 관련 후속기사(3년 前엔 의학적 판단 존중한다더니… 강용석, 또 박원순 아들 병역의혹 제기)는 “의원직 사퇴 이후 주로 방송활동을 하던 강 변호사는 최근 여성 블로거와의 불륜설에 휘말리며 모든 방송에서 물러난 상태”라며, 강 변호사 근황을 자세하게 전했다.

TV조선은 아예 “불륜 논란으로 최근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강용석씨. 오랜 만에 변호사 자격으로 법정에 등장했습니다”라는 멘트를 관련 뉴스 앞머리에 달았다.

양승오 박사 재판 소식을 다룬다면서, 공판 내용은 배제하고 강 변호사의 등장 배경을 분석한 기사까지 나왔다.

“불륜 논란으로 궁지에 몰린 강용석이 개인적으로는 분위기 반전을 노리는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 조선일보 22일자 ‘강용석, 박원순 아들 병역비리 의혹 3년 만에 재점화…'분륜 스캔들' 논란에서 시선 돌릴까’ 기사 중 일부


주요 언론이 공판을 취재하고도 이런 우스꽝스런 행보를 보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추론할 수 있다.

하나는 양승오 박사 재판 자체가 갖고 있는 난해성이다.

양승오 박사 재판은, 언론사 법조기자들이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법정기사와는 다른 측면을 갖고 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박주신씨 병역비리 의혹에 대한 진실규명이다.

핵심피고인인 양승오 박사는 국제적인 권위를 가진 영상의학전문의이며, 김우현씨 또한 풍부한 임상경험을 갖고 있는 현직 치과의사다.

더구나 이들이 ‘박주신씨 병역비리 의혹’의 근거로 들고 있는 ‘골수신호강도’, ‘석회화 현상’, ‘극상돌기 배열 형태’ 등은 근골격계 분야 전문가가 아니면 쉽게 이해하기 힘든 학술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 양승오 박사 등 피고인들이 ‘박주신씨 병역비리 의혹’의 핵심 증거로 들고 있는, 주신씨 명의의 3개의 엑스레이. 왼쪽부터 공군훈련소(2011년 8월 촬영)-자생병원 엑스레이(2011년 12월 촬영)-비자발급용 엑스레이(2014년 7월 촬영). ⓒ 뉴데일리DB

변호인들이 영상자료 바꿔치기 의혹의 근거로 들고 있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박주신씨 공개신검을 진행한 병원) MRI 팍스(PACS)서버 문제라든가, 이른바 시간의 역전 현상(박주신씨 허리 MRI 촬영시각과 해당 영상자료가 서버에 입력된 시각의 역전) 등도 일반인들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다.

때문에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을 처음부터 심층 취재한 언론사가 아니라면, 양승오 박사 재판의 주요 쟁점을 파악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이 사건을 외면하던 언론사 기자들이, 앞선 공판과정에 대한 이해도 없이, 단 한번의 법정 취재만으로 공판 주요 쟁점을 알기 쉽게 정리해 이를 기사화하기란 애초부터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두 번째 이유는 양승오 박사 재판의 근간을 제대로 이해하는 기자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양승오 박사와 그의 변호인인 차기환 변호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해석해선 안된다고 당부하고 있다.

양승오 박사 재판은 흔하디흔한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이 아니다.

피고인들의 유무죄를 다투기에 앞서, 이 땅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고위층 자녀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시민들의 ‘투쟁’이란 측면에서 이 사건을 바라볼 때, 피고인과 변호인들이 왜 이 사건에 강한 애착을 가지는지 이해할 수 있다.

▲ 양승오 박사(사진 왼쪽)와 차기환 변호사.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사회지도층 자녀의 병역비리 의혹이, 공권력의 힘이 아닌 시민의 힘과 노력으로 법정에서 다뤄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엄청난 ‘사건’이다.

양승오 박사 5차 공판 소식을 연예 뉴스처럼 취급하거나, 강용석 변호사가 과거 국회의원이었다는 사실에 관련 뉴스를 정치기사로 다루는 이면에는, 이 사건이 갖는 의미에 대한 언론사와 기자들의 무지((無知)가 있다.

한편 이날 공판에서는 박주신씨 증인소환을 위한 소재지 파악, 이 사건 핵심 증거인 박주신씨 명의의 영상자료 외부감정 촉탁기관 결정과 관련된 사안이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박주신씨의 공개신검이 진행된 세브란스 병원 방사선사들을 대상으로 한 증인신문에서는, 주신씨 공개신검 당일 MRI 영상자료가 바꿔치기 됐을 가능성을 놓고 변호인들의 집중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다음 공판은 24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320호 법정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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