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구 급격한 통폐합은 국민의 정치 불신 초래… 지역대표성 존중해야
  • ▲ 선거구획정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대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차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선거구획정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대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차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가 의원 정수를 현행 300명으로 유지한다는 방침만 정한 채로 공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의 독립기구인 선거구획정위원회로 넘겼다. 지역구·비례대표 의원 비율 등을 선거구획정위에서 결정하게 된 것이다.

    지난해 7월 30일 헌법재판소가 지역구 인구의 상하한선을 2대1 범위 이내로 하라고 결정했고, 야권에서는 비례대표 증원을 통한 권역별 비례대표제 시행을 요구하고 있는 등 지역구·비례대표 의원 비율 자체가 민감한 사안이다보니 격론이 예상된다.

    선거구획정위 스스로 지난 13일 기자회견을 통해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법정기한인 10월 13일까지 선거구획정안을 제출하겠다"고 공언했다. 지나치게 파격적인 시도를 하려 하면 스스로 설정한 시한을 지키기 어렵다. 선거구획정위는 올해 처음으로 독립기구로 구성됐기 때문에, 법정시한을 맞춰 선거구를 획정하는 모습만 보여줘도 헌정사에 좋은 선례를 남기는 셈이다.

    국회 산하에 선거구획정위가 있었던 시절에는 '벼락치기'로 선거구가 획정되는 것이 일상다반사였다. 지난 19대 총선 때도 4·11 선거일이 불과 두 달도 남지 않은 2월 27일에야 선거구가 획정됐다. 특히 전남 담양·곡성·구례 선거구의 공중분해는 이 때야 확정되는 바람에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고 있던 예비후보들과 지역구민들이 모두 망연자실하는 상황이 초래되기도 했다.

    이런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게 선거구획정위에 부여된 역사적 소임이다. 반드시 10월 13일까지 국민의 여망을 담은 선거구 획정안을 마련해 국회로 넘기고, 국민과 함께 여야 정치권을 압박함으로써 11월 13일 법정시한에 맞춰 선거구가 획정되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선거구획정위의 획정안이 국민 정서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고, 지나치게 이상적이거나 파격적이거나 또는 정치 현실과 유리돼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국민 정서에 역행하는 획정안을 내게 되면 여야 정치권에 반발할 명분을 주게 되는 셈이고, 논란이 발생하면 법정시한을 못 지키게 된 책임은 획정위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방안이 국민의 여망을 담은 획정안일까.

    제헌헌법 이래로 국민은 지역구 국회의원을 자신과 자신의 지역을 대표하는 대의대표로 생각해 왔다. 비례대표는 제헌의회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기도 했을 뿐더러 제3공화국 헌법에서 '전국구'라는 이름으로 처음으로 등장한 이래 증감과 부침이 있었지만 국민들이 체감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

    제4공화국 헌법에서는 심지어 전국구가 없어지고 유신정우회라는 이름으로 대통령이 전부 지명하기까지 했지만, 국민들 사이에서의 동요는 크지 않았다. 만일 지역구 국회의원을 이런 식으로 대통령이 지명하고 투표나 선거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혁명이 일어나 유신 정권은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비례대표가 줄어들었다고 충격을 받는 국민은 없지만, 자신이 속한 지역구가 통폐합되거나 분해되면 지역사회에 미치는 충격과 파장이 상당하다는 뜻이다.

    특히 단원제 국회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 헌정에서 국회의원의 지역대표성은 그 의의가 결코 작지 않다. 최근 이른바 '김영란법'에서 한우와 굴비를 제외하자고 하는 논란은, 그 주장의 당부는 차치하고서라도 우리 농어민이 목소리를 내는 방법은 이런 식으로 자신의 농어촌 대의대표를 압박하는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만일 비례대표를 증원하면 농어촌 지역구는 대폭적인 통폐합과 분해가 불가피할텐데, 이런 식으로 의원들의 지역대표성이 희석되면 국민들의 정치 불신 현상은 심화되고 국민과 여의도는 더욱 유리될 것이다. 지역구·비례대표 의석 비율을 정함에 있어서 국민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숙고해야 할 이유다.

    한편으로, 국회 정개특위에서 의원 정수를 현행 유지하기로 한 '가이드라인'은 300명이 아닌 299명을 유지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21조 1항은 국회의 의원 정수는 299인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부칙 제3조에서 '2012년 4월 11일에 실시하는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제21조 제1항에도 불구하고 2012년 7월 1일 세종특별자치시가 새로이 설치되는 것을 고려하여 국회의 의원 정수는 300인으로 한다'고 19대 총선에 한정해 특별한 예외 규정을 뒀을 뿐이다. 그렇다면 다가올 20대 총선에서는 부칙이 적용될 여지가 없으므로 '의원 정수 현행 유지'란 곧 300명이 아닌 299명을 유지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한 법리해석이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부칙까지 마련하는 꼼수까지 동원한 끝에 의원 정수가 300인이 된 경위도, 따지고보면 여야가 각자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에서 지역구를 맞춰서 줄여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298명 또는 300명이 돼야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에 불과하다. 국회 산하에 선거구획정위가 있던 시절의 당리당략의 산물인 것이다. 기왕 선거구획정위가 독립기구가 됐으니만큼 이부터 바로잡아야 존재 의의가 입증될 것이다.

    '소 걸음으로 천리를 간다'는 뜻의 우보천리(牛步千里)라는 말이 있다. 느리지만 우직한 발걸음으로 걷다보면 천 리를 갈 수 있다는 뜻이다. 선거구획정위가 역사적인 독립기구로서 내딛는 첫 걸음을 지나치게 파격적으로 크게 내딛으려 하지 말고, 우보천리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면 반드시 국민은 선거구획정위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 위원 명단

    위원장 김대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차장
    위원 가상준 단국대학교 교수
    위원 강경태 신라대학교 교수
    위원 김금옥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위원 김동욱 서울대학교 교수
    위원 이준한 인천대학교 교수
    위원 조성대 한신대학교 교수
    위원 차정인 부산대학교 교수
    위원 한표환 충남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