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들 민감해 협상 어려울 듯 "너 같은 것은 죽어야", "당이 망할 때까지 투쟁"
  •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12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광복70주년 특별기획전 행사장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양당 대표는 지난 10일 선거제도와 관련해 짧은 대화를 나눴지만, 이날은 나란히 앉았는데도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아 대조를 이뤘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12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광복70주년 특별기획전 행사장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양당 대표는 지난 10일 선거제도와 관련해 짧은 대화를 나눴지만, 이날은 나란히 앉았는데도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아 대조를 이뤘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내년 4·13 총선이 8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여야가 '총선 룰'을 정할 선거제도 문제를 놓고 그 어떤 국사(國事)보다 중하다는 자세로 팽팽히 맞서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도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어떤 양보도 있을 수 없다는 자세다.

    이 때문에 선거제도 논의는 점점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모양새다. 그간 국고(國庫)와 국민의 조세 부담 등에 직간접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공무원연금 개혁 등 중한 나랏일마다 뜻밖에 '쿨한' 태도로 합의에 이르곤 했던 여야가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한 치의 후퇴도 없는 신경전을 펼치는 이유가 뭘까.

    정치권 관계자들은 "김무성 대표나 문재인 대표나 내년 총선에서의 패배는 곧 정치생명의 종결로 이어질 수 있다"며 "협상의 여지가 거의 없다"고 평했다.

    한 관계자는 "김무성·문재인 대표 둘 다 YS(김영삼 전 대통령)나 DJ(김대중 전 대통령), JP(김종필 전 국무총리) 같은 '오너' 지도자가 아니다"라며 "선거제도 논의를 그르치면 퇴진하거나 당이 깨지는 등 후폭풍이 일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에 섣불리 나설 수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무성 대표와 문재인 대표는 최근 두 차례 만남이 있었지만, 정치권의 최대 현안인 선거제도와 관련해서는 조심스럽게 의견을 교환하는 데 그쳤다.

    지난 10일 국회본청 앞에서 김무성 대표와 만난 문재인 대표는 "정개특위(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 재량권을 달라"고 말했고, 김무성 대표는 이에 "(재량권을) 주고 있다"고 짧게 대꾸했다. 이후 각자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탐으로써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양당 대표는 12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광복70주년 특별기획전 행사에서 또 만났지만, 나란히 앉았음에도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공무원연금 정국이 계속되던 지난 5월, 5·18 광주 기념행사장과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봉하마을 추도식, 25일 부처님 오신 날 조계사 법요식 등에서 나란히 앉았을 때 서로 손짓까지 해가며 긴밀한 대화를 나눴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양당 대표가 직접 팔을 걷어부치고 선거제도 협상 테이블에 나서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라는 지적이다.

     

  • ▲ 새누리당 여상규 의원이 지난 2012년 정개특위 협상 과정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경남 남해·하동이 합구될 조짐을 보이자, 정개특위 회의장에 난입해 같은 당 권성동 의원의 의사봉을 빼앗아 의결을 저지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 새누리당 여상규 의원이 지난 2012년 정개특위 협상 과정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경남 남해·하동이 합구될 조짐을 보이자, 정개특위 회의장에 난입해 같은 당 권성동 의원의 의사봉을 빼앗아 의결을 저지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실제로 여야 양당은 과거 선거제도 논의 과정에서도 '단 1석이라도 손해보지 않겠다'는 자세로 끝까지 팽팽하게 맞서곤 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19대 국회의 의원 정수가 18대 국회에 비해 1석이 늘어나 300명이 된 사례를 들 수 있다.

    당시에도 국회에서 근무했던 의원실 관계자는 "의원 정수를 늘리려면 확 늘리지, 고작 한 명을 늘리고 싶어서 그런 합의를 했겠느냐"며 "분구를 통해 늘어나는 선거구 숫자가 홀수(3개 선거구)였기 때문에 양당 텃밭에서 합구를 통해 선거구를 줄이는 게 '짝이 맞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라고 회상했다.

    즉, 경기 파주가 파주갑과 파주을로, 강원 원주가 원주갑과 원주을로 분구(分區)되고 세종자치시 선거구가 신설돼 지역구가 3개 늘어났는데, 양당의 텃밭인 영·호남에서는 선거구를 줄이자면 짝수로 맞춰서 줄여야 되니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당시 새누리당은 영·호남에서 각각 2개씩 지역구를 줄이자고 제안했으나 이렇게 되면 전체 지역구 수가 3개가 늘고 4개가 줄어들어 298개가 되는 상황이었다. 반면 민주통합당은 경북 영천과 경남 남해·하동 선거구를 합구(合區)하고 전남 담양·곡성·구례 선거구를 분해하는 방식으로 3개를 줄일 것을 제안했지만, 이에 따르면 여당 텃밭에서 2석, 야당 텃밭에서 1석이 줄어들어 여당이 1석 손해보는 만큼 새누리당이 받을 수 없는 제안이었다.

    이 때문에 여야 양당은 치열한 대립을 거듭하다가 도저히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국민들의 거센 비난에도 불구하고 두 눈을 꾹 감고 영·호남에서 1석씩만 줄여 전체 의원 정수를 300석으로 늘리기로 한 것이다.

    의원실 관계자는 "국민의 비난은 잠깐이고 여야의 의석 손해는 4년 가는 것"이라며 "단 1석도 양보할 수 없는데 자칫하면 의석 수십 석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선거제도의 큰 틀을 바꾸는 문제를 누가 어떻게 통크게 협상하고 결단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게다가 국회의원은 자신의 지역구가 위기에 처하게 되면 더 이상 당 지도부도 원내지도부도 안중에 없게 된다. 평소 서로 "존경하는 ○○○ 대표님, 존경하는 선배(동료) △△△ 의원"이라고 호칭하던 예의와 체면은 온데 간데 없어진다. 이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 ▲ 새누리당 여상규 의원이 지난 2012년 정개특위 협상 과정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경남 남해·하동이 합구될 조짐을 보이자, 정개특위 회의장에 난입해 의결을 저지하다가 국회 경위에 의해 강제로 쫓겨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 새누리당 여상규 의원이 지난 2012년 정개특위 협상 과정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경남 남해·하동이 합구될 조짐을 보이자, 정개특위 회의장에 난입해 의결을 저지하다가 국회 경위에 의해 강제로 쫓겨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지난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새천년민주당 김태랑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경남 창녕을 밀양과 합구하기로 결정되자, 의원총회장에서 선거구 획정에 참여한 같은 당의 이상수 의원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날리며 "너 같은 것은 정말로 죽어야 한다"고 막말을 했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는 새누리당 여상규 의원의 지역구인 경남 남해·하동 선거구가 합구 대상에 올랐다. 그러자 여상규 의원은 정개특위 여당 간사인 주성영 의원의 의원회관 7층 사무실로 보좌진과 함께 몰려갔고, 주성영 의원 측은 의원실 문을 걸어잠근 채 농성전(籠城戰)에 돌입했다.

    이후 주성영 의원이 약속 때문에 사무실 밖으로 나서자, 여상규 의원은 주성영 의원에게 달려들어 의원회관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주차장까지 엉겨붙었다. 두 의원은 이 과정에서 서로 멱살잡이까지 가는 실갱이를 벌여 의원회관을 방문한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여상규 의원은 서울법대 69학번으로 서울고등법원 판사까지 지낸 법조인 출신이고, 평소 의정활동을 하면서 온화하고 조용한 면모로 알려졌는데도 지역구 앞에서는 별 수 없었던 셈이다.

    이처럼 자기 지역구의 존속에 사활이 걸린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소속 의원들을 어렵사리 하나로 이끌고 있는 김무성 대표와 문재인 대표 입장에서는 선거제도를 다루면서 선뜻 양보하거나 '통큰 결단'을 할 수가 없다. 부산 지역 의원실 관계자는 "둘 다 부산 출신이지만 선거제도 만큼은 협상 테이블이 열린다면 웃으며 '니 무라'(네가 먹어라) 하는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다"고 단언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옛날에도 선거제도 협상을 그르치거나 지역구가 없어지면 총재 앞에서 드러누워 '이 당이 망할 때까지 투쟁하겠다'(한나라당 임진출 의원)던 사람들은 항상 있었다"면서도 "그 때는 총재가 제왕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어 다 '실드 치고'(무마해주고) 넘어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게 안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7·14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이후 '오스트리아식 개헌 발언 논란' 'K~Y 수첩 사건' '국회법 개정안 사태' '유승민 원내대표 거취 논란' 등에 이어 최근의 '목함지뢰 매설 도발 책임자 문책 발언 논란'까지 친박(親朴)의 숱한 '흔들기'를 넘어서며 자리를 지켜온 김무성 대표로서는, 선거제도 논의를 그르쳐 내년 4·13 총선에 결정적으로 불리한 형세를 만들어놓으면 퇴진 요구까지 나올 수도 있다.

    문재인 대표도 마찬가지다. 2·8 전당대회로 선출된지 불과 6개월, 4·29 재보선 전패로 당이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선거제도 협상을 그르치면 그야말로 본인이 물러나든지 당이 깨지든지 둘 중에 하나가 될 공산이 높다.

    정치권 관계자는 "오픈프라이머리·권역별 비례대표제는 그 논의의 스케일상 정개특위에서 결정할 수가 없고, 양당 대표가 나서서 협상과 결단을 해줘야 하는데 상황이 쉽지 않다"며 "선거제도 논의가 어떻게 전개되고 결론을 맺을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가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