劉 "국회법 통과 송구스러워"… 전격적인 대처로 한발 물러서
  • ▲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공무원 연금 개혁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공무원 연금 개혁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사태는 예상보다 심각했고, 상처도 깊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국무회의에서 쏟아낸 이례적인 수위의 대(對) 국회 공격에 새누리당은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의 전격적인 대처로 사태는 일단락 지었지만, 흉터는 깊다. 곧 덧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여전히 상존한다.

6월 국회의 본회의날인 25일, 청와대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여야는 모두 큰 혼란에 빠졌다.

특히 공무원연금 개혁안과 국회법을 연계한 책임 논란을 직면한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김무성 대표가 손을 내밀었다. 취임 5개월에 불과한 여당 원내대표의 사퇴는 곧 회복할 수 없는 당청 관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당초 새누리당은 2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13시 30분께 의원총회를 열고 본회의에서 다룰 60여개의 법안에 대해 브리핑을 한 뒤, 본회의 직후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다시 의원총회를 소집하기로 했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야당이 오늘 오후 2시 본회의 안건처리에 대해 어느 정도 협조할지 불확실하다"며 "오후 2시에 예정된 본 회의가 정상 가동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소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놨다.

결국 유승민 원내대표의 우려대로 야당은 본회의 안건 처리에 협조하지 않고 '보이콧'을 선언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정치는 사라지고 대통령의 고집과 독선만 남았다. 이건 정치가 아니다"라며 강수를 뒀다.

본회의가 예정대로 열리지 못하자 새누리당의 의원 총회는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를 논의하는 장이 됐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지난 달 말 의원총회까지 열어 국회법이 위헌소지가 없다며 의원들을 설득해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통과시켰고, 그 결과 당·청 관계가 어려워졌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였다.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 등이 공개적으로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압박했다.

  •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유승민 대표를 두둔하고 나섰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유승민 대표를 두둔하고 나섰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벼랑 끝에 몰린 유승민 대표의 사퇴론이 갑자기 힘을 잃은 건 유 원내대표가 전격적인 사과 입장을 밝히면서부터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국회로 돌아온 국회법 재의를 요구하지 않기로 당론을 모았다. 유 원내대표는 "여당 원내대표인 저와 청와대 사이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제 자신을 되돌아보고 다시한번 당청관계에 대한 걱정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법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던 유 원내대표의 입장 변화에는 김무성 대표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김 대표는 "의총 때 사퇴 요구도 몇 명 있었지만 다수가 봉합을 좀 더 잘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며 "사과를 하라는 말도 있는데 최고위원회의에서 신중히 논의할 것"이라며 유 원내대표를 적극적으로 감쌌다. 또 이 과정에서 김 대표는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촉구하는 친박계 의원들을 일일이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신', '패권주의' 등 그동안 찾아볼 수 없었던 강경한 발언을 쏟아낸 박 대통령 앞에서 김무성 대표가 사태 수습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을 두고 '김무성 대표가 한발 물러섰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더 이상 당청 관계를 악화시켜서는 안된다는 위기감과, 여당 내 분열을 기회로 삼으려는 야당의 전략에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절박함이 반영됐다는 관측이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물러나면 김무성 대표의 입지도 불편해진다는 분석도 있다.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을 이유로 유승민 원내대표를 보호해줬다는 지적이다.

    김무성 대표로서는 만일 유승민 원내대표를 내친다면 후임으로 내세울 대안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지난 2월 원내대표 경선에서 유승민 원내대표와 경쟁했던 이주영 의원이 유력한 차기 원내사령탑이라는 점은 김 대표에게 고민거리으로 작용했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유 원내대표의 유임으로 당청 관계의 갈등은 여전히 상수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어 보인다. 박 대통령이 이례적인 수위로 '여당 원내사령탑'을 직접적으로 겨냥한데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을 비롯한 당권 다지기가 절실한 여당 지도부 역시 언제까지 물러설 수 만은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에 당청 갈등은 당분간 현재 진행형으로 지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