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000여 대 내외 도입‥“무분별한 사용으로 감소했다 최근 사용 증가”
  • ▲ 35번 환자로 불렸던 삼성서울병원 의사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그를 마치 '메르스 확산의 주범'처럼 몰아세운 뒤 상태가 악화됐다. 이때 한 언론은 서울시 관계자의 말만 믿고 그가 '뇌사 상태에 빠졌다'고 보도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후 그는 '에크모(ECMO)' 시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채널A 관련보도 화면캡쳐
    ▲ 35번 환자로 불렸던 삼성서울병원 의사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그를 마치 '메르스 확산의 주범'처럼 몰아세운 뒤 상태가 악화됐다. 이때 한 언론은 서울시 관계자의 말만 믿고 그가 '뇌사 상태에 빠졌다'고 보도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후 그는 '에크모(ECMO)' 시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채널A 관련보도 화면캡쳐


    ‘35번 환자’로 불렸던 삼성서울병원 의사. 박원순 서울시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마치 그가 무책임하게 메르스를 퍼트린 것처럼 몰아세운 뒤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에 응하며 적극적으로 반박했던 ‘35번 의사’는 결국 스트레스로 인해 몸져누운 것으로 알려졌다.

    ‘35번 의사 환자’의 소식과 함께 국민들의 눈길을 끈 것이 있었다. ‘에크모(ECMO)’라는 장비였다. 많은 매체들이 에크모(ECMO)의 원리와 메르스에 감염돼 위독한 상황에 있는 환자들이 사용 중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그 뒷이야기를 전한 곳은 많지 않았다.

     

    쉽게 알아보는‘체외순환막형산화기기(ECMO)’ 상식


    ‘에크모(ECMO)’의 원래 이름은 ‘체외 순환막형 산화기기(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다. 스스로 호흡을 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상태에 있는 환자들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외부 생명유지 지원 장치’라고 보면 된다.

    ‘에크모’의 원리는 간단하다. 환자의 몸에서 혈액을 빼내 ‘에크모’에 넣어 산소를 넣은 뒤에 다시 신체 내로 흘려보내준다. 환자의 혈액을 정맥에서 빼내 동맥으로 넣는 방식(VA), 정맥에서 빼내 정맥으로 넣는 방식(VV)에 따라 나뉘기도 한다.

    원리만 보면 신장 투석기나 인공 심폐기(인공 폐) 등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그 사용처는 크게 다르다. 심장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가 심각한 폐부전증 환자, 신부전증 환자 등 심장과 폐의 기능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장비다. 때문에 국내에서는 ‘에크모를 달았다’고 하면 생명이 위독하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에 전염된 환자들 가운데 급성 신부전증과 급성 폐부전증이 나타난 사람들에게 사용하고 이들이 회복세를 보이면서 ‘선입견’은 상당 부분 사라진 상태다.

  • ▲ '에크모(ECMO)'에 대해 일반인들도 알기 쉽게 설명해 놓은 조양현 삼성서울병원 흉부외과 교수의 블로그. 조양현 교수는 이런 그림도 직접 그려서 올려 놓았다. ⓒ조양현 교수 블로그캡쳐
    ▲ '에크모(ECMO)'에 대해 일반인들도 알기 쉽게 설명해 놓은 조양현 삼성서울병원 흉부외과 교수의 블로그. 조양현 교수는 이런 그림도 직접 그려서 올려 놓았다. ⓒ조양현 교수 블로그캡쳐


    사실 ‘에크모’는 심장 이식 수술을 받는 환자들이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삼성서울병원의 심장외과 전문의 조양현 교수가 운영하는 블로그에는 ‘에크모’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제공한다.

    조양현 교수의 글에 따르면, ‘에크모’를 달았다고 해서 모든 환자가 낫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조양현 교수는 ‘에크모의 성공적인 운용’을 위해서는 순환기 내과, 호흡기 내과, 흉부외과, 응급의학과 전문의 등으로 구성된 숙련된 팀, 꾸준한 교육과 실제 사례 참여를 통한 풍부한 경험 보유, 안전한 운용 환경, 에크모의 운영과 환자의 상태를 모두 조망(眺望)할 수 있는 책임자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양현 교수는 이 글에서 “그냥 (에크모의) 전원 연결하고 켜 놓으면 환자가 좋아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라며 “에크모를 달았으니 더 할 것 없이 기다린다는 방식의 접근은 매우 아쉬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건강보험공단이 ‘에크모’ 치료비 지급 않으려는 이유


    이처럼 에크모는 전문가 팀이 제대로 운영하면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에크모’ 사용에 대한 선입견이 존재한다. 때문에 세상에 나온 지 이미 20년도 더 된 ‘에크모’는 우리 사회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에크모에 대한 선입견은 일부 환자와 보호자들, 병원의 ‘무분별한 행동’ 탓이다. 에크모는 스웨덴의 ‘Getinge Group’이 만드는 브랜드 ‘Maquet’ 제품과 일본 제품이 가장 유명하다. 이 가운데 스웨덴제 에크모는 국내 시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 ▲ 스웨덴 브랜드인 'MAQUET'의 '에크모(ECMO)'가 국내에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스웨덴 Getinge Group의 Maquet 브랜드 홈페이지 캡쳐
    ▲ 스웨덴 브랜드인 'MAQUET'의 '에크모(ECMO)'가 국내에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스웨덴 Getinge Group의 Maquet 브랜드 홈페이지 캡쳐


    국내에 에크모를 수입, 판매하는 업계 관계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 의료계에서 에크모 수요가 ‘정점’을 찍은 것은 2013년이라고 한다. 이유는 높은 건강보험급여 때문이었다고.

    1명의 환자에게 에크모 시술을 해준 뒤 병원 측이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는 보험급여는 평균 350여만 원. 이 가운데 환자가 부담해야 할 돈은 10% 내외라고 한다.

    때문에 임종을 앞둔 고령의 환자나 중환자를 데려온 가족들이 “살려 달라”고 의사들에게 읍소하면, 병원 측은 ‘에크모를 달자’고 제안하고, 자기 부담금이 크지 않다는 것을 들은 가족들은 “그렇게 해달라”고 하면서 무리한 사용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이런 사례가 급증하면서, 국내 대형 병원에서는 한 때 ‘에크모 도입 붐’이 불었다고 한다. 에크모 한 세트 가격은 1억 원대로 매우 고가이지만, 한 사람 당 350만 원의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은 경영난에 시달리는 병원들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인 부분이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 있는 에크모 수는 1,000여 대로 추정된다고 한다. 대학병원 급의 대형 병원이라면 5~10대, 대형 개인병원 또한 3~4대 가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렇게 환자 가족과 병원이 너도 나도 ‘에크모’ 사용을 선호하면서,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떠안게 됐다고 한다. 이것이 나중에 국정감사 등에서 문제가 되면서, 2014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에크모를 사용한 환자가 사망하면 보험급여를 지불하지 않겠다”는 극단적인 대책을 내놓았다.

    병원과 의사들은 격렬하게 반발했지만 정부를 이기지는 못했다. 이후 1년 가까이 에크모 사용 사례가 급감했는데, 최근 메르스 사태가 터지면서 다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에크모’ 시장 성숙, 그리고 사용자의 자성


    ‘에크모’의 오·남용으로 정말 시술이 필요한 환자들까지 피해를 입는 사례가 나오자 의사들이 나섰다. 2014년 12월 10일 전남대 의대 의학박물관 1층 세미나실에서는 새로운 의료 단체 하나가 출범했다. 이름은 ‘에크모 연구회(회장 성기식 삼성서울병원 흉부외과 교수)’였다.

    ‘에크모 연구회’를 출범시킨 사람들은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였다. 이들은 무분별한 사용이 아닌, 심장과 폐 기능 이상으로 위독한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서 에크모를 사용해야 한다는 뜻으로 모인 전문의들이었다.

  • ▲ 메르스 사태 이후 '에크모(ECMO)'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의사들은 현재 에크모 관련 보험급여의 문제점을 포토뉴스로 만들어 SNS에 전파했다. ⓒSNS 유통사진 캡쳐
    ▲ 메르스 사태 이후 '에크모(ECMO)'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의사들은 현재 에크모 관련 보험급여의 문제점을 포토뉴스로 만들어 SNS에 전파했다. ⓒSNS 유통사진 캡쳐


    ‘에크모 연구회’ 발족에 참여한 의사들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절충안을 제시했다. ‘기존 치료법으로는 고쳐지지 않는 중증 심부전’이나 ‘기계적 인공호흡기 치료로 생명유지가 불가능한 중증 급성 호흡부전’ 증상을 가진 환자에게 에크모를 사용할 때는 보험급여를 지급해 달라는 것이었다.

    2012년 1,355건, 2013년 1,732건이나 되는 에크모 치료 건수를 합리적으로 줄임과 동시에 보험급여 거절 건수도 동시에 줄이자는 제안이었다.

    ‘에크모 연구회’는 발족 이후 최근까지도 격월로 집담회(集談會)를 갖고, 에크모 사용에 관한 국내 가이드 라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한다.

     

    해외에서는 활발한 에크모 시술, 왜 한국은…?


    ‘에크모 연구회’에 참여, 현재 홍보를 맡고 있는 정재승 고대안암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닥터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에크모 시술 비용을) 삭감하는 분들은 에크모 시술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현장과의 괴리가 크다”면서 아직도 에크모 시술에 건강보험을 적요하는데 필요한 ‘정확한 기준’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해외는 어떨까. 호주의 경우 에크모 연구에 대한 자료를 흉부 외과나 순환기 내과 관련 학회에서 활발하게 공유하고 있었다.

    호주 학회에서 나온 자료 등을 보면, 호주는 2,313만여 명의 인구에 에크모 장비 대수는 800여 대를 훌쩍 넘기고 있었고, 시술 사례도 다양했다. 호주의 의료 학회들이 에크모 시술사례를 공유하면서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린다”는 점이었다. 이 부분은 한국 의사들도 똑같다는 점을 주의깊게 봐야 한다.

  • ▲ 프랑스 루부르 박물관에서 이동식 '에크모(ECMO)'로 심정지 환자를 살리는 응급구조요원(EMT)들. ⓒ에크모 ORG 화면 캡쳐
    ▲ 프랑스 루부르 박물관에서 이동식 '에크모(ECMO)'로 심정지 환자를 살리는 응급구조요원(EMT)들. ⓒ에크모 ORG 화면 캡쳐


    지난 21일, ‘한국일보’는 “위독한 메르스 환자에게 에크모를 시술, 2명의 목숨을 구했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에크모는 ‘사람을 살리는 기계’라는 것이 전 세계 의료인들의 공통된 견해다.

    현재 한국에서는 메르스 사태 이후 에크모를 바라보는 시선이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공적연금 합리화’라는 명분을 내세우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의료행위에 대해서조차도 비용을 절감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환자를 살리는데 필요한 에크모 시술조차도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의사들의 주장이다.

    흉부외과나 심장외과, 순환기 내과 전문의들은 메르스 사태로 정부가 에크모 시술에 대한 합리적인 기준을 수립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에크모 기기를 수입, 유통하는 업계 또한 정부가 이번 메르스 사태로 에크모 시술을 바라보는 시선이 합리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기대섞인 관측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