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 반복하는 청문회, 제도 개선보다 특위 구성원들의 수준 개선이 먼저다
  • ▲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특별위원회의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의 모습. 사진 맨 오른쪽이 여당 간사인 권성동 의원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특별위원회의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의 모습. 사진 맨 오른쪽이 여당 간사인 권성동 의원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8~10일 사흘 간에 걸쳐 실시됐다.

    매일같이 애써 자정 가까이 인사청문회를 진행하는 강행군을 했지만 이번에도 경과보고서를 합의 채택하지 못했다. 여당 소속 인사청문특위 위원들만 착석한 가운데 여당 간사가 쓸쓸이 경과보고서를 낭독하고, 야당 위원들은 의사진행발언만 늘어놓다가 줄줄이 퇴장하는 모습이 전임 이완구 총리 인준 과정과 판박이처럼 닮은 구태의 반복이다.

    사흘 간 인사청문회를 취재하면서 법을 다룬다는 우리 입법부의 주인공이자 국민의 대의대표인 국회의원들이 법의 대원칙에 대해 너무 모르거나, 또는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길이 없다.

    변호사가 의뢰인의 비밀을 지켜줄 의무는 단순히 변호사법 제26조에 규정돼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 형사법체계의 성립과 함께 형성된 자연법적 원칙의 일부다. 이것이 인정돼 있기 때문에 '주홍글씨'가 쓰여진 것처럼 세상 사람들로부터 따돌림받는 범죄 혐의자도 안심하고 법의 조력을 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공직 후보자의 도덕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인사청문회법을 통해 변호사의 비밀 준수 의무를 제한하는 법조항을 제정했다. 변호사법 제26조에서는 "변호사 또는 변호사였던 자는 그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아니된다"면서도 "다만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단서 조항이 있기 때문에, 형식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다만 '국민의 알 권리'만큼이나 '변호사의 비밀 준수 의무'도 소중하기 때문에 인사청문특위 위원들이 이른바 '황교안법'을 통해 알게 된 '비밀'을 다루는데는 내재적인 한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이번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보여준 국회의원들의 태도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논란 끝에 이른바 '19금' 자료를 청문회 2일차 오후에 열람하기로 하고 여야에서 각 2인씩 총 4인의 의원이 해당 자료를 열람했다. 굳이 이런 방식을 취한 것은 '변호사의 비밀 준수 의무'와 '국민의 알 권리'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이를 신중하게 다루기 위한 것이라는 점은 강조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후 인사청문회가 저녁 7시에 속개되기도 전에 속칭 '진보 매체'를 통해 열람 내용이 여과 없이 보도됐다. 상식적으로 여당 의원이 흘리지는 않았을테니, 야당에서 자료 열람을 위해 들어간 우원식 간사나 박범계 의원 중에 한 명이 열람한 내용을 언론에 알렸을 것이다. 설마 판사 출신인 박범계 의원이 이를 흘렸으리라고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다.

    여당 간사인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은 "여야 간사 간에 협의할 때 수임 사건의 요지는 여야 각 2명씩 4명의 의원이 이를 열람하고 질의 자료로만 공유하기로 약속했는데, 열람을 한지 얼마되지 않아 프레시안에서 메모했던 내용을 그대로 공개했다"며 "두 분 의원님의 양식을 믿지만, 관리를 잘못하신 게 아닌가 해서 유감을 표명한다"고 꼬집었다.

    황교안 후보자도 새누리당 염동열 의원이 "(19금 자료 공개를 위해) 편법을 쓴 것 아니냐"고 질의하자 "변호사법에 의하면 수임 자료는 외부에 드릴 수 없고, 국회에서 청문회를 하더라도 제한된 부분만 드릴 수 있게 돼 있다"며 "많은 말들이 있어서 할 수 있는 최대한 정보를 제공해드리려다보니……"라고 말을 흐렸다.

    편법을 쓰면서까지 의뢰인의 비밀을 누설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에 대해 법조인으로서, 변호사로서 회의감이 들지 않았을 리 없을 것이다.

    이래서야 새누리당 김종훈 의원이 인사청문회장에서 제안했던대로 도덕성·업무수행능력·정책검증을 분리해, 도덕성과 신상에 관한 부분은 비공개로 질의하도록 제도가 개선된다 하더라도 별무소용일 것이다. 비공개로 질의하고 대답한 내용이 야당 의원들에 의해 속칭 '진보 매체'를 통해 순식간에 알려질텐데 누가 속시원하게 해명할 수 있겠는가.

  • ▲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를 상대로 질의를 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 홍종학 의원은 총리 후보자가 변호사 시절에 조폭이나 마약사범을 변호했다면 서민들이 보기에 자랑스럽겠는가 라는 질의를 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변호사 시절 11명이 살해당한 페스카마호 선상 반란 사건의 주동자를 항소심에서 변호한 적이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를 상대로 질의를 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 홍종학 의원은 총리 후보자가 변호사 시절에 조폭이나 마약사범을 변호했다면 서민들이 보기에 자랑스럽겠는가 라는 질의를 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변호사 시절 11명이 살해당한 페스카마호 선상 반란 사건의 주동자를 항소심에서 변호한 적이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법의 대원칙에 대한 무지와 몰각은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압권은 그날 저녁 속개된 인사청문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의 질의였다.

    홍종학 의원은 "우리 서민들이 볼 때 대한민국 총리가 변호사 시절에 조폭이나 마약사범을 집중적으로 변호했다면 자랑스럽겠는가"라며 "변호사법에 문제가 없다고 국무총리 자격에 문제가 없는가"라고 따져물었다.

    변호사법은 물론 인사청문회법에도 공개가 제한돼 있는 의뢰인 정보를 밝히라는 취지의 질의였지만, 하필이면 비유한 논리가 조악하기 짝이 없다. 일반인의 법상식에도 못 미치는 생각으로 국회의원직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인지 놀라울 뿐이다.

    조폭이나 마약사범이라고 해도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오히려 최근에는 군중심리에 휩쓸리거나, 선동여론의 뭇매에 못 이겨 법무법인이나 변호사들이 수임 포기나 철회를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어 문제일 지경이다.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편적 권리나 천부인권으로 보지 않고, 무슨 범죄는 되고 무슨 범죄는 안 되고 하는 식으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이 입만 열면 '인권'을 부르짖는 새정치연합의 국회의원이라니 암담할 뿐이다.

    만일 홍종학 의원의 논리대로라면 희대의 선상 반란 집단 살인 사건인 이른바 '페스카마호 사건'에서 주동자로 지목된 자를 항소심에서 변호한 문재인 대표는 제1야당의 대표를 맡을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닌가. 우리 서민들이 볼 때 제1야당 대표가 변호사 시절에 선장과 실습을 나온 해양고 학생을 포함한 11명을 집단 살해하고 바다에 던져버린 살인범을 변호했다면 자랑스럽겠는가. 변호사법에 문제가 없다고 제1야당 대표 자격에 문제가 없는 것인가.

    권성동 의원은 "(홍종학 의원의 질의가)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다"며 "조폭이나 살인범을 변호한 변호사는 공직에 진출하면 안 되는가"라고 일침을 가했다.

    아울러 "다 맡아주는 게 변호사 윤리에도 맞다"며 "아무리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치료가 필요하면 의사가 치료해줘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황교안 후보자도 "의원님 말씀이 맞다"면서도 "다만 나는 조폭이나 깡패를 변호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아직 우리 국민들의 법감정이나 정서가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편적 권리로 바라보는 수준에까지 올라오지 못한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고검장과 법무장관까지 했던 국무총리 후보자도 '조폭이나 깡패를 변호한 것이 아니냐'는 일반인의 시선에 부담을 느끼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국민 의식을 선진화하기 위해 앞장서야 할 국회의원이 되레 이에 편승한 질의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인사청문회는 제도 개선을 논하기에 앞서 인사청문특위 위원들의 수준 개선을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