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혁 "재선거가 먼저" vs 친한계 "사퇴가 먼저"與野,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국조 요구서 제출사상 초유 투표 중단에도 진영 싸움에 묻힌 민심"참정권 보장하라" … 진영 논리 선 그은 시민들
  • ▲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6·3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본투표날 투표용지 부족으로 전국 22개 투표소에서 투표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지만 정치권은 참정권 침해보다 정치적 유불리 계산에 몰두하고 있다. 정작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유권자들의 문제 제기는 재선거론과 부정선거 공방, 지도부 책임론에 가려지는 분위기다.

    국민의힘 당권파는 재선거론에 불을 지피는 반면 친한계는 지도부 책임론에 집중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부정선거 의혹 차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해 "국정조사보다 특검이 우선이고, 특검보다 재선거가 먼저"라며 "몇 명의 참정권 침해가 발생했는지, 어떤 결과가 뒤바뀌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국회 의안과에 '6.3 지방선거 선거관리위원회 투표용지 부족사태 관련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도 당론으로 제출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장 대표가 지선 패배 책임론을 선관위 책임 공방으로 전환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당권을 둘러싸고 장 대표와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는 친한(친한동훈)계는 참정권 침해 논란보다 선거 패배에 대한 지도부 책임론을 우선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재선거 요구 역시 실현 가능성이 낮은 정치적 주장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한동훈 무소속 의원 복당 필요성을 제기한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KBS라디오 '전격시사'에서 "이번 지방선거 성적표가 그렇게 썩 좋지 않았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모든 분들이 공통으로 인식하고 있고 당의 방향을 전환하는 데 있어서 지도부의 거취 문제까지도 포함해서 논의해야 하는 부분은 분명하다"고 했다. 

    재선거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장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먼저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친한계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5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재선거를 다시 하더라도 결과가 바뀌는 일은 없으니까 재선거 이슈는 별 크게 중요하지 않은 상황이 된 것"이라며 "장동혁 대표만 물러나는 게 아니라 지도부 전체가 물러나야 된다"고 말했다.

    결국 같은 당 안에서도 한쪽은 재선거를, 다른 한쪽은 지도부 퇴진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선거 패배 책임 공방 재료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재선거론이 오히려 서울 등 국민의힘 승리 지역까지 뒤흔들 수 있다며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 대표는 페이스북에 "이긴 선거를 무효로 돌리는 길은 하나, 낙선한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선거무효소송을 거는 것"이라며 "장 대표가 입에 올리는 '서울 재선거'는 곧 오 시장에게 '그 자리 내려놓으라'는 요구와 같은 말"이라고 날을 세웠다.
  • ▲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재선거를 주장하는 시민들이 5일 오후 잠실7동 제2투표소 개표가 마무리 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재선거를 주장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각 입구마다 대기하며 선관위 직원들의 이동을 막고 있다. ⓒ정상윤 기자
    ▲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재선거를 주장하는 시민들이 5일 오후 잠실7동 제2투표소 개표가 마무리 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재선거를 주장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각 입구마다 대기하며 선관위 직원들의 이동을 막고 있다. ⓒ정상윤 기자
    반면 민주당은 참정권 침해 논란보다 재선거론 확산 차단에 무게를 싣고 있다. 재선거에는 선을 긋되 선관위 책임 규명에는 동참하는 모습이다.

    민주당도 이날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한다.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는 전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직선거법과 선관위법 등 모든 관련 법률을 전면 검토하겠다"면서도 재선거 요구에서는 사실상 선을 그었다.

    전용기 민주당 원내소통수석부대표는 페이스북에 "국민의힘이 억지와 선동으로 극단적 부정선거론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참정권 회복을 외치는 시민들의 순수한 목소리를 오염시키는 행보를 즉각 중단하라"라며 재선거 요구에 선을 그었다.

    민주당으로선 투표용지 부족 사태 수습보다 재선거론과 부정선거론의 확산을 막는 데 더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하지만 정치권의 공방과 달리 거리에서는 참정권 침해 자체를 문제 삼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는 재선거를 요구하는 집회가 나흘째 이어지고 있다. 경찰 비공식 추산에 따르면 전날 집회 참가자는 2만5000여 명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특정 정당의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유권자가 투표소에서 투표하지 못한 상황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 실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3일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당시 투표용지가 부족해 추가 송부가 이뤄진 투표소는 전국 67개소였다. 이 가운데 실제 투표가 중단됐다가 재개된 곳은 22개소로 집계됐다.

    결국 정치권이 재선거론과 책임론, 부정선거 프레임을 두고 충돌하는 사이 투표권 행사에 차질을 빚은 유권자들의 문제 제기는 뒷전으로 밀리는 모습이다. 이에 집회 참가자들은 참정권 침해라는 본래 쟁점이 정치 공방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치세력과의 거리두기에 힘을 쏟고 있다.

    실제로 일부 시민들은 지난 6일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현장을 찾자 "말할 거면 집에 가라"며 발언을 만류했다. 김민수 국민의힘 최고위원의 "청와대로 와 달라"는 제안도 호응을 얻지 못했다. 한국사 강사 출신 유튜버 전한길 씨가 부정선거 구호를 외치자고 하자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젊은이들이 자주적으로 하게 내버려두라"며 이를 제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정치권이 재선거와 책임론, 부정선거 프레임을 두고 충돌하는 사이 정작 투표권 행사에 차질을 빚은 유권자들의 문제 제기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항의 집회마저 진영 대결 구도로 흘러갈 경우 참정권 침해라는 본래 쟁점이 흐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종근 정치평론가는 뉴데일리에 "정치권과 선을 그으면서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라', '참정권을 보장하라'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면서도 "이런 문제 제기가 계속 힘을 얻기 위해서는 정치적 공세나 진영 논리와는 분명히 구분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