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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징비록 김태우, 역사저널 그날 ⓒKBS 제공
'역사저널 그날'이 '임진왜란' 극복의 주역 의병들의 활약을 조명한다.
7일 KBS 1TV '역사저널 그날'은 '풍전등화의 조선, '그들'이 있었다' 2편 '예상치 못한 복병, 의병'을 방송한다. 이날 방송에서는 임진왜란 때 활약했던 의병과 의병을 대하던 선조와 조선 조정의 모습을 보여준다.
1592년 4월. 1만 8천여 일본군의 부산포 침략을 시작으로 불과 20여 일만에 한양이 함락된다. 파죽지세로 진격해 오는 일본군 앞에 조선군은 연전연패했다. 급기야 임금마저도 백성들 몰래 궁을 떠나고 만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승전보가 날아들었다. 승리의 주역은 관군도 아닌 농민 등 일반 백성들로 이뤄진 의병들이었다. 의병장 곽재우를 비롯한 의병들은 승전보를 전했다.
정식 군대인 관군조차도 힘없이 쓰러지던 그 때, 의병들이 일본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와 함께 '만물각'에서는 당시 의병들의 전략, 전술을 알아보고 그들이 사용했던 무기들을 공개한다.
해상에서 이순신의 수군에 막히고, 육지에서 의병들의 반격이 거세지면서 일본군은 보급로가 막혔다. 군량을 확보하기 위해 일본군은 곡창지대인 호남지대로 향했고, 충청도 금산에서 의병부대와 일본군이 격돌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의병의 활약과 함께 승병들의 활약을 조명한다.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했던 조선에서 승려들이 무기를 들고 싸웠던 이유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우리 민족의 불교는 어떤 특징이 있는지 살펴본다.
전란 초기 의병들의 활약에 반색하던 선조는 명나라 군이 참전하면서 태도가 변한다. 의병을 관군으로 흡수시키라는 명과 함께 강제 귀농 조치를 명했다. 사실상 의병 해체 작업을 실시한 것이다.
여기에 1596년에는 전국 의병들의 수장인 김덕령 장군이 반란 혐의로 추포되고, 결백을 주장했지만 끝내 장살을 당하고 말았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선조와 조선 조정이 일본군이 아닌 의병들에게 칼날을 겨눈 이유는 무엇일까?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서 희망을 쏘아올린 조선 의병들의 활약과 당대에 인정받지 못했던 의병들의 역사가 전하는 메시지는 밤 10시 30분에 방송되는 '역사저널 그 날'에서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