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는 '뿌리깊은 나무'… 계파갈등의 무게중심·당 방향타의 균형추
  • ▲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최고위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최고위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4·29 재·보궐선거 전패 이후 책임론을 놓고 격심하게 흔들리던 새정치민주연합, 하지만 광풍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새정치연합 전병헌 최고위원을 가리키는 정치권 관계자들의 평이다.

    재보선이 끝난 뒤로 한 달여 동안 계속되던 새정치연합의 내홍은 김상곤 혁신위원회 출범과 워크숍, 6월 임시국회 개회, 여당의 적전분열 등으로 일단 숨고르기 양상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계파 갈등이 종식된 것은 아니고,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을 뿐이다. 언제든 다시 갈등 구조가 불거질 수 있는 상황에서 전병헌 최고위원의 움직임은 단연 주목받는다는 지적이다.

    전병헌 최고위원의 정중동(静中動)이 주목받는 이유는 계파 갈등으로 내홍을 겪는 당내에서 그가 점유하고 있는 독특한 포지션에 기인한다.

    기본적으로 범친노(汎親盧)인 정세균계로 분류되지만, 당과 지도부가 올바른 길로 나아가기 위해 해야할 말은 하는 스타일이다. 재보선 참패 직후인 지난달 7일에는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른바 '문재인 비선' 논란을 가장 먼저 문제제기했다.

    전병헌 최고위원은 당시 "매우 중요한 시기에 문재인 대표의 행보가 최고위원회의 논의도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알려지고 있다"며 "대선에서 실패한 정무적 판단력을 가진 인사들이 보이지 않게 보좌하고 있다면, 이번 기회에 문재인 대표가 확실히 당을 공조직 중심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 ▲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최고위원(사진 왼쪽)이 최고위원회의 도중 문재인 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문재인 대표가 환하게 웃으며 전병헌 최고위원이 제시한 자료를 들여다보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최고위원(사진 왼쪽)이 최고위원회의 도중 문재인 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문재인 대표가 환하게 웃으며 전병헌 최고위원이 제시한 자료를 들여다보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김한길 전 대표와는 원내대표를 지내며 함께 호흡을 맞췄고, 민주당 6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장으로 매주 화요일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리는 DJ 묘역 참배에도 부정기적으로 함께 하는 등 동교동계 원로들과의 관계도 깊다.

    친노 문재인 지도부와 동교동계의 갈등이 고조될 무렵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한 취재진은 전병헌 최고위원을 향해 "역할이 더욱 막중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8 전당대회에서 스스로 내세웠듯이 60년 역사 민주당의 반생에 해당하는 30년 동안 당을 지켜온 '뿌리깊은 나무'이기에 소화할 수 있는 '역할론'이다.

    직언은 하되 중대한 시기에 당을 흔들지 않는다는 점도 그의 사려깊은 행보를 잘 드러내준다.

    주승용 최고위원이 최고위원직 사퇴 의사를 밝히고 여수에 칩거하고, 정청래 최고위원은 자숙을 명받아 최고위원회의 출석이 정지된 지난달 20일, 전병헌 최고위원은 문재인 대표가 자리를 비운 관계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했다.

    이 중차대한 시점에 전병헌 최고위원은 모두발언을 통해 "지금 우리 제1야당이 너무 어렵고 힘들다"며 "서로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고 신뢰하고 화합해 나가자"고 호소했다.

    나아가 "서로의 생각이 조금 다르다고 낙인을 찍고 분열하는 것은 망각의 길"이라며 "계파와 기득권을 모두 내려놓고 국민과 당원이 기대하는 혁신을 이루는 것이 우리의 절대절명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한 달째 계속된 내홍 과정 중 알력 다툼을 벌였던 여러 계파 사이에서 무게중심을 잡은 모습은 단연 돋보였다는 것이 정치권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 ▲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최고위원(사진 왼쪽)이 최고위원회의 도중 주승용 최고위원과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최고위원(사진 왼쪽)이 최고위원회의 도중 주승용 최고위원과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비단 당내 계파들 사이에서만 무게중심으로서의 역할을 한 것이 아니다. 전병헌 최고위원은 최고 지도부의 일원으로서 자칫 한 쪽으로 경도되기 쉬운 당의 방향타의 중심을 잡는 역할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6월이면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는 너나할 것 없이 '6월 항쟁'을 말한다. 6월의 첫날인 1일 열렸던 최고위원회의에서 오영식 최고위원은 "6월은 6월 항쟁이 있었던 매우 뜻깊은 달"이라며 "이명박~박근혜 정권 들어서 민주주의가 크게 후퇴하고 거꾸로 가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되돌아볼 때, 6월 민주항쟁의 의미는 더욱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고 날을 세웠다.

    하지만 전병헌 최고위원은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라며 "새정치연합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민과 나라를 지켜낸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과 뜻을 존경하며 추모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아울러 "6월 임시국회에서는 호국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는 호국 관련 입법, 보훈 관련 입법 개정안을 심도 있게 논의하고 조속히 통과해 성과를 내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념별·세대별 갈등 구조 속에서 이를 넘나드는 '리베로'와 같은 활약을 보여주는 모습은 전병헌 최고위원 외에 새정치연합에서 짝을 찾기 어렵다는 게 야권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의 지적이다.

    E스포츠협회장으로서 젊은 세대를 아우름과 동시에 OECD 가맹국 중 최악을 달리고 있는 노인 빈곤 문제에도 꾸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얼마 전에는 노인 빈곤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 5월 8일 어버이날을 국가공휴일로 제정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야당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노년층이 늘어나는데 우리 당의 지지세를 확산할 방법이 없다'고 한숨을 쉬는 등 패배주의에 빠져 있다"며 "전병헌 최고위원처럼 노년층을 감싸안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의미한 활동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최고위원이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정부의 잘못된 메르스 초기 대응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최고위원이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정부의 잘못된 메르스 초기 대응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정무 분야 뿐만 아니라 민생 활동 분야에서도 전병헌 최고위원의 활약상은 빛난다.

    국가적인 준(準)비상사태로 치달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감염 확산 사태에서 전병헌 최고위원의 혜안은 특히 돋보였다는 것이 정치권 관계자들의 평이다.

    전병헌 최고위원은 사태가 초기 단계였던 지난달 22일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메르스의 세 번째 환자가 발생했는데, 정부의 안일한 대응에 대해 심각한 걱정과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질병관리본부가 경각심을 가지고 면밀하고도 확실한 초기 대응에 노력하라"고 촉구했다.

    이후 27일 최고위원회의에서도 "메르스의 총 감염자가 5명으로 늘었다"며 "지금 방역 당국의 대응 수준은 방역 당국이 아니라 질병 확산을 방치하는 방치 당국이라고 이름을 고쳐야 할 지경"이라고 꼬집었다.

    당시 여야를 통틀어 공개 회의 석상에서 메르스에 대한 경고 발언을 던진 것은 전병헌 최고위원이 유일했다. 이 때 보건·방역 당국이 이 말을 받아들여 보다 철저한 초기 대응을 했다면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경고에도 불구하고 사태는 일파만파로 확산됐지만, 전병헌 최고위원은 국회 국민안전혁신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특위 소속 여야 의원들을 이끌고 4일 국민안전처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전병헌 최고위원은 아직 늦지 않았다는 자세로 "세월호 이후 국민안전의 총체적 컨트롤타워로서 출범한 국민안전처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관계자들을 독려했다.

    이어 "메르스 감염 사태와 관련해 '관심~주의~경계~심각' 단계만을 따지는 탁상행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며 "복지부는 메르스를 통제할만한 능력과 신뢰를 상실한 만큼, 하루빨리 국민안전처가 중앙재난대책본부를 출범해 직접 통제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 ▲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최고위원(사진 가운데 왼쪽)이 4일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가운데 오른쪽)으로부터 메르스 감염 사태 관련 대책을 보고받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최고위원(사진 가운데 왼쪽)이 4일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가운데 오른쪽)으로부터 메르스 감염 사태 관련 대책을 보고받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2·8 전당대회로부터 채 넉 달도 지나지 않아 주승용·정청래 최고위원이 이탈하고 문재인 대표가 지도력을 상당 부분 상실한 상황에서도 최고위원회가 유지되고 있는 것에는 전병헌 최고위원의 역할이 크다.

    또, 이념과 세대를 넘나들며 민생 현안을 챙기는 모습은 관념적인 선명성·우클릭 논쟁을 벌이며, 추상적인 '수권 정당론'을 들먹이는 새정치연합 동료 의원들의 귀감이 된다는 지적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선거에 지고 나서 한 달째 당무 마비에 가까운 상태로 갈등을 겪는 과정에서 새삼 전병헌 최고위원을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며 "향후에도 전병헌 최고위원의 움직임에 힘이 실리겠지만, 정중동이라는 말처럼 쉽게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전병헌 최고위원은 96년 15대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가 완패했음에도 오히려 'DJP 연합'이라는 기상천외한 묘수를 통해 이듬해 대선에서 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뤄지는데 기여했다"며 "지금 제1야당이 어려움에 처해있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권교체를 꾀한다면 그 중심에는 반드시 전병헌 최고위원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