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진료기록보니..10차례 통증호소…병원, 마약성 진통제만원인불명 '장 천공'으로 음식물 밖으로 새어나와..'감염' 전이
  • ▲ 고 신해철의 영정 사진  ⓒ 사진공동취재단
    ▲ 고 신해철의 영정 사진 ⓒ 사진공동취재단



    가수 신해철이 '돌연사'한 원인을 밝히긴 위해선 지난달 17일부터 22일 사이에 어떤 처방과 수술이 이뤄졌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이에 따라 1차 수술을 담당했던 서울 스카이병원의 의무기록을 확보하는 게 중요했다. 당초 병원 측에선 신해철에게 어떤 시술을 했는지를 묻는 질문에 원론적인 대답만 되풀이했다. 이에 고인의 사망 원인을 두고 다양한 루머들이 쏟아져 나왔다. 위밴드 수술 후유증이라는 얘기부터, 이자액 유출 루머까지.. 그런데 지난달 31일 SBS에서 신해철의 진료 기록을 단독 입수, 공개해 파장이 일고 있다. 해당 기록부를 살펴보면 사망 전 신해철은 해당 병원을 수차례 방문해 '배가 아프다'고 말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자신의 왼쪽 가슴 부위를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했지만 병원 측에선 마약성 진통제와 산소만 투여했을 뿐이었다. 신해철이 22일 오후 서울아산병원에 실려왔을 때에는 수술 합병증으로 장에 있던 염증이 이미 온 몸에 퍼진 이후였다.

  • ▲ 고 신해철의 영정 사진  ⓒ 사진공동취재단



    ◈ 의무기록으로 살펴본 신해철의 투병 일지

    지난달 17일 신해철은 통증을 동반한 위경련 증상을 느껴 인근 병원을 찾았다. 늦은 시각이라 몇 군데 병원을 거쳐 스카이병원에 도착한 신해철은 이곳에서 장이 유착됐다는 진단을 받고 수술 치료를 받았다. 의무기록에 의하면 이날 신해철은 장관유착박리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수술 후 4시간이 지나자 신해철은 또 다시 극심한 복통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담당 의사는 마약성 진통제만 투여했을 뿐, 복부 CT 등 적극적인 검사를 하지 않았다.

    이는 신해철의 부인 윤원희씨의 증언과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윤씨는 지난달 30일 연합뉴스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남편이 수술 직후부터 계속 배가 아프다고 하소연했고, 다시 위를 펴달라는 요구까지 했지만 소용없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남편은 수술 직후부터 계속 배가 아프다고 했어요. 너무 아프다고 통증을 호소했고 위를 접었으면 다시 펴는 수술을 해달라는 말도 했습니다.

    계속 열이 나고 아파하는데도 그 병원에서는 수술 후라 그럴 수 있다는 말만 했어요. 남편이 구체적으로 어디가 아프다고 콕 집어서 말도 했고, 고열과 통증으로 잠도 못 잤는데 병원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는 말만 했습니다. 저희는 잘 모르니까 병원 말이 맞겠거니 했고, 남편도 그래서 통증을 참으려고 무척 노력했어요.


    기록을 보면 신해철은 17일 오후 장관유착박리술을 받은 직후 2차례 통증을 호소했고, 다음날에도 4차례나 '배가 아프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해철은 19일에도 총 4차례 통증을 호소한 것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병원 측은 간단한 혈액 검사한 한 채 이날 오후 신해철을 퇴원시켰다.

    20일에도 신해철은 고열 증상으로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이때 의료진은 입원을 권유했으나 신해철은 진통제만 맞고 귀가했다.

    그리고 22일 새벽 신해철은 가슴과 배에 심각한 통증을 느껴 다시 스카이병원을 찾았다. 의료진은 당시 신해철이 복부 팽만과 가스배출이 안되는 상태임을 확인하고 마약성 진통제와 산소를 처방했다.

    새벽 6시 5분, 신해철은 심장 부위의 통증까지 호소했다. 이에 의료진은 다른 병원으로 옮길 것을 권유했지만 신해철은 듣지 않았다. 그리고 오후 1시경 신해철은 심장이 정지되는 상태에 이르러 응급 심폐소생술을 받았다.

    오후 2시 신해철을 인수한 서울아산병원은 신해철이 동공반사가 없고 자발 호흡이 불가능한 상태임을 확인한 뒤 CT 촬영과 개복 시술을 통해 정밀 검사에 들어갔다.

    이때 신해철에게 나타난 증상은 장천공, 복막염, 심장염, 심각한 뇌손상 등이었다.

    SBS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은 신해철의 소장 아래 70~80cm 지점에서 1cm 크기의 천공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발생 시기가 불분명한 '장 천공'으로 인해 각종 음식물이 장 밖으로 빠져나와 온몸 구석구석 퍼져갔고, 결국 여러 장기에 염증을 일으키는 합병증으로 번진 것. 전신에 '독소'가 빠르게 퍼진 것도 바로 '장 천공'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 ▲ 고 신해철의 영정 사진  ⓒ 사진공동취재단



    ◈ 아파서 뒹구는 환자에게 몰핀 처방만?


    결국 '장 천공'이 언제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밝혀내는 게 급선무로 보인다. 만약 17일 이전에 천공이 발생했었다면 스카이병원은 발병원인을 찾지못해 엉뚱한 치료를 하다 '수술 적기'를 놓쳤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또 수술 이후에 천공이 발생한 것이라면 스카이병원은 의료사고에 대한 더 큰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상황.

    의무기록에 적힌 환자의 상태를 보면 18~22일 장 천공으로 인한 감염 증세가 심장 등 다양한 장기까지 퍼진 것으로 보인다. 한 기록에는 신해철이 "왼쪽 가슴을 부여잡고 '통증이 나아지지 않는다'며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는 장에 있던 염증이 이미 심장까지 퍼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해당 병원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신해철에게 몰핀만 투여했을 뿐,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의무기록만 보면 신해철의 심장이 멎었던 이유는 '장 천공'으로 인한 장기 염증 때문이었다. 천공 발생의 원인을 찾다보면 자연히 신해철의 사인 규명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부검을 통해 장 천공 발생 시기를 밝혀낼 수 있느냐는 점이다.

    유가족은 사망 직후가 아닌, 5일장을 마치는 시기에 부검을 요청했다. 장례가 치러지는 동안 시신은 영안실에서 냉동보관 돼 왔다. 따라서 시신의 부패는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단, 영안실에서 시신을 꺼내 운구차에 싣고 화장장에 갔다 다시 병원 영안실로 복귀한 시간이 적잖이 소요된 것이 유일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의료 전문가들은 시신의 상태만 온전하다면 정상적인 부검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생전 고인의 복강 상태가 장내 감염으로 상당히 좋지 않았다는 점에서, 질환의 발생 시기나 원인을 밝히는 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진 = 고 신해철의 영정 사진, SBS 뉴스 캡처화면 / 사진공동취재단 / 뉴데일리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