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법률대리인 "신해철, 금식 어기고 밥먹다 장 터졌을 수도"국과수 "사망 유발한 천공, 수술 당시에 발생한 것으로 판단돼"


  • 故 신해철이 병원 측의 '의료과실'로 숨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 부검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최영식 서울과학수사연구소장은 지난 3일 오후 서울 양천구 국과수 서울분원에서 공식 브리핑을 갖고 '1차 부검 결과'를 취재진에게 공개했다.

    최 소장은 "심낭, 즉 심장을 싸고 있는 이중막에서 0.3cm 크기의 천공이 발견됐다"면서 "이 천공은 자연발생이 아닌, 수술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생겨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소견을 밝혔다.

    천공은 주로 외상이나 질병 등으로 발생합니다. 그런데 신해철씨의 경우엔 장 협착 수술 부위와 아주 인접한 곳에 천공이 발생했고, 심낭 내에서 깨와 같은 '음식 이물질'이 발견됐습니다. 따라서 '의인성 손상' 가능성이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합니다.


    최 소장은 "고인의 사인은 법의학적으로 볼 때 '복막염'과 '심낭염', 그로 인한 '패혈증'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서울아산병원에서 사인이라고 밝힌)저산소 허혈성 뇌손상은 바로 이 복막염과 심낭염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심정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패혈증'은, 심낭 내에 생긴 '천공'과 그로 인한 '장기 염증'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는 얘기.

    만일 스카이병원이 장 협착 수술 도중 소장을 잘못 건드려 천공이 발생한 것이라면 고인의 사망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이 병원과 '집도의'에게 있다. 물론 천공이 수술하기 이전에 '자연 발생'했을 가능성도 현재로선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소장에 생긴 천공을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장 협착 수술만 진행했다는 점에서 업무상 과실 혐의를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스카이병원의 입장은 어떨까? 스카이병원의 법률대리인은 이날 병원 측에 대단히 불리한 국과수 부검 결과가 나오자, "부검 내용만으로는 과실이 있었다고 말하기 곤란하다"며 끝까지 의료사고 가능성을 부인했다.

    이 법률대리인은 "가슴 부위는 횡경막으로 분리돼 있는데, 복부수술을 할 때에는 왼쪽 심장이 있는 부위를 열지 않고, 다른 곳을 절개, 개복술을 실시했었다"며 "아마도 심장 수술까지 했던 서울아산병원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까 싶다"는 책임전가식 발언을 남겼다.

    또 법률대리인은 천공이 발생한 심낭 내에서 '깨와 비슷한 물질'이 발견됐다는 국과수 부검 결과에 대해선 "애당초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을 드신 것 같다"고 밝혔다.



  • ◈ "우린 심장 수술 안했다" 아산병원에 물어봐?

    스카이병원은 '해당 천공이 외부 요인으로 발생한 궤양이라면 심장을 감싼 심막을 여는 수술을 단행한 서울아산병원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논리를 앞세우고 있다. 자신들은 장 협착 수술만 진행했을 뿐, 심장은 건드려보지도 못했다는 얘기다.

    나아가 천공이 내적 요인에 의해 발생했다하더라도 이를 환자의 '부주의' 탓으로 돌리는 적반하장격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스카이병원의 해명에는 중대한 오류가 있다. 심낭 내 염증이나 천공이 2차 수술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면 22일 새벽, 신해철은 왜 자신의 왼쪽 가슴을 부여잡고 통증을 호소했을까?

    (신해철이)왼쪽 가슴을 부여잡고 '통증이 나아지지 않는다'며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 스카이병원 의무기록 중에서


    전문가들은 "의무기록에 적힌 당시 신해철의 모습은 이미 감염이 심장에까지 이르렀다는 점을 의미한다"며 "심장에 문제가 생긴 것은 22일 오후 서울아산병원으로 이송되기 이전일 가능성이 높다"는 공통된 의견을 보이고 있다.

    국과수 역시 같은 의견이다. 당초 사인으로 알려졌던 '허혈성 뇌괴사'는 복막염이나 심낭염 등으로 발생한 증상이라는 것.

    신해철은 22일 오후 1시경 패혈증 쇼크로 심박이 정지함과 동시에 의식을 잃었다. 옆에 있던 의료진이 급히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으나 그의 의식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이미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으로 뇌세포 상당수가 파괴됐기 때문이었다.

    스카이병원은 신해철의 심낭 내에서 깨와 같은 음식 이물질이 발견된 것과 관련, '금식'을 조건으로 퇴원시켰으나 신해철이 이를 지키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거론했다.

    자신들의 수술 치료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고, 환자가 부주의한 탓에 쇼크 증상이 왔을 것이라는 해명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스카이병원 측 법률대리인은 "신해철이 수술 후 이틀간 병원에서 지낼 때에는 상태가 괜찮았다"면서 "이후 외출과 외박을 하는 과정에 식사를 한 것이 문제가 돼 장이 터진 것 아닌가 싶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스카이병원의 의무기록에는 다른 내용이 적혀 있었다. 신해철은 수술 직후에도 복통을 호소했으며 18일과 19일에도 하루에 4차례씩 극심한 복통을 호소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상태가 괜찮았다'는 변호인의 해명이 궁색해지는 대목이다.

    천공이 발생한 부위도 문제다. 당시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은 신해철의 소장 아래 70~80cm 지점에서 1cm 크기의 천공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은 변호인이 밝힌 것처럼 음식물을 먹다 쉽게 터질 수 있는 부위가 아니다. 궤양이 자주 발생하는 위나 십이지장보다 훨씬 아래 쪽에 위치하고 있어 자연적으로 천공이 생기기는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소견.

    [사진 = SBS 방송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