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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재판에 박근혜는 답하라!

“중진까지 나선 새누리의 문창극 죽이기는, 귀하의 밀지(密旨)요 아니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전 조선일보 주필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입력 2014-06-18 09:30 | 수정 2014-06-20 11:04
새누리의 문창극 죽이기?
 

집권세력이라는 게 문자 그대로 [허둥지둥] 그 자체다.
아무리 내부의 다양성이 권장되는
자유민주 국가의 집권당이라 해도,
중요한 문제에 관해서만은 치열한 논쟁을 거쳐서라도
최종적으로는 “이렇게 합시다” 하는
[통일견해](統一見解)에 도달할 수 있어야
그게 집권당다운 집권당이다.
 

▲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전 조선일보 주필ⓒ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가?

문창극 총리후보자의 거취를 놓고서
새누리당(당명부터가 젖비린내 진동한다) 위인들이
“항복, 항복!” 하며 두 손 번쩍 드는 모습들이
너무 꼴불견이라서 하는 소리다.
 
최고위원이라는 이인제로부터 전국구의 이 자스민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심지어는 친박 중진 서청원까지,
너무 늦을세라 다투어 문창극 후보자의 사퇴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게 “우리 각자의 신념이요, 양심이다“라고 주장하겠다면,
뭐라 딱히 할 말은 없다.
“오우, 리얼리(Oh, really?)”라고 영어로 반응해줄 수밖에.
그래야 상대방의 격에 맞춰주는 게 될 것 같다.
이왕이면 R자 발음, 유달리 강하게 굴리면서.

▲ [문창극 죽이기] 선봉에 나선 서청원. 청문회 열어 국회서 당당하게 표결로 처리하는게 의회민주주의의 기본 원리, 국회 다선의원이 앞장서서 이런 기본을 무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문창국 죽이기 판정을 내리기 전에
[문창극 교회강론]의 전문을 좍 펴놓고
찬반 패널들 앞에서
문제된 대목을 조목조목 분석하고 토론해보았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냥 덮어놓고 [유죄판결],
그리고 심리(審理)도 없는 [유죄판결]만 있는 셈이다.
중세기 [마녀사냥-마녀재판-마녀처형]이 이랬을까?
 
집권당 위인들이,
왜 이렇게 지푸라기로 만든 인형들처럼 힘없이 무너지고 있는 것일까?

우우~하고 떠드는 [길거리 여론][돌팔매]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우리가 문창국을 싸고돌았다가는 혹시 덤태기 쓰지 않을까?"라는,
겁이 확 들었거나,
아니면 내용을 잘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덮어놓고 "나쁜 X..."이라는 심증을 굳한 탓일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의 생각이 궁금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중진까지 나선 새누리의 문창극 죽이기는,
귀하의 밀지(密旨)요 아니오?"



이젠 기독교 교인들이 답안지를 내보여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바빌론 유수(幽囚)]
[이집트 노예살이]는,

야훼 신(神)의 구원계획의 한 대목이었나, 아니었나?
그래서 그들의 고난의 역사는
야훼
신의 뜻이었나, 아니었나?

교회 밖 사람들은,
“그게 무슨 소리냐? 고난이 하나님의 뜻이라니?”라며 고개를 갸우뚱 거려도,
기독교인들만은,
“그건 기독교의 역설적 진리(paradoxical truth)를 모르는 소리”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니던가?
 
문창극은,
좌익세력-자기들 사람 아닌 사람이 대통령-총리 되면
무조건 반대하는 우리사회의 풍토,
다른 신문사 출신이면
무조건 백안시 하는 언론계 풍토,
자칭 사림(士林)파,
그리고 직업적 선동선전 꾼들에 의해
지금 뭇매를 맞고 있다.

▲ 청문회와 국회표결이 아닌 [길거리 여론]과 [돌팔매질]로 [마녀사냥] 당하고 있는 문창극 총리후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뭐 그가 꼭 총리가 돼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가 아니라면 또 누가 있겠지.
그가 밀리면,
박근혜
정부가 밀리고...
박근혜 정부가 밀리면,
보수 전체가 밀린다는 우려 역시,
일단은 정치적인 논리다.

 
이런 정치적인 고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창극 [자신을 변호할 권리]-[정당한 심리를 받을 권리]다.
그의 인권인 것이다. 

지금이 무슨 왕조시대라고
”문창극이 역모를 꾀했나이다“
라는 일방적 고변(告辯) 한 마디로
그를 불문곡직 형틀에 잡아매 물고를 내야 한단 말인가?
지금 돌아가고 있는 분위기가 꼭 그런 마녀재판 아니고 뭔가?
이게 이성적 사회라고 할 수 있는가?
 
문창극 총리 후보자에게 말하고 싶다.
괴롭더라도 끝까지 가야 한다고.

새누리당 일부가 이탈해 낙마한다 해도
그건 새누리당의 망신이지 귀하의 망신은 아니다.
그럴 경우,
귀하는 죽임을 당한 전사(戰士)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전사는 죽음에서 일어나
새누리당 같은 위선적인 사이비 집단을 깨부수는 선봉에 설 수 있다.
그건 총리보다도 값진 소임일 수 있다.
 
문창극 파동의 교훈-그것은,
새누리당 같은 가짜는
더 이상 “썩어도 준치”라면서 봐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준치 아니라 금(金)치라도 썩은 건 썩은 것이다.

그리고 썩은 건 버려야 한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estheticismclub)


[관련 기사]

문창극 온누리교회 연설 전문 녹취록
이 글 먼저 읽고 문창극에게 돌 던져라!
"KBS보도는 연설내용을 완전히 왜곡했다"


이진광 뉴데일리 편집인

[편집자 주]
문창극 총리후보의 온누리교회 강연 내용을 놓고 정치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논란은 KBS가 연설내용 일부를 입맛에 맞게 편집해 보도하면서 시작됐다.
일부에선 후보를 자진사퇴하라고 핏대를 올리는데,
연설 전문을 꼼꼼하게 검토하고 그러는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교회에서 기독교적 언어로 연설이 이루어졌기에,
내용 전체가 기독교적 문법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기독교인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기독교리를 제외한다면,
연설 내용 어디에도 친일이라든지 민족 비하라든지 이런 것들을 찾을 수 없다.
앞뒤 잘라내고 의도적으로 견강부회한,
KBS의 보도로 촉발된 이번 논란의 핵심을 파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연설전문을 꼼꼼하게 읽는 것이다.
동영상을 보는 방법도 있지만,
정리된 글로 읽는 것이 연설의 본질을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에,
연설전문을 글로 풀어 보았다.


▲ 문창극 후보의 온누리교회 연설을 견강부회 보도한 KBS보도 화면.ⓒ

▲ 문창극 후보의 온누리교회 연설을 견강부회 보도한 KBS보도 화면.



문창극 연설 전문 녹취록


제가 이렇게 강단에 설 자격이 없습니다.
여기는 다 목사님들이 서야 되고 그러는데,
저한테 우리 목사님께서 전화가 왔어요.

내주에 [마리아 행전]을 대대적으로 하는데, 나라를 위해서 뭘 기도를 해야 되느냐?
기도하는 제목을 좀 말씀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런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음주 목사님이 오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목사님이 오시는 길을 예비하는 사람으로 여기 섰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우리가 기도를 왜 해야 되느냐.
우리는 각자 개인을 위해서도 기도하죠?
매일 우리가 아침에 기도하고 끊임없이 기도를 합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기도 드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라를 위해서도 같이 기도를 합니다.
왜 기도를 합니까?

이 나라를 위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우리가 알기 위해서,
우리가 나라를 위해서 기도를 합니다.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이 이 나라를 위해서 무슨 뜻을 가지고 계신가 하는걸 우리가 깨달으면,
우리가 그 뜻대로 살 수 있는 삶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라란 것은 뭡니까?

저는 비행기를 타면 3등칸을 많이 타지만,
가끔 좋은 좌석을 타게 되면...2등칸을 타게 되면,
굉장히 대우가 다르더라구요.
1등칸을 타면 아마 더 대우가 달라지겠죠.

나라라는 것은 저는 그런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3등 나라에 있으면, 우리는 3등칸에 타고 있는 승객입니다.
1등 나라에 있으면, 우리는 1등칸에 타고 있는 승객이 됩니다.

여러분!
1등칸을 타면, 서비스가 훨씬 좋고 편하고 얼마나 안락합니까!

우리가 1등의 나라안에서 저희들은,
개개인의 삶의 고통과 개개인의 삶의 고민을...
3등 나라 보다는 우리가 덜 겪을 수 있기 때문에,
나라가 좋은 나라가 돼야 합니다.

(그러기에)
"나라가 복 받은 나라가 돼야 한다"하는 기도를 해야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한국이라는 나라를...왜 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탄생시켜서,
무엇에 쓰려고 그러시는가 하는 것이 제일 먼저 기도의 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그 뜻을 알아야지,
우리가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한국에 대해 이런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이렇게 기도를 해야겠다...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기도를 통해서 물론 알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또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과거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국 역사에서 과거를 돌아보면,
과거에서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상황을 보면...,
대한민국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것을,
우리가 어렴풋이나마 깨닫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말씀을 드리려는 것은,
과거를 돌아보면서,
과연 하나님은 대한민국에 무슨 뜻을 가지고 계신가 하는 것을...
저 나름대로 한번 찾아보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1890년,
그때가 처음 선교사님들이 우리나라에 오실 때입니다.
이조말기 고종 때 그 이전에는 사실상 선교사님들이 아주 가끔 왔지만,
사실은 그 당시 조선에 상륙을 못했습니다.
배를 타고 왔다가 돌아가기도 하고...쇄국정책 때문에...
그때에 1890년에 선교사님들이 와서부터 사실은 우리나라는 하나님을 알게되었습니다.
1890년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 나라가 어떻게 전개되었느냐 하는 것을 훑어보면,
그안에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제목을 놓고 제가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도대체 어떻게 된 나라인가?
고비고비마다, 굽이굽이 마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었다는 것을 저는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고난을 주신 것도,
그것도 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 민족을 단련시키기 위해 고난을 주신 것입니다.
고난을 주신 다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매번 길을 열어주셨어요,
중요 중요 시기마다...

그럼 길을 왜 열어 주셨느냐?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이나라를 써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길을 열어주신겁니다.

그래서 그런걸 보면,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오면서 구비구비마다 시련과 도전을 받았지만,
그런 것이 또 하나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 기회가 돼서 지금 이 나라가 왔습니다.

먼저 조선 말의 풍경을 제가 하나 말씀 드리겠습니다.
왜냐?
그 당시 조선이 어떻게 된, 도대체 어떤 나라였느냐? 
여러분들이 막연하게 알고 계실 듯해서,
제가 책을 찾아서 조선말의 풍경에 대해서 한두가지만 먼저 알려드리겠습니다.

1832년에 영국상선  Amherst호라는 배가,
우리나라 몽금포, 황해도 서해에 왔습니다.
그때 거기에 선교사가 동승을 했습니다.
이 사람은 독일 개신교 선교사였습니다.
1832년이니까, 순조 31년입니다.
선교사 이름은 귀츨라프입니다.


이사람이 조선을 어떻게 보았을까요?
자신이 북경에 가서 보고서를 냈는데...,
조선의 현실을이렇게 적었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불결과 빈곤으로 자기 생애를 보내야하는 끔찍한 거처에서 살고 있었다.
우리가 만난 많은 사람들의 피부는 어깅없이 때로 덥혀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몇달씩 씻지 않아서 이 따위의 해충이 득실거렸다.
우리가 보는 앞에서 해충을 잡아 죽이는 짓을 주저하지 않았다.
살림도구는 서툴게 빚어졌다.
진흙으로 빚어졌는데 상상할 수 없이 조잡한 종이었다.


이것이,
1832년 선교사님이 우리나라 서해 몽금포에 와서 보고
북경의 자신의 선교본부에 보고한 조선말의 상황입니다.

그 다음 30년 뒤 1874년에 달래 신부라는 분이 왔습니다.
달래 신부는파리 외방선교사 소속입니다.
이분이 한국에 와서 한국을 싹 보고나서
<꼬레의 교회 역사> (즉) 코리아의 교회의 역사라는 것을 써습니다.
1874
년의 조선의 상황에 대해서 제가 또 하나 읽어드리겠습니다.
군이나 옛날 현이나 이런 곳의 창고를 들여다 봤나 봅니다.

창고에 저장은 장부상에만있다.
지방 병기고에는 쓸만한 탄약도 무기도 없다.
관리들이 다 팔아먹고 누더기 몇 조각과 고철나부랭이만 대신 가져다 놓았다.
아전과 수령은 그들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강탈한다.
백성은 하도 곤궁하여,
서해안 사람은 밀수업자에게 어린 딸을 쌀한 말에 팔고 있다.
길마다 송장이 널려있다.


이것이 1874년 달래 신부가 본 한국의 현상입니다.

그 다음에 1890년대에 또 한 분이 왔어요.
이분이 비숍 여사라고 영국분입니다.
책으로도 일반적으로 우리가 구할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
이사벨라 버드 비숍(1831-1904)은 영국출신의 여행가 겸 작가다.
당시 여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전세계를 여행하고 그 여행기를 책으로 출판했다.
영국 왕립지리학회 회원이기도 했던 비숍여사는 1894년 겨울, 러시아 여행후 일본을 거쳐 조선에 입국했다. 그녀는 한강을 거슬러 오르는 여정을 통해 조선의 중부 내륙을 보았고 육로로 금강산과 그 이북 지역을 여행했다. 이후 1897년까지 네번이나 조선을 찾아 모두 9개월간 머물렀다. 그리고 1898년에 《조선과 그 이웃들(Korea and her Neighbours)》이란 여행기를 펴냈다.

김수영 시인의 대표작인 <거대한 뿌리>(1964)에도 이사벨라 버드 비솝이 등장한다.

(전략)
나는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
1894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한 영국왕립지리학협회 회원이다
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세계로
화하는 극적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무단통행 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
내시, 외국인의 종놈, 관리들뿐이다 그리고
심야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 오입을 하러
활보하고 나선다고 이런 기이한 관습을 가진 나라를
세계 다른 곳에서는 본 일 없다고
천하를 호령한 민비는 한번도 장안외출을 하지 못했다고 ......
(후략)

비숍여사의 여행기


비숍 여사는 <조선과 그 이웃나라>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녀는) 한국을 다 샅샅이 들여다 봤어요.
부산에서부터 저 신의주 강계 넘어가지고  블라디보스톡까지 이 사람은 갔던 분이에요.
그래서 책을 한 권 냈는데,
이 사람이 부산을 와보니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찌나 더러운지 하수도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 그런 나라이고...
자기가 놀란 것은,
일본인들이 거처하는 동래라고 있습니다.
그 당시 부산 동래는 일본인들의 거처였습니다.
동래현은 그렇게 깨끗하더라는거에요.
일본인이 사는 곳은 그렇게 깨끗한데,
한국사람들이 사는 부산진은 왜 이렇게 더럽느냐...,
놀래서 썼다는겁니다.


부산의 번화가ⓒ한국콘텐츠진흥원

이 사람이 서울에 왔더니,
서울도 얼마나 더러운지 냄새가 풀풀나서 다닐 수가 없는...(그렇게 기록했습니다)

그게 언제인가 하면,
지금으로부터100년 전 이야기....
100년 전 한국이 그런 나라였습니다.

이 사람이 한강을 따라 영월까지 배를타고 갔습니다.
그 당시 서양여자를 보기 어려웠잖아요.
중간중간 내려서 잠을 자는데,
얼마나 사람들이
서양 여자귀신이 왔다, 이래가지고 구경을 하려고,
밤에 잠을 자려고 누우면 잠을 잘 수 없어...
빈대와 이 때문은 둘째 치고,
동네사람들이 문에 구멍을 뚫어서 본다고...
눈이 그러니까 창호지에 눈이 몇십 개가 있는거죠.
사람이 하도 밀려가지고 문이 완전히 방안으로 쓰러지는 경우도 있었답니다.


부산 초랑의 민가ⓒ한국콘텐츠진흥원


이 사람이 양평을 갔습니다.
아까 읽어 드린 것처럼 군의 사정을 알아봤는데,
그 조그만 군에,
이방 있잖아요,
옛날에 네 죄를 네가 알렸다고 볼기 치는 사람들...
이방 이런 사람들이 800명이나 있었다는거에요.

아니 이 조그마한 군에 이방 이런 사람이 800명씩이나 있다면,
그 사람들 다 누가 멱여살립니까?
다 백성들이 먹여 살린거야...
백성들이 집에 뭘 가지고 있는지 이방은 다안대요.
부엌에 숟가락이 몇 개, 장 담그는 독이 몇 개,
아주 낱낱이 다 보고있대요 이방들이.

이방들이,
그집에 뭐가 생기면 농사를 열심히 지어서 뭐가 생기면,
그 이방이 불러서 불러가지고 그냥 곤장을무조건 치는거에요.

곤장을 쳐, 왜 치느냐?
자기는 모르겠다...왜 치는지.

이방이 하는 얘기가,
니 죄는 니가 알지 내가 어떻게 아느냐.
니 죄는 니가 알렸다 말이야,
니 죄는 니가 아니까 니가 고백을 해라.
그래서 곤장을 쳤습니다.

쌀이라도 한 두말 있으면, 그걸 다 그렇게 뺏긴다 이거에요.
조선사람들은 일을 하려하지 않는겁니다.
왜?
일을 하면 다 뺏기니까.
그러니까 게을러지는거에요.
암만 노력을 해봐야 나한테 오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게을러지는거야, 세월은 가라 이렇게 되는 거지요.

이 사람이 한강을 따라가 보고,
평양을 지나 대동강을 따라 올라가 보고,
조선 상황은 똑같았습니다.

깜짝 놀란 것은,
그 당시 연해주, 그러니까 지금 소련 있는데죠. 블라디보스토크.
그 당시 한국에서 이민을 간 사람들이,
그때 북간도에서 연해주 이민을 많이 갔거든요.
거기들을 또 둘러봤어요.
조선사람들은 또 어떻게 사나.
그랬더니 연해주에 살고 있는 조선사람들을 보니까 깜짝 놀란거에요.
아니, 조선에서는 그렇게 더럽고, 그렇게 게으르고,
그렇게 아주 그냥 하류 3류 민족, 원시인 같은 삶을 사는 조선민족이...
연해주에 사는 조선민족은 얼마나 깨끗한지 몰라.
집을 반듯하게 짓고, 거기서 열심히 일을 하고,
러시아 사람보다 훨씬 더 잘 살고 훨씬 더 깨끗하게 산다는 거야.

야, 조선민족이 이런 민족이냐 참 놀랬다,
왜 연해주에 있는 조선인은 이렇고,
조선에 있는 조선인은 그러느냐?
그게 뭐냐. 그건 나라가 잘못 돼서 그렇다,
아까 말씀 드렸듯이
나라가 백성이 뭐만 생기면 볼기를 쳐서 다 뺏으니까 일을 안 하는 거야.
근데, 그런 나라를 떠나가지고 자기들끼리 모여 사니까 그렇게 잘 사는 거야.

"아! 조선 민족을 다시 봤다"
그런 얘기를 한 것을 제가 책으로 읽었습니다.

이것이 사실은 한국, 우리의 전신, 조선말의 한국 상황이었습니다.


왼쪽부터 영친왕.순종.고종.귀비엄씨.덕혜옹주.ⓒ대한사진예술가협회

그 시절을 조금 더 말씀 드리면,
1904년 고종이 그때 있었고
민비는 1895년 을미사변, 민비 시해사건,
우리가 민비를 지금은 많이 높이잖아요.
민비에 대해서, 명성황후 뭐 이래가지고 오페라 같은 것도 있고 그러는데...

그 당시 왕은 어땠냐?
왕도 똑같았어요.

그 당시에 윤치호라는 분이 일기를 쓴 게 있어요.
그 사람은 스물 몇 살부터 죽을 때까지 일기를 썼어요.
그래서 귀한, 우리의 자료가 되는데,
그 사람은 전부다 영어로 일기를 썼습니다.
그 당시에.

왜?
한국말로 쓰면 혹시 나중에 잘못되면,
그거 가지고 나중에 누가 흉 잡을까봐.
1890년대에 전부 다 영어로 일기를 썼어요, 매일매일.

▲ 책으로 출간된 윤치호 일기

편집자 주 :
윤치호는 미국-일본-중국에서 유학생활을 한 조선말기의 개화파 인사.
서재필-이상재 등과 함께 독립협회 활동을 했고, 일제 강점기에는  YMCA활동에 몸을 담그다 105인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옥고를 치렀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후반에 들면서 친일활동에 가담, 자신의 명성에 먹칠을 했다. 문창극이 인용한 일기 부분은 윤치호가 친일인사로 돌기 전 부분이다.


그 사람이 쓴 일기에,
당시 고종과 민비에 대해서 한 얘기가 있어요.

그 당시 왕궁에는 점쟁이, 무당, 내시 이런 사람들만 버글버글 한 거에요.
1904년에 노일전쟁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노일전쟁이 일어나면 자기가 왕이면,
“야, 나라가 어떻게 될 거냐? 조선은 러시아한테 먹히는 거냐? 일본한테 먹히는 거냐?
조선이 이거 정신을 차려야겠다. 어디로 가야 되느냐?”
이렇게 자기가 생각을 많이 하고,
그 당시 기독교인이 아니었으니까 기도는 안 하더라도,
지도자로서 왕으로서 자기가 진짜 뭘 해야 하는데,
그 당시 얘기를 들어보면,

제물포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포탄이 날아다니는데,
황제는 점쟁이 말을 듣고 궁궐 기둥 밑에 큰 솥을 묻는 짓을 하느라 바쁘다.


이게 그 사람 일기에 쓴 거에요.
우리 고종이란 사람이,
그렇게 무능하고,
그렇게 나약하고,
그렇게 타락한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민비로 알려진 사진. 진위여부가 불분명하다.


민비라는 사람도 똑같아요.
그 다음에 민비가 죽기 전에 민비에 대해서 평을 하는데,

영리하고 이기적인 이 여인은
미신을 섬기는 것의 반만큼 백성을 섬겼더라면
그녀의 왕실은 안전 했을것이다.


민비라는 사람도 백성을 섬기는 것엔 아무 관심이 없어요.
관심이 없고 전부다 미신 섬기는거...
덕수궁, 경기여고 자리가 경운궁이었는데...
아관파천을 하고 경운궁으로 옮겼어요.
1907년 이때쯤에.

그 옮길 때 1900년대의 덕수궁, 경운궁, 그러니까 지금 시청부근에는,
전부다 점쟁이 무당들이 들끓었대요.
왕이 점쟁이하고 무당을 좋아하니까.
전부다 점쟁이하고 무당만 있는 거야.
백성들은 그 사람들 먹여 살리느라고 세금 내야 되고...

이 사람들은 나라에 대한 걱정이 전혀 없었어요.
나라에 대한 걱정이 없는 대신 뭐만 있었느냐?

왕과 왕비, 세자만 안전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상관이 없다.


이것이 민비의 자세였다 이거에요.

제가 책을 읽어보니,
그 당시, 민비란 사람,
죽고 나서 또 고종, 엄비 이 사람들이,
얼마나 나라에 대해서 무책임하냐면,
일본한테 나라를 팔아먹어도 좋다,
일본이 우리를 합병해도 좋다,
단 이씨 왕실만 살려달라 그게 조건이었어요.

1910년 한일합방 할 때의 가장 큰 조건.
이완용이가 그 조건을 들고 일본하고 협상을 했어요.
이게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이 나라가 없어지는거에요.
조선이라는 나라가 없어지면,
조선의 국왕이라는것, 조선의 대신들이라는 것,
다 없어지는거에요.
그런데, 그런걸 모르는 거야.

나라, 조선을 너희들에게 바칠 텐데,
이씨 왕조만 살려달라.
이씨 왕실만 살려달라.
그러면 나라를 너희들에게 다 갖다 바치겠다.
그래 가지고 갖다 바친 거에요...사실.

그렇게 우리가 무능하고,
그런 나라에서 우리가 100년 전,
이게 오래 전 이야기가 아니고.
100년 전에 그런 나라였습니다.

이런 나라에 들어온 게 뭐였냐?
선교사님을 통해서, 우리 기독교가 들어온거야.
그때 기독교가 들어왔어요,
선교사들을 통해서.

이승만 박사 전기 같은 것을 읽어보면,
그런 게 잘 나타나있어요.
이승만 박사가,
처음에 이 사람은 그 당시 과거를 보려고 했어요.
과거를 보려다가 과거를 안 봤어요, 못 봤어.
과거를 안보고,
어렸을 때 눈병이 났는데 이 사람이 눈이 멀게 됐어.
아무 것도 안보여.
그래서 이승만 박사의 어머니가 깜짝 놀랐어요.

“야 이거 큰일났구나.
네가 외아들인데 네가 이렇게 눈이 멀면 봉사가 되겠구나”

무당을 불러서 굿을 해보고 해도 안 낫는거야.

그 당시 이승만 박사의 어머니가,
큰일난거에요.
그런데 수소문을 해보니까
서양선교사가 왔다 이거야.
그 사람이 의사인데 그 양반이 뭐든지 병을 다 고친다더라.
이승만을 데리고 서양선교사한테 갔습니다.
의사한테.
서양선교사가 약을 발라주고 집에 가 있어보라고 말해요.
그래 가봤어, 며칠 지났어.

어머니가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이승만이, 요만한 애가 문을 열고,

“어머니, 내 엄마가 보여요”

“니가 정말 내가 보이니 니가 눈을 떴구나”

이승만 엄마가 그렇게 기뻐하는거야.
그래서 너무나 고마워가지고 이승만을 데리고 그 선교사한테 갔습니다.

그냥 가지 않았잖아요.
옛날 어머니들이나 그런 분들은 갈 때 계란 한 줄 이렇게 가지고 갔어요.
이승만 어머니도 계란 한 줄을 가지고 그 선교사한테 찾아갔습니다.


선교사한테
“너무 고맙습니다. 우리 아들 눈을 고쳐줘서 고맙습니다”

선교사한테 이걸 갖다 주니까,
선교사가,
“그거, 계란은 당신 아들 먹이세요. 당신 아들이 눈이 먼건 영양부족 때문에 그런 거에요.
계란은 당신 아들 갖다 먹이세요”

그렇게 해서 계란을 안받았어.
그 때 이승만이 깜짝 놀란거야.

 야 서양이라는게 이런거구나.
저 선교사라는 사람은 대체 뭐 하는 사람이냐?
나는 과거를 봐가지고 이 썩어가는 나라를 고치려고 했는데,
지금 과거 볼 때가 아니구나.
이 선교사라는건 뭐고 서양의술이라는건 뭐냐?’

완전히 머리가 180도 달라졌어요.
그래서 과거공부를 다 때려치우고 배재학당에 들어갔어요.
배재학당에 들어가서 신학문을 공부했어요.
그러고서 무슨 독립협회니 이런 거에 가입을 했잖아요.

그리고 23살 때, 감옥에 들어갔어요.
왜 들어갔냐?
고종에 대한 반역죄 이런 걸로 들어갔는데,
그래서 1907년에, 6년 만에 감옥에서 나오는 거에요.
그때 조선은 벌써 러일전쟁 일어났지,
이래서 조선은 일본한테 완전히 먹히게 되어있는 상황이에요.


 우남 이승만이 29살의 나이에 옥중에서 집필한 <독립정신>

이 사람이 <독립정신>이라는 책을 감옥에서 썼어요.
29살 때.
지금 읽어봐도 아주 뛰어난 책이에요.

이승만 이라는 분은 굉장히 훌륭했던 분이었던 것 같애.
젊었을 때.
제가 지금 나이가 60이 넘었는데,
제가 쓰라고 해도 그거보다 못쓰겠어.
29살 때 백 년 전,
이승만이가 그걸 썼어요.
썼는데, 거기에 결론이 뭐냐 결론이 있어요.
그 결론이...

<독립정신> 마지막 부분 결론입니다.
그걸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세계 문명국 사람들이 기독교를 사회근본으로 삼고 있으며
그 결과로 일반 백성들까지도 높은 도덕수준에 이른 것이다.
우리나라가 쓰러진 데서 일어나고 썩은 데서 싹을 틔우고자 노력하는데
기독교를 근본으로 삼지 않고는 온 세계에 접할지라도 그 목적을 못 이룰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독교를 모든 일의 근원으로 삼아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자가 되어 나라를 한마음으로 받들어
우리나라를 영국이나 미국과 동등한 수준에 이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건국 4237년 6월 23일.


이게 1904년에 쓴 거에요.
1904년에 이런 글을 쓴 거에요.

이 사람 결론이 뭐였느냐?
이승만이가, 29세 때의 결론이,
이 나라는 기독교 국가가 되야 하겠다.
기독교 국가가 아니고서는 조선이 살아날 길이 없다.
이 사람이 결론을 내린 거야.
결론을 그렇게 내렸어요.
이승만이 그런 식으로 결론을 내린 뒤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1910년에 합방이 돼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일본이 차지하게 됐죠.

그러면, 그때도
"그럼 왜 우리나라를 보호해주셨으면 일본한테 합방하지를 않게 하시지,
하나님은 왜 이 나라를 일본한테 당하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
라고
우리가 항의할 수 있겠지...속으로.

근데 저는 아까 서두에 말씀을 드렸듯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야.

우리한테,

너희들은 이조 500년 허송세월을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은 시련이 필요하다.
너희들은 고난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주신 거라고 생각해요.
그 고난 속에서 우리가 36년을 지나고 난 다음에야,
마치 광야의 40년 생활을 하고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듯이
36년의 고난을 거치고 난 다음에
대한민국의 독립을 허용 하신 거에요.
그것도 다 하나님의 뜻이라 이거에요.

우리가 지금 와서

“야, 과거 일제가 우리한테 그게 뭐냐
우리가 참 못난 민족이다”

이럴 필요가 전 없다고 봐요.
그게 다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 피 속에서 하나의 고난이 영글어져 가지고
지금 이거의 뿌리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후회할 필요도 없고,
애석하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우리가 상심될 필요는 없다,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기독교가 들어왔지만,
기독교가 들어온 반면,
그 500년 동안 내려왔던 조선의 못된 관습, 게으름. 그런 것은 일제시대 때도 같이…
기독교인들은 부지런하고 열심히 하고 그런 것을 하나의 모토로 삼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저보다 나이 많은 분들 없을 것 같은데,
요즘은 찬송가에 그런 게 없어요.
찬송가, 1930, 40년대의 찬송가에
<일하러 가세>,
지금 우리 찬송가에 있습니까?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 삼천리 강산 위에
하나님 명령 받았으니 반도 강산에 일하러 가세


기독교가 뭡니까.
기독교가 우리 조선민족들한테
너희들 일해야 된다, 열심히 일해야 된다,
근면해야 된다...
그런걸 깨우쳐 준거야.

스코필드 박사라는 분이 선교사였는데,
일제 때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했어요.

하나님은 조선민족에게 나라와 긴 손톱을 두 개 주셨다.


편집자 주 :
캐나다 선교사로 한국에 온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는 1916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 세균학 교수로 부임했다. 3.1운동 당시 일제에 의해 저질러 진 제암리 만행 현장을 사진에 담아 전세계에 알렸다. 수감된 유관순 열사의 옥중 뒷바라지를 하기도 하다, 일제에 의해 캐나다로 강제 출국됐다.
1958년 한국으로 다시 영국 귀국해 서울대 수의대, 연세대 의대, 중앙대 약대에서 세균학을 강의했다.
1970년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다.한국이름 석호필.


아마 양반들이,
옛날 청나라 사람처럼 손톱을 안 깎은 모양이에요, 길게.
우리나라 양반들이.

하나님은 조선민족에게 나라와 긴 손톱을 두 개를 주시면서
너희들이 선택해라.
이렇게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그러나 조선민족은 애닳게도 나라를 선택하지 않고 긴 손톱을 선택했다.


양반들이 얼마나 게으르고….
민영익
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민비의 친척되죠.
일제 말에 굉장히 높은 벼슬도 하고.
이 사람은 일을,
물론 그때 양반들은 아무도 일하는 사람 없었습니다.
양반들이 일하는 것은 수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럼 양반들은 뭐하느냐?
긴 담뱃대에 담배 피고,
그 다음에 또 할 수 있는 건 뭡니까.
앉아가지고 무슨 독경, 강독 같은걸 한다 이거에요.
그거만 하느냐?
조선민족의 상징은,
아까 말씀 드렸지만 게으른거야.
게으른거를 우리 기독교 정신이 들어와서 깨자고 한 것이,
우리 기독교입니다.

당시 일본에 유학을 많이 갔어요 돈 많은 사람들이….
양반들 자제겠죠.
일본 유학 가서도 일을 하느냐.
일을 안 해.
조선민족의 그 못된 관습 때문에 일을 안 해.
일을 안하고 뭐하느냐?

또 하나 읽어드리겠습니다.
조선 지식인이 어땠느냐.
그 당시.

조선 유학생 90프로가 사회학 철학 정치학에 코를 묻고 있는데
그들의 게으른 혀를 굴리는 데는,
사회주의가 이상적일 것이다.


윤치호
일기에 나오는 거에요.
그 당시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일본 가서 유학했을 때,
공학을 한다거나 무슨 의학을 한다거나,
우리가 진짜로 이 나라가…
비탄에 빠진 이 나라를 구하려면,
그런 게 필요한 거 아닙니까?
과학을 한다거나, 그런걸 아무것도 안 하는 거야.
사회학, 철학, 정치학, 그 뭐냐?
다 혓바닥 놀리며 게으르게 먹고 살려고 한다 이거야.
그게 조선사람들, 엘리트들의 생각이었어요

윤보선이라는 대통령 아시죠?
그 사람이 영국의 에딘버러 대학을 나왔습니다.
문학을 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 집이 100칸 짜리 집이에요, 안국동에.
근데 이 사람이 부자니까.
영국 가서 뭐했냐?
문학을 했어요.
문학을 하면서 집에다
“학비를 보내시오. 내가 문학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학비를 보내라고 했는데,
800파운드,
한 학기 학비하고 생활비까지 800파운드였던 모양이야.
쌀이 100가마 이상 되겠죠.
그걸 이제 보내라 하는 거야.

그걸 보고 통탄을 하는 거야.
윤치호가.

아니, 그 비싼 돈을 들여가지고
그것도 영국 애딘버러에 가서 문학을 하다니
지금 우리나라가 당장 필요한 것은
나라를 부강시키고 어떻게든지 국권을 회복하고 이래야 되는데
어떻게 문학을 네가 선택을 하냐?

하는 꾸짖는 편지를 쓴 게 있어.
우리나라 그때 지식인들이라는게 다 똑같았어.

근데 이 사람은 또 그걸 어떻게 버전업을 시켰냐 하면,
윤치호라는 사람이,
조선 유학생들이 일하기 싫다 이거야.
그리고 앉아서 순 말로만 하는걸 좋아한다 이거에요.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고.
이게 우리민족의 DNA로 남아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윤치호 라는 사람이 뭐라고 했냐면,
조선사람들은 공산주의가 딱 맞는다 이거야. 체질상.

왜 그러냐?

공산주의가
사람들로 하여금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남의 노고에 얹혀살기를 조장한다.

이것이 유교를 가진 조선과 공통점이다.


그렇죠?
공산주의도 자기가 일하는 겁니까?
자기 일 안 하려고 하잖아.

정부가 세금 내라고, 세금 걷어가지고
나는 어떻게든지 놀자는 게 공산주의 아니에요?
사람이 자기가 열심히 일해서 자기 노력과 자기 땀으로 일해야 하는데,
야, 돈 번 사람들은 다 우리 것을 착취했다,
그러니 저 사람 것 우리가 뺏어먹자.
그게, 아주 심플하게 얘기하면 그거 아니겠어요?

조선의, 과거 조상들의 피에는,
오히려 공산주의가 맞는다,
이렇게 얘기했어요.

조금만 먹고살만한 사람들에게 달라붙는 친인척들….
조선은 옛날부터 공산주의를 해왔다.
조선 버전의 볼셰비즘(공산주의)은 강도 짓을 무산자의 영광으로 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이조 말기 민족들의 피에는,
공짜, 놀고 먹는 게 아주 몸에 박혀 있었다는 거에요.
하여튼 이런 나라였어요,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하고.

그런데, 그런 나라에 선교사님들이 와가지고 그걸 변화를 시킨 거야.
제가 국립민속관인가요? 경복궁에 있는 거.
거기서 재작년에 무슨 사진전에 가봤는데,
그 사진전이 뭐냐 하면 북간도에 ‘명동’이라는 데가 있었어요.
거기에 한 1백 몇 명이 처음 가서 정착을 했는데
이 사람들이 어떻게 정착을 해서 자기들이 일구어 나갔느냐 하는 것을
그 후손이 사진을 전부 발견을 해서 사진전을 연거야.
거기 가보니까 그 당시 북간도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깨끗하고, 열심히 살았는지
진짜 감명스럽더라고요.
이렇게 게으른 나라의 피를 타고 났는데….

거기에 목사님이 있었는데,
김약연
목사라는 분이 가족을 한 120명을 다섯 가구 끌고 가서

거기서 교회를 만들었어요.
명동교회를 만들고 명동학교를 만들고
명동유년주일학교를 만들고 명신여학교를 만들고….
근데 사진전을 했는데,
이가 득실거리고 냄새 나는 조선이었는데 얼마나 깨끗한지 몰라.
여학생들에게는 세라복을 입히고,
실험실에는 전부다 가운을 입혀서 비커-실험기구 이런 게 다 차있고,
애들을 악대를 만들어서 브라스밴드를 만들어서 제복을 입혀서….
교회를 지었는데 교회가 500명이 다니는 교회를 만들었어요.

규암 김약연 목사

편집자 주 :
규암 김약연은 뛰어난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다. 1899년 두만강을 건너 북간도로 이주한뒤 명동촌이란 한인촌을 만들고 명동학교 등의 교육기관 등을 설립해 독립의식을 고취했다. 만주에서의 독립운동으로 인해 옥고를 치룬후 1928년 평양장로회 신학교에 입학해 목사가 되어 자신이 세운 명동교회 목사로 전도사업과 독립운동을 지속했다. 항일시인으로 유명한 시인 윤동주의 외삼촌으로 윤동주도 그가 세운 명동소학교 출신이다.


그렇게 거기서 잘 살았어요.
우리가 게으른 가운데,
우리가 기독교로 개종을 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살기로 작정을 한 다음에
이렇게 달라진 거에요.
그래서 참 하나님이,
우리한테 얼마나 많은 것을 조선민족에게 보여줬나 하는 것을,
제가 말씀을 드립니다.

▲ 간도 명동학교 고등과 제5회 졸업기념 사진.

그렇게 해서 일제시대가 지났어요.
그래서 우리에게 독립을 주셨어요.
독립을 주셨으면 잘살게 만들어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40년을 우리가 광야에서 방황을 했는데.

잘살아야 하는데 또 하나님은 시련을 주신 거야.
분단이야 분단.
남북 분단을 만들게 해주셨어요.
그것도 지금 와서 보면 저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봐요.

아까 얘기했죠,
조선지식인들이라는거는 다,
거의 공산주의 사상에 가깝게 있었어요.

만일 그때 통일한국을 주셨으면 한국은 공산주의가 되는 거에요, 그때.
자동적으로 공산주의가 되는 거야.
그 당시 남한에 얼마나 많은 소위 공산주의, 조선노동당이 있었습니까?
그 사람들이 나중에 다 여순반란 사건 같은걸 일으키는건데,
그 당시 우리 체질로 봤을 때 한국한테 온전히 독립을 주셨으면,
우리는 공산화 될수밖에 없었어요.
그 당시 위에는 다 소련이고 그 옆에는 중공이고,
그러면 우리가 거기서 견뎌낼 수가 없어요.

그런데 우리를 분단시켰어.
분단시킨 이유가 뭐냐.
그때는 안타깝고 이게 뭐냐고 도대체,
우린 독립을 얻었는데 독립도 못하지 않았냐?

그렇지 않다 이거야 저는.
하나님의 뜻으로 보면,
내가 불쌍해서 독립을 시켜줬지만
아직도 너희들은 더 고난의 길을 갈수 밖에 없어.
아직도 너희는 게으른 죄 깨끗하게 안된 거야.
분단을 시킨 거에요.
분단을 시킨 것이 지금 와서 우리한테,
분단이 되었기 때문에 한국이 이정도 살게 되는 거에요.
만일 그때 공산주의가 됐으면 우리가 지금 어떻게 되어 있겠습니까.

지금 월남, 중국, 중국은 지금 몇 년 사이에 잘 살아졌지만...
지금 북한, 그게 우리의 현실이에요.
남한이 그 당시 통일됐다면 지금 북한이 되어있는거에요.
북한이 돼 있는 거야.

그런데 하나님이 우릴 그렇게 놔두신게 아니야.
하나님은 너희 그렇게 안되겠다.
다시 고난을 더 가져라.

그것 뿐입니까.
6.25까지 주셨어요.
이 6.25까지 주신 거야

우리 생각에는 하나님 참 너무하다 이럴수가 있냐,
어떻게 6.25를 우리에게 주셨습니까.
저는 이렇게 얘기하면 제가 죽지 않았으니까 6.25를 미화한다…
6.25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단련이 된 거에요.
있었기 때문에.
미국은 그 당시 한국을 떠나려고 했어요.
1949년에 애치슨라인 이라는걸 만들어가지고,
미국은 방어책임을 한국에서 제외한다,
일본하고 대만까지만 미국이 방어책임을 진다.
그래서 1949년에 남한에 있던 미군들을 다 철수했어요.
철수하고 나니까, 1950년 북쪽에서 쳐들어 온 거에요.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아가지고.
그러면, 그때 6.25전쟁이 났으면
우리는 소련이나 중공밑에서 그 후원을 받은 북한에 다 흡수되고 말았을 거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안되겠다, 너희들 붙잡아야겠다.
너희들 어떻게 붙잡냐.
미국을 못 가게 만들어주겠다.
하나님이 미국을 우리에게 딱 붙잡아 주셨어요.
미국이 6.25사변이 끝나면서 우리와 안보조약을 맺었어요.
상호안보조약을 맺었어요.
그건 뭐냐, 우리가 침략을 당하면 미국이 침략을 당한 것처럼 도와주고,
미국이 침략을 당하면 우리가 침략 당한 것처럼 또 미국을 도와주고.
우리가 무슨 미국을 도와줄 힘이 있습니까.
괜히 그건 미국과 조약을 맺기 위해서 그러는거지….

그 안보조약을 맺었어요.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 그 조약이 있어요.
그것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가 살고 있는 거에요. 사실은.
그것 때문에, 미국이 주둔하고 있는 거에요.

여러분, 미군이 없는 한국을 한 번 생각해보신적이 있습니까?
제가 친미를 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미군이 없는 한국은,
옛날은 소련 밑에 가 있는 거고,
지금은 중국 밑에 가 있는 거에요.
중국의 속국이 될 수 밖에 없어.
이미 북한은 거의 중국의 속국이 되어있지 않습니까.

6.25를 왜 주셨냐?
돌아보면, 미국을 붙잡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거에요.

그 다음에 경제 발전했습니다.
경제발전 했는데, 경제발전 누가 시켰습니까?

우리 힘으로 했습니까?
물론 우리가 새마을 운동도 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뭐 하고 다 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루에 3교대씩 밤을 새가면서 일을 했습니다.
근데 그 일을 해서 상품을 만든 게 다 어디 갔습니까?
그 당시 신발, 앨범, 흑백tv 이런 거 다 우리가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거 어디서 다 사줬죠?
그거 미국서 사 준거야...
우리 경제개발의 가장 뿌리는 뭐냐, 미국에서 사줬기 때문에….

경제개발도 사실은 미국의 덕이 굉장히 컸습니다.
이런 얘기는 우리가 친미를 하자는게 아냐,
나라를 지키려면 힘이 있어야 하고,
힘이 있으려면 경제도 부강해야 되고,
이런 게 골고루 다 있어야 돼.
근데 그것들이 있는 데에,
하나님의 뜻이 지금 돌아보니까 다 이해가 될만하더라.

그때 1960년대서부터, 70년부터 우리는 공업화를 했잖아요.
근데 공업화를 한 가장 큰 힘은 뭡니까?

일본의 기술력이야.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기술을 다하고 일본이 우리보다 앞장을 섰습니다.
우리는 일본만 따라가면 되는 거야.
박정희나 삼성이나 다 일본 따라서 한 거야.
현대자동차 다 일본 따라서 이만큼 컸습니다.
일본을 우리는 지금 우습게 보지만은,
일본사람들 특히 우리 다 우습게 보죠?
쪽바리들, 이렇게 생각하지만,
일본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경제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거야.

또 하나, 중국.
지금은 중국이 달라졌지만, 우리가 막 경제 발전할 때 중국은 뭐 했습니까?
중국은 문화혁명을 했어, 모택동 밑에서.
문화혁명 이란 게 뭡니까?
공산주의 젊은 애들이 다 내쫓는거 아닙니까?
윗사람들 내쫓고, 다 폭력으로 정권을 유지하려는거 아닙니까...

한 20년을 중국이 문화혁명으로 경제고 뭐고 다 내팽겨쳤어요.
우리가 그 사이에,
20년 사이에 우리는 올라섰어.
어느 단계까지 올라섰어.
그러니까 깜짝 놀라 중국이 1980년부터 등소평이 와서 개혁개방이다 해서
지금 세계의 G2 나라가 된 것 아닙니까.

그러면은,
안보가 필요할 때 하나님은 미국을 우리한테 주셨고,
경제가 필요할 때 일본과 중국 사이에 우리나라를 있게 해주시고,
이런 게 보통 생각하면은 다 역사가 그런 거야,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뜻으로 보면 이게 당연하게,
그렇게 온 우리의 역사다.

지금 제가 걱정 되는 건 중국이 옛날 중국이 아니잖아요.
G2 아니겠어요.
G2가 뭡니까?
세계에서 2번째 강대국이에요.
우리는 평생 미국이 제일 큰 나라고 제일 잘 사는 나라인줄 알았는데,
앞으로 2015년.
많이 남지도 않았어요.
4년 뒤에는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큰 강대국이 된다.
아니, 강대국보단 생산을 제일 많이 하는 경제 제 1의 국가가 된다 이거에요.
물론 인구가 많으니까 개별 소득을 따지면 미국이 앞서지만,
전체생산량으로 보면 중국이 1위에요.
지금까지는 미국이 1위였지만,
앞으로는 중국이 1위가 된다는 거에요.
그게 2015년이에요.

그러면 2015년 이후에 한국은 어떻게 될것이냐?

이게 상당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미국이 뭐 계속 있으니까 잘 봐주겠지 이렇게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중국이 어떻게 방향을 바꾸느냐?
우리나라에 아주 막대한 영향을 준다,
이것도 우리가 잘 해결을 해 나가야 될 일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중국이 G2로 올라선 것까진 좋은데,
거기에 나는 또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봐요.
과거는 세상의 축이 어디냐면, 대서양이었어요.
미국과 구라파였어요.
그런데 이제는 일본, 중국, 한국,
이 동북아가 세계의 중심이 되어가는 거에요.
중국이 1위 국가가 되지,
일본이 3위나 4위 국가지,
한국이 7,8위 국가지.
그러면 이 동북아가 세계 중심권이 된다 이거에요.

그러면 이건 또 뭐냐?
이건 또 뭐냐?

거기에 또 우리 한국이 앞으로 미래를 어떻게 가야 하는 데에,
굉장히 중요한 지정학적인 것이 있는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역사를 훑어오면서 중국을,
우리가 한편으로는 우리 물건을 수출해야 되니까 중국이 우리하고 친해져야 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은 아직 공산주의를 채택하고 있잖아요.
북한하고 또 가깝잖아요.
중국의 영향에 따라서 우리나라는 또 통일이 되고 통일이 안되고,,,
그럴 가능성도 굉장히 많아졌어요.
중국이 굉장히 중요한 나라로 우리한테 됐어요.

중국을 하나님께서 터치를 하셔야 된다 이거에요.
하나님이 중국을 어떻게 터치할거냐.
그거는 우리가 아직 모르겠어요,
중국에 지금 1억 명이 기독교 신자가 있다 그래요.
그래서 나라에서 인정하는 기독교 말고, 교회를 세우게는 하거든요.
나라가 다 감시 하는 거고 처소교회까지 합쳐서 1억 명이라고 하는데,
중국이 앞으로 하나님의 터치가 어떻게 이루어질지 모르겠지만,
공산주의라는 것이 우리가 무슨 협상을 통해가지고 이렇게 망하는 건 아니에요.
그렇게 안 망해.

하나님의 터치가 돼야 돼.
그건 뭐냐?
동구에서도 그런 일이 다 일어났어요.
폴란드가 제일 먼저 변했는데,
폴란드를 제일먼저 변하게 한 건 누굽니까?
그 당시 바오로 2세입니다.
바오로 2세가 거기 가서 설교를 했기 때문에,
그때 터치가 돼서 폴란드가 변하기 시작했어요.

소련이 왜 붕괴를 했습니까?
소련이 그냥 붕괴한 게 아니에요.
레이건 회고록에 보면은,
레이건이 분명히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레이건의 최측근참모였던 마이클 K. 디버가 썼다.


레이건은, 소련을 무슨 핵무기 개발 경쟁을 서로 덜 해가지고
소련을 개방하고
뭐 이래서는 소련이 변하지 않는다 이거야,
하나님이 터치를 해야된다...
레이건이 아주 믿음이 좋았던 사람인 것 같아요.
겉으로는 무슨 영화배우라고 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굉장히 경시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하나님의 터치가 있어야 된다.
하나님의 터치를 어떻게 만들거냐?
고르바초프를 개종을 시켜야겠다.
고르바초프가 교회 나오도록, 하나님 믿도록 만들어야겠다.
그래서 정상회담을 하는데, 1985년 한 네 차례를 만났는데...
그 때 비밀리죠.
두 사람만 있을 때 레이건이 고르바초프한테 전도를 했습니다.

야, 너 하나님 믿어야 된다.
너 보니깐 나하고 헤어질때 말이야,
“God Bless You!”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느냐?
너 하나님 믿어라.
하나님이 계시다.
내 아들은 하나님을 안 믿는다.
나는 내 아들이 꼭 하나님 믿기를 바란다.
난 내 아들에게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
좋은 식당에 데려가서 우리 아들한테 좋은 음식을 한번 먹이겠다.
그럼 잘 먹을 거 아니냐?
그러고 나서 아들에게 묻겠다.
얘야. 너 이거 음식이 어디서 만들어졌는데 네 앞에 와 있니?
그러면 아들이 “글쎄 그거 주방에서 만드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얘기할거 아니냐.
그러면 지금 너는 누가 만들었냐.
너 여기 와 있는데 너는 누가 만들었냐?
하나님이 만든 것이다.
고르바초프 당신, 하나님을 믿으세요.


정상회담을 하면서 하나님을 믿으라고 전도를 했어요.
카터 대통령이 1978년에 한국에 와서
박정희 대통령한테 하나님 믿으라고 전도한 적도 있어요.

하여튼 공산주의라는것은,
그렇게 우리가 협상을 통해서 뭐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남북통일이 되고, 이런 거 없어요.
그런 거 일어날수가 없어.

우리 남북을 분단시킨 이유가 다 있어.

왜냐?
하나님은 통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한다는 것을 우리 민족한테
다시 한 번 보여주시려고 하는 거야.
분명히 보여 주실 거에요.

그거는 우리가 무슨 남북회담 해서 개방정책을 써가지고, 그렇게 안돼.
분명히 10년 내에 그런 하나님의 터치가 온다 이거에요.
그 때 한국민족이, 아, 이게 뜻이 있구나 이걸 알게 되는 거에요..

제가 왜
"이 기회의 나라로 만들게 해주십시오"
우리나라 기도를 하는가 하면,
우리나라가 보통나라가 아니라 이거야.
하나님이 우리한테 매 순간 매 순간 기회를 주셨어요.

지금은 어떤 기회를 주셨습니까?
모든 나라가 한국으로 다 오려고 해 아시아에서….
우리도 아시아 전도대회 나가지 않습니까?
아시아에서 베트남, 캄보디아,
뭐 모든 사람이 한국에 오고 싶어합니다.
한국의 예술, 체육, 문화, IT기술 다 배우려고 그래, 다 오려고 그래.
그 사람들 생각에 한국은 기회의 나라라 이거에요.
우리가 옛날에 미국을 보고서
미국은 기회의 나라라고 했어요.
근데 미국이 그 기회의 나라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터치가 있는 그런 축복받은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기 때문에
지금까지 복을 받아서 제 1의 국가가 됐지만은.….

지금 미국이 점점 쇠퇴해.
미국은 왜 쇠퇴하는 겁니까?

싸이클이 있는거에요, 싸이클.
그 싸이클은 우리 인간 잘못으로 있는 거에요.
가난하고 어렵고 이럴 때는 열심히 노력해, 절약해.
그럼 가난, 고난 있다가 절약하고 열심히 하다가,
돈이 생겨, 부유해져, 번성해...

그럼 그 다음에 뭐가 생깁니까?

그 다음에 퇴폐, 퇴폐로 가는 거야.
그건 인간사가 똑 같은 거야.
모든 세계역사는 다 똑 같은 거야.
번성하고 잘 살게 되면 그 다음 싸이클이 뭐냐?
그 다음에는 자기가 나태해지고, 게을러지고, 부패해지고, 이기주의가 번성하고,
이렇게 되는 거야.
그 다음단계는 뭡니까.
몰락이야, 그 다음에 몰락이 되는 거야.
이게 싸이클이야.

하나님은 우리한테도 이런 싸이클을 주실지 몰라요.
우리가 정신을 차려야지 이 싸이클을 막을수 있는거야.
이 싸이클을 막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우리가 살아야 하는 거지.

기회의 나라를 달라는 건 뭐냐?
만들어 달라는 건.

미국 선조들이 처음 미국에 올라갔을 때 청교도들이 원한 건 뭐냐?

미국이라는 나라를 저 언덕 위에서 빛나는 곳으로 만들게 해주십시오.
환한 새 예루살렘으로 만들게 해주십시오

하고 청교도들이 기도한 거 아닙니까?

미국이 점점 쇠퇴해서 이제 G2의 국가 됐어.
앞으로 G3가 될지도 몰라.
미국 기독교가 점점….
유럽은 이미 끝났어요.
이제 그 다음은 미국 차례야.
미국도 끝날 때가 얼마 안 남았을지 몰라.

그럼 그 다음에 하나님은 누구를 써야겠습니까?
하나님이 쓸 사람이 있어야 돼.

하나님이 쓸 사람은 저는 대한민국이라 생각해요, 왜?

이건 제가 괜히,
우리가 뭐 민족이 잘났고 이런걸 부추기려고 이러는 게 아니라 이거야.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어.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선교사가 왔어요.
임진왜란 때 일본 소서행장을 따라가지고 선교사, 이미 조선에 왔어.
일본에 있던 선교사가.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200,300년 앞서서 선교사가 왔는데,
일본은 하나님 나라가 안됐어.
중국도 우리보다 훨씬 먼저 선교사 왔어.
중국도 하나님 나라가 안됐어.

한국이 유일하게,
그래도 지금 천만 교인이라고 하는데, 천만 교인을 지금 가지고 있는 거야.
참된 신자는 얼만지 모르지만, 그래도 하나님 나라로 지금 돼 있는 거에요.

아까 동북아 시대가 열렸다, 여기가 중심이다 할 때,
하나님은,

"아, 한국을 써야겠구나,
한국을 다음에 세계의 중심국가,
세계의 새 에루살렘으로 만들어야겠다"

하는 뜻이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하는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아야 된다 이거야.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그런데 우리가 다음주에 목사님이 와서 기도를,
나라를 위한 기도를 해야 되는데...
나라를 위한 기도, 뭐를 해야 되겠습니까?
나라를 위한 기도.

시간이 없어서 제가 간략하게 말하겠습니다.
아까 싸이클이 있다고 했죠.
흥망성쇠, 번영, 퇴락, 부패 이게 다 이어진다고 했죠.
우리가 이 싸이클을 끊어야 돼.
이 싸이클을 끊을 힘은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 성령님 밖에 없어.
그 싸이클을 끊어야 돼. 우리 스스로가.

그래서 이 나라를 다시 성령 힘으로
도덕의 나라, 개혁의 나라로,
다시 정신적으로 우리가 바꿔야 된다 이거에요.
그게 우리의 첫째 기도가 돼야 돼.

요즘 왜 자살이 많습니까?
왜 대통령부터 다 죽습니까.
장관 지낸 사람들?

나라가 벌써 부패해진거야. 정신이 썩어진거야,
벌써. 이러면 이 나라는 고꾸라지게 되어있어요.

"이 나라의 정신을 살려주십시오.
이 나라에 성령이 임해서 정신의 부흥이 되게 해주십시오"

하는 기도를 해야 된다는 게 제일 첫째입니다.


둘째는 뭐냐?

우리가 개혁, 정신개혁에 따라오는 건 뭐냐?
지금 이 나라가 너무 분열이 돼있어.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 너무 분열이 돼있어.
그건 잘 살게 된데도 큰 원인이 있어.
그건 있는 사람들의 그 원인도 있습니다.
분열이 된 이 나라가 다시 통합이 돼야 돼.
지금 갈등에 쌓여있는 이 나라가 다시 화합을 해야 돼.
그게 우리나라가 굉장히 중요해요.
그거 없으면 이 나라는 쓰러질 수 밖에 없어

"분열의 영, 그런 것이 이 나라에서 떠나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두 번째 기도를 해야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세 번째 기도가 있습니다.
세 번째 기도는 북한에 대한 기도입니다.
아까 북한에 하나님의 터치가 있어야지, 북한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제 통일원 사람들을 몇 사람 만나봤는데,
이 사람들 예측은,
2020년까지 북한에 분명히 변화가 일어나서 자기들이 보기에 통일이 된다고 믿는다,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2020년까지 우리 통일이 온다 이거야.
그건 하나님 터치가 있을 때 통일이 오는 거야.

그때까지 우리가 열심히 기도 해야 돼.
기도하고 지금 못 먹고 있는 북한 애들을 위해서
우리가 도와줄 거 있으면 도와줘야 돼.
지난 주에 목사님이 말씀하셨죠?
우리가 도와줄 수 있음 도와줘야, 왜?
애들은 못 먹으면 뇌가 상해요,.
세 살, 네 살까지 뇌가 100프로 발달을 하는데,
그때 영양부족이 되면,
평생을 애들이 아이큐가 낮은 저능아가 되는 거에요.
북한 애들이 다 저능아가 되면,
나중에 통일 된 다음에 우리가 그거 어떻게 먹여 살리겠습니까?
북한을 도와줄 것은 식량이나 의약품이나, 영양가 있는 거…
이런 건 도와줘야 돼요.
도와주면서, 북한에 하나님의 터치가 있기를 기도해야 됩니다.


네 번째, 중국의 민주화. 자유화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아까 필요는 제가 말씀 드렸죠?
중국이 우리한테 굉장히 중요한 나라가 됐어요.
지금 식으로 가면 조선반도, 한반도가 어떻게 될지 몰라요.
중국의 자유화, 민주화가 있고, 중국의 기독교화가 이루어져야 돼.
중국의 기독교화가 이루어지면,
우리나라의 통일은 자연히 되고,
중국의 민주화도 자연히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린 그것을 놓고서 중국을 기도 해야 됩니다.

 

다섯 번째, 제일 중요한 거에요. 뭐냐?

우리 좋은 지도자를 주십시오.
좋은 지도자, 이게 중요한 시점인데,
저는 미국의 Founding Father들,
조지 워싱턴, 제퍼슨, 존 아담스, 해밀턴,
미국이 독립을 차지했을 때에
미국에 무수하게 좋은 지도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미국이 독립이 가능했던 거에요.
그 사람들은 그 당시 월급을 안받으려고 했어요.
나라 일을 하는데 월급을 받나니? 그게 말이 되느냐?
안받으려고 했던 사람이에요.
미국의 Founding Father들은 그런 사람들이야.

링컨은 너무나 잘 아니까 얘기할 필요가 없죠.
링컨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다 기도하면서 했어.
링컨
의 명연설은 어디서 나왔습니까?
링컨은 공부를 못한 사람이에요.
그 사람, 학교도 못가봤어요.
그런데, 어떻게 그 사람이 그런 명연설을 합니까?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를 세우겠다...
그런 명연설이 어떻게 나옵니까?
이 사람은 자기가 중요한 연설이 있을 때는…
요즘 우리나라는 다 밑의 사람이 써오잖아요.
참, 그거 아니에요, 그거 아니고.
성경책 하나, 미국 헌법 하나, 딱 두 개만 들고
자기가 혼자, 멀리 백악관을 떠나서 혼자 가는 거야.
가서, 성경을 읽으면서 미국 헌법을 읽으면서,
내가 미국 시민들에 무슨 얘기를 해야 되겠나.
이런걸 일주일 동안 기도를 하면서 연설문을 썼어요.
그래서 링컨의 연설문이 명 연설문이 된 거에요.,

우리 지도자들이, 저는 그런 지도자가 좀 나와야 된다고 봐요.
지도자가 중요해요, 그런데 우린 지도자의 너무나 기근이 들렸어요.

"좋은 지도자를 만나서,
우리가 과거 미국 Founding Father같은 그런 지도자들을 
우리에게 주십시오,
그런 정치 지도자를 주셔서 이 나라를 살리게 해주십시오"

하고 전 기도를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기도해야 될 마지막 것은, 우리 크리스챤들입니다.
우리 크리스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한국에 1000만인이라고 합니다. 크리스챤이…
그런데 이 크리스찬이 지금 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그걸 우리가 냉철하게 생각을 해 봐야 되겠다 이겁니다.

며칠 전에 인요한이라고 연대 세브란스병원 교수인데, 선교사 아드님이신데,
그분이 요만한 기고를 했더라고요, 어느 신문에.
거기에 그런 얘기가 있어요.

만일 지금 한국교회에
예수님이 며칠 목욕을 안 하고 또 허름한 넝마를 걸치고
한국교회에 들어설 때
한국교회에서 그거 받아줄 교회가 한국교회에 어디 있느냐?
있겠느냐?

하고 기고를 했어요.

우리가 이거 그냥 넘길 일이 아니에요.
우리 크리스찬들이 먼저 각성을 해야 한다.
다른 사람 손가락질 할 것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각성을 해야 합니다.

영국이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된 건 뭡니까?
그러고 영국은 망했죠.

윌버포스나, 그 다음에 감리교 요한 웨슬리나 이런 분들의 성령운동 때문에 가능했던 거에요.
당시 영국상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정직했다 이거야.
제일 정직하니까 영국상인들을 다 믿을 수 있다,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편집자 주 :
윌리엄 윌버 포스(William Wilberforce, 1759-1833)는 영국의 정치인으로 노예제도 폐지운동을 이끌었다. 18세기 영국 성공회 복음주의자 중의 한사람으로 기도교적 정치운동의 모델을 세운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
요한 웨슬리(존 웨슬리 John Wesley, 1703-1791) 목사는 감리교운동을 창시한 영국 성직자다, 성공회 사제로 복음주의 운동을 펴다, 감리교회를 창시하게 됐다.


왜 영국상인들을 믿을 수 있습니까?
그 당시 윌버 포스나 이런 사람들이 개혁운동을 했기 때문에.
크리스챤 개혁운동을 했어요.
우리 크리스챤이 개혁운동에 앞장 서야 돼요.
앞장 서야 돼.

준비한 건 많았지만 이게 시간이 벌써 12시가 되서…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개인적으로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크리스챤이 먼저 정신 차리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알 수가 있어요.

우리나라는 소득이 아프리카 기니하고 같은 80불의 나라였어요.
불과 50년 전에.
그런 나라를 이렇게 만들어주신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괜히 그렇게 만들어주셨습니까?  

미국이 기회의 나라가 됐듯이
우리나라도 기회의 나라로 되어야, 소망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 수요 여성예배.
이렇게 주님을 찾아서 나왔습니다.
주님.
저희들을 이 나라를 향해서 주님의 뜻을 지금 생각해봤습니다.
저희 크리스찬들이 각성하게 먼저 도와주시옵소서.
저희 상황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주님.
이 나라를 축복하셔서
이 나라를 사는 사람들이 고통 당하지 않고,
가난하고 불행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이 나라가 앞으로 세계 복음화와 세계 선교화에 주축이 되는 나라,
미국을 이어가는 나라 주님께서 만들어주시옵소서.
예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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