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연합 측 "문창극 후보지명 철회할 경우, '여당지지' 철회할 것"

  • 한 교회에서 기독교적 사관을 설파했다는 이유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매도(罵倒)되는 기막힌 현실이 벌어지고 있다. 아무리 눈씻고 찾아봐도 "일본 지배에 순응(順應)하자"는 말은 없었지만 일부 정치인과 시민들은 "문 후보가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발언을 했다"며 그를 '친일파'로 깎아내리는 모습이다. 이처럼 교회 안에서 교인들을 상대로 신앙강연(신앙고백)을 펼친 문 후보가 '친일주의자' 취급을 받는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건전한 기독교인 전체가 '친일파'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끔찍한 논리가 성립한다.

    이에 잠자코 있던 보수 기독교인들이 저마다 '성명'을 발표하며 비분강개(悲憤慷慨)하는 모습이다. 선민네트워크와 기독교유권자연맹 등 11개 기독교 시민단체 연합체인 '선민회'는 지난 16일 오후 광화문 KBS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BS의 문창극 총리후보자 강연 악의적 왜곡 편파 보도행위를 강력 규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선민회는 "지난 MBC의 광우병 왜곡보도 사건에서 보듯이 언론의 악의적인 왜곡 보도는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고 커다란 불신의 벽을 쌓게 하는 악한 행위"라며 "그럼에도 KBS는 국민의 방송이라는 자신들의 다짐을 무너뜨리고 특정 정파의 이익을 위해 왜곡 보도하는 편파방송으로 전락했다"는 쓴소리를 가했다. 선민회는 "KBS의 이번 행태는 1천만 성도의 한국교회를 욕보이는 저질스러운 만행"이라며 "즉각적인 사과와 관련자 엄벌을 하지 않을 경우, KBS에 대한 시청거부운동과 시청료납부거부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문 후보를 버린(?) 정치인들에게 선전포고를 날린 기독교인들도 있다. 34개 회원교단을 거느리며 명실공히 한국 기독교계를 대표하는 한국교회연합 관계자는 18일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새누리당의 태도에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조작·왜곡된 부분을 마치 사실처럼 오도하고 문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면 우리 역시 여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새누리당의 태도에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정당이라는 것은 이념 중심의 이익집단이다. 그런데 같은 이념의 '내 식구'를 다른 이념 집단이 공격하고 있는데, 오히려 문 후보를 같이 공격하는 기막힌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들 주장대로 조작·왜곡된 부분을 마치 사실처럼 오도해 우리 기독교인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많은 크리스천의 정서가 새누리당이나 서청원 대표를 떠나고 있다. 이것이 '기독교 주류'의 의견이다. 만약 문창극 총리 후보지명을 철회할 경우, 새누리당이나 서청원 대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수도 있다는 게 많은 크리스천들의 생각이다.


    앞서 13일 한국교회연합은 '문창극 총리지명자 발언에 대한 특별 성명'을 발표, "강연 내용의 전체 맥락을 살피지 않고 일부만 발췌해 문제삼는 마녀사냥식 몰이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이 성명에서 한국교회연합은 "문창극 총리 지명자가 교회에서 특별 강의한 내용 중 한국 근대사의 불행했던 역사적 사건들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일부 언론이 '망언'으로 규정, 여론몰이를 하고 있지만, 이는 신앙인으로서 성경적 역사관에 입각해 강의한 내용이므로 성경적,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문제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전체적인 맥락에서 우리 민족이 불행했던 한국 근대사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 섭리 안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루었다는 것을 신앙인의 관점에서 밝힌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며 "한국교회연합은 신앙인인 문 지명자가 교회라는 제한적 공간에서 성도들을 대상으로 강연한 내용을 세상적인 관점으로 비방, 폄하하는 것에 대해 종교의 자유에 대한 탄압으로 간주하고 강력히 대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국교회의 대표적 목회자인 이종윤 목사(한국기독교학술원 원장, 서울교회 원로)의 발언도 주목할 만 하다.

    이 목사는 지난 12일 각 언론사에 보낸 장문의 글을 통해 "문 후보가 일제의 식민지배와 남북 분열이 하나님의 뜻이라 한 말은, ‘하나님의 주권사상’과 ‘창조능력으로 보전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섭리사상’을 믿는 신앙적 표현"이라며 "교회에서 장로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성경적이고, 역사관을 기독교신앙 차원에서 가장 적합하게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고 밝혔다.

    이 목사는 "문 후보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족에게 고난을 통해 오늘의 영광을 보게 하셨다는 간증과 격려의 말을 한 것이었지 결코 민족을 폄훼한 것이 아니"라며 "사도 바울이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는 기도를 했을 때에도 하나님이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하셨듯이 우리가 당한 고난의 길도 따지고 보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종교의 자유가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종교 신앙이 이데올로기화될 때 그것은 매우 위험한 것이 되나, 그 신앙을 상대화시키는 작업 역시 매우 위험한 것이다.

    문 후보의 역사관은 하나님의 주권사상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역사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므로, 기독교 신학의 차원에서 건강한 신앙인으로 존경받아야 한다. 그가 국무총리로서 자질이 있느냐 하는 문제와 달리, 그의 신앙적 표현 때문에 그를 총리직 부적격자로 판단하는 것은 적법하지 않은 것이다.


    '풀동영상' 뒤늦게 접한 시민들 "오해했다" 자인

    16일 제출될 예정이었던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또 다시 연기되면서 문 후보의 총리 지명에 청와대가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총리 지명자의 해명이 우선돼야 한다"며 중립을 견지했던 김무성 의원도 18일 사실상 지지를 철회하는 입장을 밝혔다. 김무성 의원과 당 대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친박 좌장' 서청원 의원은 하루 앞서 "문 후보자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심각한 성찰을 해야 된다"며 사실상 자진 사퇴를 촉구하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여당 중진마저도 등을 돌리게 한 문창극 후보의 발언은 대체 무엇일까? 문 후보는 지난 2011년 서울 온누리교회에서 특별 강연을 한 바 있다. 당시 문 후보는 우리 민족이 일제 강점기나 6.25 전쟁 등 수많은 '연단(鍊鍛)'을 거친 끝에 오늘날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기독교적 종교관을 설파한 바 있다.

    기독교에선 모든 환난과 고통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연단'의 과정으로 본다. 쇠붙이를 불에 달군 후 두드려서 단단하게 만드는 것처럼, 신이 원하는 완전체에 가까운 사람을 만들고자 크고 작은 시련을 겪게 한다는 논리.

    따라서 기독교인들에게 작금의 고통와 시련은 발전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통과 의례일 뿐이다. 문창극 후보가 한 발언도 이와 동일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일본의 식민지배와 남북분단을 모두 신의 뜻이라고 말한 것도 '패배주의'나 '운명론'을 강조한 게 아니라, 이같은 연단을 통해 더 큰 열매를 주시고자 하는 신의 뜻을 기대하자는 기독교적 가치관을 언급한 것 뿐이다.

    이처럼 문창극 후보가 총리 후보자로 지명되기 전, '교회 장로'의 자격으로 신도들에게 한 발언을 두고, "친일-식민사관을 설파했다"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구겼다"는 황당한 주장이 불거졌다. 지난 11일 KBS '뉴스9'에서 앞 뒤 문맥을 다 자르고 특정 부분만 들춰낸 '자극적 보도'가 기독교리에 익숙치 않은 대중에게 크나큰 혼란을 가져다 준 것. 1시간 5분짜리 '긴 강연'을 꼼꼼히 챙겨보기 힘들었던 일부 시민들은 간략하게 요약-정리된 KBS 보도만 보고, 문 후보를 함부로 폄훼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다행스러운 점은 뒤늦게 강연 전문을 수록한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점차 문 후보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풀동영상이나 강연 전문을 나중에 접한 시민들은 "알고보니 이런 애국자도 없다"면서 문 후보를 옹호하고 지지하는 입장으로 돌아서는 모습이다.

    한 시민은 "문 후보의 강연은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풀어낸 것인데,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그가 '종속-지배론'을 편 것이 아니라, 일본을 '극복의 대상'으로 두고 있다는 것은 대번에 알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시민은 "똑똑하다는 정치인조차도 영상을 보지도 않고 말만 앞세우고 있는 것 같다"면서 "환란과 고통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무한 긍정론'이 이렇게 180도 뒤바뀌는 현실이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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